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0
예비자가 영세명을 고를 때엔 그 성인이 살던 삶을 한 발자국씩 따라 살겠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인 대부분이 일찍 죽었거나 순교자라는 것이다.
그 성인의 삶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면 본인 역시 일찍 세상을 하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충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카엘은 천사이다.
그것도 영원한 삶을 사는 천사들의 장(長)이며, 최고 지휘관이다. 아프지도 않고 불행한 삶을 살지도 않는다.
현수의 모친은 가톨릭 신자이다.
지금도 일요일이 되면 킨샤사 교외에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집전되는 미사에 참례한다.
전 과정이 프랑스어로 집전되지만 빠지지 않을 정도이다.
현수 본인도 학창 시절엔 주일 미사에 꾸준히 참석했다. 그렇기에 미카엘이라는 영세명이 마음에 들었다.
13장 정체가 뭐지?
“미카엘! 좋군요. 아이가 태어나 영세를 받게 되면 그 이름을 권하겠습니다.”
“영세 받을 때 내가 대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물론입니다, 미스터 지르코프! 오히려 감사하죠.”
지르고프가 대부가 되겠다는 의미는 이리냐와 현수의 아들 알렉산더 킴의 후견인이 되겠다는 의미이다.
레드마피아 서열 1위와 3위가 뒤를 받쳐준다면 알렉산더는 마음껏 제 뜻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이런 건 다다익선이다. 그렇기에 현수의 만면엔 미소가 어려 있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순간, 크렘린궁의 대통령 집무실엔 너무도 놀라 입을 딱 벌린 사람들이 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 그리고 페스코프와 여러 명의 내과, 외과, 안과, 산부인과 의사들이다.
긴급히 파견된 공군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온 검은 까마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들은 때문이다.
이 중엔 현수에 의해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던 할아버지와 담낭 결석으로 인한 담낭염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할아버지도 있다. 뿐만이 아니다.
난치병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베세트병을 앓던 아주머니도 있다.
이 아주머니는 양쪽 눈의 망막에 심각한 염증이 생겨 통증을 느끼고 있었고, 충혈, 눈부심, 시력 감퇴를 겪던 중이다.
병원에서 베세트병 진단을 받았으나 돈이 없어 더 이상의 치료를 받을 수 없었으니 실명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현수의 침 두 방과 은밀히 시전된 리커버리 마법 덕에 멀쩡해졌다.
긴급히 모스크바로 초청된 이들의 입에서 나온 증언을 들을 때마다 의사들은 연신 ‘Невероятный Рассказ’과 ‘Невозможный’를 외쳤다. 전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뜻이고, 후자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현수가 가장 많은 침을 놓은 환자는 폐기종 환자였다. 극심한 호흡 곤란 상태였는데 네 곳에 침을 맞고 멀쩡해졌다.
양방에선 폐기종을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규명하였고, 한번 발생하면 회복되지 않는 비가역적 질환으로 생각한다.
하여 치료의 목표는 더 이상의 병의 진행을 막고 추가적인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완치 불가능한 병이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의사들은 즉각 청진을 실시했다. 환자는 긴장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한다.
숨 쉬기가 편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완치 여부는 병원을 가보지 않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청진기를 대고 있던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말 폐기종 환자였습니까?”
“네, 여기…….”
환자는 들고 있던 가방 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폐기종 진단서이다.
“…이거 진짜입니까?”
“네, 이놈이 작년에 노보로시스크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받은 겁니다요.”
“허어!”
진단서를 펼쳐 들고 있던 의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의사는 궁금해하는 다른 의사에게 진단서를 건네며 말한다.
“완전한 정상인의 폐야.”
“뭐라고?”
“이 사람 폐는 완전 정상이라고.”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그래? 폐기종은 불치병이잖아!”
“그래, 원상회복이 안 되는 병인데 어떻게 정상인이 돼?”
“그럼 내가 오진했단 말인가? 자네가 청진해 보게. 이 사람은 완전한 정상인이야. 적어도 폐는.”
의사들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푸틴과 메드베데프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이다.
별다른 약을 투입하거나 수술도 하지 않고 겨우 침 몇 방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의학에서 불치 판정을 내린 환자가 완치되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도대체 김 회장의 정체는 뭐지?”
푸틴은 현수에 대한 뒷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웬만한 국가보다도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상했던 것이다.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삼류대학 출신이다. 그러다 어렵게 천지건설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초반엔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콩고민주공화국 지사로 발령받은 이후부터가 미스터리이다.
별다른 영업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잉가댐과 수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큰 공사들을 척척 따냈다. 그다음엔 엄청난 넓이의 조차지를 차례대로 얻어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수의 조부는 평안남도 용강군 대대면 출신으로 일제 때 독립군 전령이었다.
장사를 핑계로 개성과 진남포뿐만 아니라 만주를 오가며 독립군의 주요 문서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러다 밀정의 밀고로 왜놈들에게 잡혔다.
그 후 현수의 조부는 일본군 해주지방 법원 송화지청에서 검사 겸 통역을 하던 이홍규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
어찌나 지독했는지 잔인하기로 이름난 왜놈 형사들조차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이놈의 자식은 한때 유명한 법조인이었으며 정치인이었다.
친일파의 후손이고, 자식들 모두 군대에 보내지 않고도 정치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아무튼 현수의 조부는 그 고문을 견디지 못해 운명하였다.
그날 이후 현수의 부친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모친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
밝히기 어려우니 출처를 묻지 말아달라는 이야긴 들었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그 많은 금괴가 있으면서 평생을 남루하게 살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의 행적 중 베일에 싸인 기간은 병가를 내고 사라졌던 몇 달이다.
그 이후부터 승승장구하였으니 그때 뭔가 있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침술도 그때 배웠다고 했다.
그 침술이 현재 모두를 놀라게 하는 중이다.
한국에 전통 침술이 전해진다는 건 알지만 난치병과 불치병을 단박에 완치시키는 수준은 아니다.
손상된 폐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현대의학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따라서 덕항산이 뭔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남의 나라를 수색하라는 명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회장의 정체는 대체 뭐지?”
거듭된 푸틴의 중얼거림에 메드베데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나 사람들이 신의라 일컫는 화타나 편작이다. 생존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을 능가하는 의술을 가진 겁니다.”
“화타나 편작?”
들어본 적이 있는지 푸틴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전설이 되어버린 이들을 능가하는 사람이 실존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이때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던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증 환자들을 치료한 후 비교적 덜 위급한 환자들을 눈빛으로 치료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할아버지는 현수가 환자들을 바라보고 시선을 옮길 때마다 병이 나았다는 말을 하는데 다른 환자들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한마디씩 털어놓는다.
현수가 바라만 봤는데 썩어가던 다리가 멀쩡해졌고, 편두통으로 고생하던 이는 그때 이후 머리 아픈 걸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 밖에 통풍(Gout)으로 엄지발가락을 절단하여야 한다던 환자 역시 말짱해졌다.
참고로 퉁풍이란 혈액 내에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침착되는 질병이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어 있다.
할아버지들의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의사들은 그 말이 진짜냐는 반문을 여러 차례 했고,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다른 가벼운 질병을 심각한 것으로 오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합창하듯 현수의 시선이 미치는 순간 질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세상에 맙소사! 이 말이 진짜면 성자야!”
의사들에게도 신의를 넘어 성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게. 근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바보! 신의 아들이니 당연히 신성력으로 그리하겠지. 그나저나 못 고치는 병이 없으니…….”
“세상에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네. 난치병 및 불치병 환자가 너무나 많으니.”
“그러게. 그나저나 한 번만이라도 그분을 뵈었으면 좋겠네. 자넨 안 그런가? 내 환자 중엔 정말 딱한 사람이 많네. 성자를 만나면 다 낫지 않겠는가?”
의사들의 감탄사가 거듭되자 검은 까마귀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 순간은 자신들과 다름없는 인간이라 여긴 탓이다.
이때 푸틴이 메드베데프에게 시선을 준다.
“총리, 아무래도 김 회장에 대한 의전 및 경호를 최상급으로 강화하는 게 좋겠네.”
“네, 저도 방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메드베데프는 전화를 들어 현수에 대한 경호가 국가원수급으로 상향되었으니 즉각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제부터 현수는 러시아 대통령 경호실의 밀착 경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직계가족까지 경호 대상에 포함된다.
통화가 끝나자 푸틴이 다시 한 번 지시한다.
“그리고 말일세, 우리 수교국 전부에게 김 회장을 특임대사로 임명한다는 외교 문서를 보내게.”
“네? 그럼 국제협력당당으로요?”
“그렇다네. 외교부에 연락해서 즉각 시행되도록 하게.”
현수는 이미 러시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에 임명된 바 있다.
그 신임장은 현재 남·북한 외교부에 각각 보관 중이다.
두 나라 모두 현수를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걸 러시아의 외교력이 미치는 모든 나라로 보내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푸틴의 이런 조치는 현수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이다. 러시아는 누가 뭐라 해도 강대국이다.
러시아의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를 해코지한다는 것은 러시아를 능멸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아무도 현수를 건드릴 수 없게 만들려는 조치이다.
사실 국제협력이란 명칭은 허울일 뿐이다.
외교관 신분을 부여함으로써 현수로 하여금 각국의 법률로 다스릴 수 없는 치외법권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러시아, 특히 푸틴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이미 여러 번 보여주었다.
모스크바에서 인질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무차별 독가스를 살포하여 200여 명을 죽였다.
베슬란 인질 테러 사건 때는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무차별 총격으로 300여 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반군은 그 자리에서 총살되었다.
이라크에서 러시아 외교관을 납치하여 살해하자 즉시 대 테러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이라크 무장군 전부를 살해했다.
일본의 어부가 러시아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하자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엄중 항의하자 일본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일축했다.
일본이 북방 네 개 섬을 돌려달라고 했을 때 푸틴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 심기를 거스르자 태평양함대 재편성 공격 훈련 및 모의 핵미사일 발사 실험을 실시토록 했다.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폭격기가 일본 열도 주위를 비행토록 하였다.
영국과 불협화음이 발생되었을 때에도 러시아 폭격기가 영국 상공을 비행한 바 있다.
미국이 러시아를 의식하여 폴란드에 MD(미사일 방어 체계) 라인을 설치하려고 하자 즉각 핵전쟁 불사 발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