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16화 (1,015/1,307)

# 1016

현수는 세팅해 둔 길다란 식탁 위에 조리된 파스타들을 올려놓았다.

“자! 여기 있는 이것으로 이렇게…….”

현수는 조리용 집게로 파스타를 덜어 오목한 접시에 올려놓은 후 포크로 돌돌 말아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인들 모두 현수가 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각각의 맛이 다를 테니까 조금씩 덜어서 먹도록!”

“네! 마탑주님!”

“감사히 먹겠습니다, 주인님!”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는 접시에 파스타를 덜었다.

이곳 사람들은 지구인에 비해 섭취량이 많다.

지구보다 육체적으로 더 많이 움직여야 하므로 에너지원이 더 필요한 때문이다.

현수가 가장 먼저 각각의 파스타를 조금씩 덜어냈다. 시범을 보여준 것이다.

여인들도 현수를 따라 파스타를 접시에 담았는데 양 조절을 잘못해서 그러는지, 배가 고파서 그러는지 수북하다.

현수가 먼저 봉골레를 맛보자 모두가 음미하듯 맛을 본다.

“어머! 고소해요.”

“흐으음! 세상에……! 너무 부드러워요.”

“어쩜, 어떻게 이렇게 맛이 있죠?”

“우와아! 역시 주인님께서 만드신 건 달라요.”

전에도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 바 있다. 헥사곤에 처음 왔던 날이다. 그때의 메뉴는 피자와 만두였다.

당시 헥사곤의 여섯 여인뿐만 아니라 이들의 시중을 위한 시녀 144명 전부와 경계근무 중인 기사와 병사 150명까지 이것을 맛보았다.

그리고 한국 도자기에서 만든 로얄오차드 뷔페 세트 접시까지 하나씩 하사했다.

이들에게 지구에서 만든 물건들은 대단히 세련되고 기품 있어 보인다.

웬만한 귀족가에도 없을 귀품인 때문이다.

당시 하사받은 접시들은 왕실 주방에서 사용한다. 왕궁에서 높은 값을 치르고 모조리 수거해 간 것이다.

덕분에 이곳 사람들 모두 횡재했다. 하나당 20골드씩 지불했으니 한국 돈으로 2,000만 원이나 된다.

접시값치곤 상당히 비싸다.

아무튼 그때와 음식의 종류가 바뀌었으니 당연히 맛도 다르다. 같은 점이 있다면 너무 맛있다는 것이다.

쩝, 쩝! 후르륵! 쩝쩝! 후르륵! 후룩! 쩝, 쩝, 쩝!

여인들은 환상적인 맛에 반하기라도 했는지 정신없이 먹는다.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던 우아함은 잠시 누군가에게 맡긴 듯 허겁지겁 먹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입에 딱 맞는 간과 맛이다. 그러던 준 마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손에 들고 있는 포크 때문이다.

“공주님! 이거 혹시 미스릴로 만든 거 아닌가요?”

“어머! 정말……. 세상에 그 귀한 미스릴로 이런 걸…….”

세상 마법사들의 정점에 서 있는 마탑주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리리스와 이사벨, 그리고 아그네스와 나오미 역시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똑같은 포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스테인리스로 만든 그릇들이 즐비하다. 조리할 때 쓰던 것이다. 스테인리스라는 걸 모르니 이곳 사람들 눈에는 미스릴로 보인다.

그러나 놀라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2초이다. 다시 파스타를 먹느라 여념이 없어진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고소한 냄새를 맡았는지 헥사곤의 모든 시녀가 기웃거린다. 현수는 시녀들도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곤 각자 먹을 만큼 접시에 담아주었다.

모두가 폭풍흡입을 하는 동안 헥사곤 밖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기사와 병사들을 위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두툼한 냉동 패티에 히팅마법을 걸자 금방 입에서 침이 나올 맛있는 냄새가 난다. 다음엔 물속에 담긴 계란에 히팅 마법과 타임패스트 마법을 걸어 5초 만에 삶아냈다.

베이컨 햄, 옥수수 콘, 마요네즈, 허니 머스타드, 양상추, 양파를 꺼내 준비를 갖춘 후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샤가 다가와 돕기 시작하였다. 힐끔 바라보니 먹다말고 온 모양이다.

“마샤! 이건 나 혼자 해도 되니까 가서 먹어.”

“아니에요. 하늘같은 주인님께서 어찌 혼자 이런 일을 하십니까. 제가 돕도록 해주세요. 네?”

마샤의 모습은 스물한 살짜리 제시카 알바 같다. 이런 미녀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달라고 한다.

마음 약해진 현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오미도 와서 돕는다.

나오미는 1968년에 개봉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던 당시의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처럼 청순하다.

언니들의 뒤를 이어 먹다말고 일어선 이사벨은 1980년에 개봉된 ‘블루 라군(The Blue Lagoon)’의 히로인 브룩 쉴즈(Brooke Shields) 같이 늘씬한 미녀이다.

아그네스는 영화 ‘라붐’에 출연한 프랑스 미녀 배우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의 전성기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이리스 공주도 질 수 없다는 듯 조리대 앞에 서서 언니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 2005년에 개봉된 영화 ‘킹콩’의 여주인공 나오미 왓츠(Naomi Watts) 같은 금발미녀이다.

마지막으로 조리대 앞에 선 것은 이제 16세가 된 소피아 공주이다. 한국식 나이론 18세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의 대공비였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같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꽃밭 속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다. 현수의 오른쪽엔 마샤가, 왼쪽엔 나오미가 섰다.

맞은편엔 소피아와 아이리스, 아그네스와 이사벨이 서서 빵 사이에 패티를 넣고 마요네즈를 듬뿍 바른다.

아직 서툰 솜씨인지라 엉망이다. 그런데 그러면 어떤가? 맛만 있으면 된다.

실패를 거듭한 소피아가 뭐라 칭얼댄다. 귀를 기울여보니 이런 소리가 들린다.

“히잉∼! 어뜨케, 어뜨케? 히잉, 주인님에게 혼나겠쩌요.”

“괜찮아요. 공주님! 주인님은 너그러우시잖아요.”

맞은편의 마샤가 작은 음성으로 다독이자 소피아는 더욱 어리광을 부린다.

“히잉∼! 그래도 어뜨케 어뜨케. 나 이러다 혼나면 어쩌죠? 주인님에게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할까요?”

현수의 입가엔 웃음이 배어 있다. 너무 귀여운 앙탈이기에 저도 모르게 지은 미소이다. 이때 아그네스가 중얼거린다.

“헤에! 이거 어쩌지? 큰일이다. 누가 보면 안 되는데.”

슬쩍 바라보니 샌드위치 속에 넣어야 할 베이컨 햄이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다.

슬쩍 현수의 눈치를 보고는 발로 슬그머니 밀어 넣는 듯하다. 이 모습 또한 너무 귀엽다.

8장 말도 안 되는 율법

“내 고향엔 불교라는 종교가 있어.”

“……?”

현수가 입을 열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바라본다. 현수는 이곳에 맞춰 약간 각색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교의 신관 중에 구산이란 분이 계셨는데…….”

다음은 현수가 한 말의 요약이다.

어느 날, 조계총림 초대 방장인 구산스님이 공양간에 나타나 이 구석 저 구석을 살피던 중 수채구멍에 밥티 몇 알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스님은 바늘을 꺼내 밥티를 하나하나 찍어 먹었다. 이후로 공양간 바닥에 밥티 흘리는 행자가 없었다.

불교에선 한 알의 쌀이 땅에 떨어졌으면 나의 살점이 떨어진 것과 같이 생각하고, 한 방울의 간장이 땅에 떨어지면 나의 핏방울이 떨어진 듯 하라고 한다.

참고로 남한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약 500만 톤이다. 만들어진 음식물의 7분의 1 정도 된다.

돈으로 따지면 약 20조 원이다.

한편, 북한의 최소 식량 수요량이 540만 톤이다.

남한이 낭비한 음식물량은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양의 90%가 넘는다.

먼 거리도 아니건만 사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

“조리하다 실수로 떨어뜨릴 수 있어. 흙이 묻었지만 짐승들은 먹을 수 있어. 그러니 발로 비비면 안 되겠지?”

지나가는 말처럼 했지만 당사자인 아그네스의 두 볼은 금방 빨개진다. 자신의 행동을 현수가 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여 뭐라 말을 하려는데 이사벨이 먼저 입을 연다.

“히잉!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잘못해쩌요.”

“……!”

현수의 시선을 받은 이사벨은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시늉을 한다. 베이컨 햄이 두 장이나 떨어지자 슬쩍 흙으로 덮었는데 그걸 들켰다 생각한 것이다.

이사벨은 고개를 숙인 채 살짝 시선만 올려보며 울상을 짓는다. 리즈시절의 브룩 쉴즈가 이러니 어찌 야단을 칠 수 있겠는가!

“괜찮아, 앞으로 안 그러면 돼, 알았지?”

“네! 근데 저 채찍질 열 번 해야 하는 거죠? 히잉, 아프게따. 으뜨케 으뜨케! 언니들, 동생들 미안해요.”

“……!”

마탑주가 잘못했음을 지적했으니 채찍질 열 번이 맞다.

하여 마샤가 고개를 끄덕일 때 이사벨이 모두에게 일일이 시선을 주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공동운명체이니 또 두 대씩 나눠서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 율법이란 건 대체 누가 정한 거지?”

현수의 말에 마샤가 대답한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가 조성될 때의 공왕, 아니, 국왕께서 영광의 마탑주님과 협의해서 만드셨다고 해요.”

“그래? 이거 끝나면 내가 그걸 볼 수 있으면 좋겠군.”

“네! 제가 찾아서 보여드릴게요.”

마샤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근데 대체 율법을 어떻게 정해놨기에 툭하면 채찍질 열 번이라고 하는 거야?’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가 조성된 이유는 세상 모든 마탑 위에 우뚝 선 이실리프 마탑주를 잡아놓기 위해서이다.

마탑주가 공국에 머무는 한 안전하며, 마법사 양성이 쉬워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모든 것이 조성되었을 때 공왕과 영광의 마탑주는 율법을 만들면서 후손들이 자의적으로 고칠 수 없도록 몇 가지 래칫(Ratchet)조항을 심어두었다.

래칫이란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고 반대방향으로는 회전하지 못하게 하는 기계장치를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지 않던 이 말은 2007년 5월 25일에 공개된 한·미 FTA(Free Tex Agreement) 협정문 내용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이것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 번 개방된 수준은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취소할 수 없다는 ‘래칫조항’이 들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시장을 개방했는데 전보다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발생될 수 있다.

이럴 경우 FTA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할 것이고, 그러려면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는데 이런 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한·미 FTA의 래칫조항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아무리 많은 문제가 발생해도 한 번 개방한 것은 계속 그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쌀 농가가 완전히 망하고, 의료보험 민영화로 인해 서민들이 아무리 큰 피해를 본다고 해도 다시는 원상으로 되돌릴 수 없다.

한때 유럽 전역을 풍미했던 로마가 망한 이유는 식민지에서 운영하던 대농장 라티푼디움 때문이다.

여기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 때문에 로마의 자영농이 몰락했다. 그 결과 로마 병사의 주를 이루었던 농민이 빈민으로 몰락하자 로마의 군대는 점점 약해졌다.

이에 로마의 지도자들은 국경에 터 잡고 살던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쓰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자 로마인 병사보다는 게르만인 병사가 많아지는 결과가 초래했고, 결국 로마는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렇기에 한·미 FTA 협정문의 래칫조항이 심하게 우려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율법엔 절대 수정될 수 없는 조항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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