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6
‘흐음! 많이 개선되기는 하겠지만 시간은 걸리겠군.’
침 끝에 실은 마나가 활약을 시작하자 원인이 되었던 신체 불균형이 점차 잡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단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더 이상의 시침은 하지 않더라도 꾸준한 물리치료가 필요하다.
‘마법을 써야 하나? 아냐. 마나포션이면 가능할 거야.’
검은 까마귀 마을에선 한 번에 모두를 치료해 줬다. 그 마을 사람들 전부 킨샤사로 이주시키려는 복안 때문이다.
장모님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도 목적이지만 바이롯 농장에서 일해줄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현지인을 쓸 경우 바이롯에 대한 소문이 번질 수 있다. 워낙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은 까마귀 마을 사람들은 그곳으로 이주하더라도 소수 집단으로 뭉쳐 있게 된다. 러시아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 확산을 미연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원치 않더라도 폐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빈민이 프랑스어, 또는 콩고어에 능통할 수 없는 것이 큰 이유이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현수가 마을을 떠난 후에도 마음 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처음 제안 받은 사람들까지 모두 이주를 결정했다.
800가구 4,000여 주민 모두가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안나는 나머지 500여 가구가 진 빚까지 말끔하게 청산해 주었다. 이반스키와 그 일당은 고리대금업을 접었다.
더 이상 돈을 빌리겠다고 오는 이도 없고 이자를 받으러 갈 곳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빗자루를 들고 검은 까마귀 마을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중이다.
어쨌거나 800여 가구 전부가 이주를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모두가 이웃이고 친지이며 친척인 관계인지라 다 같이 가면 적적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한 요인이다.
‘흐음! 마나포션 하나면 충분하겠지.’
생각난 김에 아공간에 있는 것을 꺼냈다. 지난 3월 2일에 둘에게 각각 15병의 바이롯을 선물했다.
그것을 다 복용하이 향후 1년간은 침실의 제왕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더 이상 고개 숙인 남자로 살지 않고 포효하는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말에 둘 다 환히 웃었다. 남들에게 말 못하던 고민 하나가 해소되었다 생각한 때문이다.
그런데 푸틴은 왕성한 정력을 얻고도 허리가 문제여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지만 메드베데프는 처음부터 그런 장애 요인이 없었다.
하여 눈에 뜨이게 수척해져 있다. 기력이 보충될 시간적 여유 없이 바이롯의 효능을 너무 많이 본 때문일 것이다.
현수는 침을 뽑아냈다.
“대통령님, 이제 그만 일어나셔도 됩니다.”
“벌써?”
“네, 시침은 끝났습니다. 이제 이걸 드십시오. 총리님도 하나 드시구요.”
“이게 뭔가?”
얼떨결에 마나포션이 담긴 삼각 플라스크를 받아 든 푸틴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건 기력이 왕성하도록 돕는 신약입니다. 한 번에 쭈욱 들이켜세요.”
“기력이 왕성해져?”
“네, 인체에 무해한 것이니 마음 놓고 드셔도 됩니다.”
“흠! 그런가?”
뿅―!
푸틴은 이게 대체 뭔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삼각 플라스크의 주둥이를 막고 있는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흐음! 이 향기는……?”
푸틴은 냄새만으로도 심신이 청량해지는 느낌이 들자 범상치 않은 것이라 생각했는지 얼른 입에 댄다. 그리곤 거리낌 없이 들이켜기 시작한다.
꿀꺽, 꿀꺽, 꿀꺽―!
메드베데프는 푸틴을 바라보고 있다.
현수를 믿지만 둘 다 한꺼번에 복용했다가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심각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복용하려 했다. 푸틴의 비중이 자신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마셔 버리니 멍한 표정으로 보는 것이다.
“크흐음!”
목을 완전히 젖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 푸틴은 비강을 통해 빠져나가는 향기를 느끼며 눈을 감는다.
식도를 통해 위장으로 내려가는 곳부터 시원함이 느껴진다. 뭔지는 모르지만 몸에 해롭지 않다는 느낌이다.
같은 순간, 푸틴의 위장으로 들어간 마나포션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간다. 싱거운 국에 소금을 넣으면 특유의 짠맛이 번져 나간다. 그런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마나포션은 이보다 빠른 속도로 푸틴의 몸속 깊숙한 곳으로 번져 나간다. 그러다 현수가 시침한 족태양방광경과 족소음신경을 만나자 급속도로 두 경맥의 통로를 따라 이동한다.
그러는 동안 부실한 부분은 보완하고, 문제가 생긴 부분은 원인을 제거했다.
사실 푸틴의 디스크는 나쁜 자세가 만들어낸 것이다.
혼자 있을 때면 늘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이로 인해 골반이 원래 위치에서 약간 이탈한 때문이다.
침으로 자극을 가했고, 마나는 가장 효과적인 자극이 되도록 도왔다. 그러고도 많은 기운이 남았다.
이것들이 체내를 순환하며 부족해진 기력을 보충해 갔다.
“어떠십니까?”
“…어라?”
현수의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움직여 본 푸틴은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저린 증상이 심하게 느껴졌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몸을 앞으로 숙여보세요.”
현수의 몸짓을 따라해 보니 손가락이 땅에 닿는다. 그런데 아프지 않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다 나으셨을 겁니다.”
“…이렇게 간단히?”
겨우 침 세 방이다.
그런데 주치의조차 해결하지 못한 허리 디스크를 완전히 다스렸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니 저도 모르게 반문한 것이다.
“괜찮으시죠?”
“세상에 맙소사!”
푸틴은 말을 잇지 못했다. 늘 신경 쓰이던 허리가 너무도 편안했기 때문이다.
“자네 진짜 성자인 건가?”
“성자는요. 그저 침을 잘 놓을 뿐입니다.”
“……!”
푸틴은 눈빛으로 진위를 파악하겠다는 듯 아무런 대꾸 없이 바라만 본다. 이에 어깨를 슬쩍 들썩여 주었다.
11장 마나포션의 효능
“어! 그거 왜 안 드세요? 마시면 눈 아래 다크서클이 즉시 사라질 겁니다.”
한의학에서 인체의 장기 중 신장은 에너지 창고로 불린다. 성장과 발육, 그리고 정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인 에너지를 원기라고 하는데, 이는 신장에서 저장되고 소모 및 재생된다.
이러한 원기는 과도한 성생활을 할 때 많이 소모된다.
다시 말해 너무 과한 성생활은 원기를 소모케 하여 신장의 정기를 메마르게 한다.
참고로 원기는 쓰는 만큼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 것이다.
메드베데프는 바이롯의 효능 덕에 침실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중이다. 문제는 너무 과도하여 원기 소모가 크다는 것이다.
그 결과 눈 밑에 시커먼 다크서클이 형성되어 있다.
하루 종일 정무에 시달렸으면 퇴근 후엔 편히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피로 누적으로 인한 혈액 순환 장애를 겪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 그런가?”
그렇지 않아도 다크서클이 신경 쓰이던 차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냐?’, ‘병원엔 가보았느냐?’는 물음을 너무도 많이 들은 때문이다.
메드베데프의 아내 스베틀라나 블라디미로브나 메드베데바도 1965년생이니 둘은 동갑이다.
여사는 남편의 건강이 염려되어 몸에 좋다는 건 다 구해다 먹이는 중이다. 하지만 줄여야 할 것을 줄이지 않아 나날이 수척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매일 아침 다크서클이 점점 짙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사라진다니 듣던 중 반갑다는 표정이다.
“정말 이걸 마시면 괜찮아지나?”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는 뜻이지요. 저를 믿으신다면 단숨에 그걸 비우시면 됩니다.”
현수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읽은 메드베데프는 푸틴에게 시선을 주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지만 안색이 달라 보인다.
허리 디스크를 빼고 나면 자신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1952년생이 열세 살이나 많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나이만은 어쩔 수 없어 얼굴에 주름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절대 권력자이지만 세월 따라 노인이 되어가는 중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안색이 밝아졌고 혈색이 감돈다.
눈빛은 더욱 진해진 듯싶다. 뭐라 딱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원기왕성해진 느낌이다.
이 모든 게 손에 들고 있는 삼각 플라스크 속에 담긴 액체의 효능이라 여겨진다. 하여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뿅―!
“……!”
마개를 뽑고 무의식적으로 냄새를 맡은 메드베데프의 눈이 크게 뜨인다. 상서로운 향기 때문이다.
꿀꺽, 꿀꺽, 꿀꺽―!
플라스크를 다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거꾸로 들고 탁탁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고는 손목을 내민다. 자신도 진맥해 달라는 뜻이다.
현수는 이 손목을 잡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마나 디텍션!”
맥문을 통해 스며든 마나는 메드베데프의 신체 상태에 관한 보고를 시작한다. 구강 내 충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외엔 딱히 질병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좋군요. 충분한 휴식과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적당한 운동만 곁들이시면 백 살까지는 무병장수하겠습니다.”
“정말인가?”
몸이 정상이라는 뜻이기에 메드베데프의 얼굴에 웃음이 어린다.
“네, 잠시 자리에 앉아서 편히 쉬십시오. 기력이 회복되는 걸 느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건너편에 앉은 푸틴은 벌써 눈을 감은 채 명상이라도 하는 모습이다. 체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왠지 비워져 있던 그릇에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은 때문이다.
메드베데프 역시 눈을 감고 체내를 관조하기 시작한다.
현수는 가방 속에 넣어온 서류들을 꺼냈다. 그간 틈틈이 메모해 놓은 다이어리 역시 포함되어 있다. 둘이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메모한 것들을 살펴보곤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은 길지 않았다. 푸틴이 먼저 눈을 뜨곤 현수를 바라본다.
“고맙네! 뭐라 이야길 해야 할지. 김 회장 덕에 확실히 나아졌네. 컨디션도 좋은 것 같고.”
“앞으로 이틀 정도는 힘든 일 하지 마시고 컨디션 조절을 하십시오, 그러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겁니다.”
“정말인가?”
지금도 좋은데 더 좋아진다니 푸틴은 방금 한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고맙네, 고마워!”
“제 능력으로 해드릴 수 있는 걸 한 것뿐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잊지 않겠네.”
“나도 고맙네. 몸이 정말 많이 가뿐해졌어.”
메드베데프의 눈 아래에 있던 다크서클은 확연히 옅어져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러시아 최고의 권력자들이 마음을 열었다.
둘이 권좌에 있는 한 현수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손쉬울 것이다.
“자, 이제 일 이야길 좀 하지.”
“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 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두 딸 올가와 나타샤의 부군들에게 이실리프 자치령 개발을 맡겼습니다.”
“전직 연방재판소 판사와 검사지.”
“아! 벌써 그만뒀습니까?”
“그 일을 하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푸틴은 현수가 레드마피아 보스의 후계자가 된 것이 마음에 들면서도 불편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휘하 조직에 대한 소탕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달리 생각해 보니 손(損)보다는 익(益)이 많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인 바 있다. 사업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을 모두 밑에 거느린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실리프 자치령에 대한 개발 총책임을 이바노비치의 사위들에게 일임했음을 알게 되었다.
둘은 엘리트이다. 그리고 빵빵한 배경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