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32화 (1,031/1,307)

# 1032

둘 사이의 거리가 10m 이내로 좁혀들자 늑대들이 일제히 튀어 오르려 한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드래곤 피어!”

깨갱! 깨개개개갱!

순식간에 공포에 물든 늑대들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선다. 하지만 도주하지는 않는다. 극도의 공포에 휩싸이면 오금에서 힘이 빠져 주저앉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오베이(Obey)! 오베이(Obey)! 오베이(Obey)!”

현수는 11마리에 달하는 늑대 모두에게 복종 마법을 걸었다. 베이스캠프 근처에 있으니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냐?]

마나에 의지를 실어 우두머리 늑대에게 보내자 흠칫한다. 녀석들의 눈에 현수는 상위 포식자처럼 보이고 있다.

감히 반항을 하거나 도주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부드럽게 물으니 의아한 듯 바라본다.

[먹이를 줄 테니 먹고 멀리 가렴. 그리고 사람들은 공격하면 안 된다. 위협해도 안 되고. 알았지?]

늑대들은 무반응이다. 하지만 현수가 방금 한 말은 들을 것이다. 복종 마법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란 것이 아예 없기에 마나는 대략 1년 정도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현수는 아공간의 고깃덩이를 꺼낸 뒤 윈드 커터로 금방 육편으로 변모시켰다. 사람이 아닌지라 보는 앞에서 마법을 써도 되는 것이 편했다.

몹시 굶주렸는지 다들 정신없이 먹는다. 천천히 다가간 현수는 우두머리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100% 야생이지만 마법은 이를 극복하는 듯 순응한다. 현수가 머리를 쓰다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먹는다.

‘이곳에 오니 늑대들을 자주 접하는군. 리노와 셀다가 낳은 새끼들을 이곳에 풀어놓을까?’

현수의 이런 생각은 훗날 현실화된다.

리노와 셀다 사이에서 태어난 늑대들은 몽골과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 외곽을 지키는 경비랑(狼)들을 이끈다.

시베리아 늑대에 비하면 거의 1.5∼2배나 되는 덩치로 성장한다. 하여 시베리아 늑대들이 덤벼들 엄두조차 못 내고 복종하게 된다.

그 결과 시베리아 늑대들까지 자치령 사람들에겐 강아지처럼 굴지만 외부의 침입자에겐 야생 그대로의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자치령에서 녀석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늑대개로 바뀌어간다.

일부는 애완견이 되기도 한다.

딸깍―!

불을 켜자 테리나는 불빛이 거슬리는지 돌아눕는다.

“으음!”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잠자리가 마땅치 않은 때문이다. 매트리스를 쓰면 테리나와 동침하는 것이다.

하여 올라가서 잘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아공간 오픈!”

아공간 속에서 책상과 걸상, 그리고 스탠드를 꺼낸 현수는 노에디아에게 희토류를 명확히 인식시킬 방법을 메모했다.

원석을 구해 보여주는 것이 제일 빠르다. 그런데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주영이 녀석이 욕하겠지?’

이실리프 상사 대표이사가 된 민주영에게 찾아오라고 지시하면 알아서 구해오겠지만 심히 투덜거릴 것이다.

본인에게 어려운 일이라면 주영에게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겠어. 그런 거 구하러 다닐 시간이 없는데.’

마음을 정한 현수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메모했다.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만 지하자원 및 온천 같은 것들이 표기된 지도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몽골 이실리프 자치령 또한 똑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흐음! 몽골은 누구에게 맡기지?”

유리 파블류첸코나 안드레이 자고예프처럼 능력 뛰어난 사람들이 필요하다.

“전호에게 맡길까?”

태백조선소 신조선박 수주상담부 부장이 된 강전호라면 믿고 맡길 만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은 강 부장의 커리어 전부를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다.

몽골과 바다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있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네 인물이 있다. 남종우, 김종철, 박태화, 심계섭 검사이다.

장인이 된 권철현 고검장의 후배이자 제자이니 말만 하면 따라오기는 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엔 이들처럼 능력 있고 소신 있으며 깨끗한 검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뒤치다꺼리나 해결해 주는 청소부 같은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직은 간섭이 많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대한민국의 썩은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메스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한다.

권철현 고검장의 말이다.

지현이 현수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이들 중 하나와 엮였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넷만의 사이좋은 리그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많이 사용된 우정과 사랑, 그런 걸 우려하였기에 지현과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들 넷은 빼와선 안 되는 인물들이다.

“흐으음!”

현수는 주변에 사람이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천지건설에 입사하기 전까지 김현수는 별다른 스펙을 쌓지 못한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일 뿐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4년 내내 알바를 해야 했으니 폭넓은 교우 관계를 가질 기회가 없었다.

“이실리프 브레인의 이준섭 전무에게 부탁해야 하나?”

만만하다. 그런데 이번 일은 이 전무의 능력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부릴 부하 직원을 뽑으라면 잘하겠지만 몽골 자치령 전체를 총괄하는 임무를 부여할 사람을 뽑으라면 난색을 보일 것이다.

사람들을 평가하는 직업을 가진 자기 자신보다 더 큰 그릇을 찾아오라는 것인데 어찌 쉽겠는가!

“으으음!”

현수는 본인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그러다 공군 출신 국방장관인 오정섭이 기억났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장관이 다른 부서의 해체를 부르짖으면서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육, 해, 공군의 모든 장병이 청원서에 서명 날인을 했고, 모든 군무원과 군인 가족 역시 서명했다.

여성가족부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요원의 들불처럼 번졌다. 방송국마다 갑론을박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모든 언론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런데 워낙 요청이 많다 보니 결국 4월 10일에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날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에 있었다.

일본은행 외환담당 팀장인 가와시마 야메히토를 만나 금괴 1,500톤 매각에 대한 논의를 했다.

총액 865억 2,000만 달러짜리 상담이다. 이날 두 달 후 같은 양의 금괴를 더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컨테이너에 담아 마타디항 야드에서 인수인계하기로 했다.

아무튼 지금은 4월 17일 새벽이다.

국민투표에 대한 결과가 나오고도 남을 날이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투표 결과가 어찌 나왔을까? 수구 꼴통들도 여성가족부는 별로라 여길 텐데… 이번에도 권력에 빌붙었을까?”

일부 몰지각한 수구 세력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이다. 사람이 아니라면 단숨에 도려내서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현수도 다른 젊은이들처럼 정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누가 권력을 쥐든 바뀌는 것이 없다 생각했다.

진실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정치인은 거의 없다. 따라서 누가 권력을 쥐든 부정부패로 제 배만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실리프 그룹을 형성시키는 과정에서 바뀌었다. 그렇기에 국회의원 홍진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정치 세력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진보, 개혁, 보수, 수구이다.

이 중 진보는 위험하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더라도 자신들이 옳다고 판단한 것은 일단 저질러 보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잘되면 좋지만 잘못되면 폭삭 망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수구는 아주 나쁘다.

수구는 한자로 守舊라 쓴다. 지킬 수, 옛 구이다.

옛것을 지키는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돕는 것 같은 고유의 전통은 마땅히 보전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는 아니다.

정치에서만큼은 수구가 절대적으로 악(惡)하다.

수구는 옛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절대 고치지 않으려 한다.

이 이유는 그것으로부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불편해하고 결코 정의롭지 않음을 알면서도 절대 못 고치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런 세력은 일찌감치 거세시키는 것이 좋다. 국가와 전체보다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니 당연한 일이다.

불난 집에서 저 혼자 살겠다고 밖으로 나가 문을 잠가 버리는 놈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려는 세력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를 고치되 더 좋은 방향, 더 새로운 방향으로 개선시켜 보자는 마음을 가졌다.

보수는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이기에 나쁘지 않다.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고치기는 고치되 가급적 예전을 유지하려는 정치 세력이다.

위험한 것과 나쁜 것에 해당하는 진보와 수구보다는 개혁과 보수가 서로를 견제하는 정치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개혁보다 진보의 목소리가 더 크고 보수보다 수구가 훨씬 더 많다.

1995년 4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북경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을 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기업이 모두 잘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려던 중 나온 말이다.

20년쯤 지난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는 4류가 아니라 18류쯤으로 전락했다. 정말 욕 나온다.

국회는 여전히 당리당략에 따라 이전투구를 벌이는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곳이다. 여당은 권력자의 눈치와 심기만 살피며 부화뇌동하는 하부조직이 되었다.

무능력한 야당은 온갖 헛발질과 갈팡질팡함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재의 정치인 대부분은 엄격히 말해 국민들을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어갈 그릇이 못 된다.

불빛을 좇는 불나방 같은 존재일 뿐이다.

불나방이 뜨거운 불에 뛰어들어 죽듯이 권력의 핵심에 가까울수록 죽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이런 자들 중 상당수는 수구 세력에 의해 선출되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극한 이기주의자들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하긴 고인이 된 동생의 아내를 성추행해도 국회의원으로 뽑히니 말 다 했다.

전과 14범은 대통령을 해먹었다.

이런 수구만큼이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여성가족부이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거꾸로 남자들을 역차별하는 법을 만들었으며, 하는 일마다 분란을 일으키는 곳이니 당연히 해체되어야 한다.

현수는 여성가족부 해체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귀결되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곳은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라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에이, 바보! 왜 그걸 잊고 있었지?”

자신이 그렇게 해달라고 청해놓고 정작 본인은 투표를 못했다. 하여 자책하는 의미에서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멀리서 동이 트는 듯하다. 침대를 보니 테리나는 꿈나라를 헤매는 중이다.

늘씬하게 빠진 한쪽 다리를 내놓고 자는데 항온마법진이 있기에 춥지 않은 게 다행이다.

바깥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유리창엔 성에가 잔뜩 끼어 있다. 내외의 온도 차가 크다는 뜻이다.

현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시베리아의 새벽을 달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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