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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30화 (1,029/1,307)

# 1030

현수는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기에 어쩌면 오늘처럼 야전침대에서 자는 일이 하루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티를 내선 안 된다.

불편한 잠자리를 계속 경험해야 한다고 하면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올 법하기 때문이다.

“근데 식사는 어땠어? 부족하진 않았어?”

저녁 식사를 할 때 절세미녀가 등장하자 사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테리나가 스튜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여자를 본 지 오래되어서 그렇고, 테리나가 워낙 예뻐서 그랬을 것이다. 이런 시선을 받으며 어찌 양껏 먹었겠는가!

현수가 보니 테리나는 깨작거리다 말았다. 지금은 괜찮지만 조금만 지나면 배가 고플 것이다.

“조금… 너무 노골적으로 바라봐서 먹는 게 불편했어요.”

테리나는 가식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 왠지 현수에겐 그래야 할 것 같아서이다.

“그럼 간식 좀 만들어줄까?”

“여기서요?”

“응. 난 마법사야. 여기서도 음식 만드는 거 가능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꺼내자 테리나가 피식 웃는다.

“치잇! 세상의 마법사가 다 죽으면 자기야가 마법사라는 거 믿을게요.”

“맞다. 세상의 마법사 다 죽었다. 이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마법사가 되었으니 테리나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도 되겠어? 하하하!”

“치잇! 또 놀리시려고. 좋아요. 어디 한번 해보세요.”

“좋아. 뭐가 먹고 싶은데?”

“으음, 한국에서 맛본 양념통닭이요.”

서방의 통닭과 달리 한국의 통닭은 매콤하면서도 달달하고 고소하다.

그래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종류별로 통닭을 즐겼다.

너무나 맛있어서 항상 과식할 정도였다. 쉐리엔이 없었다면 진즉에 뚱뚱한 돼지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여 테리나는 먹으면서도 늘 현수 생각을 했다.

이처럼 마음껏 먹으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누구의 덕인지 알기 때문이다.

“양념통닭?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정말… 여기서 그걸 만들 수 있는 거예요?”

현수의 자신 있는 표정을 본 테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양념통닭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식재료뿐만 아니라 조리 기구까지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 이 컨테이너엔 그런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선 조금 그렇겠지? 곧 자야 하는데 냄새 풍길 수 없으니까. 기다려. 내가 주방에 가서 후딱 만들어 올게.”

“에고, 그럼 그렇지요. 그러세요. 다녀오세요.”

테리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현수 없는 동안 샤워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테리나가 샤워 용품을 챙겨 나간 후 현수는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항온마법진을 설치했다.

난로를 끄면 컨테이너의 내부 온도는 금방 코끝이 시릴 만큼 내려갈 것이다. 침낭을 쓰지만 이렇듯 추운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은 건강에 좋지 못하다.

사람은 의외로 예민하기 때문에 체온이 1℃만 오르거나 내려가도 몸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겨울에 노인 사망률이 높고 일반 질병도 많은 것이 바로 저체온에서 오는 면역력 저하 때문이다.

이처럼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면 입이 한쪽으로 비틀어지는 바이러스로 기인한 구안와사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현수 본인은 북극에서 자도 상관이 없지만 테리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배려해 준 것이다.

컨테이너를 나온 현수는 주방으로 갔다. 주방 식구들은 두둑한 보너스를 준 현수에게 지극히 협조적이었다.

그렇기에 요구하는 모든 식재료를 아낌없이 꺼내놓았다. 그런데 몇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고추장, 올리고당, 맛술, 녹말가루, 진간장, 땅콩 가루이다.

이것이 없으면 제대로 된 양념통닭의 맛을 낼 수 없다.

재료야 아공간에 있으니 꺼내서 쓰면 되는데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온 높은 사람이 대체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안드레이노프가 부르자 모두 물러갔다. 현수가 준 금일봉을 모두에게 나눠 준다니 얼씨구나 하며 우르르 몰려간 것이다.

주방에 홀로 남게 된 현수는 현란한 솜씨로 양념통닭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공간에 있는 재료까지 꺼내 상당히 많은 양을 튀겨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안 되지만 한국식 양념통닭 맛을 보여주고 싶은 때문이다.

잘 튀긴 닭을 기름기를 뺀 뒤 맛깔난 양념과 버무렸다. 침이 절로 솟을 만큼 고소한 냄새가 난다.

식으면 맛이 덜하기에 슬쩍 항온마법을 구현시켰다.

100인분의 양념통닭을 다 만들었을 즈음 주방 식구들이 돌아왔다. 별로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상당히 많은 양이 완성되어 있자 다들 놀라는 표정이다.

“하는 김에 많이 만들었습니다. 제가 손이 좀 크거든요. 하하! 안주 삼아 먹으라 하십시오.”

술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이지만 현수가 있기에 아무도 음주를 하지 않았다. 밉보이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1인분의 양념통닭을 챙겨 컨테이너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에 식당으로 쓰는 컨테이너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양념통닭 냄새가 자극한 때문이다.

곧이어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따끈한 양념통닭은 차가운 보드카와 조화를 이루는 안주였기 때문이다.

“어머, 정말이네요?”

현수가 가져온 양념통닭을 본 테리나가 눈을 크게 뜬다.

정말 한국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비주얼을 지닌 게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맛있을 거야. 먹어봐.”

포크를 건네주자 서둘러 자리에 앉은 테리나는 쿡 찍어서 맛을 본다.

“흐음! 마시쪄요. 정말 마시쪄요.”

입속에 음식이 있기에 귀여운 발음을 낸다.

“많이 먹어.”

“치, 저 혼자 먹고 돼지 되라고요? 자기얀 안 먹어요? 그리고 시원한 맥주 혹시 없어요?”

“없긴 왜 없겠어. 잠시만.”

현수는 컨테이너 바깥에 두었던 캔맥주 한 팩을 들고 들어왔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로 냉각된 것이다.

딱―! 치익―!

“자, 마셔.”

“호호! 고마워요.”

테리나는 얌전빼지 않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그리곤 양념통닭을 우적우적 씹어 삼킨다.

정말 맛있게 먹는다.

“참, 샐러드 좀 만들어 올까?”

말만 떨어지면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서는 현수를 본 테리나가 손을 휘젓는다.

“아니에요. 이것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리고 자기야도 먹어요. 나 혼자 먹게 하고 나중에 돼지처럼 먹었다고 흉볼 거 아니라면요.”

“그럼 그럴까?”

현수 역시 포크를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본인이 만든 것이지만 손맛이 있어 그런지 맛이 괜찮다.

“치잇! 이 닦고 왔는데 또 닦아야겠네요. 근데 맛있으니까 용서해 줄게요. 호호!”

말을 마치곤 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캬아∼! 시원해요.”

“……!”

한 모금 들이켜곤 손으로 턱을 닦는다. 한 방울쯤 흐르는 느낌이었나 보다.

그리곤 다시 포크를 드는데 뭔가 이상하다. 하여 시선을 들어보니 테리나의 윗입술에 맥주 거품이 묻어 있다.

어떤 걸 찍어 먹을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섹시하다. 드라마에서 본 바로 그 장면이 재현된 것이다.

현수는 순식간에 형성되는 케미1)를 느끼곤 흠칫거렸다. 하마터면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저도 모르게 키스할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때문이다.

“왜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테리나의 눈빛이 별빛처럼 영롱했다.

청순, 우아, 섹시, 교양, 요염이 어우러진 빛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또 한 번의 케미가 엄습한다.

현수는 얼른 물러앉았다. 사고 칠까 두려운 때문이다.

“잠자리 좀 보려구. 근데 불편하지 않겠어?”

“야전침대가 조금 좁기는 해요. 저 잠버릇 험한데 자다가 굴러 떨어지면 어쩌죠?”

“흐음! 매트리스를 얻어올까?”

“어머! 매트리스가 있대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데요? 더블? 퀸?”

싱글은 바라지도 않는다는 표정이다.

“싱글일걸, 아마? 여긴 부부나 커플이 없잖아.”

“…더블 이상이면 얻어오세요.”

아예 함께 있고 싶다고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어찌 동침할 수 있단 말인가!

“알았어. 가보고 올게.”

컨테이너 밖으로 나온 현수는 아공간에서 매트리스를 꺼냈다. 1,180㎜×2,242㎜짜리 수퍼싱글이다.

잠시 기다렸다 문을 열고 매트리스를 들여놓자 테리나는 얼른 한쪽으로 물러난다. 야전침대 위에 매트리스를 올려놓기 쉽도록 피해준 것이다.

준비되어 있는 야전침대는 640㎜×1,900㎜짜리이다.

매트리스의 폭이 거의 두 배에 가까워 조금만 옆으로 누우면 떨어지게 생겼다.

“그거 더블이에요?”

일반적으로 매트리스의 싱글 사이즈는 1,000㎜×2,000㎜이고 더블은 1,350㎜×2,000㎜이다.

수퍼싱글은 싱글보다 18㎝ 폭이 넓고 더블보다는 17㎝가 작으니 눈대중으론 구별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니. 싱글. 근데 좀 크네. 싱글이 이렇게 큰 거였나? 그나저나 어쩌지? 이거 하나뿐이라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는데.”

더블을 요구할까 싶어 한 말이다.

“야전침대 폭이 좁아서 두 개를 붙여야 할 거 같은데요.”

“…그렇겠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 개를 붙여요. 각각 침낭 속에서 자면 되잖아요.”

“그럼 그럴까?”

야전침대를 붙이고 매트리스를 올려놓았다. 침낭 두 개를 펼쳐 요처럼 겹쳐 깔고 침낭 두 개를 올려놓았다.

“베개가 없네.”

“그건 없어도 되요. 근데 지금 주무실 거예요? 전 좀 피곤한데…….”

모스크바에서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네르친스크까지 온 뒤 그곳으로부터 여기까지 자동차를 타고 여러 시간 왔다.

본인이 조종이나 운전을 한 것은 아니지만 피곤할 것이다.

“응? 아, 아니. 난 바람 좀 쐬고 올게.”

“밖에 추워요.”

“알아. 그래도 온 김에 시베리아의 밤하늘을 조금 감상하려고.”

“그러세요. 그럼 추우니까 너무 오래 계시진 말고요.”

“그래. 먼저 자.”

말을 마친 현수가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테리나의 나직한 음성이 들린다.

“으윽! 냄새…….”

“왜?”

“침낭에서 냄새가 나요. 으윽! 비린내.”

테리나가 진저리를 친다. 대체 어떻기에 그런가 싶어 냄새를 맡아보니 진짜 비린내가 심하다.

“내가 이불하고 요 있나 알아보고 올게.”

“부탁드려요.”

테리나는 잠옷 위에 가운만 걸치고 있다.

엄동설한이라 바깥으로 나가기엔 무리가 있는 차림이다. 그렇기에 염치를 무릅쓴 것이다.

“알았어. 기다려. 근데 있나 모르겠네.”

있을 리가 없다. 침낭을 줄 때 여기선 이것만 사용한다는 말을 분명히 한 때문이다.

현수는 아공간에서 패드와 이불을 꺼냈다.

두툼한 겨울용 극세사 순면 패드와 구스다운 이불이다. 푹신한 베개도 꺼냈다.

벌컥―!

문을 열자 테리나의 시선이 몰린다.

“벌써 구해오셨어요? 어머, 구스다운 이불과 베개네요. 그런데 있으면서 왜 진즉 안 줬대요?”

흡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먼저 자.”

패드를 깔아주고 일어서자 테리나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오래 계시진 마세요. 저 혼자 자면 무서울 수 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테리나는 하버드대학 로스쿨을 다니는 내내 혼자 생활했다.

미모를 탐낸 수많은 사내가 파리 꾀듯 꼬여듦에도 꿋꿋이 혼자 잤다.

그러니 무섭다는 말은 뻥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다.

“아차! 쩝, 혼자 자야 하나?”

생각해 보니 패드와 이불 모두 더블 사이즈다.

생각보다 매트리스가 컸기에 저도 모르게 거기에 맞춘다 생각하고 꺼낸 것이다.

다른 것으로 바꿔줄 수도 없는 상황이니 고개만 저었다. 오늘 밤 할 일이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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