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24화 (1,023/1,307)

# 1024

“그래 줄래요? 사장님께 오늘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가시라 하세요. 가실 때 견적서와 사업자등록증 사본, 그리고 통장 사본도 가져가시라 하세요.”

“네, 네!”

미스 김은 현수가 한 말을 그대로 메모했다.

“10만 개에 대한 견적서는 팩스로 넣어주시구요.”

“알겠습니다. 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새로운 견적서가 들어왔다.

개당 단가를 확인해 보니 10,000개 때보다 17.3%나 저렴하다. 물량이 많으니 부품을 더 싼 가격에 납품받을 수 있어서 이러할 것이다.

현수는 최 사장의 상태를 알 수 없어 전화 대신 문서를 작성해서 팩스로 보냈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최지원 사장님께.

보내주신 견적서 잘 받았습니다. 견적 가격이 예상보다 저렴해서 매우 흡족합니다.

저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기의 여파로 많은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습니다.

율인전자의 재정상태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귀사에 반제품이나 부품을 공급해주는 업체들은 어쩌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안을 드립니다.

새로 보내주신 견적 가격이 아닌 이전에 보내주신 10,000개를 기준으로 한 단가에 귀사와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조건은 10,000개 납품 단가를 귀사에 반제품이나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에도 적용해 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가 현금으로 대금을 선지불하는 것처럼 율인전자도 그래주십시오.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시지요?

아시다시피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해외수출 등으로 제법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율인전자처럼 양심적으로 상품을 제작하는 회사들 덕분이지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제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 김현수 배상

나중 일이지만 현수가 보낸 이 팩스는 최 사장을 비롯한 율인전자 사람들만 감동시킨 것이 아니다.

율인전자와 거래하는 부품 공급업체와 반제품 공급업체의 전 직원의 마음도 움직였다.

뿐만이 아니다.

율인전자 미스 양은 자신의 블로그에 팩시밀리 내용 등을 정리해서 올린다.

이것이 사방팔방으로 리트윗(Retweet)되면서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포탈에서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다.

수많은 네티즌이 이를 보고 댓글을 단다.

― 헉! 역시 국민전무시다.

― 이 사람아! 국민 전무라니? 김현수 님은 이실리프 그룹 회장이셔. 게다가 축구의 신이기도 하시지.

― 맞아, 축구의 신! 김현수 회장을 국가대표로.

― 축협은 뭐하냐? 또 파벌 싸움하지? 축구의 신을 대표선수로 선발하지 않으면 대체 누굴 국가대표로 뽑을 거냐?

― 축구의 신! 계약 따내는 신! 착한 일 하는 신!

― 작사, 작곡의 신이기도 하다네, 친구!

― 정말 화끈하다. 거래대금 전액을 현금으로 선결재하다니. 정말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잘 아는 분이시다.

― 재벌들은 뭐하냐? 이런 건 빨리 보고 배워라.

― 쯔읍! 돈 많다고 지랄하네. 이거 보여주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속 보인다, 속 보여. 이런 거에 부화뇌동하는 골빈 네티즌들이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구만. 쩝이다.

이 마지막 댓글을 달았던 사람은 1시간도 안 되어 신상이 탈탈 털린다. 20대 후반인 닉네임 ‘덕후’가 근무하는 곳은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철인가구라는 중소기업이다.

가구를 제작하여 옥션이나 G마켓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소비자에게 직판하는 회사이다.

‘덕후’의 댓글이 미친 파장은 상당히 컸다.

철인가구에 기(旣) 주문된 것은 모두 취소되었고, 배송된 것은 수취거절을 당했다.

하루에 수백 건에 달하던 주문건수는 제로가 되어버렸다.

회사는 항의전화 때문에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덕후’ 같은 놈에게 월급 주는 회사의 제품은 사지 말자는 것이다.

이 회사가 진출되어 있던 옥션이나 G마켓까지 항의전화가 걸려가기 시작하자 사장은 ‘덕후’를 불렀다.

그리곤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으며, 명예를 더럽혔으므로 사규에 따라 해고함을 통보했다.

‘덕후’는 억울하다면서 반성문을 게시하겠다고 했지만 해고는 번복되지 않았다.

즉시 나가지 않으면 ‘덕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말에 허둥지둥 짐을 싸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덕후’의 댓글들은 털렸다. 예상대로 현수가 가장 혐오하는 사이트의 회원이다.

철인가구 사장은 자사 홈페이지에 반성문을 올렸다.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실리프 그룹 김현수 회장님의 인격을 모독한 닉네임 ‘덕후’는 금일 당사로부터 해고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덕후’가 남긴 댓글은 당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향후 저희 회사는 ‘덕후’가 활동하던 사이트의 회원은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울러 ‘덕후’로 인해 직접적으로 인격모독을 당하신 김현수 회장님께는 돈수백배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너그러운 용서를 빕니다.

철인가구 대표이사 김근호 드림

졸지에 실업자가 된 덕후는 다른 회사에 취직하려 이력서를 내지만 모두 거절당한다.

신상이 탈탈 털려 버린 결과이다.

덕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전화를 걸어 욕을 했다. 이들 중엔 덕후의 부모도 있다.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덕후가 전 국민의 분노를 산 장본인이라는 소문이 번지자 하루 매출이 10분의 1로 뚝 떨어진 때문이다.

덕후의 부모는 한심한 자식을 더 이상 뒷바라지 해줄 생각 없으니 짐 싸서 독립하라는 선언을 했다.

직장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쫓겨난 것이다. 자업자득인 걸 어쩌겠는가!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덕후는 PC방을 전전한다. 이런 걸 인과응보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최 사장은 정신을 차리고 곧장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전화를 걸었다.

이은정 사장은 오는 즉시 계약서 작성을 할 것이니 몇 가지 준비물을 요구했다.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통장 사본, 그리고 회사 인감이다.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가 순조롭게 계약을 마쳤다.

최 사장이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무실 소파에서 일어설 때엔 10만 개에 대한 대금 전액이 현금으로 송금되어 있었다.

점심을 굶었지만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최 사장은 회사로 귀환하는 동안 세 번이나 이실리프 뱅크 자동화기기 코너에서 잔액을 확인했다.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때문이다.

같은 시각, 현수는 저택 1층 접견실 의자에 앉아 있다.

이 방엔 전직 판사인 유리 파블류첸코와 전직 검사 안드레이 자고예프, 그리고 테리나와 그녀의 두 동생 빅트로와 세르게이가 있다.

현수의 곁에는 이리냐가 있다.

참고로, 유리 파블류첸코는 올가의 남편이며, 러시아의 원자력을 총괄하는 로스 아톰(Ros Atom)의 사장 아들이다.

안드레이 자고예프는 나타샤의 부군이며, 러시아의 항공기 제작사들이 합병되어 만들어진 거대 기업 UAC의 부사장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회장님, 자치령이 너무 광활하여 측량을 마치는 데만 몇 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유리의 말이 끝나자 안드레이가 말을 잇는다.

“자치령 내에 상당히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늑대와 곰, 그리고 호랑이가 있습니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칫 인명 피해가 우려됩니다.”

예상되었던 말이기에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빅토르와 세르게이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빅토르이다.

“중장비 수급에 문제가 있습니다.”

“건축자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수는 먼저 빅토르에게 시선을 주었다.

“빅토르! 중장비 제조업체를 인수한 뒤 규모를 늘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세르게이는 제대로 된 자재를 생산하는 업체를 인수하거나 새 회사를 만들게.”

돈이 많으니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정상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돈과 권력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하여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테리나는 법률 자문을 맡도록!”

“네, 회장님!”

테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와 안드레이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자연 그대로인 자치령의 곳곳을 헬기를 타고 영상으로 찍어 온 것이다. 그래도 다 찍은 것은 아니라 한다.

주거지에 적합한 곳, 농경지가 될 수 있는 곳, 그리고 경관이 뛰어나 보존해야 할 곳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약 10만㎢ 중 41%에 해당하는 약 4만 1,000㎢가 농경지로 조성된다고 한다.

지구의 밀의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2.3톤/ha이다. 1㎢당 230톤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밀만 재배할 경우 943만 톤을 수확할 수 있다. 이는 지구의 밀 종자를 심었을 때이다.

성녀가 개량한 종자를 파종할 경우는 이보다 6.25배가 많은 약 5,894만 톤을 수확할 수 있다. 이는 2011년 기준 세계 3위 밀 수확국가인 러시아와 비견된다. 러시아는 총 5,624만 톤을 생산해 냈다. 참고로 세계 1위는 지나로 1억 1,741만 톤을 생산했고, 인도는 8,587만 톤을 생산했다.

만일 성녀의 종자에 아리아니의 가호가 더해진다면 수확량은 1㎢ 당 2,587.5톤으로 늘어나게 된다.

성녀의 신성력만 작용할 때보다 무려 1.8배나 많다.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는 토양의 비옥함을 관장하지만 아리아니는 식물 그 자체의 생육과 성장까지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엔 농경지만 조성되는 것이 아니다. 소, 돼지, 양, 염소, 닭 등도 상당히 많이 사육된다.

이것들의 배설물은 질 좋은 유기비료로 가공 가능하다.

아리아니의 능력과 유기비료의 결합은 더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의 밀 수확량은 1㎢당 약 3,105톤이다.

밀만 재배할 경우 1억 2,730만 5,000톤까지 수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지나의 그것보다도 많은 양이다. 전 세계 밀 수확량의 18.08%가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몽골은 지형이 평탄하여 러시아보다도 농경지가 더 많이 조성되는 곳으로 짐작되고 있다.

나중의 일이지만 총 조차지 면적 10만 8,123㎢의 약 67%인 72,440㎢가 농경지가 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넓이이다.

이곳에서도 밀만 재배할 경우 2억 2,492만 6,200톤을 수확할 수 있다. 세계 수확량의 31.94%에 해당된다.

러시아와 몽골의 조차지에서 생산되는 것을 합치면 전 세계 수확량의 50.02%가 된다.

12장 거열과 능지처참

현재 국제 곡물시장에는 5대 곡물 메이저가 있다.

미국의 카킬(Cargill)과 아처 다니엘스(ADM),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LDC)와 아르헨티나의 붕게(Bunge), 그리고 스위스의 앙드레(Andre)가 그들이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농산물 생산지와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 등에서 곡물을 사들인다.

일종의 매점매석이다.

이것을 각국 정부 등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농업분야의 거대 공룡이 5대 메이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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