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0
텔레포트나 워프마법을 쓸 수도 없으므로 왕래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드래곤 로드들에겐 세상에 알려져선 절대 안 되는 비밀 하나가 전해진다. 콰트로 대륙에 있던 모든 드래곤이 마물들에 의해 멸종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스 대륙에서도 그러하다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드래곤에 필적할 능력을 가진 마물이 존재하지 않은 곳이라 한 때문이다. 하여 재차 묻는다.
“주신께서는 대륙마다 드래곤은 배치하셨는데 왜 없다는 거지요?”
“저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어스 대륙의 드래곤들은 오래전에 멸종당했습니다.”
“멸종이라니요……?”
다른 종족이 멸종당하는 것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최상위 포식자 위치에 있는 드래곤이 어찌 마물도 없는데 멸종당한다는 말인가?
“아주 오래전 어스 대륙에 빙하기가 도래했었습니다.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솟아오른 화산재가 오랫동안 햇볕을 가린 때문이지요. 이걸 보시면 빙하기는…….”
말을 하며 자연스레 노트북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빙하기의 발생에 관한 영상이다.
7만 3천 년 전, 수마트라 섬 토바화산의 폭발로 솟아오른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태양을 가렸다.
이 때문에 기온이 떨어져 1,800년간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주장을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또 다른 영상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 여파로 빙하기가 도래하여 공룡이 멸종당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두 개의 영상을 지켜본 옥시온케리안이 묻는다.
“이렇다 하더라도 드래곤들이 완전히 멸종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현재의 어스 대륙엔 단언컨대 드래곤이 존재치 않습니다.”
현수의 말에 라세안이 끼어든다.
“참! 자네 아공간에 드래곤 사체가 있지 않은가? 그걸 꺼내서 보여드리게.”
“뭐라? 아공간에 드래곤의 사체가 있어요?”
옥시온케리안이 몹시 놀란 표정을 짓자 라세안이 얼른 말을 잇는다.
“로드! 어스 대륙의 드래곤은 우리와 조금 다른 것 같더군요. 아! 뭐하나? 친구! 어서 꺼내보시게.”
“아, 알겠네. 근데 이곳은 조금 좁으니 저쪽에 꺼내놓겠네. 괜찮지요?”
말을 마친 현수는 약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아공간 속에 담겨 있는 모켈레 무벰베의 사체를 꺼내놓았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난동 부릴 때 잡은 녀석이다.
이놈을 제압할 때 여러 번 블리자드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때의 냉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주변 공기가 급속히 식는다.
“이건……!”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5m가 약간 넘는 용각아목공룡의 사체를 본 옥시온케리안은 잠시 하던 말을 끊고 면밀히 살핀다. 이때 라세안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는 10서클 마법을 썼다고 하는데 마나의 품으로 돌아간 지 너무 오래되어 남은 마나가 없더군요.”
“흐음! 그런 것 같습니다.”
옥시온케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말을 잇는다.
“크기를 보니 헤츨링인가 봅니다. 그런데 헤츨링이 10서클 마법을 썼다는 겁니까?”
이번 질문은 현수에게 향한 것이다.
“그건 제가 직접 목격한 게 아니라 뭐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전승되어 오는 고대로부터의 문헌을 보면 10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옥시온케리안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대꾸를 한 뒤 모켈레 무벰베의 사체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때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참고로, 이 사체는 저의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오는 것입니다.”
“조상이 드래곤의 사체를 물려줘요?”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네! 제가 알기로 이 사체는 어스 대륙의 최후의 드래곤입니다. 저의 조상님들께선 그를 10서클 리절렉션 마법으로 부활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아! 부활 마법……. 그런데 마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조금 어려울 듯하군요. 모두 발산된 모양입니다.”
심장 부위에 존재할 드래곤 하트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에 한 말이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수는 잠시 말을 끓었다. 뭐라 둘러대야 할지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같은 시각, 옥시온케리안은 더욱 면밀한 시선으로 모켈레 무벰베의 사체를 살핀다.
만져보기도 하고 꾹꾹 눌러보기도 한다.
그런데 겉의 형상이 조금 이상하다. 날개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린다.
5장 사기꾼 김현수
‘흐음, 헤츨링이라 덜 자라서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런 듯싶자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이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체군요. 다른 대륙의 드래곤이라……. 멸종당한 콰트로 대륙의 드래곤들도 이와 같다면……. 마물들에게 당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아르센 대륙의 드래곤들은 헤츨링이라 할지라도 이보다 훨씬 크다. 모켈레 무벰베는 알에서 깨어나 불과 10년도 안 된 아주 어린 헤츨링과 같은 크기이다.
유아기나 다름없어 아직 날개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인 듯했다. 날개 없는 드래곤은 없기 때문이다.
“……!”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뭐라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난감해서이다.
“하인스 마탑주님! 이 사체를 우리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연구 가치가 상당할 듯싶습니다.”
“네? 그, 그건……?”
사실 처치 곤란한 공룡의 사체이다. 딱 하나 용도를 찾아본다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단히 큰 냉동실이 필요하다. 속까지 꽁꽁 얼리지 않으면 금방 부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조금 곤란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저의 가문 가주들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건데 어찌…….”
현수가 내주지 않으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자 옥시온케리안이 말을 끊는다.
“대신 아르센 대륙의 드래곤 사체를 드리지요.”
“네……?”
“뭐라고요?”
현수와 라세안 둘 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기 때문이다.
옥시온케리안은 라세안에게 시선을 돌린다.
“자네는 알지? 실버 일족의 쿠리마드리안 님!”
이름을 들은 라세안의 입이 지체없이 열린다.
“설마, 300년 전에 작고하신 쿠리마드리안 알로세 퀘이로사 이헨우실파이네이젠 님을 말하는 겁니까? 로드!”
“그러네! 그분께서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시면서 존체를 기증하셨지. 우리 드래곤들을 위해 연구할 것이 있으면 자신의 몸으로 연구를 해보라고 하셨네.”
“아! 그러셨구나. 어쩐지……!”
실버드래곤 중 최고령자인 쿠리마드리안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로드가 된 옥시온케리안을 찾아왔다.
그리곤 어차피 흩어질 몸이니 죽은 뒤 연구용으로 쓰라며 사체 기증을 제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쿠리마드리안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고, 옥시온케리안은 유언에 따라 연구를 시작했다.
드래곤의 사체에서 마나가 모두 빠져나가면 그때부터는 썩기 시작하므로 대단위 결계를 치고 내부에 보존마법을 걸어두었다. 그리곤 시간 날 때마다 그 안으로 들어가 연구를 거듭했다.
홀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실버, 블랙, 블루, 화이트, 레드 일족에서 각기 하나씩 대표를 보내 합동 연구를 했다.
레드 일족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라이세뮤리안이 빠진 것은 본인이 고사한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간에 비하면 지겹도록 오래 사는 것이 드래곤이지만 드래곤 역시 무병장수를 원한다. 하여 생명 연장에 대한 실마리를 잡으려 했던 것이다.
지구처럼 유전자나 줄기세포, 그리고 항산화와 면역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래곤은 탐구를 좋아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센 대륙에 이런 것이 전혀 발전되어 있지 않다.
옥시온케리안 등은 지난 삼백 년간 쿠리마드리안의 사체를 연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지구에서라면 사체를 해부하여 내부를 살폈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 이는 존경받았던 고룡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쿠리마드리안의 사체로부터 얻을 것은 더 이상 없다. 강력한 결계와 보존마법 덕분에 드래곤 하트도 거의 원상태대로 있지만 이걸 이용한 다른 마법에 대한 연구 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흔히 탐구심 강한 드래곤이 차원이동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이 묘사된다.
그때 자신의 드래곤 하트 속 마나를 쥐어짜거나 다른 드래곤의 그것을 이용한다는 설정이 많다.
그런데 이곳 드래곤들은 그런 연구를 하지 않는다.
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중간계 조율이란 임무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연유로 쿠리마드리안의 사체는 드래곤 하트가 멀쩡하게 잘 있지만 더 이상의 효용가치가 없다.
하여 조만간 결계를 해제하고 보존마법 또한 캔슬시켜 자연스레 마나가 흩어지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른 대륙의 드래곤 사체를 접하게 되자 호기심이 돋는다. 하여 이를 차지하기 위해 쿠리마드리안의 사체와 일대일 물물교환을 제안한 것이다.
“어쩌겠습니까? 보아하니 리절렉션 마법을 창안해도 되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현수는 드래곤의 사체를 접한 바 있다. 라수스 협곡 내부 호수 속 동굴에 있던 켈레모라니이다.
아리아니가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연구를 하는 등의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완전한 사체 한 구가 생길 모양이다.
내심은 몹시 기대되고, 흥분되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다. 조상 대대로 물려온 것을 내주고 다른 것을 받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로드의 뜻에 따르지요.”
“그럼, 아공간 오픈! 입고!”
지구의 괴생명체 모켈레 무벰베의 사체는 옥시온케리안의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잠시 후 현수의 아공간으로 대단위 결계 속에 얌전히 보존되고 있던 쿠리마드리안의 사체가 들어갔다.
[주, 주인님!]
화들짝 놀란 아리아니가 아공간으로부터 튀어나온다. 느닷없이 들어온 드래곤의 사체에 놀란 것이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들어가 있어. 드래곤 로드와 이야기 나누는 중이니.]
현수와 아리아니는 마나를 이용한 무성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옥시온케리안 또한 이 대화에 끼어든다.
[아리아니라면 켈레모라니 라수스 에이페 컨페드리안 브리에텐토가리니안 님의 시녀가 아닌가?]
[네! 로드, 아리아니가 드래곤 로드께 문안을 여쭙습니다.]
[어찌 된 영문이지?]
[여기 계신 하인스님이 저의 새 주인님이세요. 켈레모라니님의 뜻에 따라 마나의 비늘을 드렸거든요.]
“뭐라? 마나의 비늘을?”
옥시온케리안이 놀란 표정으로 목소리를 낸다.
켈레모라니는 최상의 정갈함을 추구한 드래곤으로 유명하다. 거의 결벽증 환자 수준이었다.
신체 상태는 항상 최상이 되도록 했고, 신체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까지 극도의 청결과 정리정돈이 유지되도록 했다.
말년에 이르자 딱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역린에 1,000년간이나 순수 정제시킨 마나를 담기도록 했다.
그리곤 다른 드래곤들에게 자신의 사후 가장 마음에 드는 존재에게 그것을 선물할 것이니 그런 줄 알라고 했다. 이를 받은 자는 비록 혈연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후계자라 여기라는 뜻도 전했다.
따라서 켈레모라니의 역린을 지닌 자는 드래곤과 맹약을 맺은 존재가 된다. 죽이고 싶어도 죽여선 안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법사가 후계자가 되면 순수 정제된 마나의 증폭된 힘을 얻어 무지막지한 위력을 내는 마법을 구현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