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0
최악의 경우는 파면이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표 나지 않는 한직으로 발령 낼 것이라 하였다.
시골에 몇 년간 처박혀 있으면 웬만해선 요직에 오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날 이후 검찰은 많이 달라졌다.
떡검이라 불리는 것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태만해서 재판에 지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그, 그건 아닙니다.”
“무슨 혐의로 김 회장을 출두하도록 했나?”
“무단 방북을 하여…….”
“그건 어떻게 알았나?”
“박인재 사무총장이…….”
권 검사는 말끝을 흐렸다.
총장이 여당의 압력에 검찰이 휘둘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네!”
검찰총장이 버럭 노성을 터뜨리자 권 검사는 눈치를 보며 한 걸음 더 물러선다.
“분명히 말하지만 김현수 회장은 러시아 대통령이 임명한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로 면책특권이 있네. 아울러 이미 우리 대통령님으로부터 통일부 허가 없이 언제든 방북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으신 분이네.”
“…몰랐습니다.”
권인기 검사는 김현수의 신분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여당 사무총장인 박인재의 보좌관이 가져온 쪽지의 내용을 보고 기업인이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파악하여 소환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검찰총장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현수는 얼른 마주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과하는 뜻으로 차를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현수가 검찰총장의 뒤를 따라나서자 주효진 변호사는 가방 속에서 현수의 외교관 여권 사본을 건넸다.
“이거면 이번 사건을 종결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아, 네에.”
양복 깃에 달린 변호사 배지를 본 권 검사는 현수를 대할 때완 달리 부드러운 표정이다. 어쩌면 학교 선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뒤에 있던 김세윤 검사가 앞으로 나선다.
“하여간 저 꼴통은……. 야, 내가 전에 그랬지? 아무나 쑤시지 말라고. 너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네? 아, 네에.”
권 검사가 고개를 떨구자 주효진 변호사가 김세윤 검사에게 시선을 준다.
“아는 친구야?”
“응. 중학교 후배야. 인사해. 내 절친이자 대학 동기인 주효진 변호사야. 이름은 들어봤지?”
“아, 이분이……. 처음 뵙습니다. 권인기라 합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주효진의 사법연수원 시절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다.
“네, 반갑습니다. 앞으론 이런 일 말고 다른 일로 보죠.”
“그, 그래야 하는데……. 선배님, 저 아무래도 울릉도 같은 데로 발령 나겠죠?”
김세윤 검사를 바라보는 시선엔 아니라는 답을 해달라는 빛이 담겨 있다.
“아마도 그렇겠지? 여당 국회의원의 무리한 청탁은 가급적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어긴 첫 번째 케이스이니 울릉도가 아니라 독도일 수도 있겠다.”
“선배님……!”
본인은 심각하니 농담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진짜야. 총장님 여기 올 때 화 엄청 내셨어. 자네가 일에 치여서 사느라 잘 모르나 본데 김현수 회장은 해외에서도 엄청나게 큰일을 하시는 분이야.”
“…아프리카에서 무슨 농장을 한다고…….”
“그 농장이 얼마나 큰지 알아?”
“글쎄요? 한 100만 평? 아님 1,000만 평쯤 됩니까?”
권 검사를 바라보는 김세윤 검사와 주효진 변호사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다.
대한민국 국민 거의 다가 알고 있는 사실을 혼자만 모르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건 알아?”
“당연히 알죠. 1945년이잖아요. 올해는 2014년이니 70년쯤 되었네요.”
“그걸 알면서 김현수 회장이 콩고민주공화국과 러시아, 그리고 몽골에 각각 우리나라보다도 더 큰 농장을 조성한다는 걸 몰라?”
“네에?”
권 검사의 눈에 흰자위가 확 늘어난다.
“아이구, 이런 벽창호 같으니. 신문이나 방송에서 뉴스는 보나?”
“제 사건과 관련된 건 봅니다.”
“이제부턴 다른 것도 좀 보고 살아. 참고로 우리나라의 면적은 99,720㎢야. 몽골에서 조성되는 농장은 10만 8,123㎢이고, 러시아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거의 그만 해.”
권인기 검사는 입을 딱 벌렸다. 나라보다도 큰 농장을 만든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뿐만이 아니지. 에티오피아에서도 조차지를 얻었네. 약 40,000㎢이니 우리나라의 절반쯤 되는 크기지. 러시아를 제외하곤 모두 200년간 치외법권을 인정받았으니 김현수 회장은 그곳의 왕이나 다름없네.”
“허얼!”
권 검사는 입을 딱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당 사무총장 박인재? 그딴 인간의 청탁을 받은 거야?”
“그, 그게 그분이 제 처가 쪽에…….”
권 검사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주효진 변호사가 나선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와 수교한 모든 국가에 김현수 회장님을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에 임명한다는 신임장을 제출했습니다. 미국, 영국, EU, 일본, 지나, UN 등등이죠.”
“정말입니까?”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반문한 것이다.
“그만큼 아끼는 사람이니 어느 누구도 건들지 말라는 경고의 뜻입니다. 만일 김현수 회장님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구요.”
“아……!”
한 사람을 건드린다고 전쟁이 벌어질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세르게이의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발발했다.
“시간을 내서 러시아 상황에 대한 기사들을 확인해 보십시오. 푸틴 대통령이 왜 김 회장님을 각별히 아끼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김현수 회장님께 제 사과를 전해주십시오. 저는 아무래도 다른 데로 발령이 날 것 같습니다.”
권인기 검사는 좌천당해 지방 한직으로 가는 자신을 상상하곤 어깨를 늘어뜨린다. 이때 김세윤이 나선다.
“시골로 안 갈 방법 가르쳐 줄까?”
“뭡니까, 선배?”
눈이 번쩍 뜨인다.
“박인재 총장, 그 인간을 한번 캐봐. 모르긴 해도 줄줄이 사탕처럼 비리가 드러날걸.”
김세윤 검사의 말에 권인기는 흥미 있다는 표정이다.
“선배, 방금 그 말, 근거는 있는 거예요?”
“세정캐피탈이라고 알아?”
“네, 압니다. 박인재 총장님이 소개해 주셔서 얼마 전에 거기서 돈 좀 빌려 썼습니다.”
“신용대출이야, 담보대출이야? 이자율은 어땠어?”
“네? 신용대출이고 이자율은 연 4.5%였습니다. 일 처리도 빠르고 아주 친절하던데요.”
권 검사는 이런 건 왜 묻느냐는 표정이다.
“세정캐피탈이 대부업체인 건 알아?”
“알죠. 그러니까 거기서 돈을 빌렸죠.”
“그놈들 서민 피 빨아먹는 악질들이야. 대출해 줄 때 이면 계약서를 쓰라고 해서 연 600% 이자를 받아. 연체하면 최고 1,200%까지 올라가고.”
“네에? 아, 아닌데요. 전 4.5%였어요.”
권인기는 뭔가 잘못 아는 것 아니냐는 표정이다.
열심히 암기해서 사법 시험을 통과했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죽어라 암기하여 검사가 되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 욕조에 담긴 상태에서도 외우고 또 외워 이루어낸 성취이다.
검사가 된 이후엔 오로지 사건만 봤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할 때에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봤다.
그 결과 세상일에 무뎌진 것을 본인은 모른다.
“그건 자네가 검사니까 그런 거야. 박인재 의원의 추천도 있었고. 내가 얼핏 듣기론 세정캐피탈과 박인재 사이에 뭔가 어두운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것 같아.”
“……!”
“그걸 캐내겠다고 총장님께 말씀드리면 당분간 지방행은 면할 것 같은데. 결과가 좋으면 더 좋은 데로 영전할 수도 있을 거고.”
김세윤 검사의 말에 권인기는 눈빛을 빛낸다.
이제 나락으로 떨어질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이 내려온 듯한 느낌이다.
곁에 있던 주효진 변호사가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 끼어든다. 시선은 김세윤에게 향해 있다.
“방금 자네가 말한 세정캐피탈 말이야. 그거 혹시 세정파라는 조폭하고 관련된 데 아냐?”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이봐, 권 검사. 자네가 조사해 봐. 만일 그런 거라면 정가에 회오리가 불겠는데?”
김세윤 검사는 손가락을 빙빙 돌려 회오리 모양을 그린다. 그리곤 말을 잇는다.
“그걸 캐낸 사람이 자네란 게 알려지면 아마 크게 유명해질 거야. 그럼 총장님이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내시지.”
“알겠습니다, 선배님! 제가 한번 캐보죠!”
권 검사의 표정은 한껏 고무되어 있다.
“조심해야 할 거야. 박인재 그 인간 썩은 내가 진동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거든.”
“맞습니다. 웬만해선 여당 사무총장 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죠.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꾸로 당할 겁니다. 나방이 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어찌 되는지 알죠?”
“압니다.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충고 고맙습니다.”
권 검사는 선배들의 충고를 귀담아듣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우린 가네.”
“네, 살펴 가십시오.”
주효진 변호사와 김세윤 검사가 나간 후 권인기는 책상 위의 수북한 서류를 손으로 밀어버린다.
쿵! 와당탕탕!
“어휴! 내가 진짜……!”
한 달 전 일식집에서 만난 박인재의 보좌관 얼굴을 떠올린 권인기는 치를 떨었다. 출셋길을 열어준다면서 준 쪽지 때문에 고생문이 훤해졌다는 걸 깨달은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수화기를 든다.
“어, 그래. 나야, 권. 그래, 그래. 잘 지내. 너도 괜찮지? 그래. 참, 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권 검사는 사법연수원에서부터 친하게 지낸 동기들과 약속을 잡았다.
하나는 상당히 치밀한 성격인지라 꼼꼼히 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하나는 승소율 100%인 검사이다.
혼자서는 박인재를 잡을 수 없다 판단하여 가장 믿을 만한 동기들만 모아 비밀리에 수사를 하려는 것이다.
이런 걸 검찰 인지사건이라 한다.
잘나가고 전도양양하던 여당 사무총장이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는 시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같은 시각, 현수는 전성운 검찰총장으로부터 심심한 사과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섰다.
우전(雨前)이라는 차 한 잔을 대접받는 동안 권철현 고검장의 1년 선배라는 이야길 들었다.
현수가 권 고검장의 사위라는 걸 안다고 하여 어찌 아시냐 여쭸더니 신부 쪽 하객으로 결혼식에 왔다고 한다.
고맙다 하였더니 잘살라면서 껄껄 웃었다.
지현을 며느릿감으로 찍어놓았다 하여 아드님 나이를 물었더니 장가를 늦게 가서 이제 겨우 고3이라 하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오니 주효진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빨리 끝난 것 같습니다.”
“네에, 김 검사가 힘 좀 썼습니다. 회사로 가실 거죠?”
“네, 그래야죠.”
반드시 되돌아오라고 한 주영의 얼굴을 떠올리곤 차에 올랐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웅!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윌리엄 그로모프입니다, 회장님.”
윌리엄은 2009년 아벨상 수상자이며 뉴욕대 교수인 미하일 그로모프의 조카이다.
“네에, 오랜만이군요. 잘 지내죠?”
“덕분에 아주 잘 지냅니다.”
“삼촌은 어떠십니까?”
“곧 한국으로 들어가신다고 합니다. 회장님께 자문받을 게 여럿 있다 하시더군요.”
“그래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오셔야 하는데 헛걸음하실까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