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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48화 (1,047/1,307)

# 1048

김정은은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진 것이 몹시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환히 웃는다.

“위원장님, 백설화 양이 너무 마음에 들어 제 곁에 두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아, 기 정도였습네까? 하하! 마음대로 하시라요. 이제부터 그 아인 김 회장님의 것이니까요.”

“네, 그런데 제가 늘 이곳에 머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은 설화 양을 로그비노프 대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아, 특임대사님이요?”

“네, 대사님이 설화 양을 대사관저로 불러서 현재 그곳에 있습니다.”

“아, 기래요? 알갔습네다. 그나저나 오늘 참 바쁘겠습니다. 자자, 들어가시디요. 보고할 준비되었다 합네다.”

“네, 그러시죠.”

잠시 후 천지건설에서 파견한 기술자와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의 기술자, 그리고 북한의 기술진들이 들어와 보고를 시작했다.

동시베리아 야쿠티아 자치공화국에 위치한 차얀다 가스전 연결 공사는 천지건설이 주(主)가 되어 가즈프롬과 북한 기술진의 협조를 얻어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지질 검사를 하고 있으며, 배치도가 완성될 때까지 가스관을 지지할 기초를 제작한다고 한다. 어차피 일률적인 사이즈가 될 것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 * *

“수고했다.”

“그래, 별일 없지?”

“없겠냐? 많지.”

현수를 맞이한 주영은 불만 섞인 어투이다. 너무도 바빠 제대로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야, 너무 힘들어 죽겠다. 일에 치어서 산다, 살아. 이건 뭐 신혼인데도 은정 씨나 나나……. 친구야, 월급 왕창 깎아도 되니까 일 좀 줄여주라.”

“사람 더 뽑아 쓰라니까.”

“야, 사람 하나 뽑아 쓰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냐? 고용하는 데 비용 들지, 매달 월급 말고도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료 내야 한다. 게다가 책상 줘야지, 전화선 늘려야지. 에휴, 끝도 없네.”

주영이 회사 돈을 아끼기 위해 가급적 인원을 늘리지 않으려는 속내를 읽은 현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쯤 되면 그에게 회사를 통째로 맡겨도 될 만하다.

“너 일을 하루 이틀 하고 말 거야? 이실리프 자치령이 몇 군덴지 알지?”

“그럼. 콩고민주공화국, 몽골, 에티오피아, 러시아, 이렇게 넷 아냐. 각각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크고.”

“우간다와 케냐에도 생길 확률이 있다.”

“미친……! 뭔 일을 이렇게 끝도 없이 벌이냐?”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래도 어쩌겠냐? 이게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이잖냐.”

주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편안하고 깨끗한 주거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지금껏 가진 자들의 말도 안 되는 횡포와 전횡에 눈물 흘리던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고,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경쟁 일변도인 대한민국의 현재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사회는 사람을 너무 몰아세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원을 다니며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해도 변변한 직장을 얻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2교시라는 게 있었다.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학교에 오라는 소리다.

밤 10시까지 실시하는 강제 야자가 끝나면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심야 과외를 해야 했다.

고등학생은 사람이지 공부하는 로봇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경쟁적으로 애들을 괴롭혔다.

이렇게 하도록 몰아세운 사람은 선생들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학교의 명예 운운해 가며 학생들에게 팍팍한 삶을 강요했다.

모두 교직에서 축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활이 정말 사람다운 삶인지 교육부에 반문하고 싶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시그마(∑)를 몇 번이나 쓰며, 3제곱근()이나 4제곱근()은 얼마나 쓰는가!

행렬과 벡터, 함수와 역함수, 합성함수와 로그(log), 미분과 적분, 극한과 수열은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

평생에 한 번도 쓰지 않을 것을 억지로 배우게 하고, 그걸로 평가하여 줄을 세우는 세상이다.

그리고 한 번 잘못해 나락으로 떨어지면 다시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사회 구조이다.

실수한 것을 깨닫고 다시 시작하려 해도 기회가 없다.

자본금이 없으면 어떤 일을 시작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이런 사회는 올바르지 않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삶이 가능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하는 그날까지 현수는 가난했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의 팍팍한 삶을 아주 잘 이해한다.

이제는 누구보다도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바꾸고자 마음먹었다.

이실리프 자치령에선 한국처럼 몰아세우는 교육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연립방정식을 고3 때 배우도록 하고 싶다.

행렬, 벡터, 극한, 미분, 적분 등은 아예 교과서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세제곱근, 네제곱근 같은 것들도 없애고 복소수도 가르칠 이유가 없다.

합성합수, 역함수, 유리함수, 무리함수, 삼각함수, 도함수 같은 것도 교과 과정에서 배제시킬 것이다.

이런 건 꼭 필요한 사람들만 배우게 하면 된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취직하여 살 수 있게 만들면 경쟁이 줄어들 것이다. 급여의 차이도 줄일 것이다.

의사, 변호사나 일반 직장인이 버는 게 거기서 거기면 경쟁은 줄어들 것이다.

현수가 돈만 추구했다면 가진 돈으로 펀드를 만들어 시세 차익만 노렸을 것이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직원도 많을 필요가 없다. 전문가 몇 명만 있으면 될 일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약 200조 원이다.

이실리프 뱅크의 자본금 15조 1,200억 원은 약 7.56%의 지분을 챙길 수 있는 돈이다. 참고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3.4%이다.

이럴 경우 단 한 명의 직원도 필요 없다. 때 되면 알아서 배당금이 들어올 것이고, 주가가 오르면 사거나 팔면 된다.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면 막대한 급여도 챙길 수 있다.

“아무튼 사람 더 뽑아 써라. 일은 줄어들지 않을 테니까.”

“으이그!”

주영은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직장 생활을 해보면 어떤 사람은 1시간 만에 끝내는 걸 다른 사람들은 야근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

“있지. 그런 사람.”

많은 사람을 접해봤기에 이젠 주영도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써. 대신 월급 더 주고.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거야.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어?”

“그렇긴 해도…….”

“뭐가 문젠데?”

“그럴 경우 급여를 어떻게 하느냐는 거지. 너무 많이 주면 직원 간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잖아.”

“그게 문제라면 꼭 급여로 해결할 필요가 있을까? 성과급이라는 게 있잖아. 아니면 고속 진급이라든가. 아예 임원급으로 승진시키는 것도 방법이지.”

“알았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나저나 웬일이냐?”

“제수씨가 여기 가면 내게 온 우편물이 있다고 하던데?”

북한에서 돌아온 후 현수는 곧장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향했다. 목재펠릿 보일러와 펠릿의 수급, 그리고 북한으로 보낸 식량 수출 건이 어찌 되었는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 그거? 그래, 내가 대리로 받아놓은 거 있다.”

주영이 건넨 것엔 본인 외 개봉 금지라 쓰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펼쳐보지 않은 것이다. 도착한 날짜는 1주일 이상 지나 있다.

“검찰청에서 뭐지?”

뭔가 싶어 펼쳐보니 출두명령서라는 제목이 눈에 뜨인다.

“출석요구서도 아니고 명령서?”

제목부터 반감이 간다.

내용을 살펴보니 정부의 허락 없이 방북한 것에 대해 조사할 것이 있으니 검찰로 오라는 내용이다.

날짜를 보니 오늘이다.

“지금 몇 시냐?”

“10시 반.”

“그래? 그럼 나 좀 나갔다 올게.”

“어딜 가는데?”

“요 앞.”

주영은 현수가 개인적인 용무를 보려는 것으로 알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깜박 잊었다는 듯 말을 잇는다.

“갔다가 꼭 와야 한다. 네가 봐야 할 문건들이 좀 있어.”

“그렇겠지. 너 말고도 볼 사람이 있어 다시 올 거니까 너나 어디 가지 마라. 참, 주효진 변호사님은?”

“요 아래층 복도 끝에 사무실 있다.”

“땡큐!”

주영의 사무실을 나선 현수는 윤성희 비서가 들고 온 주스 잔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토마토주스 고마워요, 윤 비서.”

“네에, 회장님.”

윤성희 비서가 뭐가 말을 이으려 할 때 현수는 계단실 문을 열고 있었다.

“갔다 다시 올 겁니다. 할 말 있으면 이따 하세요.”

“네에, 회장님.”

계단실 문이 닫혔지만 윤성희 비서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춘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존경심에서 하는 예이다.

똑똑!

“네에 들어오세요.”

주효진 변호사의 대답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고 있던 서류를 챙기다가 그대로 멈춘다.

“앗! 김현수 회장님! 회장님께서 여긴 어떻게……?”

“그간 안녕하셨지요? 우리 회사로 자리 옮기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난초도 하나 못 보냈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덕분에 아주 편해졌습니다.”

주효진 변호사는 자신의 사무실을 손으로 가리킨다. 널찍하고 쾌적한 분위기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

소파, 책장, 책장 등의 집기 모두 세련된 디자인이다. 그룹 디자인실에서 주 변호사의 호불호를 물어 준비한 것이다.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네, 아주 흡족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현수가 너무 바빠서 이실리프 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지 오래되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다. 따라서 웬만한 일로 온 것이 아닐 것이다.

“검찰에서 제게 출두명령서를 보내왔습니다. 오늘 11시 30분까지라 가보려 하는데 주 변호사님과 동행하면 어떨까 해서 왔습니다. 시간 되십니까?”

“…당연히 되지요. 그룹 회장님 일인데요. 가시죠. 걸어가기엔 조금 멀고 교통은 혼잡하니 지금 나가야 늦지 않을 겁니다. 가는 동안 무슨 일인지 설명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러시죠.”

둘은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준중형 세단을 탔다. 주 변호사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다.

변호사 중 일부는 과시 목적으로 대형 외제차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10년쯤 된 국산 준중형 차이다.

이실리프 빌딩에서 서초동 검찰청까지 가는 길은 말한 대로 많이 밀렸다. 덕분에 왜 출두명령서를 받았는지에 대한 소상한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예외적으로 이중 국적이고 러시아에서 발부한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있으시다구요?”

“네, 근데 면책특권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임장을 제가 제출한 게 아니라서요.”

푸틴 대통령이 수여한 신임장은 주한 러시아대사 콘스탄틴 바실리예비치 브누코프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제출되었다. 원래는 본인이 내야 맞지만 푸틴의 명을 받아 대리 제출한 것이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르면 그 나라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외교 사절엔 국가 원수에 대하여 파견되는 대사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 현수의 신분이 이러하다. 따라서 현수는 면책특권을 적용받는 존재이다. 본인이 인지하고 못할 뿐이다.

주효진 변호사는 즉시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연락하여 현수의 신분을 확인했다.

대사관 직원이 대체 왜 그러느냐 물어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

주효진 변호사는 대한민국 검찰이 현수를 오라 가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뀐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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