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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47화 (1,046/1,307)

# 1047

짜고 치는 고스톱을 북한 사람들도 아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백설화는 필사적이다. 이 방에서 쫓겨나면 그야말로 인생이 끝나기 때문이다.

수용소로 보내지면 군관은 물론 수많은 하전사의 능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꽃다운 나이인데 어찌 견뎌내겠는가!

“제발… 제발 저를 내보내지 마시고 품어주세요. 네?”

현수가 호색하지 않다 판단한 백설화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무릎을 꿇은 채 바라본다.

덮었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가 다시 처음처럼 다 벗은 몸이 보이지만 현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이처럼 필사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가씨를 안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 주인님께서 제 순결을 취하지 않으시면…….”

하얀 눈꽃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성장과정에 대해서도 말했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선발되어 예술전문학교라는 곳으로 온 이후 기쁨조에 선발되기 위해 교육받은 전부를 이야기한 것이다.

듣고 보니 백설화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과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제발, 제발 저를 취해주세요. 네?”

한국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짓고 있다.

처음 만난 사인데 처녀인 자신을 겁탈해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다.

북한의 이런 조치가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백설화를 보낸 건 일종의 정략혼을 하자는 것이다. 아르센 대륙에서도 정략혼을 할 경우 첫날밤이 지나면 합방을 했다는 의미로 요 커버에 해당되는 천을 내건다.

신부가 지난밤에 순결을 잃은 흔적을 보여줌으로써 정략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절대복종 마법에 걸려 있으니 그런 셈 치자고 하면 된다. 문제는 그 밑의 실무진이다.

마법에 걸려 있지 않으니 백설화의 처녀막 유무 검사까지 할 것이다. 그리곤 예정된 수순에 따라 수용소, 또는 교화소로 보내지게 될 것이다.

북한은 이런 면에선 매우 철저하다.

그런데 현수라 할지라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본인이 떠난 후에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으음!”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발가벗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백설화의 교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현수는 테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놀라는 눈치이다.

“테리나, 로그비노프 특임대사 좀 바꿔줄래?”

“네, 잠시만요.”

러시아에서 파견한 북핵 담당 특임대사인 로그비노프는 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는 껄껄 웃는다.

백설화가 기쁨조에서 제일가는 미모였다면 현재의 북한 여성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일 것이라 한다. 무엇 하나라도 흠결이 있으면 기쁨조 최종 명단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품으라고 한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 테리나도 애써 거절하고 있는데 어찌 백설화를 안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테리나의 육탄 돌격이 도를 넘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명량의 파도처럼 매 순간마다 괴롭게 할 것이다. 따라서 백설화를 안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건 얕은 생각일 수 있는데, 백설화를 로그비노프 대사님의 양녀로 삼는 건 어떻겠습니까?”

“양녀요?”

로그비노프에겐 아들만 다섯이 있다. 모두 장성하여 일가를 이뤘으며 각자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고 있다.

막내는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무역을 한다.

북핵 담당 특임대사가 부친인지라 거침없는 행보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라면서 자랑이 대단했다.

그때 딸은 없느냐고 물었는데 둘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두 살 때, 다른 하나는 여섯 살에 잃었다.

급성 폐렴과 익사였다고 하면서 아쉬워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들 기르는 재미보다 딸의 재롱이 더 좋았다고 했다.

“아주 예뻐요. 기타와 피아노도 잘 다룬다고 하구요.”

“으으음! 내게 잠시의 시간만 주십시오. 조금 있다 전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로그비노프는 노회한 외교관이다.

자신보다도 푸틴에 더 가까운 현수의 부탁이다.

따라서 들어주기는 하되 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기에 시간을 요구한 것이다.

통화를 마친 현수는 하얀 눈꽃에게 시선을 주었다. 옷을 입혀야겠는데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필사적인 눈빛 때문이다.

11장 출두명령서를 받다

“차 한잔할래요, 아님 맥주 한잔할래요?”

“독한 술은 없나요?”

취해서라도 디밀겠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술 냄새 심한 여자는 싫어합니다.”

“그럼 맥주로 주세요.”

냉장고에 있는 대동강 맥주와 마른안주를 꺼내 왔다.

“앉아요, 여기. 이불은 너무 두꺼우니 이걸 걸쳐요.”

현수가 건넨 것은 자신이 벗어놓은 와이셔츠이다. 제법 길어 그것 하나만 입어도 가릴 건 대강 가려질 듯싶다.

“고맙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그래도 높으신 존함을 부를 수는 없어요. 위원장님께서 자신과 대등하신 분이라 하셨어요.”

이 말은 실제로 김정은이 한 말이다.

백설화를 보내기로 결정한 이후 직접 만나 한 말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실수하거나 무례히 굴지 말라는 뜻에서이다.

기쁨조에게 있어 김정은은 거의 신과 같은 반열이다. 그러니 현수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순결을 가져가 달라는 말을 하면서도 조금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뇨. 트림이라도 하면 주인님이 싫어하실 수 있어서…….”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현수는 프런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음식을 부탁했다.

잠시 후 어복쟁반이 왔다.

놋 쟁반에 갖가지 고기 편육과 채소류를 푸짐하게 담고 육수를 부어가며 먹는 추위를 이기게 하는 일종의 전골이자 온면이다.

“먹어요.”

“싫습니다.”

“나는 배고픈 여자는 안지 않아요.”

“…그럼 먹겠습니다. 그런데 트림이라도 하게 되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일단 먹읍시다.”

현수가 먼저 수저를 들자 얌전히 고개 숙이곤 수저를 잡는다. 배가 고팠다는 뜻이다.

“네에.”

현수가 먼저 덜어서 먹자 따라서 덜어 먹는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상당히 많이 먹는다 싶은데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는다.

“죄, 죄송해요. 감히 하늘같으신 분과… 너무 긴장해서 점심부터 굶어서 배가 몹시 고팠더랬습니다. 그래서… 죽여주십시오. 실례를 했습니다.”

“나는 괜찮으니 많이 먹어요.”

“아닙니다. 이제 그만 먹겠어요. 죄송합니다.”

조신하게 수저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럼 치웁시다.”

“네에, 제가 하갔습네다. 어머!”

백설화는 저도 모르게 북한말이 나왔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요. 설화 씨가 치워요.”

“네에.”

서둘러 먹은 그릇들을 치워냈다. 침실에서 냄새가 나면 안 되기에 객실 밖 복도에 밀어내 놓고는 얼른 문을 닫는다.

본인이 어떤 차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현수에게 보여주는 것은 상관없으나 다른 사람들에겐 어림없다는 뜻이다.

“음식을 먹었으니 다시 씻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네? 그럼 왜……?”

사람이 끼니를 거르면 입에서 냄새가 날 수 있다. 그래서 먹인 뒤 어떻게 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백설화는 얼른 와이셔츠 단추를 푼다.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보여줘서 현수로 하여금 혹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때 전화가 걸려온다. 현수는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아,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네, 네. 그건… 테리나는… 네,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로그비노프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현수의 표정이 편안해진다. 한시름 던 얼굴이다.

로그비노프는 백설화를 양녀로 맞이하겠다고 한다. 딸이 되었으니 앞으로 러시아대사관에서 기거하게 된다.

북한이 손을 쓸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현수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백설화를 비서로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테리나가 있다고 하니 그녀는 법률고문이지 비서가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기에 그렇다 할 수밖에 없었다.

백설화는 로그비노프에게 죽음에서 생환한 것과 같은 은혜를 입는 셈이다. 매우 고마워할 것이 분명하다.

은혜를 갚으려는 백설화를 현수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이다. 현수와 푸틴의 밀월 관계를 잘 알기에 제안한 조건이다.

24시간 비서라는 것이 조금 께름칙하기는 하지만 북한에 올 땐 테리나와 동행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순결을 빼앗지 않아도 되니 충분히 감내해 낼 만하다.

“백설화 씨.”

“네, 주인님.”

“조금 전 나는 러시아에서 파견한…….”

현수는 로그비노프와의 통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그렇게 한 이유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자신을 위해 애써준 마음이 느껴진 때문이다.

“주인님, 죽을 때까지 주인님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할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마음 편히 먹어도 되는 거 알죠?”

“네, 고맙습니다. 열심히 모실게요. 언제든 제가 필요하시면 말씀만 하세요. 그리고 언제든 저를 취하셔도 돼요. 주인님이시니까요.”

“에구, 주인님이라는 말 안 하면 안 돼요?”

“네? 그럼 뭐라고…….”

말을 해놓고 보니 마땅한 호칭이 없다.

김 회장님이라고 부르라 하긴 조금 그러하다. 김현수 씨라 부르라 하면 죽어도 안 그럴 것이다. 하여 잠시 뜸을 들였다.

“오빠라고 하세요.”

“네에? 오, 오빠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저 같은 게 어찌……. 그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럼 오라버니?”

여동생이 없는 현수이기에 한 말이다.

“오라버니라니요? 그게 그거잖습니까.”

“오빠나 오라버니 중에 골라요. 다른 마땅한 호칭이 없으니까요.”

“…오라버니라 부를게요. 대신 말을 놓으세요. 저보다 한참 높은 분이신데…….”

“그래, 이제부턴 말 놓을게, 설화야.”

“네, 오라버니. 그렇게 말 놓으세요.”

현수와 하얀 눈꽃은 밤새 이야길 주고받았다. 어찌 살아왔는지를 들어본 것이다. 현수는 북한의 실상을 알고자 이것저것을 물었고, 백설화는 아는 범위 내에서 대답했다.

띵동―!

벨 소리에 문을 여니 테리나가 왔다. 부탁한 사이즈의 옷을 사오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모든 옷을 갖춰 입은 백설화는 과연 북한 제일 미녀다운 맵시를 보여주었다.

잠시 후, 테리나와 백설화는 러시아대사관으로 향했다. 로그비노프가 보낸 외교 차량을 타고 간 것이다.

“휴우! 다행이야.”

현수는 나직한 한숨을 취곤 나갈 채비를 갖췄다.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똑!

“누구십니까?”

“회장님, 저 최철 대좌입니다. 아래층에 차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는 무례를 범할 수 없어 노크를 한 것이다.

“어서 오시라요. 밤엔 잘 쉬셨습네까?”

“위원장님께서 보내신 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하! 기래요? 내 기럴 줄 알았더랬습니다. 기 아이가 참 참하디요? 배운 거이 많아서리 좋으셨겠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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