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994화 (993/1,307)

# 994

“잠깐만.”

다리에 상처가 있던 사람이 조심스레 붕대를 푼다. 그리곤 푼 붕대로 환부 가장자리를 닦는다.

쓰리지는 않지만 통증이 느껴지거나 곪은 상처가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헐! 여기 좀 봐. 아까까지만 해도 고름이 나왔는데 지금은 새살이 돋아 있어.”

“뭐? 어디 좀 봐! 어? 진짜, 진짜로 다 나았네?”

곁에 있던 사람이 한마디 거들자 장내의 모든 이가 경외 어린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의술이 뛰어나다 하여 단숨에 새살까지 돋게 할 수는 없다. 그건 인간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아! 성자님!”

“세상에 맙소사! 진짜 성자님이셨어.”

“오오! 진짜 성자님이시라니!”

갑자기 모두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곤 러시아 정교 특유의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린다.

가장 가까이 있던 할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이렇듯 성자님을 보내주시어 제 병을 낫게 하여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나이다. 하느님께서 친히 보내신 성자님의 뜻에 따라 우리 가족 전부 킨샤사로 이주하겠나이다. 그곳에서 제 여생이 행복하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보살펴 주시옵소서! 아멘.”

할머니만 이런 기도를 올린 게 아니다. 장내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기도를 하였는데 다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에 전율하고 있다.

지르코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바라만 보는 것으로 환자들을 치유시키는 건 의사가 아니다.

그렇기에 경외 어린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이때 현수는 엘리디아의 동체가 뒤쪽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틈을 파고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수십 가닥으로 나뉜 엘리디아의 동체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온갖 나쁜 것을 제거하고 있다.

물은 여러 가지 효능이 있는데 첫째는 독소 제거이다.

매일 2리터쯤 마시면 체내에 축적된 독소와 노폐물이 소변으로 배출된다. 이것들이 사라지면 피부가 좋아진다.

둘째는 피로회복 기능이다.

충분히 섭취하면 혈액의 순환을 도와 피로 물질이 배출되도록 하고 뇌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준다.

셋째는 체중조절 기능이다. 공복감을 덜어주며 신진대사를 도와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준다.

이 밖에 대뇌 활동이 증진되어 기억력을 향상시켜 주며, 면역력이 높아져 병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된다.

또한 방광암과 심장병을 예방하며 우울증 유발 물질의 생성을 억제한다. 마지막으로 체내로 들어온 발암물질의 농도를 희석해 주며, 불면증을 해소시키는 기능이 있다.

이처럼 몸에 유익한 기능이 많으므로 물의 정령들에게 생체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여 엘리디아가 스치고 지나자 웬만한 질병은 완치되고 있다. 물론 켈레모라니의 비늘로부터 막대한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갔다.

“미스터 킴.”

“아, 네.”

지르코프의 부름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리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이다.

“미스터 킴은 누구십니까?”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걸 보고 아주 능력 좋은 한의사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라만 보고 있어도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속출하니 얼떨떨한 것이다.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이지요. 자, 이만 가시죠.”

“네? 아, 네.”

지르코프와 집을 나설 때까지 사람들은 현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성자를 친견한다는 벅찬 마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장모님, 킨샤사에서 뵙겠습니다.”

“그, 그러게.”

안나 여사 역시 얼떨떨하긴 마찬가지이다.

사위가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과 언어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정도로만 알았다.

이리냐가 그렇게 말한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능력까지 있는 줄 몰랐기에 아까부터 매우 놀라고 있는 중이다.

하여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서 가라는 손짓만 한다.

“장모님, 이주 희망자들이 결정되면 이리냐에게 연락주세요. 그럼 알아서 조치를 취해 드릴 겁니다.”

“고맙네. 신경 써줘서.”

“고맙기는요. 당연한 일인걸요. 참, 희망자들이 결정되어도 곧바로 가는 건 아닙니다. 저쪽에 살 집을 지어야 하니까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 그럼. 고맙네. 아주 고맙네.”

안나 여사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택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들에게도 집을 주었다이 들었다. 하여 대체 어떤 집을 제공했나 싶어 가보았다.

싹싹한 알리사와 마리나의 집이다. 알리사는 부모와 동생 셋이 있고, 마리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 하나, 동생 셋이 있다.

알리사는 본인을 포함하여 여섯 명이 한 가족이고, 마리나는 가족 수가 아홉 명이다.

알리사가 사는 집은 2층 주택으로 아래층 40평, 위층 32평이다.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제외하고 방이 여덟 개이니 모두가 방 하나씩 차지하고도 두 개나 남는다.

가족 수가 많은 마리나의 집 역시 2층 주택이다.

1층은 방이 여섯 개이며 48평이다. 2층은 34평으로 방 다섯 개가 있다.

이 집도 방이 두 개나 남는다.

두 집 다 이층엔 베란다가 있다. 햇볕을 받아 뜨거울 수 있으므로 목재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파라솔 또한 있다.

싸구려가 아니라 접이식 홀딩 파라솔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가 있다.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가 건기인데 이때는 밖에서도 식사할 수 있도록 큼지막한 것이 설치되어 있다.

실내의 가전제품은 전부 한국산 백산가전이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선풍기, TV, 전자레인지, 오디오가 그렇다.

안나 여사는 러시아에서도 고급품으로 인정받은 한국산 가전이 완벽한 세트를 이루고 있음에 크게 놀랐다.

뿐만이 아니다.

알리사와 마리나의 집에서 사용하는 식기도 한국산이다. 한국 내에서도 인정받는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 제품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락앤락 유리 용기가 그득하다.

한국에서도 이제야 대중화된 게 아프리카 한복판 냉장고 속에 즐비한 것이다.

한낱 하녀를 위해 번듯한 집을 지어주고, 최고의 가전제품과 식기를 제공해 주었다. 뿐만이 아니다. 가구 역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에겐 사치품이라 할 만큼 좋은 것이다.

물론 한국에선 대중적이지만 상대적인 느낌일 것이다.

게다가 알리사와 마리나가 받는 급여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 경찰보다도 다섯 배나 높다.

한국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가장 높은 기업은 현대 모비스로 5,900만 원이다.

알리사와 마리나 등은 이보다 다섯 배 많은 2억 9,500만 원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하녀이다.

그럼에도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안나가 생각하기에 현수는 경제적 관념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다.

피고용인들이 매달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를 모르고 있다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 혜택을 검은 까마귀 마을 주민들이 받게 생겼다. 물론 이주하겠다는 결심을 실행해야 가능한 일이다.

안나는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킨샤사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모두들 그게 사실이냐는 표정이다. 그렇게 대우 좋은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만 무성하다.

같은 시각, 현수는 노보로시스크 공항을 떠나 모스크바로 이동 중이다. 자가용 제트기엔 지르코프도 탑승해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듯 현수가 왔으니 보스에게 인사하러 같이 가겠다는데 말릴 수 없어서이다.

“미스터 킴,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참을 지나도록 지르코프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그리고 처음 입을 열어 물은 말이다. 내심 많은 생각을 하고 묻는 것이라는 뜻이다.

현수는 스테파니가 서빙한 쉐리엔 주스 한 모금을 들이켜곤 별다른 표정 없이 대꾸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정녕 성자인 겁니까?”

“…그렇게 믿으신다면요.”

현수의 길지 않은 대꾸에 지르코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상당히 많은 뜻을 내포한 대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루고자 하는 건 뭡니까?”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겁니다.”

이런 대답에 어찌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

지르코프는 성자 같은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모스크바에 당도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을 뿐이다.

현수가 이렇게 대답을 한 이유는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존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비행기는 모스크바에 당도하고 있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파니의 안내를 받아 트랩을 내려서니 여러 대의 검은 벤츠 중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인물 중 눈에 익은 이가 뜨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공보실장이다.

10장 뜻하는 대로

“어서 오십시오, 김 회장님!”

“아! 어떻게 공보실장님이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러시아의 귀빈이시니 당연한 일입니다.”

금발에 벽안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정색하며 정말로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현수는 러시아 정부에게 있어 상당한 귀빈이다.

푸틴 정부가 로스차일드로부터 금괴를 차입한 걸 갚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만으로도 그러하다.

이 밖에 메드베데프를 테러의 위험으로 구해주고, 독살의 위기 또한 해결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독을 이용한 테러에 당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 후엔 개발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땅을 조차해 주는 대가로 막대한 금괴를 주기로 했다.

그곳이 개발되면 러시아의 실업자 대부분이 직장을 가질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개발될 때까지 엄청난 고용 효과가 발생되고, 수많은 장비와 자재가 납품된다. 개발 후엔 취업자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걷을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사조이다.

하여 러시아 정부는 현수를 초특급 경호대상으로 지정했다. 어디서든, 어느 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온갖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원거리 경호를 한다. 사전에 행동거지가 의심스런 사람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물론 현수는 모르는 일이다.

이번처럼 불시에 방문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경호를 취한다. 현수가 자가용 제트기를 이용하는 한 금방 알아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노보로시스크 공항에 착륙 허가를 요청하는 순간 대통령 직속 경호실로 보고가 들어갔다.

그렇기에 노보로시스크를 떠나 검은 까마귀 마을로 갈 때부터 경호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렇기에 검은 까마귀 마을에서 일으킨 기적에 대한 보고가 올라간 상태이다.

당연히 상당히 놀랐다. 유능한 사업가 겸 자본가라고 생각하였는데 그 이상이다, 그런데 놀라움의 정도가 다르다.

성자(聖者)가 아닌 성자(聖子)라 한다.

전자는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후자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성삼위(聖三位) 중의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르는 말이다.

바라만 보는 것으로 질병을 치료했으니 어찌 이런 생각을 갖지 않겠는가!

러시아 국민 중 75%가 러시아정교의 신자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한 파로서,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의 중핵을 이루는 러시아의 자치 교회이다.

현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따라서 신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쓴 말일 것이다.

현수가 모스크바로 온다는 보고를 받은 푸틴은 크렘린궁 공보실장으로 하여금 영접 나가도록 했다. 현수가 무슨 일로 오는 건지 모르지만 먼저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구!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수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자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이러지 말라는 듯 한 발짝 물러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