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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06화 (1,005/1,307)

# 1006

라세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그런데 다프네는 라세안의 친딸이다. 현수는 진실을 알려줘야 할 듯싶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 아니네!”

“뭔데? 뭔 말을 하려다 마나? 말하게.”

현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다프네가 노예사냥꾼에 의해 팔려갔다는 걸 알게 되면 당장 아드리안 왕국부터 라세안에게 작살날 것이기 때문이다.

“참! 몬스터 몰이가 아직도 안 끝난 건가? 왜 아직도 브론테 왕국 쪽에 있었나?”

“몬스터 몰이는 벌써 끝났지. 제니스와 둘이서 몰아대는데 어떤 놈들이 감히 말을 안 듣겠는가? 안 그래?”

“그럼요.”

제니스케리안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라세안의 말처럼 드래곤의 위협에 정면으로 대항할 몬스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공중과 육상 몬스터가 그러하다.

다만 해양 몬스터인 레비아탄이나 씨 서펀트, 그리고 크라켄만은 장담할 수 없다.

레비아탄의 경우는 덩치가 거의 드래곤만 하다.

물속에서라면 드래곤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민첩하고, 사나울 때가 있다.

씨 서펀트는 길이로만 따지면 드래곤보다 길다.

드래곤이 수중으로 들어갈 경우 아나콘다가 짐승들을 칭칭 감듯 그런 공격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들 둘은 드래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가급적 피한다. 양패구상일 경우 자신들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치유마법을 알지만 이를 모르니 상처 입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는 걸 아는 것이다.

크라켄의 경우는 예외이다.

사납고, 먹이에 대한 욕심만 강한 몬스터이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이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백전백패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공격하는 게 크라켄이다.

어쨌거나 바세른 산맥엔 바다가 없다.

따라서 드래곤의 위협에 대항할 몬스터란 없다. 하여 모든 몬스터가 브론테 왕국 쪽으로 옮겨갔다.

라세안과 제니스가 그쪽으로 몰아간 때문이다.

“그런데 왜 거기에 있었나?”

“흑마법사들 때문이지.”

“흑마법사? 하긴, 브론테 왕국은 흑마법사들의 왕국이니.”

고개를 끄덕이던 현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거기서 흑마법사들이 자네에게 덤볐나?”

“덤비긴! 그깟 놈들이 어떻게 감히……. 제니스와 내가 놈들을 사냥했지.”

“그래? 그런데 흑마법사들이 그렇게나 많아?”

라세안이 화염의 브레스를 뿜어냈다면 흑마법사 따위는 아무리 많이 뭉쳐 있어도 단숨에 재가 된다.

그렇게 몇 번만 하면 끝났을 일인데 제법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스쳐 말을 이었다.

“놈들이 어디 동굴이나 던전 같은데 숨어 있어서 그래?”

“아니! 그런 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죽여도 죽여도 숫자가 줄지 않아서 그래.”

“죽여도 숫자가 줄지 않는다니?”

흑마법사도 사람이다. 따라서 죽임을 당하면 한 구의 시체가 될 뿐이다. 그런데 숫자가 줄지 않는다니 이상하다.

이때 라세안이 말을 잇는다.

“죽이고 돌아서면 며칠 있다 그 자리에 또 그만한 수의 흑마법사가 있네. 마치 부활하는 거 같아.”

“부활……? 그럼, 혹시 리치가 아닐까? 리치를 제거하려면 라이프 베슬을 깨야 하네.”

3장 드래곤 로드의 레어

현수는 라세안과 동행하던 중 실종된 카트린느를 찾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공간이동 마법진을 발견했고, 그 결과 네크로맨서 리치 아무리안 델로 폰 타지로칸을 만났다.

9서클 흑마법사가 영생을 얻기 위해 스스로 언데드화 하여 리치가 되었던 존재이다.

그때의 타지로칸은 현수에게서 감지되는 막대한 양의 마나에 아주 흡족해했다. 켈레모라니의 비늘에 담긴 정제된 마나만으로도 자신이 직접 창안한 흠향의 진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를 발견한 타지로칸은 데스 브레스를 뿜어냈다.

거무스레한 안개 비슷한 것이 쇠창살에 갇힌 현수를 향해 뿜어진 것이다.

이것은 네크로맨서 마법의 정화가 담겨진 것으로 드래곤의 브래스에 버금가는 재앙을 주는 위력이 있었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데스 브레스를 만나는 순간 영혼을 잃게 된다.

육체는 상하지 않지만, 영혼은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당했다면 현수의 육체는 타지로칸이 차지했을 것이고, 영혼은 마신에게 귀속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현수는 8서클 마법사여서 절대 열세였다.

만일 아공간 마법을 적절히 쓰지 못했다면 그대로 당했을 만큼 아주 강력했던 존재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타지로칸을 소멸시킨 바 있다.

그때 얻었던 많은 마법서 중엔 생명 연장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그간 시간이 없어 자세히 살피지 못해 내용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리치? 리치는 적어도 8서클 이상이야 가능하지.”

“그런데?”

“놈들은 기껏해야 3∼4서클이었네.”

“그래……?”

라세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절대 리치일 수가 없다. 그런데 부활하는 거 같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다.

부활은 10서클 마법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9서클 마스터를 넘어본 사람이 없기에 10서클 마법이라는 건 아예 없었다.

있다면 드래곤의 마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드래곤도 부활 마법을 썼다는 기록이 없다.

중간계의 조율자이니 인과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부활 마법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인간과 드래곤은 같은 마법이라도 발현시키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현수는 인간 최초로 10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드래곤의 마법 또한 알고 있다. 이를 참고하여 새롭게 강력한 마법을 창안하면 그게 10서클 마법이 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10서클 마법사이지만 현수는 부활 마법은 모른다. 그런데 흑마법사들이 부활한다니 조금 이상하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자 라세안의 말이 이어진다.

“없애면 또 나타나고, 또 없애도 또 나타나길 반복하는 상황이라 아예 그곳에 머물고 있었네.”

“그랬군! 아무튼 수고가 많았네.”

흑마법사들은 눈에 뜨이는 족족 박멸해야 할 대상이기에 현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 오빠가 한번 보재요.”

제니스케리안의 말이다. 쌍둥이인지라 평생 동안 ‘내가 오빠다’, ‘내가 누나다’로 싸웠는데 옥시온케리안이 로드가 되면서 자연스레 서열이 정해졌다.

모든 드래곤의 수장인데 ‘내가 너보다 높다’고는 할 수 없어 양보한 것이다. 또한 자신이 저질렀던 치욕스런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기대한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번에 현수의 부탁을 받아 옥시온케리안을 만나러 갔을 때 제니스는 정말 오랜만에 ‘제니스케리안’으로 불렸다.

가이아 여신의 신전에 술 마시고 똥을 쌌던 사건에 대한 처벌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는 현수가 케이트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난 직후의 일이다.

옥시온케리안은 현수와 약간의 마찰을 빚은 후 나름대로 조사를 해본 바 있다. 그 결과 현수가 10서클 마법사이며, 가이아 여신의 사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래곤 로드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상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케이트는 제니스케리안의 제자이다. 둘이 결혼하면 제자의 남편이 된다.

인간 중 최강자가 동생인 제니스보다 한 항렬 아래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격적으로 이전에 지었던 죄를 사면 받은 것이다.

“로드께서 보자고 하신다면 당연히 뵈어야지요.”

“말 나온 김에 지금 갈까요?”

“지금이요? 좀 이른 시각인데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아요. 오빠는 아침잠이 없거든요.”

제니스케리안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때 곁에 있던 케이트가 한마디 거든다.

“로드께선 밤잠도 별로 없으신 거 같아요.”

케이트는 옥시온케리안을 여러 번 만났다. 스승의 수발을 위해 늘 동행했던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드래곤 로드를 만나는 일은 지극히 드물며, 매우 영광스런 일로 치부된다.

아르센 대륙의 역사서엔 인간과 드래곤의 만남이 여러 번 기술되어 있다. 주로 영웅들이 드래곤을 만나 도움을 얻거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를 만난 인간은 그중에서도 매우 드물다. 따라서 케이트가 옥시온케리안을 만난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케이트는 드래곤의 정식 제자이다. 이는 정말 극히 드문 케이스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훗날 틀림없이 역사서에 기록될 것이다. 인간을 제자로 맞아들인 드래곤은 지금껏 없었던 때문이다.

케이트는 극도로 조심했다. 드래곤도 그냥 드래곤이 아니라 로드이기에 혹시라도 실례를 할까 두려웠던 때문이다.

그러다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이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래곤들은 수면기가 아니더라도 밤이 되면 잠깐잠깐 눈을 붙이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에 로드가 된 때문이다.

옥시온케리안은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날마다 고심 또 고심이다. 어찌하면 중간계의 평화가 지금처럼 유지되며, 종족 간의 다툼이 줄어들 것인지 등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신이 창조하신 각각의 종족이 멸종당하지 않게 보살피는 일이다. 특히 힘이 약한 짐승들에 대한 보호 방안을 강구하는 중이다.

토끼와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수효가 나날이 줄고 있었던 때문이다. 여우나 늑대 같은 육식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물론이고 몬스터들까지 마구잡이로 사냥하거나, 잡아먹고 있었기에 조만간 멸종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기 전에 이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종족 번식을 이룰 수 있을 여건을 제공해야 할 듯싶다.

인간에 의한 자연 훼손도 고려 대상 중 하나이다.

땔감을 얻기 위한 벌목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지만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는 것은 문제이다.

불을 놓을 때마다 너무 넓은 면적이 불에 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식물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근절시킬 수도 없다. 하여 조만간 각국의 국왕 내지는 황제들을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을 품고 있다.

화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생각한 것이다.

다음으로 신경을 쓴 것은 혹시라도 재현될지 모를 마족의 중간계 재침범이다. 흑마법사들에 의해 마계의 문이 열리면 세상은 온통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 9서클 마스터에 이른 흑마법사 하나가 마계의 문을 열었다. 열고 싶어서 연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열린 것이다.

그때 수많은 마족이 중간계로 넘어왔다.

마계의 문을 열었던 흑마법사는 이들을 이용하려다 가장 먼저 소멸당했고, 세상은 한동안 몹시 시끄러웠다.

눈에 뜨이는 거의 모든 동식물이 피해를 입은 때문이다. 마족들이 날뛰는 곳은 황무지처럼 황폐해졌다.

그들이 뿜어내는 마기 때문에 식물들은 누렇게 말라비틀어졌고, 마기를 접한 동물들은 미친 듯이 날뛰며 서로를 잡아먹었던 때문이다.

오크가 오크를 잡아먹고, 트롤이 트롤을 잡아먹는 일이 빚어졌다. 심지어 채식만 하던 사슴이 다람쥐를 잡아먹고, 토끼는 들쥐를 잡아먹었다.

먹이사슬에 일대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당시 중간계를 침입한 마족의 수효는 약 20만이다.

하여 헤츨링을 제외한 모든 드래곤이 총출동하여 그들과 혈전을 벌였다. 워낙 상대의 수효가 많았기에 로드가 총동원령을 내렸던 것이다.

17년에 걸친 혈투 끝에 모든 마족을 소탕했고, 마계로 통하는 문은 단단히 봉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1,200여 드래곤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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