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41화 (1,040/1,307)

# 1041

“어허! 외국에 나와 금발미녀와 즐기시겠다? 좋겠네, 돈이 많아서. 천지건설에서 월급 많이 받는다며?”

“말이 짧습니다. 저 결혼도 했고 나이도 어리지 않습니다. 예의를 갖춰 대해주십시오.”

“뭐야? 예의? 예의는 개뿔! 그리고 안 어리긴! 이제 겨우 서른이잖아, 얌마! 나는 말이지, 사십이 넘었어, 사십이! 너보다 열두 살이나 더 많다고! 알았어?”

“진짜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파견한 영사님 맞습니까?”

“뭐야?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신분증 보여줘? 가만있어 봐! 딸꾹! 아이 씨, 왜 이렇게 안 꺼내지는 거야!”

자칭 영사라는 사내는 지갑을 찾는다고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잘 빠지지 않는 모양이다.

“자, 여기 이거 보이지?”

사내가 꺼내서 보여준 것은 갈색 여권이다. 아래엔 관용 여권이라 쓰여 있다.

“봤어? 나 이런 사람이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쓰러지지 않는다.

“흐음! 여권의 표지 색깔을 보아하니 파견 공무원이시군요. 일반 영사직이면 3급 서기관이니 6급 공무원쯤 되지요?”

“…뭐야?”

“그리고 엄밀히 따지고 보면 영사는 외교관이 아니라 영사 교민 업무를 담당하는 외교 공무원이지요. 말 그대로 재외 국민을 위한 민원기관 아닌가요?”

“……!”

“그쪽에서 신분증을 보여주셨으니 저도 제 신분증을 보여드리죠.”

말을 마친 현수는 러시아 정부가 발급한 외교관 여권을 보여주었다. 표지 하단엔 외교관 여권이라 인쇄되어 있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러시아 정부의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로 임명되었다면서 로그비노프가 건네준 것이다.

현수가 건넨 외교관 여권을 얼떨결에 받아 든 사내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눈을 크게 뜬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연방지구 이르쿠츠크주의 주도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의 영토이다.

이곳에 파견된 면책특권도 없는 일개 영사직 파견 공무원이 러시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에게 난동을 부린 것이다.

당연히 술이 확 깬다.

“이, 이게 어떻게……? 한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사내가 더듬거리며 당황해할 때 테리나가 나섰다.

“김 회장님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께서 정식으로 임명한 러시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지나를 포함한 외교수립국 전체에 해당됩니다.”

“네에?”

사내는 방금 한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리나의 말은 이어진다.

“한국이 이중 국적을 허용치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께서 한국 정부의 특별한 양해를 얻어 이루어진 일이니 그 여권은 유효한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사내는 말을 더듬는다.

이 사내는 이르쿠츠크 영사가 맞다. 외무고시를 패스해서 영사가 된 자가 아니라 특채되어 이곳에 부임했다.

영사 교민 업무란 호적, 출생신고, 결혼, 병역, 이혼 등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의 민원 업무를 해외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곳이다.

그런데 법률 지원 등 전문적인 법 지식이 필요한 상황이 많아 변호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였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건 수임이 여의치 않아 빌빌대다 낙하산을 타고 특채된 자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쯤 되었는데 현수가 당도했다는 말을 듣고 사진이나 찍으려 불렀다. 직장인의 신화로 추앙받는 유명인이기에 나중에 자랑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불러도 오지 않아 확인해 보니 바이칼호로 관광을 떠났다고 한다. 당연히 화가 났다. 일개 회사원으로부터 무시당했다 생각한 것이다.

영사는 현수가 이실리프 그룹의 총수라는 걸 몰랐다. 아울러 축구의 신으로 불린다는 것도 몰랐다. 이렇듯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자가 영사관 책임자가 된 것이다.

이자는 언론에 보도되는 가십(Gossip)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높은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낫다는 신념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현수를 아는 것은 우연히 드라마 신화창조의 티저 영상을 본 때문이다.

그 영상 아래에 ‘직장인의 신화’와 관련된 댓글이 있어 천지건설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는 인물이라는 걸 안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라 러시아 특임대사라 한다.

면책특권이 있는 대사는 부임한 나라의 중요도에 따라 위상이 다르다. 미국, 지나, 러시아, UN 등에 있으면 특 1급 외교직 공무원으로 차관급이다.

경찰청장, 고등검사장, 중장(3성 장군), 철도청장, 소방방재청장 등과 동급이다.

현수의 경우는 푸틴에 의해 임명된 특임대사이며, 특별한 보호를 받는 장관급에 속한다.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한 모든 국가를 상대할 수 있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각 부 장관, 서울시장, 국정원장, 대법관, 고등법원장, 검찰총장, 대장(4성 장군)과 동급이거나 높을 수 있다.

실제로는 이들보다 높이 여긴다. 물론 푸틴의 생각이다.

아무튼 각 부 장관엔 당연히 외교부도 포함되어 있다.

이르쿠츠크 영사는 그런 외교부 장관의 명에 의해 이곳에 배치된 자이다. 감히 하늘을 건드린 것이다.

“내일 술 깨면 봅시다.”

말을 마친 현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의 손으로부터 자신의 여권을 잡아챘다.

그리곤 테리나와 더불어 객실로 올라갔다.

8장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

다음 날, 현수는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영사와 대면하지 못했다. 하여 출발하면서 메리어트 호텔 총지배인에게 이렇게 말해두었다.

“총지배인님, 제가 급한 일이 있어 잠시 외출했다 온다고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세요.”

아마도 지금쯤 마음고생이 엄청 심할 것이다. 현수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스케줄 때문에 내일 보자는 말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다.

이는 그가 2013년에 읽은 신문 기사 때문이다.

해외 주재 한국대사관저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이 폭로한 일부 대사들의 일탈 행위에 관한 충격적 내용이다.

대사들이 요리사에게 가혹 행위를 하고, 관저 만찬을 핑계 삼아 공금을 낭비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사관저에 속해 있던 요리사는 ‘관노비(官奴婢)’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대사 부인으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욕설, 심지어 감금까지 당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대사관저에서 일하던 요리사는 대사가 관저 만찬을 필요 이상으로 자주 하고 식자재를 과도하게 구입한 뒤 남는 재료를 개인 식사용으로 썼다고 폭로했다.

유럽의 어떤 대사관저에선 20개월 동안 여섯 명의 요리사를 해고하여 문제가 되었다.

관저에 속한 요리사조차 제대로 대우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대사가 어찌 국가를 대표하며 교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줄 수 있겠는가!

국민이 낸 세금인 공관 운영비를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쓰는 대사가 어찌 국익을 위한 외교 업무를 잘하겠는가!

외국에서 한국 공관을 이용한 사람들의 외교관들에 대한 대체적인 인상은 고압적이고 불성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민은 ‘한국대사관은 근처에도 가기 싫고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은 곳’이라는 글을 외교부 사이트에 올렸다.

외교부에 속한 자는 모두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그러라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

그런데 공무원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양 국민을 함부로 대한다면 당연히 징치(懲治)를 가해야 한다.

경중에 따라 경고, 감봉, 좌천, 해임, 파면, 연금 박탈, 재임용 금지 같은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여 몽골로 오는 동안 테리나로 하여금 메모하도록 했다.

외교부 공무원들의 자질과 친절도 조사를 하라는 것이다. 이는 이실리프 정보에 지시될 내용이다.

조사 결과는 외교부와 언론에 공개할 것이다.

외교부에만 알리면 제 식구 감싸기를 하여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아무튼 국민에게 고압적이고 불친절하며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은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순리이다.

칭기즈칸 호텔 앞에 당도하자 연락을 받았는지 지배인이 나와 현수를 영접하려 대기하고 있다.

“정말 괜찮으세요?”

차에서 내리기 직전 테리나가 한 말이다. 현수가 내쉬는 숨에 술 냄새가 진동하는 때문이다.

“음! 난 괜찮아.”

짧은 시간이지만 마나심법으로 취기와 주기를 날려 보내니 한결 거뜬해진다.

주는 대로 받은 술이 39°짜리 보드카였는데 너무 많이 마신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칭기즈칸 호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에,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자 얼른 허리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현수는 대통령궁에서 파견한 경호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약된 룸으로 들어갔다.

“뭐야? 방이 하나짜리야?”

98.4㎡이니 약 30평짜리 스위트룸이다. 그런데 방이 하나이고 침대도 하나이다. 테리나가 변호사라는 건 알았지만 현수와 연인 관계라고 착각한 결과이다.

사실 착각할 만도 하다.

만찬장에서의 테리나는 시종일관 현수의 곁에 붙어 아주 다정한 미소를 보여주었고 현수 역시 내외하지 않고 대했다.

몽골의 각료들은 퀸카 중의 퀸카인 테리나를 데리고 있는 현수를 몹시 부러워했다.

물론 술이 많이 오른 뒤에 보여준 태도이다.

테리나는 그걸 즐겼다. 일부러 현수에게 더 다정히 굴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연인 사이로 오해할 만했다.

“일단 쉬세요. 방은 제가 더 알아볼게요.”

“그럴까?”

현수는 양복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테리나는 프런트에 연결하여 다른 방이 있는지를 물었다.

현재 머무는 방은 1박에 160만 투그릭(MNT)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94만 4,000원이다.

방 두 개짜리를 문의했더니 Executive Suite가 있다고 한다. 1박에 64만 투그릭짜리 룸이다. 37만 7,600원이니 훨씬 싼 방이다.

다만 면적 차이는 크지 않아 84.3㎡(25.5평)이나 된다.

테리나는 현수가 불편해하니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전화를 내려놓은 뒤 테리나는 만찬 석상에서 오간 대화를 메모했다. 몽골의 각 부 장관들과 나눈 이야기는 현수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자원에 관한 이야기도 상당했다.

러시아가 지나의 침공을 막아주고 차지한 광산은 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이라 한다.

능력이 되면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몽골의 지하자원을 나누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실리프 그룹이 나서서 몽골의 지하자원을 캐고 적당한 수준의 이익배분을 하자는 뜻이다.

미네랄 러시라 할 정도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이니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제안이었다.

국방장관의 경우는 아주 적극적으로 한국산 무기 도입을 원했다. 지나에게 당한 후 절치부심하는 모양이다.

그간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지나와의 관계 때문에 러시아에서 수출한 것은 전부 다운그레이드형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데 한국산 첨단 무기들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수량도 상당히 많고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대금은 현수가 지불하기로 한 금괴가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걸 받는 과정에서 일부가 러시아로 흘러들 것이 우려되어 선수를 치는 것이다.

향후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일이 조금 더 바빠질 모양이다.

문화부장관의 경우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다이안의 공연을 요청했다.

몽골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영상으로만 보니 감질맛 난다면서 한 번만이라도 공연해 주길 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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