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56화 (1,055/1,307)

# 1056

천지약품으로 보내는 의약품들은 제 날짜에 주문된 수량만큼 확실하게 납품되고 있다.

워낙 물량이 많기에 제약사들 입장에선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최우선적인 고객이기 때문이다.

스피드와 엘딕 역시 차질 없이 납품되었다.

내수 판매를 늘리라는 압력을 받지만 수출이 우선이라는 회사 방침을 들어 난관을 돌파하는 중이다.

쉐리엔은 수요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비난을 면하고 있지만 기존의 듀 닥터와 슈피리어 듀 닥터의 경우는 늘 욕을 먹는다.

여자들의 예뻐지고 싶어 하는 욕구와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은 욕구는 듀 닥터와 슈피리어 듀 닥터의 암거래를 유발시켰다. 웃돈을 주고라도 사는 것이다.

슈피리어 듀 닥터의 경우는 세트당 115만 5천 원이 정가이다. 그런데 이보다 20%나 비싼 138만 6천 원에 거래된다.

당연히 구하기 어렵고 비싸다는 말이 나오지만 품질 만족도는 100%에 가깝다.

“펠릿은 어때요?”

“예상보다 가격 하락 폭이 커서 다행이에요. 현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가장 많고, 러시아연방과 베트남, 태국에서도 들여와요.”

“가격이 하락했다구요?”

“네, 연초에는 톤당 평균 189.9달러였는데 많이 내렸어요. 인도네시아는 162.8달러, 말레이시아는 162.7달러예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군요. 앞으로 1∼2년은 더 수입해야 하니 거래선 유지에 각별히 신경 쓰세요. 그리고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은정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어리에 ‘1∼2년’, ‘물량 확보’라고 메모한다.

3장 저와 같이 일하시죠

“다른 보고 사항은요?”

“베트남 쌀 100만 톤에 대한 계약을 추진하는 중이에요.”

“아, 그래요? 톤당 얼마입니까?”

“403달러까지 네고했어요. 물량이 많으니 400달러까지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4억 달러를 준비해야 하는군요.”

4억 달러라면 한화로 4,800억 원이다. 어마어마한 거금임에도 현수와 은정의 표정 변화는 없다.

“회사 돈으로 준비되죠?”

“네, 가능합니다. 그간 이익이 상당히 많이 발생되었으니까요. 현재는 MMF와 CMA 계좌 등에 넣어두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실리프 뱅크 계좌인가요?”

“아뇨. 시중은행에 분산 예치 중이에요.”

현수는 은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한에 공급하는 식량과 펠릿 대금에 관한 것이다.

* * *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하하! 안녕이야 하지요. 반갑습니다, 김 회장님!”

환한 얼굴로 웃는 이는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이던 오정섭이다.

여성가족부 해체를 국민투표에 붙이는 대신 본인의 자리를 내놓아 현재는 백수인 상태이다.

“앉으시죠.”

“그럽시다.”

오정섭 전 장관이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이 다가온다. 우선은 차나 한 잔 달라 하였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현수가 먼저 입을 연 때문이다.

“먼저 저 때문에 장관직에서 물러나시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슨 말씀을……. 그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적하지 못했는데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준 김 회장님에게 오히려 감사드리지요.”

실제로 오 장관은 여성가족부가 벌여놓은 여러 뻘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하는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폐쇄 내지는 해체해야 할 조직 1순위로 여성가족부를 꼽을 정도였다.

아무튼 오 전 장관이 고개까지 숙이며 감사를 표하니 현수 역시 얼른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 쉬어보니 어떠십니까? 열정적으로 일하시던 분이 갑자기 쉬면 쉬이 늙거나 심심해한다는데 말입니다.”

“하하! 지금 절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저 때문에 백수 되셨으니 당연히 챙겨야지요.”

“걱정 안 해주셔도 됩니다. 이제 연금도 나오고 하니 집사람과 여기저기 여행이나 가보려 합니다. 그간 제대로 된 나들이 한번 못 간 게 마음에 걸려서요.”

“아! 그러시구나. 다행입니다. 저는 저 때문에 쉬시게 되어 걱정이 많았습니다.”

“걱정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왜 만나자고 했는지 아직…….”

오 장관은 인사치레는 이 정도면 되었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표정이다.

“방금 전에 사모님과 여행을 다니고 싶다 하셨는데 대도시나 이름난 휴양지를 찾으실 겁니까? 아니면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곳은 어떠신지요?”

오 장관은 화제를 돌렸음에도 현수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하자 잠시 말을 끊는다.

“…사람이 많아 북적이는 곳보다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 그대로인 청정 지역이 좋겠지요.”

오 장관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맑은 시냇물을 떠올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곧 초록의 향연이 시작되는 시기인데 여행 시즌이 아니니 다녀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 장관이 바다가 아닌 산을 생각한 것은 논어에 등장하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글귀를 늘 보아왔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처음 장교로 임관되었을 때 군인이던 부친이 일필휘지로 써준 것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었다.

이 글을 써준 직후 부친은 지자와 인자 중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셨다. 하여 지혜로운 자를 선택했더니 부친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들아, 이 애비는 네가 지자보다는 인자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너는 나보다 더 큰 그릇이 될 수 있다.”

논어에선 이 문장 다음으로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智 者 動 仁 者 靜 智 者 樂 仁 者 壽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이는 고요하며, 지자는 늘 즐겁게 살고, 인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다.

오 장관의 부친은 아들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살기를 바랐음은 말하지 않았다.

이런 부친의 영향을 받은 오 장관은 평생토록 산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렇기에 현수의 물음에 수풀 울창한 계곡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좋은 곳을 추천해 드려도 되겠는지요?”

“좋은 곳이요?”

“네, 근데 너무 청정한 지역이라 제대로 된 도로조차 없는 전인미답지가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호오, 전인미답지라니 흥미가 돋는군요. 어디죠? 우리나라는 아닐 것 같네요. 전인미답지가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오 장관은 정말 흥미 있다는 표정이다. 자연 100%인 곳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제가 권해 드리고 싶은 곳은 몽골에 있는 제 조차지입니다. 거의 완벽한 자연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몽골의 이실리프 자치령이요?”

현수가 여러 곳에 대한민국 영토보다도 큰 조차지를 얻었음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렇기에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다는 뜻을 표한 것이다.

“네, 저는 오 장관님을 그곳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실리프 몽골 자치령은 지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경험 많으신 오 장관님께서 그곳의 방위와 치안, 그리고 법무 부문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보다도 넓은 땅의 국방장관뿐만 아니라 경찰청장과 법무장관까지 겸임해 달라는 말이다.

“방위와 치안과 법무요?”

“네, 몽골의 전임 대통령인 남바린 엥흐바야르 님께는 행정과 개발을 맡기려 합니다.”

“…조차령 전체를 말입니까?”

뜻밖의 제안이기에 오 장관은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방금 전 들은 말이 사실이냐는 표정이다.

“네, 저는 두 분께서 종정감(宗正監)과 사농경(司農卿) 자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종정감, 사농경? 그게 뭡니까?”

오 장관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종정감과 사농경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한 가야(伽倻)의 고유 관직명인 종정감은 법이나 규율, 감찰 등을 담당했다. 하여 ‘법무부+국방부+행정자치부’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사농경은 본디 농사에 대한 총책임자라 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주된 산업이 농업임을 감안하면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를 지휘하는 직책이라 할 수 있다.

가야엔 이 밖에 천부경(泉府卿)이란 직책도 있었다. 치수(治水)와 조선(造船)을 담당하던 직책이다.

자치령은 국가로 인정되는 곳은 아니지만 체계 자체는 국가와 같아야 유지된다. 다시 말해 있을 건 다 있어야 한다.

다양한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될 테니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치안이 유지되어야 한다.

방위 또한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오정섭 전 장관은 이 부문에 있어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청렴하고 올곧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해 내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백수이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대통령에게 맡길 행정과 개발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알아서 굴러가지만 치안과 방위는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대비하는 한편 지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문이다.

오 장관은 잠시 말이 없었다. 느닷없는 제안이니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하여 현수가 먼저 말을 이었다.

“바다가 없으니 육군과 공군만 있을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인지라 오 전 장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방위를 위한 무기는 어떤 걸 준비할 예정입니까?”

몽골엔 방위산업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KAI와 퍼스텍, 그리고 쎄트렉아이를 인수한 것 아시지요?”

“네, 압니다.”

오 장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이들 회사를 인수한 것에 대해 이야기가 많았던 때문이다.

현재 이실리프 코스모스 등으로 명칭이 바뀐 이 회사들의 주식은 100% 현수의 소유이다.

모든 주식을 사들인 후 즉각적으로 상장 폐지를 신청했다. 아주 중요한 방산업체가 개인 소유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말이 많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회사의 소유권은 넘어갔고, 법적 절차에 따라 상장 폐지된 상태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의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지만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지켜만 보던 차다.

능동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KAI뿐만 아니라 로템 등 주요 방산업체들 역시 매입할 예정입니다.”

“방산업체들을요?”

“네, 아마 거의 다 사들이게 될 겁니다.”

현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의지를 표현했다. 그리곤 곧바로 말을 이었다.

“모든 무기에 대해 혁신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질 겁니다. 이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혁신적 업그레이드요?”

“네, K―9이나 K―11 같은 국산 무기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장관님께서 잘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정치인과 퇴역한 장성 등에 의한 분탕질로 돈을 많이 들였지만 원하는 수준의 무기는 개발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자면 ‘방산 비리의 상징’으로 떠오른 수상구조함(ATS―Ⅱ) 통영함(3,500톤급)이 있다.

이 함정은 항해에는 문제가 없지만 바다 속 기뢰나 침몰 함정 등을 찾기 위한 HMS와 ROV 등 필수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군에 조기 인도된다.

최장 3년간 핵심 장비 개선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통영함과 관련된 방산 비리를 파헤쳐 방위사업청 간부와 해군장교 출신 무기브로커, 납품업체 대표 등 7명을 구속한 바 있다.

군함 한 척 만드는 데 수많은 이권이 개입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가히 복마전이라 할 수 있다.

1만 원짜리 USB를 95만 원에 구입하고, 2억 원짜리 음파탐지기는 40억 원에 구매했으니 말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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