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53화 (1,052/1,307)

# 1053

“다른 회사는 더 못 맡아도 이실리프 바이롯 사장은 내가 겸직할 수 있다. 어서 만들기나 해라.”

“어이구! 나 원 참, 제수씨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그럼. 당연히 좋아하겠지. 안 그러겠냐?”

주영의 눈빛이 반짝인다. 조금 전엔 부족하다 여겨졌던 생기가 감돈다.

“알았다. 나중에 딴소리나 하지 마라.”

“우와! 하하하! 하하하하!”

주영은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파안대소를 터뜨린다. 이로써 이실리프 바이롯의 설립이 확정된 때문이다.

“그나저나 계열사가 엄청 많네. 근데 맨 마지막 두 개는 아직 아냐.”

이실리프 우간다 자치령과 이실리프 케냐 자치령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거잖아.”

현수는 대꾸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치령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는 제3의 대륙으로 불리고 가장 발전이 더딘 곳이다. 풍부한 자원과 너른 영토를 가졌으면서도 가장 많은 수의 빈민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욕심만 사나운 지나인이나 유태인들이 달려들어 뜯어먹기엔 너무나 순박하다. 그러기 전에 그들이 자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매우 강하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에티오피아만으로도 좋은 본보기는 되겠지만 우간다와 케냐까지 그럴 수 있음을 보게 되면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도 심기일전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를 물어왔을 때 욕심 부리지 않고 선의를 베푼다면 한국은 멀고 먼 아프리카에 상당히 많은 우방국을 거둘 수 있게 된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 우방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수가 이런 포석을 준비하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한국의 원화가 기축통화1)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무한정 찍어내는 달러화는 조만간 기축통화의 위상을 잃을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대공황이 도래할 것이고 그건 인류에게 재앙이다.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등장한 건 1920년대이다.

그런데 1913년 연방준비은행(FRB) 창립 때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약 96%가량 가치가 하락했다.

1913년엔 1달러로 콜라를 100병 살 수 있었는데 현재는 4병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1933년까지는 달러를 가지고 은행에 가면 금(金)으로 바꿔줬다. 그런데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과 금본위제를 중지했다. 그 결과 달러화의 가치가 수직 낙하했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기축통화는 통상 100년을 주기로 바뀌어왔다.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된 것을 1921년으로 보면 이미 94년의 세월이 흘렀다.

변환 시기가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달러화가 현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뭔가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양적완화2)라는 통화정책을 썼다. 엄청난 액수의 달러화를 찍어내서 푼 것이다.

그 액수가 얼마인지 알려진 바 없다.

조만간 달러화의 위상에 중차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치 하락이다.

문제는 엔화나 위안화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일본도 아베노믹스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액수의 엔화를 찍어서 풀었다. 이로 인해 엔화의 가치도 떨어졌다.

지나 역시 인민은행이 국가개발은행에 1조 위안 규모의 담보성 보완융자(PSL)를 제공하는 것을 기화로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다만 자금 공급 대상을 정부가 직접 제한하여 투기는 억제하고 실물경제 분야로 자금이 유입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게 뜻대로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지나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부패한 관료가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달러화, 엔화, 위안화를 빼고 나면 EU의 유로화가 남는다.

그런데 EU는 여러 국가의 연합체이다.

독일은 건실하지만 그리스는 망해가고 있다. 프랑스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망가지고 있다.

유로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가지려면 EU회원국 전부 어느 정도 이상의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다.

2008년에 일어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쇼크 때 유로존도 충격을 받았다.

2014년인 현재까지 제 힘을 못 찾고 여러 나라가 재정 적자와 구제금융에 시달리는 걸 보면 유로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요원한 일인 듯싶다.

어쨌거나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면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될 확률이 매우 높다.

다 같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 결과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것이며, 많은 기업이 도산할 것이다.

패망하여 다른 나라에 흡수되는 국가도 있을 것이며, 사방의 적에 둘러싸여 신음하는 나라도 생길 수 있다.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어야 한다.

이실리프 자치령은 국가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화폐를 가질 수 있다.

아공간 속에 무지막지하게 들어 있는 황금을 바탕으로 한 금본위제를 선택하면 충분히 기축통화가 될 수도 있다.

금보다 확실한 재산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남북한과 6개의 이실리프 자치령, 자치령이 위치한 나라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만이라도 이실리프 고유 화폐로 결제가 자연스러워지면 다 망해도 살아남는다.

물론 이를 고깝게 본 다른 국가들의 공격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면 된다.

현수가 엘벡도르지 몽골대통령에게 이야기한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전폭기만 가져도 전쟁은 억제된다.

한국, 또는 이실리프 자치령을 공격하는 나라에 무지막지한 폭탄을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주영이 넘긴 서류를 면밀히 살폈다.

각각의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실리프 트레이딩은 이게 아냐. 얼마 전에 1,384억 3,200만 달러의 자본금이 더 늘었어.”

“뭐, 얼마?”

“얼마 전에 1,384억 3,200만 달러. 증자했다.”

“헐! 대박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야? 166조 1,184억 원이나? 야, 뭔 놈의 증자를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하냐? 전무후무한 세계기록일 거다.”

주영은 입을 딱 벌렸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큰돈을 동원할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친구인 현수의 대단함에 놀란 것이다.

“나하고 연락이 안 되는데 돈이 필요하면 이실리프 트레이딩의 윌슨 카메론에게 연락해.”

“그래.”

“그래도 부족하면 연희나 이리냐에게 연락하고.”

“둘에게도 돈을 맡겨놨어?”

돈이 또 있느냐는 표정이다.

“아직은 아닌데 곧 그렇게 될 거야.”

지나 통상부와의 금괴 거래로 69조 5,620억 원 상당의 위안화가 이실리프 뱅크 에티오피아 지점에 개설된 연희의 통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일본중앙은행 외환담당 팀장인 가와시마 야메히토와 체결한 금괴 매각대금 10조 4,343억 원에 해당되는 엔화는 이실리프 자치령 아와사지점에 개설된 연희의 통장으로 간다.

전자는 아와사 개발에 쓸 돈이고, 후자는 우간다와 케냐에 조성될 자치령을 위한 자금이다.

이리냐에게 있는 4,446억 1,100만 루블(16조 2,000억 원)은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 개발에 쓸 돈이다.

이것 모두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겠지만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는 뜻이다.

금액을 모두 합하면 262조 3,147억 원이다. 주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현수는 인간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야!”

“조금 많지? 아무튼 그렇게 있으니까 알고나 있어. 이실리프 트레이딩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에겐 따로 얘기해 둘 테니까 필요하면 전화하고.”

“……!”

“나하고 연락이 안 될 때 그러라는 거야. 지금처럼 연락이 되면 내게 말해. 따로 돈을 마련해 줄 테니까.”

“끄으응!”

어딘가에 돈이 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보나마나 한두 푼이 아닐 것이다.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주영은 어이가 없다.

조 단위 숫자는 초등학교 4학년 수학 시간에만 듣는 줄 알았는데 이제 일상사처럼 듣게 되었다.

“참, 천지약품이 왜 이실리프 계열사 명단에 들어 있어? 이춘만 사장님하고 나하고 50 : 50인데.”

“이 사장님이 자본금 비율을 조정하셨어. 75 : 25로. 니가 75이고 당신은 25이래.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을 하면 니가 알아들을 거라고 하시더라.”

“……!”

역시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다. 현수는 더 말해봐야 안 들을 게 뻔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계열사 하나 늘었네.”

“그치? 근데 너 이거 아냐?”

“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모든 계열사가 독립채산제3)라는 거. 그리고 순환출자4)가 전혀 없다는 거.”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또 하나 있어.”

“뭔데?”

“모든 기업의 부채가 제로라는 거.”

“그래, 그걸 빼먹었네. 그런 거 보면 우리 회사는 참 탄탄해. 안 그러냐?”

“당연히 그래야지. 회사 운영하면서 금융권 눈치 볼 일은 없어야지. 채권단이라면서 부리는 횡포도 있다고 들었다.”

“있을 수 있겠지. 참, 이번에 사옥 짓기로 했다.”

주영은 잊고 있었다는 듯 제 이마를 치고는 두툼한 서류 하나를 또 꺼내 온다.

“이실리프 그룹 단지 조성 공사?”

“그래. 계열사들이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까 업무 협조 같은 게 가끔 잘 안 이루어질 때가 있어. 그래서 한곳에 모여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내가 기획했다.”

현재 일부 계열사는 매달 임대료를 지불하는 상황이다. 주영은 그 돈도 아깝다 생각하여 기획한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지금도 큰 문제는 없잖아.”

“그렇지. 근데 언제고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본사가 모여 있자는 건 아니야. 자치령 같은 경우는 연락사무소 정도만 있으면 되잖아. 천지약품도 그렇고.”

현수는 대꾸 대신 표지를 넘겼다.

주영이 이실리프 단지라 이름 붙인 곳은 이실리프 모터스와 이실리프 엔진이 자리 잡기로 한 신진도 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태안의 한 지역이다.

본사들이 모여 있을 건물을 짓고 인근에 사원들을 위한 아파트나 빌라 등을 짓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심이 될 이실리프 빌딩은 지하 5층, 지상 55층짜리 건물 두 동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이다.

15층과 30층, 그리고 45층은 두 건물을 서로 오갈 수 있도록 구름다리로 연결하게 되어 있다.

편의상 A동과 B동으로 명칭을 정했는데 각각의 지상 층 바닥 면적은 2,000평, 지하는 2,500평이다.

따라서 연면적은 24만 5천 평이나 된다.

지하층은 벽 없이 터져 있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

주차를 고려하여 층고를 높였기에 지하층 전부 기계식 2층 주차가 가능한 구조로 짓는다고 한다.

직원들의 차량 보유가 점점 늘어날 것을 예비한 것이다.

63빌딩의 경우는 지하 3층, 지상 60층이고, 연면적은 16만 6,100㎡(5만 200평)이다.

이것과 면적을 비교하면 4.88배나 규모가 큰 것이다.

계열사 수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므로 이를 감안했다.

어쨌거나 지상층만 총 110개 층이다. 이 중 각각의 최상층을 빼면 108층이다.

계열사 하나당 3개 층씩 배정하면 총 36개 계열사가 입주할 수 있다. 층당 2,000평이니 6,000평을 배정받으면 바닥 면적 200평짜리 빌딩 30개 층을 쓰는 것과 같다.

그런데 6개의 자치령과 천지약품, 그리고 이실리프 트레이딩은 국외가 Main이고 국내가 Sub이므로 각각 1개 층만 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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