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4
걷는 동안 테리나는 자연스레 팔짱을 끼운다.
받아주지 않는 대신 둘만 있을 땐 이런 걸 허용키로 했으니 두말 않고 보조를 맞춰 걸었다.
이르쿠츠크 시내는 관광지답게 깨끗하고 단정했다.
“배 안 고파요?”
테리나가 바라보는 곳에 시선을 주니 ‘PREGO’라 쓰인 간판이 보인다. 그 앞에 작은 글씨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 쓰여 있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지.”
둘이 들어가자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환히 웃으며 맞이한다. 전체 테이블 중 60% 정도만 손님이 들어 있다.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분위기가 괜찮은 레스토랑인 듯하다.
테리나는 폴로 알라 카치아토라를 주문했고, 현수는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를 달라고 했다. 인살라타 알라 카프레제와 와인 등도 주문했다.
테리나가 주문한 것은 토마토소스에 닭고기를 넣어 만든 이탈리아식 스튜이다.
현수의 것은 티본스테이크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인살라타 알라 카프레제는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바질을 넣어 만든 샐러드이다.
둘은 오늘 구경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계산을 하려 하니 와인 포함 960루블이라고 한다. 약 24,000원이다. 너무 싸서 놀랐다.
한국의 음식값이 월등히 비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 이렇게 먹었다면 10만 원을 훌쩍 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렇게 비싸지? 임대료가 비싸서 그런가, 아님 식재료가 비싼 건가? 맛은 거기서 거긴데.’
현수는 대학 다니는 동안 알바를 했다. 예쁜 여학생이 많이 다니는 여대 앞 ‘히야신스’라는 카페에서 일했다.
아마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처음 2년 동안은 감자와 양파 껍질을 까고, 설거지를 했으며, 홀 걸레질과 화장실 청소를 했다.
성실성을 인정한 주방장은 주방장 보조 자리가 비자 현수를 추천했다. 덕분에 페이도 올라갔고, 간단한 요리까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 있고, 빵 굽는 기술까지 배워 마늘빵, 모카빵, 바게트, 소보로 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받은 페이가 월 75만 원 정도였다.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7시간씩 주 6일 근무였으니 시급으로 따지면 4,500원이다.
나름 기술이 필요한 직종이지만 페이는 짠 셈이다.
지금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는 짤 것이다. 그런데 왜 음식값이 비싸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최근의 한국은 뭔가 좀 이상해. 물건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느낌이야.’
아이들이 입는 패딩의 가격만 해도 그렇다.
섀르반 56만 8,000원, 캐나다구스 70만∼150만 원, 몽클레르 100만∼300만 원대, 버버리·펜디 60만∼200만 원대에 달한다.
현수가 한 달 내내 일하고 받은 돈으로도 아이 옷 하나 못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 값도 그러하다.
한국의 제과업체들은 아무리 봐도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듯하다. 원료인 곡물 가격은 하락했고 환율은 유리해졌다.
이를 감안하면 값이 내려야 하는데 오히려 올린다. 가격 변동이 없다면 내용물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다 누군가가 내수판매는 물론이고 미국에 수출하는 유명제품을 비교했다. 둘 다 국내에서 제조된 유명제품이다.
미국에서 파는 것은 420g이고, 국내용은 325g이다.
봉지를 뜯어 실제 내용물을 헤아려 보니 미국에서 팔리는 것은 165개가 들었고, 국내 판매용은 111개가 들어 있다.
비율로 따지면 약 1.5 : 1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은 2,048원이고, 한국에선 3,800원에 판다.
판매 가격 나누기 개수를 해보면 미국의 개당 가격은 12.41원이고, 한국은 34.23원이다.
이를 비율로 계산해 보면 약 1 : 2.76이다.
똑같은 제품이지만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비싸다.
우리 국민을 계산도 할 줄 모르는 병신이라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국산 과자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대신 비교적 값싼 수입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수입과자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엔젤스쿠키나 레드 버켓, 헝그리 제니 같은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번져가는 중이다.
국내 제과업체들이 국민을 만만히 본 결과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외화를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현수도 과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너무나 많이 올라서 사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폭리를 취하는 제과업체의 배를 불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테리나, 이실리프 상사와 연결되면 제과업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라고 지시해 줘.”
“네, 들어가는 즉시 이메일로 보낼게요.”
뭔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한국의 경제 상황에 질서를 잡는 일이 필요한 듯싶다.
돈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을 모두 포기한 3포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판국에 과자 한 봉지에 3,800원은 말도 안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질소를 잔뜩 넣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뿐만 아니라 과대 포장으로 낭비를 일삼는 것도 문제이다.
현수의 이런 생각은 이실리프 제과가 설립되는 근본 이유가 된다. 나중에 설립될 이실리프 제과에선 여러 종류의 과자 등을 만들어 파는데 값이 엄청 싸다.
3,800짜리 과자와 비슷한 수준의 제품 가격은 500원이다. 아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값이다.
기존 제품의 7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므로 가격 경쟁력에서 확실히 우위에 선다.
게다가 쓰이는 재료 자체가 다르다.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농산물과 청정 우유, 치즈, 식용유 등을 쓰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있어 이실리프라는 이름은 선함과 정직함, 그리고 진취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결과는 국내 제과업체들의 줄도산이다.
특히 싸가지 없던 기업이 있다. 이 회사가 망하던 날 네티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친다. 선택의 폭이 좁아 이 회사의 제품을 사 먹었지만 소비자를 우습게 안다고 느낀 때문이다.
한국의 제과업이 모두 망해가지만 이실리프 그룹은 M&A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설비도 사지 않는다. 그래줄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고, 설비는 고철로 팔려 나간다.
이 회사들의 생산직 사원과 하급직 사원들은 점점 규모가 커져가는 이실리프 제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비싼 과자값을 선도하던 과장급 이상에 대한 구제는 없다.
이 업체들은 이실리프 제과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보았다며 불공정하다며 재판을 건다.
이에 이실리프 그룹은 원료 도입 가격 및 생산 단가를 공개한다. 시장 장악 의도로 덤핑 판매를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그들을 편들어주지 않는다. 인심을 잃어도 너무 많이 잃은 때문이다.
자신들의 제품을 카피했다는 것으로도 소송을 제기하지만 그 역시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다. 생산에 앞서 법률적인 검토를 마친 것만 만들어서 팔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제과 출현은 다른 산업 분야에도 경종이 된다.
어떤 업종이든 부당한 담합으로 시장을 지배하여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내면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여 단숨에 시장을 평정할 것이라고 발표하기 때문이다.
이를 믿지 않은 대표적인 업종이 정유업계이다.
몇 년 후, 국내산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200원 정도가 된다.
이렇게 되기 6개월 전부터 국제 원유가는 계속해서 내려갔다. 석유수출국기구가 감산 합의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다.
원유 도입가가 내렸으면 그에 합당하게 소비자가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정유업계는 국내 휘발유 소매가격을 소폭 인상한다.
이에 국민의 비난이 거세지자 별별 핑계를 대지만 그래도 값을 내리라는 목소리가 커지자 찔끔 내린다.
원유 도입가는 10% 이상 인하되었는데 소비자가는 불과 1% 정도만 내리는 것이다. 이에 이실리프 정유에선 전격적으로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리터당 300원에 팔게 된다.
어떤 주유소로 차가 몰리겠는가!
정유업체들이 비명을 지르고, 세수가 줄어들자 정부가 나서지만 이실리프 그룹은 요지부동이다.
이때쯤의 정부는 이실리프 그룹을 건드릴 수 없다. 다국적기업을 잘못 건드리면 국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실리프 그룹이 전격적으로 한국을 떠나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부 돌대가리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실리프 그룹에 압박을 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기획재정부의 국세청과 관세청 등이 동원되어 전방위적인 압박과 위협을 가한다.
이에 이실리프 그룹은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기존 정유업체들이 취하던 폭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완전히 다 망할 때까지 값을 더 내릴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치킨게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실리프 그룹은 지속적으로 숙천유전에서 원유를 가져올 수 있으니 꿀릴 게 없는 것이다.
실제로 리터당 100원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소문이 돌자 정유업체들은 항복한다. 제과업체들이 망했을 때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망하면 적당한 값을 받고 회사를 파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설비는 고철이 되어 분해되어 버린다. 과장급 이상은 실업자가 되는데 이실리프 그룹에선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실리프 그룹의 협력회사에서도 그러하다.
공장부지는 경매에 넘어가 공시지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에 처분되는데 그마저도 대출해 줬던 은행들이 전액을 회수해간다.
물러서지 않으면 그야말로 급전직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백기를 들고 흔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얼마 후,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000원대로 하향된다. 이전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숙천유전에서 가져온 원유를 싸게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려했던 세수 감소는 소비가 크게 늘어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이 된다.
다음으로 작살나는 것은 난립된 상조회사와 병원 영안실, 그리고 납골당 등이다. 이들이 고인의 죽음을 미끼로 상주들의 등을 친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의 일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3년의 1인당 장례비용은 1,208만 원이었다. 서울·경기 지역은 이보다 더 많은 1,500∼2,000만 원이 소요되었다.
한국의 장례문화는 폭리로 점철되어 있다.
원가 15만 원짜리 수의(壽衣) 한 벌을 70∼80만 원이나 받아 챙기는 건 애교이다. 황금수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한 벌에 1억 원을 받기도 한다.
장례식장은 1박 임대료로 400만 원을 받아 챙기고, 납골당 안치비용으로 1억을 받기도 한다.
이에 이실리프 그룹에선 상조회사뿐만 아니라 장례식장까지 차린다. 그리고 모든 장례비용은 실비만 받는다.
관(棺) 15만 원, 수의 20만 원이다.
장례 지도 비용은 1일 10만 원이며, 장례식장 임대료 1일 10만 원, 염습방 사용료 3만 원, 고인 메이크업 5만 원, 식사비용 조문객 1인당 5천 원, 고인 안치 1박 비용 3만 원, 수시 비용 3만 원, 조화 15만 원, 발인실 사용료 2만 원, 폐기물 처리 비용 5만 원이다.
3일 장을 치르고 조문객이 200명인 경우 총액 216만 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화장(火葬) 시설 사용료 9만 원을 추가하고, 이실리프 그룹에서 직접 조성한 납골당을 사용할 경우 20년 안치 비용으로 240만 원을 낸다. 관리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