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9
따라서 현수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러고도 짐짓 선심 쓴다는 식으로 쿠션 몇 개를 꺼냈다.
이번에 꺼낸 것은 천으로 만든 것인데 파스텔 톤이라 색깔이 부드러워 보인다. 광목 원단에 옥스퍼드 플라워 원단이 접합된 부분은 토숀레이스로 마무리되어 있다.
“이것도 드리지요.”
말을 하며 허리 뒤춤에 넣자 옥시온케리안과 라세안은 쿠션을 유심히 살펴본다. 하얀 레이스 부분은 너무도 깨끗하고, 정교하다. 플라워 원단의 그림들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모두가 똑같다. 내심 놀라웠지만 드래곤 체면에 마냥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는지 둘 다 쿠션을 등 뒤에 넣어본다.
“흐음! 좋군. 등이 편해!”
라세안이 먼저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빛을 보낸다. 자신의 레어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어찌 모르겠는가! 현수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딸도 주는데 소파 세트 정도야 어찌 못 주겠는가!
기분이 흡족한지 라세안의 시선이 로드에게 옮겨간다.
“로드! 이실리프 자치령에 대한 인가는 어찌 결정했습니까? 생각은 해보신 거죠?”
공식적인 자리라 생각했는지 아주 깍듯하다.
“……!”
수천 년을 살았지만 소파 세트는 처음 본다.
하여 현수 모르게 꾹꾹 눌러보며 가죽을 씌운 탁자를 살펴보던 옥시온케리안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방금 뭐라고……?”
“하인스 마탑주가 원하는 이실리프 자치령에 대한 인가를 어찌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아! 그거……. 그런데 점점 인간이 많아지면 시끄럽지 않을까요?”
로드의 시선은 현수에게 향해 있다. 어투며 눈빛 모두 완곡한 반대의사 표현이다.
그런데 현수와 로드가 대립하면 라세안과 제니스케리안은 곤란해진다. 둘이 전투를 벌일 경우 편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로드는 드래곤들의 수장이고, 현수는 자신들의 사위가 되기 때문이다.
“로드……!”
라세안은 전에 이야기했던 핵배낭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려 했다. 이때 현수가 먼저 끼어든다.
“로드께서 이곳을 영역으로 선포하기 이전부터 이 땅은 테리안 왕국의 영토였습니다. 저는 테리안 국왕으로부터 정당하게 이곳을 할양받았지요.”
현수의 말이 이어지자 옥시온케리안은 시선만 보낸다. 더 들어보고 대꾸하겠다는 의미인 듯싶다.
상대의 반응이 이러하다면 막 나갈 수는 없다. 여지가 있는데 굳이 반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드래곤 로드이시니 영역 선포를 굳이 인간에게 통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이 대목에선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드래곤에게 있어 인간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수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간도 있지만 지극히 극소수이기에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실리프 자치령을 개발하게 되면 인간들의 수효가 늘어날 겁니다. 우려하시는 대로 지금보다 더 소란스럽거나 시끄러울 수도 있겠지요.”
“……!”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옥시온케리안은 고개를 끄덕여 그게 문제라는 표현을 한다.
“그런데 인간들이 어찌 발전되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이 아닐까요? 매일 소란스럽고, 날마다 시끄럽지는 않을 테니까요.”
“발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르센 대륙 남쪽에 위치한 어스 대륙에서 왔습니다.”
“어스… 대륙이라고요?”
옥시온케리안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라세안에게 시선을 준다. 너는 알고 있느냐는 뜻일 게다.
“네! 미판테 왕국 남단에서 배를 타고 엄청나게 멀리가면 또 다른 대륙이 있다고 합니다. 미지의 대륙인가 봅니다.”
“흐음! 미지의 대륙이라……!”
중간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로드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르센 대륙의 남쪽엔 파이렛 군도가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훨씬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버려진 대륙 또는 마물의 대륙이라 불리는 콰트로 대륙이 있다.
크기는 아르센 대륙에 버금가지만 마물들에게 완전히 접수되어 버린 대륙이다. 이곳의 마물은 오크나 트롤, 오우거 같은 몬스터가 아니다.
아득히 오래전, 인간들의 탐사에 의해 발견된 이 대륙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주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쯤 전의 일이다.
당시 소드마스터 3명과 소드익스퍼트 최상급 12명, 상급 94명, 중급 321명, 초급 1,218명과 병사 20만 5천 명이 배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 밖에 마법병단도 동행했다.
기록에 의하면 8서클 1명, 7서클 2명, 6서클 15명, 5서클 88명, 4서클 321명, 3서클 668명, 2서클 1,879명이다.
물론 이들 이외에 시중들어 주는 시녀와 시종, 그리고 하인과 노예들이 다수 동행했다.
거대한 화산폭발로 자신들의 영토를 떠날 수밖에 없던 지금은 없어진 엘라딘 왕국의 병력 전부였다.
쏟아져 내려오는 화산재와 용암을 피해 수천 척의 배에 나눠 탄 이들은 긴 항해 끝에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에 콰트로 대륙에 당도했다.
가장 먼저 이들을 반긴 것은 ‘데빌 모스키토’라 불리는 모기 떼였다.
몬스터들의 두꺼운 가죽마저 뚫고 피를 빠는 이놈들에게 물린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앓다가 죽었다.
지구로 치면 말라리아에 감염된 결과이다.
다음으로 이들을 반긴 것은 아르센 대륙에선 찾아보기 힘든 마물이다. 워낙 강력하고, 난폭한데다 은밀하기까지 하여 수없는 기사와 병사들이 놈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 결과 최초의 상륙 이후 불과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가 전멸했다. 30만에 가까운 인간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개척단이 떠나고 딱 1년 후에 출발한 후속대는 엘라딘 왕국민들이다. 개척단이 살 만한 여건을 갖추는 동안 식량 및 건축 자재, 농기구 등을 챙겨오기로 했었다.
이들이 콰트로 대륙에 당도하여 처음 본 장면은 허연 백골들이 즐비한 해변이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기사들의 찌그러진 갑옷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창과 방패, 검, 화살 등이 여기저기 박혀 있다.
엄청난 혈투가 벌어진 듯하다.
해변 안쪽을 보니 숲이 황폐했다. 마법사들의 화염계 마법이 난사된 흔적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왕국민 중 일부가 먼저 상륙했다. 그때 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보았다. 은신해 있던 마물들에 의해 모두가 잡아먹히는 처참한 광경을!
인력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아르센 대륙의 강자 중 하나인 오우거라 할지라도 놈들에겐 힘없는 먹이일 뿐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후속대는 황급히 배를 빼고 다른 상륙지점을 찾았다.
그런데 해변에 상륙할 때마다 마물들의 공격이 있어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대륙인 듯싶었다.
하지만 아르센 대륙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너무 멀고, 가는 동안 식량이 떨어져 굶어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모든 식량이 소모되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상륙해서 기반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다른 상륙지점을 찾았고, 그때마다 많은 인원이 희생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전해 보이는 해변에 당도했다.
모두가 무기를 꼬나들고 조심스레 전진했다. 다행히 마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희망이 보이자 사람들은 힘을 합쳐 농토를 조성하고 마을을 만들었다. 마물들을 대비하여 견고한 목책도 둘러쳤다.
이때의 인원이 겨우 10만이다.
올 때는 80만이나 왔는데 70만 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상륙지를 찾을 때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축차소모된 결과이다.
새롭게 터를 잡은 곳은 한 번도 농사짓지 않은 땅인지라 너무도 비옥하여 농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이제는 살았다 싶었던 어느 날 마물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견고하다 생각했던 목책은 베헤모스만 한 마물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졌고, 그 위로 엄청난 수의 마물이 난입했다.
그 결과 단 17명만이 살아남았다.
마수들의 공격이 있을 때 바다에서 고기를 잡느라 배를 타고 있어서 안전했던 것이다.
가족, 친지, 동료들이 마물들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리곤 배를 몰아 천신만고 끝에 아르센 대륙으로 되돌아왔다. 이들의 입을 통해 미지의 땅 콰트로 대륙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다.
당시, 흥미를 느낀 드래곤들이 이곳을 돌아보았다.
그 결과 수많은 몬스터와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드래곤이 주신으로부터 중간계 조율을 명받을 때 마물들에 관한 관리는 임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콰트로 대륙은 관심을 꺼도 된다.
마계의 돌연변이 같은 것들이 사는 곳이니 마계를 관장하는 마왕 또는 마신이 관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래곤들에게 있어 콰트로 대륙은 마계의 존재들이 유희를 즐기는 곳이라 여겨지고 있다.
당연히 드래곤들의 관심 밖인 지역이 되었다.
콰트로 대륙엔 육상용 괴수만 있을 뿐 넓디넓은 해양을 헤엄쳐 올 마수 종류는 없다. 따라서 아르센 대륙으로 이동하여 혼란을 일으킬 방법이 없으니 관심을 끈 것이다.
아무튼 아르센 대륙 남쪽에 콰트로 대륙이라는 마계의 땅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생전 들어보지 못한 어스 대륙에서 왔다고 하자 옥시온케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때 라세안이 한마디 거든다.
“하인스에게 이야길 들어보니 어스 대륙은 콰트로 대륙과는 다른 곳인 모양입니다, 로드!”
현수에게 시선을 돌린 옥시온케리안이 사실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쯤 되면 또 한 번 뻥을 쳐야 한다.
“네! 맞습니다. 어스 대륙은 아르센 대륙으로부터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지요. 그곳엔 현재 약 6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약 230개 국이 있는데 저는 코리아 제국이라는 곳의 백작입니다.”
“인구가 60억……!”
옥시온케리안의 입이 딱 벌어진다. 아르센 대륙 전체 인구보다도 10배 이상 많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네! 60억 맞습니다. 그리고 제 영지는 셰울이라 하는데 영지민의 수효는 약 1,000만 명이지요.”
“……!”
영지민 수가 무려 1천만이라는 말에 옥시온케리안은 크게 놀란 듯하다. 아르센 대륙에서는 한 나라의 전체 인구인 곳도 많기 때문이다.
기다렸다는 듯 라세안이 또 한 번 거든다.
“영지군의 수가 무려 60만이라더군.”
“뭐어? 영지군이 60만이라고? 허어……!”
점입가경이라는 듯 입을 딱 벌리는 옥시온케리안이다.
한 나라 전체의 군사력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때 현수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참! 어스 대륙이 콰트로 대륙과 다른 건 마물이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맞아……! 그리고 보니 거긴 드래곤도 없대.”
“……!”
미지의 대륙이니 그곳의 드래곤은 아르센을 관장하는 자신의 관할하에 놓여 있지 않다.
그런데 그곳에 드래곤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근데 드래곤이 없다는 말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대륙이라면 그곳을 관장하는 존재들이 있었을 텐데.”
사실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주신은 대륙별로 드래곤을 파견했다. 대륙과 대륙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날갯짓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콰트로 대륙만 해도 배를 타고 몇 달은 가야 할 정도로 먼 곳에 있다. 제아무리 지구력이 뛰어난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날아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이전에 그곳을 확인할 때엔 배를 타고 갔다. 상륙하지 않고 하늘 위에서 살펴보기만 했기에 좌표 확인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