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6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언제든지 독대할 수 있는 남한의 사업가가 방문한다는 소문이 쫙 퍼진 결과이다.
물론 이 소문은 최 대좌의 아내가 퍼뜨렸다.
이곳 창광거리에선 대좌가 높은 계급이 아니다. 하여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변방에 있다 올라와서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현수가 직접 방문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당한 불이익이 더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에구, 뭘 이렇게 나와 계십니까? 그동안 안녕하셨지요? 너희도 잘 있었지?”
“네에, 회장님 덕분에 아주 잘 지냈습네다.”
“저희도 잘 지냈습네다, 회장님!”
“하하! 녀석들!”
현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트렁크가 열렸고, 두 개의 대형 캐리어가 나왔다. 지난번에 통조림과 과자를 담아온 그것이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아, 네, 그러시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보다 살림살이가 늘어 있다. 통조림을 처분한 돈으로 구했을 것이다.
“절 받으시죠.”
“네? 아, 아닙니다.”
최 대좌 부부가 마치 설날 세배하듯 하려 하자 현수는 얼른 일어섰다.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찌 절을 받겠는가!
“그럼 아이들이 하는 절이라도 받아주십시오.”
“아, 그거라면……. 네, 절 받겠습니다.”
현수가 다시 좌정하자 최혁, 최명, 최전이 나란히 선다.
“회장 동지, 복 많이 받으시라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요!”
“아자씨, 돈 많이 버시라요!”
꼬맹이들의 절을 받은 현수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오래오래 살라는 말이 웃겼다. 여든쯤 먹은 노인에게나 할 법한 말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절을 받았으니 세뱃돈을 줘야 한다. 하여 지갑을 열어 100달러짜리 지폐 석 장을 꺼내 하나씩 주었다.
달러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돈이라는 걸 알고는 희희낙락하며 받아 챙긴다. 이 돈은 금방 최 대좌의 부인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준 것이다.
“자, 이제 과자 좀 볼까?”
캐리어를 열자 남한의 과자가 즐비하다. 백두마트를 털 때 가져온 것들이다.
“와아! 과자다, 과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자 최 대좌의 입도 슬쩍 벌어진다. 개중에 한두 봉지는 본인 술안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캐리어 안에 있던 커피믹스를 맛본 최 대좌 부부는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간편한데다 달콤하면서도 맛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것 중 세계 최초인 것들이 몇 있다.
먼저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로 발명되고 사용되었다.
‘직지심체요절’, 또는 줄여서 ‘직지’라고 부르는 책은 1455년에 인쇄된 서양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는 1441년(세종23년) 8월 18일에 장영실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발명되었다.
MP3도 대한민국이 원산지이다. 1997년에 새한정보시스템이 개발한 ‘엠피맨’이 세계 최초이다.
4세대 LTE망에서 프리미엄급의 음성 및 영상통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VOLTE 역시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이다.
현재의 우유팩은 한국발명학회 신석균 씨가 고안해 냈다. 전에는 가위나 칼로 잘라야 해서 다소 불편했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초인 것이 바로 커피믹스이다.
1976년 12월 ‘동서식품’ 신제품개발반이 고안해 냈다. 현재 전 세계로 수출되는 효자상품이 되었다.
최 대좌의 집을 나서 백화원으로 오는 동안 현수는 뒷좌석의 트렁크 두 개를 네 명의 군관과 여덟 명의 사관에게 나눠 주도록 했다. 이것에 담긴 것은 사탕 종류이다.
평양 순안공항에 계류 중인 자가용 제트기에 있는 것들은 나중에 주겠다고 하자 김 상위의 입이 확 벌어진다.
최 대좌의 집에 갔을 때 몹시 부러웠던 것이다.
“편안히 쉬십시오, 회장님!”
“네, 다들 편히 쉬세요. 이제 객실로 들어가면 나올 일 없을 겁니다.”
테리나가 없으니 야간 산책할 일이 없기에 한 말이다.
현수가 객실로 들어가자 그제야 최 대좌 등의 숙여졌던 허리가 펴진다. 백화원 초대소의 직원들은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딸깍―!
문을 닫은 현수는 욕실로 들어가 물부터 틀었다. 오늘은 따끈한 물속에 몸을 담고 싶은 기분이 든 때문이다.
물이 쏟아지는 동안 양복을 벗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것 역시 항온의류인지라 얇아서 활동성이 좋다.
아공간에 있던 다이어리를 꺼내놓고 내일 점검할 사항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내일은 러시아로부터 연결되어 오는 가스관 연결 공사의 진척 상황을 보고받기로 했다. 이 보고는 천지건설에서 파견한 남한 기술자가 할 예정이다.
“흐음! 레일 제작과 기관차에 대한 것도 점검해야 해.”
몽골의 이실리프 자치령엔 북한산 철로와 기관차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이실리프 자치령은 러시아산이 들어가고, 콩고민주공화국과 에티오피아는 한국산이 들어간다.
우간다와 케냐는 아직 미정인데 가급적 북한산을 쓰려 한다. 남한의 생산 능력으론 동시에 네 군데의 수요를 채워줄 수 없다 판단한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창밖을 보았다. 하얀 눈이 온다고 했는데 맑기만 하다.
“일기예보가 틀리는 모양이군. 훗!”
남한의 일기예보도 가끔 틀린다. 북한은 더할 것이기에 개의치 않고 메모한 것들을 살펴보았다.
“물이 다 찼나?”
다이어리를 덮고 욕실로 들어가 보니 거반 차 있다.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가 잠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아공간에 담겨 있던 책을 꺼냈다. 핵융합발전에 관련된 전공 서적이다.
“흐음! 결국 이그드리아가 있어야 한다는 거네. 근데 1억℃를 진짜 견뎌낼까?”
태양보다도 뜨거운 열이니 불의 정령이라도 걱정되는 것이다. 직접 경험케 해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현수가 목욕을 마치고 나온 시각은 대략 11시 30분이 되었을 때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지만 습관처럼 가운을 걸치고 나와 스킨으로 마무리했다.
“술은… 에이, 그만하자. 백사 넣은 산삼주를 마셨는데 부정 타겠다. 후후후!”
침실로 들어간 현수는 스위치를 올렸다.
딸깍―! 화아악!
“으읏!”
빛이 어둠을 몰아내자 뜻밖의 광경이 보인다. 현수는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전혀 예상치 못한 때문이다.
“누, 누구……?”
“오늘 주인님을 모실 백설화(白雪花)라 하옵니다. 소녀의 이름 때문에 하얀 눈꽃이라 불리지요.”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백설화는 완전한 나신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침대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있다. 보아하니 이 자세로 꽤 오랫동안 기다린 듯하다.
나이는 스물 한둘쯤 되어 보이는데 상당히 예쁘다.
“어, 어서 옷을 입으세요.”
“소녀는 주인님께서 품어주셔야 입을 옷이 와요.”
“뭐요? 그게 무슨……? 일단 이불로라도 몸을 가리세요.”
“…주인님의 뜻이니 일단 그리하겠어요.”
백설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깔고 있던 이불로 몸을 가렸다. 그 과정에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북한 여인치곤 키도 크고 몸매도 좋다. 제대로 된 섭생을 했는지 마르지 않은 글래머이다.
“이름이 백설화라고 했나요?”
“네, 주인님.”
“먼저 호칭부터 고칩시다. 나는 주인님이 아니라 김현수라 합니다. 지금부터는 김현수 씨라고 불러주세요.”
“안 되옵니다. 소녀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님께서 보내신 선물이에요. 오늘로부터 주인님의 소유라 하셨으니 감히 높으신 성함을 부를 수는 없지요.”
“……!”
표정과 어휘 선택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막돼먹은 여자는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을 거친 듯싶다.
하지만 여기서 밀릴 수는 없다.
“그래도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안 됩니다. 알았습니까?”
“……!”
대답 대신 눈을 빤히 뜬 채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백설화 씨, 나는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서 의복을 챙기세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주인님께서 품어주셔야 옷을 입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제1위원장님께서요.”
실제가 그러하다.
김정은은 아주 긴밀한 끈을 만들어두고 싶었고, 뭐든지 좋은 건 다 주고 싶은 마음에 백설화를 보냈다.
백설화는 어릴 때부터 미모가 남달라 김정일을 위한 기쁨조에 들어갈 예정으로 예술전문학교로 뽑혀갔다.
기쁨조는 ‘만족조’와 ‘행복조’, 그리고 ‘가무조’로 분류되어 각각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만족조’는 성적 봉사에 필요한 예절과 기교를 익힌다. 사내가 좋아할 만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행복조’는 물리치료 전문의로부터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의 피로 회복 전문 기술을 연마한다.
마지막으로 ‘가무조’는 김정일이 즐겨 부르는 남한 노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춤과 노래를 배운다.
백설화는 미모가 워낙 빼어났기에 만족조에 배속될 예정이었는데 김정일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졸지에 갈 곳이 사라졌음에도 교육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행복조와 가무조의 교육까지 모두 이수하였다.
적어도 기쁨조에선 전천후가 된 것이다.
김정은은 얼마 전 기쁨조에 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50명 전원의 면면을 보았다. 이제 자신의 소유가 될 여인들이니 시간을 내서 살펴본 것이다.
그때 가장 눈에 뜨인 게 바로 백설화이다.
하얀 살결과 빼어난 미모, 그리고 환상적인 몸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름 그대로 하얀 눈꽃이다.
품어보지 않았으니 침대에서의 능력은 알 수 없다. 피로 회복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노래와 춤은 당장 남한의 아이돌 그룹에 데려다 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기타와 피아노 연주 솜씨도 수준급이다.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소개에 부합되었다.
마음 같아선 품고 싶었지만 아직 정권 초기이다.
보는 눈이 많기에 훗날로 미룬 지 얼마 안 된다. 그런데 현수가 왔다.
공화국을 위해 큰일을 해주는 사람이다. 뭔가 대단한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 하여 김정은은 크게 마음먹고 현수에게 하얀 눈꽃을 진상9)하기로 했다.
자고로 선물은 가장 좋은 걸 주는 것이 예의이다.
거절할 수도 있기에 그러지 못하도록 현수가 머물 객실에 넣고 옷을 모두 벗겨갔다. 그렇기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대기한 것이다.
백설화에겐 김현수가 주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입시켰다. 어떤 수를 쓰건 반드시 품에 안겨야 하며, 그 증빙을 내보여야 한다.
성공만 하면 기쁨조에 속한 여인들이 누린 것보다 더한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약속했다. 또한 실패할 경우엔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듣자 하니 백설화가 현수를 유혹하는 것을 실패할 경우 온 가족이 수용소, 또는 교화소로 보내진다고 한다.
구금 시설인 수용소의 공통점은 환경이 열악하고 비위생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수용소나 벼룩이나 반대가 있어 고생이 심하다.
또한 수도 시설 낙후로 세면 및 빨래 등에 어려움이 많고, 화장실이 수감실 내부에 있어 매우 비위생적이다.
여성수감자를 위한 생리대나 여성용품의 공급은 없다. 하여 그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
교도소라 할 수 있는 교화소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다.
가혹할 정도로 높은 강도의 육체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상투쟁 및 사상교양을 강요하며 제대로 된 식사를 공급하지 않아 심각한 인권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은 성적 학대까지 받는다.
따라서 백설화는 오늘 반드시 현수의 품에 안겨야 하며, 순결을 잃었다는 증빙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고도 처녀막 손상 여부에 대한 검사까지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