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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37화 (1,036/1,307)

# 1037

시원할 것 같아서이다.

물론 시원하다. 영하 10℃ 정도이니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든다. 오늘 하루는 유쾌한 날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까지 오는 동안 경치 구경도 했지만 많이 웃으면서 왔다. 서로 알고 있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깔깔댄 것이다.

섬 구경도 잘했고 보석 줍기도 나름 재미있었다. 술자리도 아주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케르자코프가 웃기는 이야길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였다.

넷만 마셨다면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거의 개그콘서트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 케르자코프는 코미디언이 꿈이었다고 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윌리엄 기장은 잠들어 있다.

현수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워봤으나 졸리지 않다. 아무리 많이 움직여도 피로가 쌓이지 않는 체질이 된 때문이다.

그냥 있느니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나왔다. 이미 깊은 밤이 되었는지라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텔레포트!”

현수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은 불한바위 근처이다.

자신이 짐작한 마나와 기의 상관관계가 틀어진 것이 마음에 걸려 재확인하려 온 것이다.

“흐음!”

불한바위 위에 앉아 마나심법을 가동시켰다.

확실히 지구의 다른 곳보다 많은 마나가 있기는 하지만 아르센 대륙처럼 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새벽이 되어 동이 틀 때까지도 현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일종의 삼매경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흐으음!”

호흡을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느낌상 심신이 조금 더 상쾌해진 것 같다. 싸늘한 새벽 공기가 살갗을 자극해서일 것이다.

“벌써 날이 밝았군. 텔레포트!”

호텔로 되돌아와선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안 씻어도 되지만 자고 일어난 척하느라 그런 것이다.

다 씻고 커피숍으로 내러가니 테리나가 먼저 와 있다.

“잘 잤어?”

“네, 자기야도 잘 잤어요?”

사람들의 이목이 있어 동침하지 못한 것인 섭섭한지 테리나는 현수가 앉자마자 자리를 옮기더니 팔짱부터 낀다.

“나는 잘 잤지. 오늘 우리 스케줄은 뭐야?”

“여기 조금 더 둘러보고 이르쿠츠크로 되돌아가는 거예요. 근데 그다음 스케줄은 뭐죠?”

“일단 네르친스크에 들렀다가 몽골로 들어갈 거야.”

“거기도 여기처럼 측량 작업이 진행되나요?”

“아니. 거긴 아직 아무도 파견되어 있지 않아. 거길 책임져 줄 사람을 아직 못 구해서 그래.”

테리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한민국보다도 큰 영토에 나라를 하나 새롭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당연히 총괄할 능력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유리 파블류첸코 씨와 안드레이 자고예프 씨를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에요. 통화할 때마다 얼마나 대단한 인재들인지를 깨닫거든요.”

“그래? 그거 다행이군.”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와 인연을 맺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은 뭐래?”

“뷔페식인데 아직 문 안 열었어요. 한 이십 분쯤 더 있어야 해요.”

“그래? 그럼 새벽 산책 어때?”

“저야 좋죠!”

발딱 일어선 테리나는 여전히 베이지색 투피스이다.

“옷은 그거밖에 안 가져왔어?”

“아뇨. 있는데 이르쿠츠크에 있어요. 여기서 하루 잘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오케이! 알았어. 가지.”

팔짱을 끼고 호텔 객실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연립으로 지은 단층 방갈로를 붙여놓은 것 같다.

보온을 위해 따닥따닥 붙여 지었고, 방마다 바이칼호를 볼 수 있도록 일자로 지은 아주 특이한 호텔이다.

보고 싶어 본 것은 아닌데 몇몇 객실에만 손님이 들어 있다. 아직 관광 시즌이 아니라 그럴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한 바퀴 더 돌아보고 이르크추크로 되돌아왔는데 도착해 보니 밤이다.

오는 내내 케르자코프의 개그 쇼는 계속되었다.

러시아어를 잘 모르는 윌리엄과 스테파니까지 깔깔거린 건 슬쩍 통역 마법을 걸어준 때문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들 둘은 마법 덕분에 러시아 방언까지 알아들었음을 알지 못한다.

“다녀오셨습니까?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총지배인님 덕분에 아주 즐겁고 편하게 다녀왔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귀빈께서 흡족하셨다니 즐겁군요. 기념사진을 찍어도 되겠는지요?”

“아, 물론입니다.”

6장 지도, 만들어줄래?

현수는 총지배인과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축구공을 가져와 사인도 해줬다.

호텔의 홍보를 위해 써도 괜찮겠냐는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축구공을 더 청해 사인을 해줬다.

현수의 사인이 들어간 스물네 개의 축구공은 이 호텔에 손님을 끌어모으는 마법을 보일 것이다.

축구의 신 김현수가 다녀간 호텔에서 하룻밤이라도 머물면 추첨을 통해 사인 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첨자 수는 매달 두 명이며, 1년간 이벤트가 진행된다.

이에 대한 소문이 전 세계적으로 번져간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지만 인터넷은 이를 가능케 한다. 총지배인은 먼저 자신의 트위터에 호텔을 배경으로 현수를 찍은 사진과 사인 볼 사진을 올린다.

아래엔 이벤트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직원들이 가장 먼저 리트윗을 하고 지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번져 나간다. 그런데 메리어트 호텔은 세계적인 체인 호텔이다. 따라서 엄청난 속도로 퍼진다.

호텔 홈페이지는 방문객이 쇄도하여 여러 차례 다운되는 기현상을 겪는다. 곧이어 예약 신청이 물밀 듯 몰려든다.

축구의 신이 머문 곳에 자신도 있어보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사인 볼을 받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에 오면 바이칼호 관광까지 할 수 있다.

일석삼조 이상이니 오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이르쿠츠크 메리어트 호텔은 최고의 호텔로 발돋움하게 된다.

“오늘도 피곤했지?”

“조금요. 그래도 좋았어요. 근데 걱정이에요.”

“뭐가?”

“케르자코프 씨가 너무 웃겨서 눈가에 주름이 잡힐 것 같아서요.”

“그런 건 슈리리어 듀 닥터로 해결되는 건데, 뭘.”

“참, 그렇죠? 그건 정말 좋은 화장품이에요.”

테리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샤워를 마치고 창밖 풍경을 즐기며 간단히 맥주 한잔을 했다.

현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테리나의 속셈을 눈치챘다. 어차피 다른 사내는 눈에 들지 않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육탄돌격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느껴진다.

“슬림!”

“끄응!”

말 한마디에 스르르 테리나의 신형이 무너진다. 조심스레 침대로 옮겨놓곤 이불까지 잘 덮어줬다.

“찾아보면 괜찮은 사내 있을 거야. 그러니 정신 좀 차려.”

자신에게 빠져 허우적거리는 테리나가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아리아니를 불렀다.

“아리아니!”

현수와 아리아니는 혼령으로 이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현수의 목숨이 다하는 날 별다른 이야기 없이 사망하면 아리아니는 소멸된다. 켈레모라니처럼 훗날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내려야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식물을 다스릴 초자연적인 존재인지라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아리아니와는 연락이 닿는다.

어쨌거나 약 3분쯤 지났을 때 아리아니가 나타난다.

“부르셨어요, 주인님!”

“그래. 내가 지시한 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얼마나 더 기다리면 끝나?”

기다렸다는 듯 아리아니가 쫑알거린다.

“작은 땅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시하신 일은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구요. 그래서 며칠 더 있어야 해요. 근데 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는 없는데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해서 그러지.”

“아!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애들 모두 주인님의 뜻을 확실히 알았으니까 굳이 여기 안 계셔도 알아서 다 할 거예요. 끝나면 제가 데리고 갈게요.”

별일 아니다 싶은지 연신 날갯짓을 하며 현수의 주위를 빙빙 돈다.

“아리아니,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있어주면 안 돼?”

“네에. 근데 저 식혜랑 당근주스 주시면 안 돼요? 요즘 그거 맛을 못 봐서 그런지 조금 그래요.”

“그래? 잠시만.”

딱―!

각각의 캔을 따서 주니 벌컥벌컥 들이켠다.

“하음! 식혜는 괜찮은데 당근은 이상한 걸로 만들었나 봐요. 맛이 텁텁해요.”

아마도 오염된 토양에서 생장한 당근을 갈아서 만들어 그럴 것이다.

“자치령 개발이 끝나면 직접 만들 거야. 그때는 맛있는 걸로 실컷 마시게 해줄게.”

“헤헤! 네, 기대할게요.”

아리아니는 현수가 앉은 소파 앞 탁자에 엎드린다. 두 팔로 턱을 괸 자세라 둔부가 그대로 보이지만 매우 귀엽다.

여자의 몸이지만 크기가 겨우 30㎝ 정도인지라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듯하다.

현수는 지도를 꺼냈다. 이번 것은 몽골 지도이다. 이전처럼 붉은색 실선으로 이실리프 자치령이 표기되어 있다.

“여기 이곳도 내가 다스릴 땅이야.”

“지금 조사하는 곳 바로 남쪽이네요.”

“그렇지? 이곳 역시 지도가 필요해. 이런 지도 말고 아주 상세한 지도와 지형도, 그리고 지하자원 분포 지도, 수맥 지도 같은 거.”

아리아니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바이롯같이 특이한 게 있나 찾아보는 거죠?”

“그래, 그리고 엊그제는 내가 깜박했는데 농사를 지었을 때 작물이 잘 자랄 장소도 파악해 줘.”

또 고개를 끄덕인다.

“네, 확실하게 파악해 둘게요. 근데 전에 그것과 이 지도는 아공간에 넣어두세요. 제가 필요하면 들어가서 파악하게요.”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난 곧장 북한으로 갈게. 거기가 어딘지 알지?”

“네, 주인님의 나라 북쪽에 있는 땅이잖아요.”

“그래. 거기서 며칠 머물 거야. 그러니 여기 일 끝나면 곧장 거기로 와줘.”

“알겠어요.”

아리아니는 걱정 말라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문득 차이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 만날 때도 테리나가 동행했다.

당시 몽골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폰착 차장이었다.

몽골의 병력은 10,850명이다.

해군은 없고 공군은 800명뿐이다. 지나가 침공했을 때 보유하고 있던 전차 410대 중 283대가 파손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육군 병력이 희생되었다.

급한 마음에 러시아에 지원 요청을 하였고, 지나는 러시아의 무력에 굴복해서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은 푸틴의 압력을 이길 수 없어 현수에게 10만 8,123㎢의 조차지 제공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몽골의 영토 대부분이 스텝 지역인지라 조차지를 주면 농사를 짓겠다는 말이 우습게 들렸으나 어쩌겠는가!

푸틴의 전화 한 통에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동의한다고 하였다. 그 대가로 막대한 양의 금괴를 제공한다고 하였지만 그게 온전히 몽골 정부의 관리하에 놓일 것이라곤 상상치 않았다.

일정 부분은 러시아로 흘러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수는 엘벡도르지 대통령을 만났다. 조차지 결정이 난 이후의 일이다.

당시의 현수는 푸틴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음을 알기에 약소국 수반의 마음을 헤아려 줬다.

그래서 고마움의 뜻으로 초이발산 남쪽, 그러니까 이실리프 자치령 남쪽 탐삭블락 지역을 농지화해 준다고 했다.

이곳이 농지가 되면 몽골은 더 이상 농산물을 지나로부터 수입하지 않아도 되니 아주 좋은 조건이다.

이 지역은 지나와 국경을 접한 지역으로 약 10만㎢에 이르는데 이실리프 자치령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초원만 있기에 농사짓기엔 적합하지 않다.

농사에 필요한 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나의 영토에 속해 있는 북쪽 호륜호로부터 흘러드는 강이 있어 용수를 공급 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염분 농도가 높아 농사를 지었다간 소출이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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