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02화 (1,001/1,307)

# 1002

1장 초면인데 왜 반말이야?

오늘은 아르센력 2856년 2월 14일!

모두가 깊은 잠에 취해 있을 이른 새벽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이 들어서고 있는 바세른 산맥 아랫자락의 허공에서 하나의 신형이 스르르 돋아난다.

지금부터는 천지건설 부사장도 아니고, 천지기획의 사장도 아니며, 이실리프 어패럴과 이실리프 모터스, 그리고 이실리프 메드슨의 회장이 아닌 현수이다.

또한 이실리프 뱅크의 행장도 아니며, 천지약품 공동사장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아르센 대륙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못했던 10서클 대마법사이며, 위저드 로드이다.

또한, 그랜드 마스터이며, 보우 마스터이다. 뿐만 아니라 최상급 사대 정령과 숲의 요정 아리아니의 주인이다.

또한 레드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의 친구이며, 사위이다. 골드드래곤 제니스케리안에게도 사위가 된다.

이 밖에 대지의 여신에 의해 성녀의 배우자로 낙점된 상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미판테 왕국 로니안 공작과 라이셔 제국 로이어 공작의 사위이기도 하다

현수의 신장은 184㎝ 정도 되고, 호리호리한 체형이다.

다소 야윈 듯 보이기에 70㎏ 정도라 생각하겠지만 실체중은 78㎏이다. 벗겨보면 근육질이라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근육이 살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이런 현수의 신형이 허공에서 완전히 돋아났다.

“흐음! 흐으으음!”

현수는 부러 심호흡을 해본다. 공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흐음! 역시……!”

지구의 공기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생각될 정도로 시원하고, 신선하다. 폐부에 박하 향기가 그대로 스며든 듯 청량감이 느껴져 몹시 기분이 좋다.

신선한 공기에 듬뿍 함유된 마나 때문이다.

“후아아! 여기 공기는 진짜……!”

형언할 수 없을 만족감이 해일처럼 밀려든다. 지구에선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신선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가능하다면 이곳 공기를 가져다 지구에 풀어놓고 싶다.

혼탁해진 공기에 이런 신선함을 불어넣으면 시들어가던 만물이라 할지라도 절로 소생할 듯싶다.

“근데 깜깜하네. 모두 자나?”

그믐인 듯 별빛 이외엔 빛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이실리프 자치령이다.

동시에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의 영역이기도 하다.

비워달라는 요구가 있어 제니스케리안과 라이세뮤리안을 중재자를 보냈지만 아직 선이 그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계 근무자가 전무하다. 이곳으로 숨어들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간 큰 인간이 있어 이곳을 침범한다 하더라도 곧 잡힌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이다.

백작급 영지의 병력 전체가 몰려와도 단숨에 일망타진될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것이다.

몬스터의 습격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인근에 서식하던 놈들 모두 흑마법사의 나라인 브론테 왕국 쪽으로 쫓겨 간 때문이다. 두 드래곤의 작품이다. 따라서 밤새 경계 근무를 서는 건 인력 낭비일 뿐이다.

그럴 인력이 있다면 한시바삐 자치령의 수도를 완성시키는 데 투입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선을 돌려보니 딱 한 곳에서 불빛이 보인다.

“흐음! 이냐시오 녀석이 잘하는 모양이네.”

불빛이 있는 곳은 현수가 전장의 학살자 하인스와 대련했던 곳이다. 그때 동석해 있던 가가린 백작과 스미스 백작도 검을 섞었다.

실전보다도 더 치열한 대련이었지만 현수에겐 하수들의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때 이들 셋의 검술을 면밀히 살펴 장단점을 파악하였다.

셋 다 더 이상 검을 들 기운조차 없어 헐떡이고 있을 때 현수는 장점을 더욱 키우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검법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순간적으로 검강을 발현시키는 플래쉬 오러에 대한 심득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때 깨달음을 얻은 스미스와 가가린이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오르는 중이다. 지금도 참오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이냐시오에게 그들을 잘 지켜주라는 명을 내렸다. 실제로 보호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 소드마스터로 올라가는 과정을 눈여겨보라는 뜻이었다.

언젠가 본인도 그럴 때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 대련장으로 향하던 현수는 숨죽인 채 한곳을 직시하는 무리를 발견하였다.

모두가 검을 다루는 기사다. 소드마스터가 탄생하는 현장을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수는 가장 뒤쪽에 있던 사내의 등을 툭 쳤다.

“뭔데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나? 재미있는 게 있어?”

“뭐? 너는 누구냐……?”

“나? 나에 대해선 알 거 없고, 뭘 보느냐구? 예쁜 여자가 목욕이라도 해?”

농담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발끈한다.

“뭐……?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어! 그리고 보니 마법사야? 마법사는 여기서 볼 거 없으니까 꺼져!”

마법사 따위가 감히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오르는 과정을 폄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탓에 사내의 음성엔 역정이 섞여 있었다.

“아니, 뭘 보느냐고 묻는데 왜 이렇게 화를 내? 뭘 보는 건지 한 마디만 해주면 되는 건데.”

“아! 마법사랑 관계없는 일이라는데 왜 이렇게 귀찮게 해? 어서 꺼져! 가서 잠이나 자라고.”

말을 마친 사내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 앞을 바라본다. 뭔가 대단한 보물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다.

그래 봤자 결계 속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전장의 학살자 하인스와 가가린, 그리고 스미스 백작이 있을 뿐이다.

결계 밖에 서 있는 이냐시오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기에 보이긴 잘 보인다.

“흐음! 괜히 궁금해지네. 한번 가볼까?”

현수는 부러 중얼거리곤 몇 발짝을 떼었다.

“이봐! 마법사는 볼일 없는 거라고 했잖아. 거기 멈춰!”

“……!”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콕 짚어서 말하지 않아도 그 말 속에 담긴 뉘앙스를 느낄 수 있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러하다. 기사와 마법사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에 당연히 관심사도 다르다. 그렇기에 적으로 만난 게 아니라면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소가 닭 보듯 한다. 관심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마법사에게 상당한 반감을 가진 듯 느껴졌다. 하여 뒤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가는데 왜 말리지?”

“이런 말귀 어두운 마법사를 봤나. 멈추라니까!”

스르르르릉―!

사내가 검을 뽑아 든다. 이제부터 손을 쓸 터이니 알아서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눈빛으로 쏘아본다.

“한번 해보자는 거냐?”

“이놈! 말끝이 짧다. 마법사들은 예의도 모르는가? 우린 서로 초면이거늘…….”

“그러는 너는? 너도 초면인데 반말이잖아.”

“이, 이놈이……!”

순간적으로 대꾸할 말이 옹색해진 젊은 기사는 검을 치켜든다. 그리곤 형형한 안광을 뿜어낸다.

분노가 등골을 타고 올라 정수리까지 자극한 듯싶다.

무협소설에선 이럴 때 분기탱천했다는 표현을 쓴다.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격렬하게 북받쳐 오른다는 뜻이다.

힐끔 젊은 기사를 바라보니 갓 소드익스퍼트 중급에 오른 듯싶다.

얼굴을 보면 25세 정도로 보인다. 상당히 빠른 성취이다.

젊은 나이에 벌써 이 정도가 되었다면 분명 조급해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이 고된 수련을 견뎌내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고, 대견하다든지, 대단하다는 평가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오만해질 수 있다. 모두가 우러러주고 있으니 그걸 깨닫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을 하든 칭찬받기 때문이다.

이럴 때 거역할 수 없는 누군가의 따끔한 일침이 있다면 다시금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곳에 있으니 아주 오래 이실리프 자치령에 머물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

그랜드 마스터인 현수가 롤 모델이니 끝없는 욕심이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기꺼이 가르침을 줄 생각이다. 하여 허리춤의 대거를 뽑아 들었다.

“마법사 주제에 그 짧은 대거로 나의 클레이모어를 상대하려고? 뒈지고 싶어 환장했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뽑아 든 대거는 실전용이 아닌 요리용이다.

날 길이는 불과 15㎝ 정도 된다. 반면 상대가 뽑아 든 클레이모어는 대형검으로 날 길이만 140㎝ 정도 된다.

둘의 무게를 비교해 보면 대거는 불과 200g이고, 클레이모어는 적어도 3㎏이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상황이다. 무기로만 비교해 보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와 격투기 선수의 대결이다.

그럼에도 현수는 태연자약하다.

“이봐! 내 고향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속담이 있어. 대가리 크다고 머리 좋은 건 아니잖아, 안 그래?”

가방끈 길다고 공부 잘하느냐고 물으려다 만 건 이곳에 적합하지 않은 비유인 듯싶어서이다.

“이잇…….”

녀석은 놀림을 당한 기분인지 분노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나저나 내가 뒈질지 안 뒈질지 시험해 보지 않을 거야? 왜 그러고 서 있어?”

“그럼! 마법은 안 쓸 거냐?”

“글쎄? 내가 보기에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상대의 심기를 박박 긁는 소리이다. 하지만 곧장 발작하지는 않는다. 고된 수련과 수많은 대련을 거치는 동안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때문이다.

상대는 현수를 유심히 째려본다.

신장은 184㎝, 몸무게는 70㎏ 정도이다. 마법사의 로브를 걸쳤으나 동년배로 보이니 기껏해야 2서클 마법사일 것이다.

손에 든 대거는 아무리 봐도 마법이 인챈트된 것 같지 않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때문이다.

어쨌거나 대거를 휘두를 때마다 화염이 쏟아져 나오거나 번개가 몰아치진 않을 것 같다.

시간은 짧았지만 사내의 시선은 예리했다. 현수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두 번이나 훑으며 어떤지를 가늠했다.

그 결과 별 볼 일 없다 판단했는지 입술을 굳게 다문다. 입을 벌린 채론 힘을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방금 한 말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지.”

“……!”

“미리 경고하는데 내 검엔 눈이 없다. 그러니 다치더라도 나를 원망하지 말도록!”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 다니까.”

“이런 미친……! 웬만하면 봐주려 했거늘, 좋아! 이건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덤벼!”

검을 곧추세우고 형형한 시선으로 현수를 노려본다. 사자는 작은 동물을 사냥할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상대가 허약해 보이고, 위협적이지 않은 무기지만 방심하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빈틈을 노리는 것이다.

현수는 부러 긴장한 태세를 갖췄다. 그리곤 삽시간에 모든 빈틈을 제거했다. 어떤 공격이든 되받아칠 만반의 자세를 갖춘 것이다.

이 사내는 미판테 왕국 출신인 가가린 백작이 아끼는 제자이자 기사이다.

영지에 자리 잡은 중소규모 상단주의 자식인데 어린 나이일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제자로 거둔 것이다.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가르치는 대로 실력이 늘었다. 하여 가가린 백작은 시간 날 때마다 가르침을 내렸다.

그때마다 강조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것이다.

먼저 공격하면 상대는 수세에 몰리게 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거듭된 공격을 가하게 되면 허둥지둥하게 되는데 그때 드러나는 빈틈을 노리면 필승이라 하였다.

이보다 더 좋은 건 처음부터 상대의 빈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이다. 상대는 시종일관 수세에 몰려 허둥대다가 변변한 반격조차 못하고 패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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