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35화 (1,034/1,307)

# 1035

이것까지 합치면 장례비 총액은 465만 원이다.

참고로 웬만한 장례식장의 경우 조문객 1인당 식대로 2∼3만 원을 받는다. 그럴듯하게 차린 상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주는 식은 육개장과 편육 약간, 부침개 몇 개, 땅콩과 어포 약간 등의 가격이 그러하다.

그리고 음식을 추가로 시키면 4∼6만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물론 술과 음료수 값은 별도이다.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경황이 없게 마련이고,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 제대로 된 예우를 갖추라는 장삿속에 엄청난 바가지를 쓰는 중이다.

사람의 죽음을 이용한 돈벌이를 못하도록 이실리프 그룹이 나서자 기존 장례업자들이 반발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들은 대학병원 영안실보다도 더 깨끗하고 쾌적한 이실리프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납골당 역시 이실리프 그룹의 것이 우선이다.

훨씬 더 관리가 잘되기 때문이다. 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도 이용한다.

식사 후 바깥으로 나와 보니 이르쿠츠크 시내는 짙은 어둠 속에 있다. 행인도 별로 없기에 서둘러 호텔로 되돌아왔다. 각자 샤워를 하고 캔맥주 하나씩을 비웠다.

테리나는 멈칫거렸지만 현수의 침대로 오진 않았다. 현수가 일을 하려 노트북을 꺼내놓은 탓이다.

그렇게 이르쿠츠크의 밤이 지났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식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윌리엄이 찾아왔다.

“아! 윌리엄, 잘 쉬었어요?”

“네, 회장님.”

“그래, 여긴 웬일이에요? 비행기에 문제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한국 영사관에서 회장님을 뵙자고 해서 왔습니다.”

윌리엄은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한국 영사관이요?”

“저희가 숙박한 호텔 3층에 한국 영사관이 있습니다. 어젯밤 간단히 한잔하려 바에 갔는데 우연히 한국영사관 직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윌리엄이 만난 사람은 영사관에 고용되어 일하는 현지인이다. 즐겁게 대화를 하고 헤어졌는데 아침에 방문을 받았다.

주 이르쿠츠크 영사가 현수와의 만남을 청했다는 것이다.

영사는 국교가 있는 나라에 머물면서 자국민을 보호 감독하고, 통상과 문화교류 등을 맡아보는 관직, 또는 그 관직에 있는 공무원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 영사직은 3급 서기관이 맡는데 6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대사는 무조건 면책특권을 받지만 영사는 특별한 협약을 맺지 않는 한 면책특권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사가 날 왜 찾았는지를 몰라요?”

“그냥 만나려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은 유명하시니까요.”

“……!”

현수는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한답니까? 이곳으로 온대요?”

“아뇨. 회장님더러 영사관으로 오라고 합니다.”

“가실 거예요?”

곁에 있던 테리나가 물은 말이다.

“테리나, 알혼섬까지 우릴 태우고 갈 차는 준비되었대?”

“네, 호텔에서 준비해 줬어요.”

조금 전 현수는 메리어트 호텔 총지배인의 정중한 인사를 받았다. 모스크바에 있다가 승진하면서 이곳 총지배인으로 왔다면서 아주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갖췄다.

현수 본인은 모르지만 러시아 정·재계 사람 중 현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레드마피아와의 관계도 알고, 푸틴과 메드베데프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드넓은 조차지를 받았음도 알고, 엄청난 양의 황금을 팔았음도 알고 있다.

따라서 현수는 러시아 어디를 가든 초특급 귀빈 대우, 다시 말해 VVVIP 대접을 받게 된다.

Very Very Very Important Person인 것이다.

항온의류, 쉐리엔, 듀 닥터, 스피드, 엘딕 등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어낸 미다스의 손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든 현수가 방문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환영이다. 잘만 되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 총지배인이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할 때 테리나가 알혼섬까지 가는 교통편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호텔에서 기꺼이 차량을 제공할 테니 편안히 다녀오시라고 한 것이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영사관에 가실 거예요?”

“아니. 알혼섬으로 가야지. 윌리엄, 스테파니도 불러요. 온 김에 다 같이 갑시다.”

“…알겠습니다.”

윌리엄은 그저 현수의 의중을 알 수 없었기에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다. 대사도 아닌 일개 영사가 보스인 현수를 오라 가라 한 것이 마뜩치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윌리엄은 스테파니에게 대기하라고 했다. 가는 길이니 태워가겠다고 한 것이다.

승용차는 좁을 듯하여 호텔 총지배인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남은 커피를 마시고 정문으로 나가니 신형 익스플로러 밴 한 대가 서 있다. 러시아의 시골에 미국의 신형 밴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놀랐다.

5장 보석 줍기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귀빈을 모시게 된 마라트 케르자코프입니다.”

현수와 테리나, 그리고 윌리엄이 다가가자 대기하고 있던 운전자가 밴의 문을 활짝 열며 말한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김현수라 합니다. 이쪽은 윌리엄, 이쪽은 테리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50대 중반인 사내이기에 예를 갖춘 것이 아니다. 상대가 정중하니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네에, 승차하시지요.”

윌리엄은 조수석에 올랐다. 테리나와 현수가 타자 케르자코프는 정중히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오른다.

“총지배인님으로부터 알혼섬까지 모시고 그곳의 관광 안내를 지시 받았습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알혼섬으로 곧장 가지 말고 인뚜리스트 호텔을 먼저 들러요. 거기서 탈 사람이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케르자코프 역시 테리나가 귀빈의 여인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서 아니라 하진 않았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여긴 때문이다.

신형이라 그런지 정숙했다. 현수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주었다. 어젯밤에 본 것을 아침에 보니 훨씬 깔끔해 보인다.

스테파니를 태운 차가 인뚜리스트 호텔을 벗어날 때 누군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운전자는 무시했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우스티오르딘스키를 지나 평원의 끝에 달하자 바이칼호수가 나타난다. 중심부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지만 물가는 많이 녹았다. 너무도 맑아 자갈이 그대로 보인다.

선착장에 당도하니 마침 페리호가 떠나려 하는 중이다. 하여 차에 탄 채 배에 올랐다.

알혼섬에 당도해 보니 차를 바꿔 타야 한다고 한다.

알혼섬 내부 도로는 모두 비포장도로이기에 차 바닥이 낮은 익스플로러 밴이 다니기엔 무리라 한다. 도로포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보호를 위함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곳까지 오는 데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러시아의 사륜구동 밴 ‘프르공’은 연비는 낮은 대신 튼튼하고 힘이 좋은 차이다. 운전자는 오프로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량이라고 한다.

프르공을 타고 알혼섬 곳곳을 둘러보다 바이칼뷰 호텔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이곳에 온 김에 하룻밤 머물자는 의견이 일치해 이 호텔의 객실에 체크인했다.

보통 호텔이라 하면 5층 이상인 현대식 건물을 상상한다. 그런데 이 호텔은 그렇지 않다.

들판에 목조로 지은 단층건물이 쭉 이어져 있다.

객실마다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분홍색을 차례대로 칠해놓아 촌스러워 보였다. 이런 객실 앞까지는 폭 1.2m 정도 되는 나무 통로가 배치되어 있다. 난간도 없기에 헛디디면 바로 흙을 밟게 된다.

다소 황량해 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풍치가 있다.

하지만 방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허연 목재로 마감한 실내는 단열이 잘되었는지 따뜻했다.

창밖을 보니 바이칼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좋았다.

현수와 윌리엄이 한 방, 테리나와 스테파니가 한 방을 쓰고, 안내인 역할을 하게 된 케르자코프에게도 방 하나를 배정했다.

짐이랄 것도 없기에 식사 후 곧장 알혼섬 관광에 나섰다. 이 섬은 약 730㎢로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 면적이다.

당연히 볼 것이 많았다.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 드디어 불한바위로 향했다.

가는 동안 뾰족한 창처럼 생긴 긴 막대에 알록달록하게 천을 감아놓은 걸 볼 수 있었다.

각각의 쇠막대 앞엔 작은 바위들이 있는데 멀리서 동전을 던져 이 위에 올라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테리나가 먼저 던졌다. 다섯 개나 던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스테파니는 세 번 만에 동전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환히 웃었다. 무엇을 빌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들 축하해 줬다. 현수와 윌리엄은 구경만 했다. 주머니에 동전이 없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보니 동전이 수북하다.

웬만하면 가져갈 텐데 이걸 가져가면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하여 아무도 안 가져간다고 한다.

후지르 마을이 보인다. 목조로 만든 단층 주택들이 즐비한 자그마한 단지이다. 곧이어 불한바위에 당도했다. 테리나가 말한 대로 독도를 닮은 듯하다.

이곳에서 일행은 흩어졌다. 잠시 개인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테리나와 스테파니는 바이칼 호수의 물을 만져보겠다고 물가로 갔고, 윌리엄과 케르자코프는 화장실을 찾았다.

홀로 남게 된 현수는 불한바위 가까이 다가갔다.

“마나 디텍션!”

마나 탐지 마법을 구현시킨 뒤 오감을 집중해 보았다.

지구에서 가장 영적인 기운이 강한 곳이라니 어떤가 싶다.

“흐음!”

마나가 다른 곳에 비해 농도가 짙기는 하다. 하지만 아주 많은 정도는 아니다.

“뭐야? 마나랑 기(氣)는 완전히 다른 건가?”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가 마나와 유사하거나 관련이 있다면 마나 탐지 마법이 구현되었을 때 느낌이 와야 한다. 그런데 예상이 틀렸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스테파니의 환호성이 들린다.

“와아! 예뻐라!”

시선을 돌려보니 물속에서 무언가를 주운 듯하다. 곁에 있던 테리나 역시 뭔가를 찾는 듯 뒤지는 모습이다.

“……!”

대체 무엇을 주웠기에 저러나 싶었지만 내려가 보진 않았다. 마나와 기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나 디텍션!”

다시 한 번 마나를 탐지해 보았으나 콩고민주공화국 정글만큼이나 진하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이 없다.

“이상하네. 뭔가 있으니 그런 소문이 났을 텐데.”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다.

“이럴 리가 없는데…….”

현수의 이런 생각은 사실 틀린 것이 아니다. 마나는 기의 다른 모습이고, 기는 마나의 다른 형태이다.

어떻게 정제하여 흡수하느냐에 따라 마나가 되기도 하고 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곳은 기가 상당히 센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엘리디아 때문이다. 진화하기 전 엔다이론일 때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지구상에서 가장 짙은 마나가 뭉쳐 있으니 머물기만 해도 빠른 진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엔다이론이 머무는 동안 일종의 마나 사이펀(Siphon) 현상이 빚어졌다.

이것은 위치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유체가 이동함에 있어 대기압보다 작은 압력이 작용할 때엔 동력이 없어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불한바위 근처에 있던 마나가 모두 엔다이론에게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농도 감소 현상이 빚어졌다. 지형상 마나가 모이는 곳이기에 언젠가는 다시 채워지겠지만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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