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5
이들이 취급하는 것은 밀과 옥수수 같은 곡물만이 아니다.
씨앗에서부터 시작하여 가공식품, 농약, 살충제,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류를 위한 선박회사나 저장시설, 운송회사까지 가지고 있어 다른 운송회사나 물류업체가 곡물거래에 파고들 여지조차 없애 버렸다.
한편,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다음과 같다.
농민수 6%(290만 명)
식량자급률 22%(쌀 개방 시 2.7%로 하락)
국내 곡물시장의 80% 카길이 점유
국내 종자시장 몬산토가 장악
세계 2위 곡물 수입국(2008년엔 5위)
식량자급률 OECD 꼴찌
평야 면적당 인구수 세계 1위
이제 명실상부하게 한국인의 먹는 문제는 전적으로 카길과 몬산토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된다.
IMF 위기 때 국내 종자분야 1위였던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는 몬산토에 흡수, 합병당했다.
이 외에도 서울종묘는 신젠타에, 청원종묘는 일본 사카다에 각각 M&A되면서 국내 4대 종자기업 모두 넘어갔다.
그 결과 국내 토종 유전자원과 육종기술이 유출되었고,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다.
이것은 재배농가뿐만 아니라 농산물과 식품을 소비하는 국민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무, 배추, 고추 등 토종 채소 종자의 절반이 다국적 기업이 소유권을 가졌다.
이 밖에 양파, 당근, 토마토의 경우는 80% 이상을 장악당해 종자주권 상실과 식량안보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칼칼한 맛을 내는 청양고추가 몬산토 소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련의 일들은 지극히 근시안인 정치인들이 병신같이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참고로, 몬산토는 흔히 GMO라 부르는 유전자 재조합 식품(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90%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미국에서도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전자 조작 감자가 한 예가 될 것이다.
미국에선 이를 식품으로 분류하지 않고 살충제로 분류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환경보호청 EPA의 관리를 받는다.
어쨌거나 이전 정부에선 농업개방이 불가피하다며 전격적으로 시장을 개방했다.
그러면서 공산품을 수출해서 경제도 살리고, 농업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정책은 실패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었고, 수많은 농민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결과 대폭적인 경작지 감소로 식량 자립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병신 같은 정치인들’이 빚어낸 결과이다.
이 죄는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같으므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거열하거나 능지처참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멍청한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영원히 농업 자립과 식량 주권을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수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몬산토로부터 어떠한 종자도 구입하지 않을 것이고, 카길 등으로부터 곡물을 사들이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아르센 대륙과 러시아, 몽골,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에 조차지가 있기 때문이다.
종자는 아르센 대륙의 성녀 스테이시 아르웬이 개량해 낼 것이다. 이것은 몬산토가 가진 그 어떤 종자보다도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을 것이다.
마음껏 농사를 지을 조차지는 이 작물이 성장하는 최적의 환경이 될 것이다. 이곳엔 가뭄과 홍수, 태풍, 우박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과 땅, 그리고 물과 불의 최상급 정령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능력이라면 자연재해 정도는 얼마든지 비껴가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신성력과 아리아니의 능력, 그리고 질 좋은 유기비료까지 더해지면 흉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이 둘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무지막지한 수확량은 6개국 정부에 판매하고 남은 것만으로도 남, 북한을 100% 충족시키고, 다른 나라로 수출까지 가능하다.
세계 2위 곡물 수입국인 대한민국이 어느 날부터 곡물과 사료를 하나도 수입하지 않는다면 카길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막대한 양을 수입하던 수요자가 사라지면 공급이 넘치니 값이 하락할 것이므로 다른 나라에도 이득이 될 일이다.
현수가 종자를 공급하겠다고 나서면 몬산토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지금껏 사용하던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수확량을 보이고,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아도 병충해에 강한 종자가 있다면 거의 모든 농부가 기꺼이 거래선을 바꾸겠다고 할 것이다.
이는 몬산토와 5대 메이저가 동반 몰락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현수는 몬산토와 5대 곡물메이저는 반드시 손을 봐서 몰락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카길을 제외한 나머지가 유태자본이기 때문이다. 카길도 유태인의 것인지 여부는 조금 더 조사해 봐야 한다.
아무튼 자치령에서는 농업뿐만 아니라 어업도 진행된다. 수산물도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광어, 가재, 새우, 장어, 게, 쏘가리, 송어, 향어 등을 양식할 예정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하천엔 많은 민물고기가 서식한다.
례시, 싸잔, 까르프, 오꾼, 까라시, 슈까, 린, 삐스까리, 아쇼뜨르, 쁠로뜨바, 로딴, 쏨, 수닥, 하리우스 등이다.
참고로 아쇼뜨르(Oсётр)는 철갑상어이다. 이것의 알을 소금에 절인 것이 캐비어(Caviar)이다.
오꾼은 민물 볼락이다. 다 자라면 1m 정도 된다. 쏨은 메기류인데 5m짜리도 잡힌다.
이런 것들이 잡는 사람이 없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거짓말로 들리지 않는 곳도 많다.
아리아니와 물의 정령의 능력만으로도 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고, 적당히 솎아주는 정도만으로도 필요한 양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치령은 넓지만 인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리와 안드레이의 프레젠테이션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차지를 총괄하는 곳 인근에 자리 잡게 될 자연보호구역이다.
조감도를 보니 곳곳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갈로와 펜션들이 배치되어 있다.
커다란 호수와 멋진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절벽이 보이는 언덕 꼭대기엔 샹보르성관 같은 건물이 있다.
자작나무가 울창한 숲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이것은 현수의 별장이라 한다.
규모를 물어보니 샹보르성관과 비슷한 크기라 한다.
‘흐음! 항온마법진이 500개 이상 필요하겠군.’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설명을 들었다. 생각보다 치밀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유리와 안드레이 모두 러시아에서 수재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곳곳에 허점이 있어 지적해 주자 감탄사를 터뜨린다. 똑똑한 자신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수학 6대 난제를 모두 풀어내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해 낸 천재 중의 천재라는 걸 떠올린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은 별 탈 없이 끝났다. 모인 김에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데 타날리야가 찾아왔다.
“주인님! 제 바깥양반이 왔습니다.”
“아! 그래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뭐해요? 어서 들어와요.”
문밖에 있던 사내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들어선다. 다소 긴장한 듯 쭈뼛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아! 네에. 발레리 이즈마일로프라 합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타날리야! 쉐리엔 주스 부탁해요.”
“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쉐리엔 주스는 안톤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맛보는 진미 중의 진미이다.
현수와 이리냐는 언제든 마시고 싶을 때 마시라고 했지만 감히 그럴 수 없기에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다.
안톤이 이러하니 타날리야 등은 어떻겠는가!
보름에 한 잔씩 마시는데 아예 작정을 하고 마신다.
쉐리엔 고유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즐기기 위해 시간을 비워놓고 맛보는 것이다.
저택을 찾은 손님도 현수나 이리냐를 만나러 온 사람이 아니면 절대 내주지 않는 것이 쉐리엔 주스이다.
그런 귀한 걸 남편에게 주려한다니 기분이 좋아진 타날리야는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마침 주방으로 들어온 하녀장 타찌아나가 묻는다.
“언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뭔데 그렇게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까지 부르는 거야?”
“아! 타찌아나. 가주님께서 발레리를 부르셨어.”
“형부를……? 왜?”
“플로라에게 이야길 들어보니 현악사중주단을 만드시려나 봐. 그래서 우리 그이를 불렀어.”
“아! 그래? 축하해. 언니! 형부가 꽤 오래 놀았는데 이제 좀 좋아지겠네.”
“그치? 호호, 호호호! 랄랄라, 랄랄랄랄∼!”
타날리야는 너무도 기분이 좋아 큰 소리를 낸다.
주방 하녀들도 발레리가 채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참 좋은 사람인데 시절을 잘못 만나 고생한다 여기던 차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발레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다. 아내가 근무하는 곳이지만 한 번도 못 와본 곳이다.
온갖 좋은 것을 무상으로 베푸는 통 큰 주인님은 레드 마피아를 총괄하는 이바노비치의 막내사위이며,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린 블라디미르 푸틴과 막역한 사이라 한다.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돈도 많지만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신경질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신사이기도 하다.
나이가 30살이니 자신보다 훨씬 어리다.
그런데 마주 볼 수가 없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면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이는 현수가 발레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어서 그렇다. 발레리는 방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금방 홍조를 보인다.
‘흐으음! 그레이브스병(Graves disease)이군.’
이것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 증상을 나타내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바제도병(Basedow’s disease)이라고도 한다.
현수는 발레리의 눈알이 약간 돌출된 상태를 보고 이 같은 진단을 내렸다.
“미스터 이즈마일로프!”
“네, 회장님! 근데 그냥 발레리라 불러주십시오.”
모스크바 필하모닉 단원일 때는 꼿꼿한 자존심으로 유명했지만 오랜 실직 기간이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듯하다.
“좋아요, 발레리! 식성은 괜찮은데 체중이 감소하지요? 맥박이 빨라져 가슴이 빨리 뛰는 것도 느껴집니까? 식사할 때 손을 떠는 증세가 나타나요?”
“네? 그,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아……! 플로라나 타날리야가 이야기를 한 모양이군요.”
“아뇨! 둘은 제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병원은 가보셨습니까?”
“병원이요? 별로 아픈 데도 없는데 왜……? 아직 안 가봤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발레리는 지금 그레이브스병에 걸려 있어요. 다른 말로는 바제도병이라고도 해요.”
“제, 제가 병에 걸렸다고요?”
발레리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름도 생소한 병이니 아주 심각하다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진다.
“네! 갑상선 내에 갑상선호르몬이 생성되도록 촉진시키는 자가항체가 생긴 모양입니다. 호르몬 분비가 과한 상태죠. 면역계에 이상이 생겨 발병한 겁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눈으로만 보고 병을 짚어내겠는가! 러시아에선 이런 능력을 가진 의사가 없다. 그렇기에 반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