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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31화 (1,030/1,307)

# 1031

식당 쪽을 보니 측량팀 모두가 모여 한바탕 회식을 하는 중이다. 현수가 만들어준 양념통닭이 만든 자리이다.

“플라이!”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었기에 2층으로 쌓은 컨테이너를 넘어 바깥으로 나갔다.

자작나무 사이를 스친 싸늘한 바람이 온몸을 휩쓸었지만 현수는 이미 한서불침인 몸인지라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기왕에 나온 김에 조금 더 이동했다. 가까이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간 것이다.

베이스캠프는 시냇물에서 멀지 않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물이 필요한 때문일 것이다.

언덕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니 사방이 평원이다.

“아리아니!”

“네, 주인님.”

아까부터 현수 주위를 날고 있던 아리아니가 얼른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실라디아와 노에디아 좀 불러줄래?”

“네, 주인님!”

잠시 시간이 흐르자 부드러운 바람이 현수의 머릿결을 흐트러뜨린다.

“마스터, 실라디아입니다. 저를 찾으셨사옵니까?”

“마스터의 명을 받잡고자 노에디아 대령하였사옵니다.”

“노에디아, 말투가 왜 그래?”

“제 말투가 이상하옵니까? 엘리디아가 말하길 무릇 사내는 사극 투로 말을 하여야 멋지다 하여 바꾸었사옵니다.”

“끄응!”

그렇지 않아도 사극 투가 어색했는데 모두가 그럴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말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라디아, 지도 볼 줄 알지?”

“그럼요, 마스터.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발전을 지켜봤기에 실라디아 등은 아르센 대륙의 정령들과 달라 편하다.

“좋아, 라이트!”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환한 광구 하나가 허공에서 생성된다. 약 200W쯤 되는지라 상당히 밝다.

현수는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러시아 지도를 꺼냈다. 유리 파블류첸코가 준비해 준 지도는 상당히 정밀했다.

“여기 이 지도를 봐. 우리는 지금 여기쯤 있어.”

“네, 마스터!”

실라디아는 현수가 손으로 짚은 곳을 살핀다.

“여기 붉은색 실선 보이지?”

“그럼요!”

“이 실선 안이 내가 다스리게 될 땅이야.”

“그럼 전하가 되신 것이옵니까?”

“전하? 그래, 뭐 그쯤 되는 거 맞아.”

3장 4대 정령에게 시킨 일

“감축드리옵니다, 전하! 신 실라디아, 전하의 국가가 대대손손 창달하도록 충심을 다하겠나이다.”

곁에 있는 노에디아 역시 거든다.

“신 노에디아도 전하의 나라가 나날이 발전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 보필하겠나이다. 신을 중히 써주시옵소서.”

“끄응! 노에디아 너까지……?”

“물론이옵니다. 신의 힘이 미치는 한 전하의 뜻에 따라 전하의 나라가 일신우일신하도록 애쓰겠나이다.”

‘에구, 말을 말자.’

현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둘 다 정색하고 하는 말인지라 왠지 어색한 때문이다.

“실라디아, 나는 이보다 훨씬 정밀한 지도가 필요해. 지난번처럼 해줄 수 있겠어?”

“전하께서 명만 내리시면 당연히 해야지요. 신은 전하를 보필하게 되어 무상의 영광이옵니다.”

“그래, 하는 김에 하나 더.”

“말씀만 하시옵소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을 체크해 줘.”

실라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람은 언제든지 만들어낼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 있을 거야. 거기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거라 그래. 이걸 보면 알겠어?”

노트북으로 풍력발전기 사진을 보여주자 고개를 끄덕인다.

“날개 셋 달려 삥삥 도는 이게 발전기인지요?”

본 적은 있는데 그게 뭘 하는 건지는 몰랐다는 뜻이다.

“그래, 인간은 그걸로 전기를 만들어내. 그러니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을 찾아봐 줘.”

“알겠사옵니다. 전하의 명을 따르옵니다.”

“고마워. 부탁할게. 가급적 빨리 해줘.”

“네, 그럼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말 떨어지기 무섭게 실라디아의 투명한 동체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잠시 이를 지켜보던 현수는 공손히 기다리고 있는 땅의 최상급 정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에디아, 너는 내 영토를 두루 다니면서 어디에 어떤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해 줘.”

“자원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금, 은, 구리, 철, 석유, 가스 등이지.”

“그것만 찾아보면 되옵니까?”

노에디아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란탄(Lanthanum), 세륨(Cerium), 에르븀(Er bium), 디스프로슘(Dysprosium) 같은 것들도 찾아봐.”

“라, 란탄이라고요? 세륨은 뭐고 에르븀과 디스프로슘은 또 무엇이옵니까? 설명해 주옵소서.”

노에디아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살짝 당황한 표정이다. 이에 현수는 희토류(Rare earth resources, 稀土類)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건 말이지, 광물의 한 종류로 원자번호 57∼71에 배열되어 있는 거야. 미량으로 존재하는 원소들이어서 ‘희토류’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

“마스터, 너무 어렵사옵니다.”

하긴 정령이 어찌 원자번호 같은 것을 알겠는가! 하여 정령이 알아들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설명했다.

대개 은백색, 또는 회색의 금속으로 화학적으로 안정적이고 열을 잘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말로 하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여 노트북을 꺼내 일일이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노에디아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자신 없는 표정이다. 이런 것에 대한 학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현수는 나중에 희토류 원석을 구해 실물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다이어리에 메모해 두었다. 최첨단 산업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물질이기에 꼭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출발해. 나중에 내가 실물을 보여줄 테니 희토류는 다음에 찾고.”

“네, 전하의 명을 따르옵니다. 그럼…….”

노에디아의 동체가 땅속으로 스며든다.

“아리아니, 이번엔 엘리디아와 이그드리아를 불러줄래?”

“네, 주인님!”

뭔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걸 알았는지 아리아니는 찍소리 않는다.

“마스터, 부르심을 받잡고 엘리디아 대령하였사옵니다.”

사극 투의 원흉이다. 그런데 너무나 예쁜데다 발가벗은 몸이라서 뭐라 야단을 칠 수가 없다. ‘억울하옵니다’ 하면서 허리라도 숙이면 못 볼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그드리아도 마스터의 부르심을 받았사옵니다.”

‘아주 단체로 사극을 찍기로 한 모양이네. 그래, 차라리 통일하는 게 낫다. 언젠가는 적응이 되겠지.’

현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엘리디아, 지도 볼 줄 알지?”

“그럼요. 인간을 지켜본 세월만 해도 얼만데요.”

“저도 지도 볼 줄 아옵니다.”

이그드리아의 말에 현수는 웃음 지었다. 정령들은 지는 걸 싫어한다는 말이 생각난 때문이다.

“엘리디아는 여기 이 붉은색 실선으로 그은 땅속의 지하 수맥들을 점검해 줄래?”

“알겠사옵니다. 어떻게 점검하면 되옵니까?”

“실라디아가 지도를 만들어 올 거야. 거기에 어디에 물이 얼마만큼 있는지를 표시할 정도면 돼. 참, 민물과 짠물 구별이 돼야 해. 무슨 뜻인지 알지?”

“물론이옵니다. 마스터의 뜻대로 조사하겠사옵니다.”

엘리디아가 고개를 숙여 명 받았음을 표할 때 이그드리아가 나선다. 성질 급한 불의 정령답게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스터, 저는 무엇을 하옵니까?”

“음, 이그드리아는 마그마가 뭔 줄 알지?”

“당연하옵니다. 마그마란 지하에서 암석이 고온으로 가열되어 용융된 것이옵니다. 암장(巖漿)이라고도 하지요.”

“그래, 잘 아네. 마그마는 지하 약 50∼200㎞에서 암석이 국부적으로 가열되어 형성된 거야.”

“그보다 얕은 10∼20㎞에도 마그마굄(Magma chamber)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사옵니다.”

“그래, 이그드리아는 이 영토 안에 그런 게 있나 확인해 줘. 있다면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상세히. 알았지?”

“그것만 조사하면 되옵니까?”

이그드리아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마그마로 인해 지하수가 따뜻해진 곳도 여러 곳 있을 거야.”

“온천을 조사하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인간 세상을 지켜봤기에 금방 알아듣는다.

“그래. 이그드리아도 실라디온이 만든 지도에 마그마와 온천을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알아와.”

“네, 마스터의 지시를 따르겠사옵니다.”

“좋아, 출발!”

엘리디아와 이그드리아가 떠나자 현수는 아리아니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리아니는 추위를 안 타지?”

“그럼요. 저는 그런 것과는 무관한 존재이옵니다.”

“뭐야? 왜 그런 말투를 써?”

아리아니까지 사극 투로 말을 하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주인님께서 좋아하시는 듯하여 그러하지요. 소녀의 말투가 이상하옵니까?”

“그래. 이상해도 많이 이상하니까 그런 말투 쓰지 말고 전처럼 말해. 알았지?”

“알겠사옵니다. 전하의 명이시니 의당 그리하겠나이다.”

“또!”

“쳇! 알겠어요. 그런 말 하는 거 은근 재미있었는데. 그나저나 저는 뭐 안 시켜요?”

“왜 안 시키겠어? 이 영토 안에 존재하는 희귀식물들을 찾아봐 줄래?”

“천종산삼이나 바이롯 같은 거요?”

“그래. 그 밖에 송로(松露)버섯 같은 것도 있나 찾아봐.”

트러플(Truffle)이라 불리는 송로버섯은 떡갈나무 숲 땅속에 자실체2)를 형성하며 자라고 있어 지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흰색과 검정색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것은 호두알 내지 주먹 크기로 훈련된 개나 돼지의 후각을 이용해야만 찾을 수 있다.

인공 재배가 안 되는 희귀성으로 인해 1㎏당 5백만∼6백만 원을 호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용 버섯이다.

최고 기록은 마카오의 한 경매장에서 무게 1.08㎏짜리 이탈리아 모리세산 흰 송로버섯이 무려 20만 달러 (2억 4천만 원 상당)에 팔린 것이다.

“찾으면 캐요?”

“캐? 캘 수가 있어?”

육체가 없는 아리아니가 어찌 땅속의 송로버섯 같은 것을 캘 수 있겠는가!

“원하시면 그럴 수 있어요. 근데 가져올 수는 없어요.”

“그럼 그냥 어디에 있는지만 파악해 줘.”

“알았어요.”

아리아니마저 떠났다. 현수는 켈레모라니의 비늘로부터 끊임없이 마나가 뿜어짐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땅과 바람, 물과 불의 정령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어디로 갔는지 설원이 훤하다. 현수는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시베리아 벌판을 느껴보았다.

차가운 바람과 싸늘한 기온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니 아주 편안한 얼굴이다.

‘이게 내 땅인 거지. 지금은 얼어붙어 있지만 내겐 4대 속성 최상급 정령들이 있어.’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5대 곡물 메이저와 몬산토를 떠올린 현수는 마음을 굳게 정했다.

최대한 빨리 모두의 몰락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안 물어봤네.”

베이스캠프로 걸으며 한 말이다.

우워엉! 우어어어엉!

멀리서 늑대가 하울링하는 소리가 들린다.

개는 짖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늑대는 이것으로 자신의 뜻을 전한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베이스캠프를 향해 가고 있을 때였다. 멀지 않은 숲에서 한 무리의 늑대가 나타났다. 자신을 먹잇감으로 여기고 노리는 듯한 눈빛이다.

“하하! 녀석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다.

그르르! 그르르릉! 와웅우우우!

사냥 태세로 접어든 듯 몸을 낮춘 채 다가서는 현수를 노려본다. 현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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