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49화 (1,048/1,307)

# 1049

“누구시죠?”

“김현수라 합니다. 권인기 검사께서 발부한 출두명령서를 받고 왔습니다.”

“그래요? 잠시 기다리세요.”

나이 든 여직원이 가리킨 곳엔 껍질이 살짝 벗겨진 내자 소파가 놓여 있다. 주효진 변호사는 잠시 만나고 올 사람이 있다 하여 현재 동행하지 않은 상태이다.

약 5분쯤 기다리자 여직원이 다가온다.

“검사님이 들어오시랍니다.”

“그러죠.”

안내된 곳으로 들어가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서류를 뒤적이다 시선을 든다.

“아, 거기 앉으십시오.”

“네.”

현수가 자리에 앉았음에도 권 검사는 계속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북한엔 왜 가셨습니까?”

“네?”

“북한에서 누굴 만났습니까?”

“……!”

“당국의 승인 없이 방북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모르십니까? 기업을 운영하시는데 그만한 것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겁니까?”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공정한 조사를 위해 자신을 부른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찬양한 바 있습니까? 북의 전술에 동조하는 활동을 했습니까? 북한의 주체사상에 기반을 둔 통일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김일성을 찬양했는지의 여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안치된 시신은 보았습니다. 북의 전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그건 대답할 수 없고, 주체사상탑은 구경한 바 있습니다.”

권 검사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현수를 슬쩍 째려본다.

“큰 기업을 운영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외국에 커다란 농장을 조성하려는 것도 알고요. 돈도 제법 많이 벌었지요?”

“……!”

뭔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 돈 다 어디에서 난 겁니까? 북한에서 공작금으로 받은 겁니까? 받았다면 어디에서 얼마를 받은 겁니까? 미리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취조는 점점 더 집요하고 길어질 겁니다.”

현수는 얼마 전 본 영화 ‘변호인’의 고문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돌 그룹 출신 임시완이 당한 물고문과 통닭구이, 그리고 무지막지한 폭력 신이다.

그러고 보니 눈앞의 검사가 그 영화에서 배우 곽도원이 맡은 악질 차동영과 오버랩(Overlap)된다.

당연히 입이 다물려진다. 같이 이 세상의 공기로 호흡하는 것조차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당신, 제대로 불어야 할 거야. 참, 국회의원 박인재라는 분 알지?”

슬쩍 말까지 놓는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뜻이다.

“홍신표 의원 보좌관 나성범 씨는 아나?”

“……!”

현수가 대꾸하지 않자 다시 서류에 시선을 주며 묻는다.

“세정캐피탈 유국상 회장님과 유진기 전무이사도 몰라?”

‘드디어 잡았군. 이놈이 세정파 뒤를 봐주는 놈일 거야.’

현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홍진표 의원실과 권철현 고검장은 증거를 수집하는 한편 은밀한 내사를 해왔다. 그런데 꼬리를 잡지 못했다.

증거는 있지만 오리발을 내밀면 그것만 가지곤 의원직 박탈이랄지 기타 제대로 된 처벌을 가할 수 없어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막대한 돈이 오가는 이런 사건의 경우는 마치 고구마처럼 하나를 캐면 나머지도 줄줄이 딸려 나온다. 소위 일망타진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케이스이다.

“정문부 검사장님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검사장님? 집안 아저씨지. 이런, 지금 누가 누구에게 묻는 거야? 조금 전에 내가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을 해.”

“통일부에선 누가 나를 조사하라고 했습니까?”

“뭐야? 이 사람이 지금 어디서……. 이봐요 김현수 씨! 여긴 검사실이야, 검사실. 그리고 내가 검사야. 너는 출두명령서를 받은 당사자이고. 알았어? 지금부터는 나만 묻는다. 너는 대답만 해. 알았어?”

권 검사의 거친 말투에 슬쩍 화가 난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12장 자네 미쳤나?

“통일부 누가 나를 무단 방북죄로 엮었는지 알려달라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까?”

화가 난다는 듯 들고 있던 서류로 탁자를 내려친다.

쾅―!

“이 사람이 진짜! 묻지 말라고 했지?”

“무단 방북이면 국가보안법으로 엮을 수 있겠습니다.”

“내가 묻지 말라고 했지? 정말 해볼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무단 방북을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엮을 수 있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게…….”

현수의 말이 맞기에 권 검사는 잠시 말을 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한 대답만 해. 그거 외엔 입도 벙긋하지 마. 알았어?”

“근데 진짜 검사입니까?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이런 미친……! 자, 봐라, 봐!”

권 검사는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을 신경질적으로 현수에게 내던진다. 하지만 겨냥이 잘못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슬쩍 허리를 굽혀 신분증을 집어 든 현수는 확인하는 척하며 손톱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곤 눈치 못 채게 나직이 속삭였다.

“시비어 써스티(Severe Thirsty)!”

“봤어? 봤냐구? 다 봤으면 내놔!”

현수는 신분증을 건넸다.

“공부하느라 애썼겠습니다. 한 10년 걸렸습니까?”

법대 졸업 후 사법고시 최종 합격까지 걸린 시간을 물은 것이다.

“7년! 근데 그건 왜 물어?”

“성격이 너무 급하신 거 같아서요. 마치 굶주린 아귀가 폭식하는 것처럼 너무 도전적이십니다.”

“도전적? 내가? 너에게? 돈 좀 벌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보네. 자, 다시 묻는다. 넌 통일부 허가 없이 방북을 했어. 맞아, 틀려?”

“맞습니다.”

“좋아, 이제 제대로 대답하는군. 자, 다음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의 시신을 봤다고 했는데 헌화를 하고 고개를 숙였나? 엉? 그랬어?”

현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진실만을 답하라는 표정을 짓는다.

“글쎄요? 그건 기억나지 않습니다. 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사람이 살면서 모든 걸 기억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미꾸라지 같은……. 좋아,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 통일이 된다면 어떤 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대답에서 기어코 꼬투리를 잡겠다는 듯 볼펜을 빙빙 돌리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심하니 적당히 균형이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래야 통일 비용이 적게 들 테니까요.”

“그럼 남한의 경제력이 낮아지고 북한의 그게 나아지면 되겠네. 안 그래?”

슬쩍 시도해 보는 유도신문이다.

“그보다는 북한의 경제력이 나아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호오, 그러니까 북한을 발전시켜야 한다 뭐 이런 건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권 검사는 드디어 한 건 했다는 표정이다.

“북한이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일을 줄 생각입니다.”

“……!”

본인의 대꾸를 기다리지 말고 계속하라는 손짓을 한다.

“러시아에서 오는 가스관 연결공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안주엔 기계공업단지가 들어설 것이고, 인근엔 석유화학 단지 또한 세워질 겁니다.”

“그래? 그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지?”

슬쩍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지만 속으론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이실리프 그룹이 부담하는 게 상당할 겁니다.”

“그러니까 남한에서 번 돈을 북한에 퍼붓겠다는 뜻이군.”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좋아, 북한에선 누굴 만났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희의 상임위원장과 최영림 내각총리, 그리고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김격식 참모총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을 만났습니다.”

현수의 말이 이어지자 권 검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봐,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현수는 기업인이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는 하지만 방금 언급된 사람들을 만날 급은 아니다.

나이도 이제 겨우 서른인데 돈 좀 있다 해서 북한 최고위 인사들이 쉽게 만나주겠는가! 하여 자신을 상대로 농담을 한다 생각하고 화를 낸 것이다.

“그런 사람들 말고 누굴 만났지?”

“백설화라고, 기쁨조에 속해 있던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뭐야? 북한에서 매매춘을 했단 말이야?”

기쁨조가 뭔지 모르는 듯 진짜 무식한 질문이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사가 이런 것도 모를까 싶은 것이다.

“매매춘이라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나저나 저를 고발한 게 통일부가 아니라면 누굽니까?”

“그건 알 거 없어.”

“박인재 사무총장이신가요? 아님 홍신표 의원인가요? 그도 아니라면 세정캐피탈의 유국상 회장? 아니면 유진기 전무이사입니까?”

“이 사람이 진짜!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아?”

“텔 더 트루스!”

이 마법은 일회용이고 효율이 낮다.

많은 마나가 소모되는 올웨이즈 텔 더 트루스에 비하면 1,000분의 1 정도밖에 소모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마법이 효력을 발취하지 못하기도 한다.

상대가 잔뜩 경계할 때 그러하다. 아무튼 현수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권 검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누가 절 고발한 겁니까?”

“그거? 박인재 의원. 앗! 방금 내가 뭐라고 한 거야? 야, 인마! 왜 자꾸 내게 물어? 앙?”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권 검사가 현수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은 순간이다.

벌컥―!

“권 검사!”

“앗! 총, 총장님! 총장님께서 어떻게 여길…….”

검사실을 열고 들어선 이는 검찰총장 전성운이다. 권 검사에겐 최고위 직속상관인 어른이다.

검찰총장의 뒤엔 주효진 변호사와 절친인 중앙지검 김세윤 검사가 서 있다.

“자네 지금 뭐 하려던 것인가?”

권 검사는 잡고 있던 현수의 앞섶을 슬그머니 놓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네?”

“자네 앞의 그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임명한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이시네. 면책특권을 가지셨지.”

“아, 아닙니다. 이 사람은 이실리프 상사라는 회사의…….”

권 검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전성운 검찰총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 때문이다.

“그럼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겐가?”

“네? 그, 그건 아니고요…….”

겁먹은 개처럼 살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눈치만 살핀다.

“자네가 어떤 무례를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사과드리게.”

“네? 총장님……!”

같은 식구끼리 왜 이러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조직에 있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자네가 저지른 무례 때문에 내가 청와대에 가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생각하는 겐가?”

비교적 보수적인 검찰 조직은 전성운 총장이 이번 정권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당이 아닌 야당을 지지하는 인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검찰총장에 취임하던 날 청와대, 또는 여당으로부터 내려오는 압력이 있거든 굴복하지 말고 모두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여당 국회의원들이 청탁을 넣었다가 거절당한 뒤 대놓고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얼마 전, 휘하 검사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 사회문제가 되었다. 업무 태만 때문에 제대로 된 소송 준비를 못하여 패소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국고가 낭비되었다.

전 총장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던 언론이 이를 보도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총수가 태만하니 휘하 검사까지 그렇다는 내용과 일개 검사의 실수로 왜 총장까지 걸고넘어지느냐는 댓글 전쟁도 벌어졌다.

전성운 검찰총장은 치열한 댓글 사태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리고 검찰의 총수로서 청와대에 불려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날 전 총장은 검찰 수뇌부들을 모아놓고 분노의 일성을 토했다. 무능, 부패, 무사안일, 태만, 뇌물 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되면 누가 되었든 처벌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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