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01화 (1,000/1,307)

# 1001

그 결과 폴란드 MD 라인은 없던 일이 되었다. 너무도 강경하였기에 미국조차 깨갱한 것이다.

이러니 누군가 러시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인 현수를 건드렸을 경우 어떤 일이 빚어지겠는가!

러시아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보았을 때 누군가의 테러로 현수의 일신에 문제가 발생되어 모든 것이 무산된다면 그 나라를 향해 핵폭탄이 날아갈 수도 있다.

한 사람 잘못 건드린 결과 수많은 국민을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2차대전 이전의 삶을 사는 후진국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 심하면 아예 나라 자체가 러시아에 흡수당할 수도 있다.

아무튼 메드베데프의 전화를 받은 대통령 경호실장은 요원들을 출동시키고 있다.

목적지는 현수의 모스크바 저택이다.

이제부터 이 저택은 크렘린궁에 버금갈 특급 경호를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저택은 현재에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경호를 받는 중이다. 레드마피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특급단원들이 파견되어 있는 것이다.

현수가 없는 동안에도 이랬다. 현수와 이바노비치를 이어주는 든든한 끈이 홀이 저택의 외벽은 이중이다.

최근에 새로 쌓은 바깥 담장이 있어서이다. 벽과 벽 사이는 경호원들의 교통호로 사용되고 있고, 중간중간 외부 감시를 위한 초소도 지어져 있다.

이것은 러시아의 최신형 대전차무기인 RPG―32의 공격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한 벽이며 초소이다.

참고로 RPG―32의 장갑관통력은 800㎜가 기본이다.

벽의 두께와 높이가 중세시대 성벽만큼 높고 든든하기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원천 봉쇄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레드마피아에게도 현수는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다.

대통령 경호실에서 파견된 특급요원들은 현장에 당도하여 당황하게 된다. 느닷없는 수화 때문이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장미! 장미!”

“……?”

경호실 요원들이 레드마피아의 암구호를 알 리 없기에 머뭇거리는 동안 AK―12를 든 마피아 단원들이 에워싼다.

요원들의 숫자는 24명인데 둘러싼 인원은 50명이나 된다.

경호 차량이 접근하는 걸 보고 인근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단원들까지 온 것이다.

참고로 AK―12는 AK―47의 최신형 모델로 러시아군의 신형 제식소총이다.

발사 속도는 자동인 경우 1분에 600발인데 마피아 단원들이 든 AK―12는 100발짜리 드럼탄창이 끼워져 있다.

일제 사격을 시작하면 10초 만에 모두 발사된다. 50명이 들고 있으니 10초 동안 5,000발의 총알이 발사된다.

그럴 경우 경호요원 전부 몰살당하게 된다. 아마 품속의 총을 꺼내기도 전에 벌집이 될 것이다.

하여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든 총은 러시아 군에도 미지급된 곳이 많을 정도로 신형이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 이 총을 가지고 있다. 대체 누구인가 싶은 것이다.

“잠깐만요! 우리는 크렘린궁 경호실에서 나왔습니다. 푸틴 대통령 각하의 특명을 받아 이 저택을 경호하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대통령 경호실?”

레드마피아가 제일 무서워하는 인물이 푸틴이다.

진짜 독한 마음을 품고 소탕령을 내리면 아주 개박살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조직원의 90%가 사살, 또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놀란 음성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대통령 경호실에서 파견된 피오드르 시오코프라 합니다. 팀장이지요. 나머지는 제 팀원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누군가의 말을 끝으로 대치되어 있는 현장은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신분이 확인될 때까지는 아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였다.

5분 후 누군가의 음성이 침묵을 깬다.

“단원들, 거총 바로!”

처척, 처처처척―!

누군가의 명에 따라 AK―12의 총구가 일제히 내려간다.

“신분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필요합니다. 피오드르 시오코프 팀장님은 저와 이야기 좀 합시다.”

“…그러죠. 그런데 그쪽은 어느 조직에서 파견된 누구십니까? 혹시 군부 소속이십니까?”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한 말이다.

“아닙니다. 나는 예브게니 셰니코프라 하며 레드마피아에 속해 있지요.”

“레드마피아요?”

시오코프 팀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 저택에 머무는 인물에 대한 특급경호만 명령 받았을 뿐 현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기에 레드마피아가 지키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은 때문이다.

“모르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십시오.”

어느 나라든 대통령 경호실에 근무하는 요원들은 본인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다소 오만하다.

시오코프 팀장 역시 그러하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레드마피아의 정예요원 대부분이 스페츠나츠 소속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의 Spetsialnoye nazranie에서 조합된 이 말은 ‘특별한 목적의 군대들’이라는 뜻이다.

대통령 경호실에도 전직 스페츠나츠가 있기에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목에 힘을 주지 못한 것이다.

피오드르 시오코프 경호팀장과 레드마피아 중간 보스 예브게니 셰니코프는 대화를 나누며 수시로 자신들의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하달된 경호 임무를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별 마찰 없이 임무 분장이 되었다. 상부에서 흔쾌히 양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같은 대상을 경호하게 되었기에 두 무리는 인사를 나눴다. 이때 저택 내부에서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현수와 이리냐이다.

그런데 평범한 대화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둘의 대화는 침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머! 어떻게……. 어머! 어머머! 난 몰라…….”

이리냐는 광풍폭우가 몰아치는 대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범선이 되어 수없는 롤링과 피칭을 겪고 있다.

창문과 방문은 모두 닫혀 있음에도 커튼이 흔들린다.

대통령 경호팀과 레드마피아 경호팀의 대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이어진 이 대화는 새벽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쿠울, 쿨―! 쿠울, 쿨―!”

모든 체력이 소진되어 곯아떨어진 이리냐의 코 고는 모습을 본 현수는 피식 웃는다. 오랫동안 독수공방시켰으니 각오하라고 한 때문이다.

커튼을 열고 밖을 보니 경호원들이 임무 교대를 하고 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일 것이라 항온의류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래층에 내려가니 요리장 타날리야가 딸과 함께 야식을 먹고 막 일어서는 중이다. 커피 한 잔을 청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저택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며 환히 웃는다. 집에는 언제 가느냐고 물었더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한다.

타날리야의 딸 플로라는 올해 18세이다.

한국 나이로는 19세이니 한창 돌아다니고 싶을 텐데 저택에 묶여 있는 게 답답할 수도 있다.

본인도 한껏 치장하고 놀러 다니고 싶지만 이제 피기 시작한 가계와 본인의 미래를 위해 꾹 참는다고 한다.

타날리야의 남편은 주정뱅이라 한다.

그래서 집에 가보면 개판이라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남편인데 어쩌겠느냐며 한숨을 쉰다. 저택과 집에서의 삶의 괴리가 너무 큰 까닭에 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단원으로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량한 권력 다툼에 휘말렸다가 주먹을 휘두르는 바람에 제명당했고, 이후 고주망태가 되어 산다고 한다.

“흐음! 모스크바 필하모닉이이 러시아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인데.”

“아시네요. 거길 나온 후 남편은 음악교사가 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남편 말에 의하면 자신을 내보낸 사람들이 수작을 부려 그렇대요. 아무튼 그때 이후 술을 마시는데 정말 미치겠어요.”

이 말 이외에도 타날리야는 많은 말을 했다. 그간 가슴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들어보니 그 일이 있을 때 남편 이외에도 여럿이 오케스트라에서 밀려났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바이올린 주자 한 명, 비올라 주자 한 명, 그리고 첼로 연주자 역시 한 명이 잘렸다.

남편은 이들과 여전히 교류를 나누지만 다들 어렵게 산다고 한다. 비올라 주자는 가게의 점원이 되어 빵을 팔고, 첼로 주자는 공사 현장에서 목수 보조로 살고 있단다.

바이올린 주자는 악기 수리점에서 간간이 일을 얻어 연명하는 중이란다. 같이 밀려난 다른 단원들 역시 가난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 한다.

타날리야는 남편을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단다. 제 건강을 돌보지 않고 술만 마시는 게 미운 거다.

‘흐음! 바이올린 둘에 비올라와 첼로가 각기 하나면 현악사중주인데…….’

안 들었으면 모르고 지나갈 일이지만 알게 된 이상 돕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현수의 심성이 착해서 그렇다.

직접 고용할 수는 없다. 이 저택에서 수시로 파티가 열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 그럼…….”

현수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친 상념 하나가 있다. 그런데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비용을 지불할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현수의 생각은 이러하다.

모스크바의 인구는 1,200만 명이며, 면적은 서울시의 네 배가 넘는다. 현재 이 도시엔 항온의류 매장이 100여 곳이나 있다. 정확히는 104개소이다.

참고로 서울시는 25개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522개 동(洞)이 존재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5개 동당 하나씩 존재하는 셈이다.

인구수로 계산해 보면 약 11만 5천 명당 점포 하나가 개설되어 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아이템인지라 모든 점포가 북새통일 것이다.

시끄러우면 음성이 커지고, 그러다 보면 사소한 일로도 다투게 된다. 이때 현악사중주단의 연주가 시작되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매출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위무와 치유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북적거리는 점포의 웅성거림 사이로 부드러우면서도 듣기 좋은 스트링 콰르텟(String quartet)이 울려 퍼지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쇼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꼭 클래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영화 Sting의 OST인 The entertainer 같은 곡은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줄 것이고, 아스트로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리베르 탱고(Liber tango)는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한다.

크로스 오버가 낯설지 않으니 거부감은 덜할 것이고, 좋아하는 연주를 계속할 수 있으니 바라는 바일 것이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보다 명성은 떨어지지만 수입은 몇 배가 될 것이다.

현수는 빈 잔을 남겨놓고 2층으로 올랐다.

이리냐는 폭풍우 몰아치던 끝없는 항해가 힘에 겨웠는지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드르렁, 드르르렁! 드르렁! 드르르렁! 퓨우우우!”

현수는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아공간 속에 담겨 있는 의복을 꺼냈다. 이제는 익숙해진 마법사의 로브이다.

아르센 대륙을 다녀올 생각인 것이다.

이번에 가면 로니안 공작 일가를 테세린까지 데려다 줘야 한다. 그보다 먼저 다프네를 찾아야 한다. 어디서 어떤 고생을 하고 있을지 심히 걱정되기 때문이다.

라이세뮤리안도 만나봐야 한다. 그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녀올게, 이리냐. 잘 자.”

“음냐! 음냐, 음냐! 퓨우우우!”

몸을 뒤척이는 이리냐는 행복한 꿈을 꾸는 듯 웃는 얼굴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어서일 것이다.

“자, 가자.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또 안개처럼 스러진다.

잠시 후, 침실엔 이리냐의 작게 코 고는 소리만 가득하다.

“퓨우우! 퓨우우우!”

『전능의 팔찌』 4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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