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23화 (1,022/1,307)

# 1023

재일교포 중 하나가 명동에 카페를 개설했는데 여종업원의 복장이 화제가 되었다.

이 카페에선 흰색 두건을 쓰고, 검은색 원피스 위에 흰색 앞치마와 흰색 스타킹을 신은 여종업원이 서빙을 한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 주인님을 도울 메이드, 캔디라고 해요.”

주문한 것을 가져다주곤 이렇게 이야기한다.

“추가로 주문을 하실 때에는 테이블 위의 종을 울려주세요, 주인님!”

카페를 나설 때엔 등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주인님은 언제라도 환영이랍니다. 또 오세요, 주인님!”

이 카페엔 ‘메이드와 사진 찍기’는 3,000원, ‘메이드와 게임하기’는 3분당 4,000원이라는 이색 메뉴가 있는데 많은 남자가 찾는다고 한다.

플로라는 인터넷에서 본 하녀복장을 참고하여 지금의 옷을 만들었다. 검은색 원피스, 흰색 두건, 흰색 앞치마, 그리고 흰색 스타킹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이렇게 입고 눈앞에서 알짱거리면 언젠가 주인님의 눈에 들어 신분상승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참으로 깜찍한 상상이다.

사실 플로라는 아주 예쁜 아가씨이다.

2012년에 개봉된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eyfried)와 아주 유사하다.

그럼에도 이리냐가 워낙 출중하기에 덜 빛나 보인다.

아무튼 플로라는 자신의 의중을 현수가 파악하고 아빠를 불러 야단치려는 것으로 여겼기에 털썩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응? 왜? 플로라가 뭘 잘못했는데?”

“흐흑! 잘못했쪄요. 흐흑! 다신 안 그럴게요. 흐흑!”

플로라가 우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수는 물론이고, 이리냐와 안톤도 눈만 크게 뜬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플로라! 플로라가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플로라의 아빠와 현악사중주단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거야.”

“네에……?”

자신의 예상과 너무 다른 말에 언뜻 알아듣지 못한 듯하지만 현수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오늘 플로라의 아빠를 만났으면 좋겠어.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이곳으로 오시라 해줄래?”

“네! 주인님.”

플로라는 얼른 고개를 숙이곤 일어선다. 내심을 들키지 않았으니 잘못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플로라가 물러나자 안톤은 한쪽 어깨를 들썩이고는 뒤따라간다.

이 저택의 총관으로서 플로라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를 캐물으려는 것이다.

주방으로 향하는 안톤의 표정은 굳어 있다. 도난 사건을 떠올린 때문이다.

이리냐는 모델답게 장신구가 상당히 많다. 이미테이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진품이다. 그리고 상당히 고가이다.

플로라가 그중 하나를 슬쩍했을 수도 있다. 견물생심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요리장 타날리야의 딸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죄 없는 타날리야까지 내보내야 하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타날리야만큼 정성들여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드물고, 또 그녀는 손맛이 좋아 대강 만드는 것 같아도 매우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안톤은 흰머리가 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동했다.

“커피 다 식겠어요.”

“그래! 마시자.”

현수와 이리냐가 커피 잔을 비울 때쯤 타날리야가 왔다. 방금 전에 통화를 했으니 남편이 곧 올 것이라고 한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곤 이 층으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입고 저택 주변을 둘러보려는 것이다.

이때 서재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따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네! 율인전자 최지원 사장입니다.”

“벌써 견적이 나온 겁니까?”

“그럼요! 이 정도는 금방 뽑지요. 그런데 러시아에서 전화를 거신 겁니까?”

“네, 여긴 모스크바입니다. 참, 전화요금 많이 나오겠습니다. 끊으세요. 제가 걸겠습니다.”

“…네.”

최 사장은 아니라 하려 했지만 국제전화이니 요금이 얼마나 많이 부과될지 알 수 없었다.

방금 전 최 사장은 별 생각 없이 러시아로 국제전화를 걸 었다. 분당 2,013원이라는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는 국선으로 통화를 한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다시 전화를 걸자 최 사장이 받는다.

“견적이 얼마나 나왔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 그런데 전화로 이야길 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 방금 전에 팩스를 보냈습니다. 그걸 보시고 통화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아! 그래요? 아, 들어오네요. 잠시만요.”

대답하는 사이에 팩시밀리가 종이 한 장을 토해놓는다.

율인전자의 견적서 양식인데 주문 수량에 따른 단가가 표기되어 있다.

1,000개, 3,000개, 5,000개, 10,000개로 구분되어 있다.

주문 수량이 늘수록 단가가 싸지는 것이 확연하다. 이때 최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사장님, 지금 팩스 하나 더 넣었습니다. 보내주신 도면과 사양서대로 만드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싶어 스케치한 겁니다.”

최 사장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눈에 선하다.

“네, 들어오네요. 잠시만요.”

또 통화가 잠시 끊겼다. 현수는 자신이 보내준 것보다 한결 세련된 디자인을 볼 수 있었다.

“제가 보내드린 건 저희 회사에 금형(Metallic mold)이 있는 겁니다. 그걸로 바꾸시면 견적 가격 중 금형비의 50% 정도는 빼셔도 됩니다. 조금만 손보면 되거든요.”

수량이 적으면 단가 중 금형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렇기에 가급적 싼 가격에 납품하려고 기존에 사용했던 것을 재활용하려는 모양이다.

“최 사장님!”

“네, 사장님.”

“견적 잘 받았습니다. 주문을 하면 납품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야 수량에 따라 다르지요. 얼마나 제작하려는 겁니까?”

“일단은 10만 개 정도로 하죠.”

“네……? 뭐라고요?”

최 사장의 음성이 확연하게 커진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량이 훨씬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은 10만 개를 주문할게요.”

“자, 잠시만요.”

최 사장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다. 그러는 사이에 수화기를 통해 저쪽의 소음이 들려온다.

“10만 개나 주문한대요?”

“헐! 대박……. 요즘 같은 불경기에……. 사장님 이거 절대 놓치지 말아요. 요즘 일 없어 놀고 있잖아요.”

“사장님! 10만 개면 부품도 조금 더 싸게 들여올 수 있어요. 이거, 그리고 이거는 90% 정도에, 이건 80%만 줘도 될 거예요. 그리고 이건…….”

율인전자의 직원 중 누군가가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사장은 송화기를 막는다고 막았지만 손가락 사이에 틈이 있어 다 들린다.

사장은 직원과 대화를 하며 최대한 깎을 수 있는 게 얼마인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어떻게 하든 낮은 가격을 만들어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속내가 느껴진다.

현수는 최 사장이 양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연락한 건데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쪽 상황은 보지 않아도 짐작된다.

현수와의 거래에 다들 흥분한 듯한 음성이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저어, 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10만 개 주문이시면 10,000개짜리 견적가에서 15%를 빼셔도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수의 예상보다 금액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또 15%를 빼라고 한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이때 최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납품 장소는 어디입니까? 러시아까지 보내려면 운송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납품은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하십시오. 거기서 이쪽으로 보내줄 테니 이곳까지의 운송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케이스 없이 벌크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럼 비용을 조금 더 빼…….”

최 사장의 말이 이어지기 전게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러시아에 있어서 계약서를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가셔서 이은정 사장을 만나십시오. 제가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네?”

“참, 제가 누군지 말씀 안 드렸군요. 저는 김현수라 합니다. 천지건설에 있죠.”

“네에……? 누, 누구시라고요?”

“천지건설 부사장 김현수입니다. 이실리프 그룹 회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은정 사장과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하세요. 참! 납품대금은 전액 현금으로 계약과 동시에 지불될 겁니다.”

상당히 양심적인 사람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서 보낼 것이고, 불량이 있다면 알아서 조치를 취해줄 것이다.

납품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 길지 않을 것이고, 어차피 지불해야 할 돈이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계속된 불경기 때문에 죽을 맛이다.

대기업에 납품한 중소기업 중 22.9%는 어음으로 대금을 지급받는다. 180일짜리 어음을 받으면 납품 후 6개월을 기다려야 현금을 받는다는 소리이다.

1차 업체가 어음으로 대금을 지급받는 경우 2·3차 업체는 1차 업체로부터 현금 결제를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음 만기일 전에 중간업체 중 한 곳이라도 부도가 나면 다 같이 망하게 된다.

사정 넉넉한 중소기업은 드물기 때문이다.

율인전자는 2차 납품업체에 해당된다. 하여 열악한 경영환경에 허덕이고 있었다.

현수는 이를 짐작하여 대금을 선불로 지급하라는 지시를 내리려는 것이다. 어쨌거나 최 사장은 몹시 놀란 듯 말꼬리를 올린다.

“네에……?”

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물건도 안 받았는데 돈을 다 준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경악성을 낼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사장님이 좋으신 분 같아서요. 믿어도 되죠? 참! 1차 주문은 10만 개지만 2차, 3차 주문이 계속 있을 겁니다. 그때는 주문 물량이 100만 개 단위가 될 겁니다.”

“……!”

100만 개라는 소리에 최 사장은 유체이탈을 경험하는지 아무런 대꾸도 없다. 그럼에도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4차 주문쯤에는 500만 개 단위가 될 겁니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고요.”

선택적 항온유지장치는 거의 모든 방에 필요하다. 최하급 마나석을 쓰는 대신 마법 구현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엔 최하 500만 명 정도가 기거하게 될 것이다.

4인 1가구라면 125만 가구이다.

침실 4개, 거실, 부엌, 화장실에만 선택적 항온유지장치를 설치할 경우 875만 개가 필요하다.

자치령엔 주택뿐만 아니라 온갖 건축물이 다 필요하다.

극장, 쇼핑센터, 여관, 음식점, 놀이동산, 주민센터, 사무실, 공장 등등이다.

이것들에도 항온유지장치는 필요하다.

어쩌면 가정용보다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치령 하나당 2,000만 개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500만 개 이상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끄응……! 털썩―!”

최 사장이 주저앉는 소리에 이어 누군가의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현수의 귀로 들어온다.

“사,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어디 아프세요? 사장님!”

현수는 최 사장이 정신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으나 금방 회복되지 않은 듯하다.

넋이 제법 멀리 달아난 모양이다.

잠시 후 누군가 전화를 드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전 사무실의 미스 양인데요. 저희 사장님이 조금 이상하셔요. 그러니 제게 말씀해 주시면 메모했다가 전해드릴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