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2
모르긴 해도 다이안의 공연이 성사되면 문화부장관의 위상은 상당히 올라갈 것이다. 몽골의 거의 모든 젊은이가 다이안을 보고 싶어 몸살 나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많은 장관과 대화를 나눴고, 머리 좋은 테리나는 그걸 모두 기억하여 메모해 두었다.
“어우! 시원하다!”
샤워를 마친 현수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띠리링, 띠리리링―!
“네에. 아, 그래요? 네, 네, 알았습니다. 네에!”
통화를 마친 테리나는 여전히 머리를 말리는 현수와 거울을 통해 시선을 맞췄다.
“바로 옆에 방 두 개짜리 스위트룸을 비웠대요. 옮기실 거죠? 근데 여기보다 조금 좁아요.”
“그래? 알았어. 금방 끝낼게.”
옆방에서 머물던 관광객은 현수 덕에 룸을 업그레이드 받았다. 서로 방을 바꾼 것이다. 게다가 룸서비스까지 무료이다. 현수 덕이라 할 수 있겠다.
현수는 얼른 옷을 입었다. 바로 옆방이긴 하지만 가운만 입고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제대로 갖춰 입은 것은 아니다. 양말도 신지 않았고 상의는 와이셔츠 차림이다. 누가 보면 급해서 도망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을 옮기는데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남녀 한 쌍이 나온다.
그중 사내가 현수를 유심히 바라본다.
“어! 혹시…….”
현수는 대꾸하지 않고 얼른 배정된 방으로 옮겨갔다. 호텔 메이드가 침구 일체를 새로 바꾼 듯하다.
“흐음! 괜찮군. 테리나는 어떤 방을 쓸 거야?”
“저는 이쪽 쓸게요.”
“그래? 그럼 난 저쪽을 쓰지.”
현수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서 땄다.
술을 마실 때 어느 정도 이상을 마시면 계속해서 술이 당긴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다.
샤워를 하면서 취기를 완전히 날렸더니 안 마신 것처럼 정신이 맨송맨송해서 꺼낸 것이다.
딱―! 치익―!
꿀꺽꿀꺽―!
“캬아! 시원하네.”
창밖으로 시선을 주니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보인다.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이 되려는 느낌이 확 든다.
하늘엔 구름이 많아 달빛을 감상할 수 없는 것이 흠이다.
“뭘 그렇게 보세요?”
“으응! 그냥 울란바토르의 밤은 어떤가 싶어서.”
“어머! 술을 또 드시는 거예요?”
“다 깼어. 테리나는 괜찮아? 제법 많이 마셨잖아.”
“적당히 요령껏 마셔서 괜찮아요. 근데 정말 괜찮겠어요? 오늘 엄청 과음하신 것 같은데.”
테리나는 정말 걱정하는 표정이다.
“나는 괜찮으니까 가서 쉬어. 내일 또 움직여야 하잖아.”
내일은 피혁·제화(製靴)·모직물·식육·유제품·제분 공장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몽골의 외교통상부 장관과 시찰하기로 한 때문이다. 몽골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다.
“네에, 쉬세요.”
테리나는 오랜 비행과 장시간에 걸친 회의, 그리고 많은 술잔이 오간 만찬으로 인해 몹시 피곤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두말 않고 물러간 것이다.
현수는 들고 있던 캔을 비우곤 잠자리에 들었다. 그냥 몸을 쉬게 하려는 의도이다.
같은 시각, 현수가 사용하려던 방을 쓰게 된 사내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다.
경악!!
이실리프 그룹 김현수 회장의 불륜!
지난해 연말, 검소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던 이실리프 그룹 김현수 회장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호텔 최고급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서 미모의 금발녀와 밀회를 즐기는 현장을 들켰다.
호텔 관계자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유부남인 김 회장은 수행원 없이 금발미녀와 한 방에 투숙하였다.
잠시 후, 무엇엔가 놀라 복도로 튀어나온 김 회장은 맨발에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결혼식을 올리고 이제 겨우 100일쯤 지난 김 회장의 이런 행동은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는 일이다. 국내외의 수많은 팬이 지켜보고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신갑제 동선일보 기자 [email protected]
현수와 방을 바꾸는 바람에 더 좋은 방을 쓰게 된 신갑제는 소위 말하는 기레기6)이다.
이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대강 아래와 비슷하다.
A양과 B군, 충격적인 밀회! 경악!
C군과 D양의 야간 데이트 현장!
E사에서 F를 팔다니 절망!
G그룹 티저! H양, 벗나요, 안 벗나요?
동선일보에선 이런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조회수를 올려 회사에 이익을 주었다며 몽골 여행권을 상품으로 주었다.
신갑제 기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연예기획사 관계자로부터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데뷔는 했지만 뜨지 못한 걸그룹 멤버를 소개받아 데리고 왔다.
유부남이기에 정작 불륜은 본인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신갑제가 쓴 기사는 즉각 데스크로 올라갔고, 인터넷을 통해 번져 나갔다. 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 설마… 사실이 아닐 거야.
― 김현수 회장이? 권지현 여사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나?
― 이 기사 쓴 신갑제는 기레기야. 이걸 믿어?
― 맞아! 기레기 중에서도 기레기야. 인정! 인정!
― 이건 틀림없는 오보다.
― 신갑제,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해서 곧 엿 먹을 듯!
― 하여간 이런 기레기들은 다 분리 수거해야 해.
― 맞습니다. 정화조 처리할 때 같이하면 됩니다.
― 김 회장이 해외에 동반하는 금발미녀라면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 변호사일 겁니다.
― 이실리프 그룹 국제 담당 고문변호사입니다.
― 하버드 로스쿨 차석 졸업자를 불륜의 대상으로 지목하다니, 미친 신갑제!
한국의 네티즌들이 난리를 부릴 때 현수는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물이 점차 굵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국지성 호우로 변한다.
번쩍―!
콰르르르릉―!
마음속으로 숫자를 헤아려 보니 번쩍인 뒤 여섯을 셀 때 소리가 들린다. 대강 500m쯤 떨어진 곳에 벼락이 떨어졌을 것이다.
번쩍―! 번쩍―!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이번엔 겨우 넷이다. 340m쯤 떨어진 곳에 벼락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곧이어 번쩍인 건 겨우 셋이다.
벼락이 점점 더 가까이 떨어지니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버언쩍―!
콰콰콰콰콰쾅―!
이번에 떨어진 벼락은 바로 앞 건물 피뢰침을 후려갈겼다. 잠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
“자, 자기야!”
눈을 떠보니 베개를 든 테리나가 침대 옆에 서 있다.
“무서워?”
“네, 무서워 죽겠어요. 같이 있어요.”
“…들어와.”
현수가 이불을 들추자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선 얼른 품을 파고든다. 이 순간 다시 한 번 뇌성벽력이 울려 퍼진다.
번쩍―!
콰콰콰콰콰콰쾅―!
“엄마야!”
테리나는 어린아이처럼 현수의 품을 파고들며 바르르 떤다. 하긴 소리가 엄청나게 크긴 했다.
현수는 피식 웃고는 포근히 감싸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냥 지나가는 거야. 괜찮아.”
“…네에. 근데 정말요?”
“그럼. 여기 있으면 안전해.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네에, 고마워요.”
현수의 말처럼 뇌성벽력은 곧 그쳤다. 쏟아져 내리던 비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멈춘 듯하다.
현수는 가만히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 테리나의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딥 슬립!”
웅크리고 있던 테리나의 몸이 펴짐을 느낀 현수는 살그머니 일어났다.
동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현수를 불륜이나 저지르는 나쁜 놈으로 묘사한 신갑제는 정말 기레기이다.
짹, 짹, 째짹!
“하으음!”
“깼어? 굿모닝이야. 커피 어때?”
“좋아요!”
테리나는 현수의 품에 안겨 잠들었음을 기억해 내곤 환한 미소를 짓는다. 문든 어젯밤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다정스레 자신을 안아준 현수가 그동안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면서 진한 키스를 해줬다. 달콤하면서도 황홀한 키스가 끝난 후엔 사랑한다고 말했다.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는 동안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테리나는 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벌써 세안을 마친 듯 말쑥한 모습이다.
“테리나는 오늘 여기서 쉬어. 같이 다니면 피곤할 테니까. 백화점에 가면 발 코가 살짝 올라온 슬리퍼를 판대. 그거 신으면 발에 땀이 안 찰 거야.”
“쇼핑이나 하고 있으라고요?”
“그래. 오늘 여러 군데 돌아다녀야 해서 같이 가면 피곤할 거야.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먹고 있어. 돈은 테이블 위에 놨어.”
“자기야……!”
“경호원들이 따라다닐 테니까 걱정 안 할게.”
자신을 배려해 주는 현수를 바라보는 테리나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는 것 같다.
“고마워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테리나는 현수에게 다가가 두 팔로 목을 휘감는다. 그리곤 입맞춤을 했다. 설왕설래하는 프렌치 키스가 아니라 그냥 뽀뽀이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자, 난 나갈 테니까 오늘 하루 알차게 보내. 이따 저녁쯤에 보게 될 거야. 알았지?”
“호호! 네에, 다녀오세요.”
테리나가 환히 웃자 현수는 넥타이를 매고 상의를 입었다. 그리곤 서둘러 나갔다. 마침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후다닥 타고 내려갔다.
이걸 보는 시선이 있었다. 신갑제는 살그머니 테리나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이때 귀를 자극하는 감탄사가 들린다.
“어머! 이게 다 얼마야? 만 달러? 세상에!”
현수가 탁자 위에 놓고 나간 100달러짜리 뭉치를 본 테리나가 한 말이다. 외출하여 쇼핑하라고 준 돈치고는 너무나 많으니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린 것이다.
잠시 더 귀를 기울이던 신갑제는 더 이상의 말이 없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경악!!!
하룻밤 화대가 무려 1,200만 원!
이실리프 그룹 김현수 회장이 하룻밤 동침한 금발미녀에게 지불한 액수이다.
1,200만 원은 웬만한 대리급 회사원의 넉 달 치 봉급이다.
천지건설로부터 많은 월급을 받고 있다지만 서민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는 과도한 돈이다.
이런 큰돈을 펑펑 쓰고 있으니 이실리프 그룹에 대한 정밀 세무 조사가 필요하다 할 수 있겠다.
이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칭기즈칸 호텔이며, 김 회장이 머문 방은 이 호텔에서 숙박비가 가장 비싼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다.
신갑제 동선일보 기자 [email protected]
신갑제는 아침 일찍 프런트로 내려가 숙박비를 치르곤 자신이 머문 방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했다.
참고로 현수가 사용한 방의 숙박비는 64만 투그릭이고 자신이 쓴 방은 160만 투그릭이다.
160만 투그릭짜리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면 이 중 절반을 보조받는다.
하루 숙박비로 자신은 34만 투그릭을 내고 회사로부터 80만 투그릭을 보조 받으면 46만 투그릭이 이익이다.
한화로 27만 원 정도 되는데 그게 어디인가!
자신이 부담해야 할 34만 투그릭도 안 낸 셈이니 실제로는 47만 원 정도가 이익이다.
하여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이 어찌 뜻대로만 되겠는가!
확인해 보니 호텔에선 숙박계의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
신갑제에게선 64만 투그릭만 받기 때문이다. 160만 투그릭은 몽골 정부에 청구할 돈이기에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돈이 좀 생기나 싶었는데 아닌 게 되자 심사가 뒤틀렸다. 그렇기에 마지막 줄의 기사를 쓴 것이다.
이런 자를 기자라고 고용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언론인들이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기사는 동선일보 인터넷 판에 올려졌다. 곧이어 수많은 댓글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