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8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기존 정권의 각료들은 경질되게 마련이므로 여성가족부 해체 사건이 없었다 하더라도 2018년엔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현수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이런 것과 완전히 무관해진다. 200년간 유효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처럼 선출직도 아니며 자치령에 거주하는 사람들로부터 탄핵을 받을 대상도 아니다.
현수는 자치령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수가 마음에 안 들어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없다. 그럴 경우 자치령의 존재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다.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으니 마음에 안 들면 내보내면 된다.
추방된 인물과 그 일가친척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반란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한 번 임무를 부여하면 웬만해선 경질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걸 새롭게 정립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일은 고될지 모르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 결말까지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왕으로부터 영의정직을 제수받는 신하처럼 허리를 깊숙이 숙인 것이다.
“앞으로 김 회장님을 뭐라 불러야 합니까?”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에 대한 호칭은 나중에 이야기하죠.”
“알겠습니다. 그곳으로 제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데려갈 수는 있는 겁니까?”
“의중에 있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지요?”
4장 엘릭서
“우선은 김성률, 강병훈, 송지호입니다.”
김성률은 공군참모총장이고, 강병훈은 해군참모총장이며, 송지호는 육군참모총장이다.
“아, 3군 총장님들 모두 예편하신답니까?”
“여성가족부 해체 건을 주도적으로 제의했으니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국방부장관의 전격적인 사퇴 이후 3군 참모총장까지 갈아치우면 지휘 계통에 문제가 생기므로 현재는 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퇴역한다는 의미이다.
“그분들은 제가 따로 쓰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김성률 총장님은 에티오피아, 강병훈 총장님은 콩고민주공화국, 그리고 송지호 총장님은 러시아 자치령의 개발책임자로 모시는 건 어떨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아, 그렇다면……. 네, 그렇게 하십시오.”
오 전 장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3군 참모총장의 능력이라면 방금 말한 자치령의 방위 및 치안 등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생각한 때문이다.
“그 세 분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다만 광신자와 특정 사이트의 회원들은…….”
현수는 자치령에서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건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정섭은 현수의 말을 메모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의 일부 몰지각한 신자들과 사이비 종교의 신자들, 그리고 특정 사이트의 회원들은 심각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이들을 받아들이면 자치령에서도 반목과 분열 같은 일들이 반복되니 당연히 데려갈 수 없다.
그리고 친일파의 후손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혜택을 줄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어느 누가 초청을 하든 영구히 자치령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단순한 방문과 관광까지 금지된 것이다.
아울러 자치령엔 일체의 종교 시설이 허락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어떠한 종교도 발붙일 수 없다.
누구든 전교행위를 하거나 종교시설을 조성하려 하면 즉각 추방됨을 사전에 명확히 인지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다만 본인의 거주지에서 본인과 그 가족만으로 이루어진 종교활동은 허가한다 하였다.
오정섭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종교의 폐해를 어느 정도 짐작하기 때문이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대통령님은 행정수반을 맡아달라고 할 것이고, 오 장관님께는 통령직을 맡기겠습니다. 두 분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자치령 개발에 대한 전권을 가지게 될 겁니다.”
“제가… 통령이요?”
대통령에서 대 자만 뺐으니 대통령급이란 이야기이다.
“네, 통령으로 모시겠습니다. 수락하실 거죠?”
오 장관은 잠시 대꾸가 없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제게 중대한 임무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년퇴임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오 통령은 옷을 여미며 다시 한 번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에구, 자치령엔 정년퇴직이란 게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일해주셔야 합니다.”
“네?”
“대신 무병장수하도록 돕겠습니다.”
“……?”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앞으로 많은 부분을 터야 하는 사이이다. 하지만 극비가 될 수 있기에 현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엘릭서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엘릭서라면… 혹시 만병을 통치한다는…….”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에 현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잘랐다.
“네, 맞습니다. 최근 들어 엘릭서에 버금갈 신약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극히 소량밖에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현수는 미리 준비한 회복포션과 마나포션을 각기 두 병씩 꺼내놓았다.
“내일 사모님과 함께 정밀건강검진을 받으십시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서 이걸 드십시오. 그리고…….”
오 통령은 회복포션과 마나포션을 번갈아 보면서 현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엘릭서는 소설책에서나 존재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오 통령은 아내와 함께 1차 정밀건강검진을 받는다. 검사할 수 있는 모든 종목에 대한 검사이다.
그 결과 오 통령은 전립선에 문제가 있으며, 간 기능 저하와 심각한 고지혈증, 그리고 고혈압과 동맥경화 초기 증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뇌혈관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놔두면 간경화, 동맥경화, 뇌졸중 등으로 말년이 편치 않을 확률이 매우 높은 상태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오 통령의 아내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으며, 자궁경부 상피 내에 다수의 종양이 있고, 신장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있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 밖에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고지혈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당뇨병에 걸려 있음도 통지받는다.
둘 다 전형적인 성인병 증세를 앓고 있었지만 드러난 증세가 없어 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부부는 2차 정밀건강검진을 받는다.
그 결과는 100% 양호 판정이다.
이는 1차 정밀검진을 받고 사흘 뒤 회복포션과 마나포션을 복용한 결과이다.
오 통령은 현수가 이야기한 엘릭서가 실존함을 깨닫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한 아내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물었지만 오 통령은 끝내 입을 다물었다. 아내의 입을 통해 산지사방으로 소문날 수 있음을 알기에 보안을 유지한 것이다.
* * *
“여러분을 뵈니 좋군요. 제가 누군지는 아시죠?”
“네에!”
KAI 강당을 가득 채운 연구원들의 나이는 제각각이다.
현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도 많고 누가 봐도 환갑은 물론이고 진갑까지 훌쩍 넘긴 노교수도 많이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상당히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새파랗게 젊은 현수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깔보는 눈빛이 아니다.
현수의 겉모습은 스물다섯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서른 살이며, 재벌의 계열사 사장이면서 본인의 사업체를 여럿 가진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체 중엔 자신들이 재직 중인 KAI가 포함되어 있음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고용주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현수의 두뇌가 자신들보다 월등함을 알기에 흠모의 빛을 띠고 있다.
특히 아무도 풀어내지 못하던 여섯 개의 수학 난제를 명쾌하게 풀어낸 실력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여 간단하게 증명해 낸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현수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될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필즈상과 가우스상, 그리고 네반린나상과 Chern 메달을 수여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번 대회는 이례적으로 현수가 풀어낸 6대 난제와 페르마의 마지막정리를 새롭게 해석한 것을 중점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수학 천재를 돋보이게 하는 유례없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과학의 근본은 수학이다. 수학이 뒷받침되지 않은 과학은 과학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각기 전공 분야가 다르지만 현수를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제가 여러분 앞에 선 것은 KAI와 퍼스텍, 그리고 쎄트렉아이의 회사명이 바뀌었음을 알리려는 의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들 나눠 드린 직원신분증 패용하고 계시지요?”
“네.”
“그 신분증이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사실은 특수한 기능이 있습니다. 혹시 경험하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는데 왠지 상쾌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
모두가 동시에 흠칫거린다.
개인차는 있지만 모두들 직원신분증을 패용한 이후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게 뭔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어떤 이는 늘 묵직하던 뒷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고, 어떤 이는 지긋지긋하던 편두통이 사라졌다.
전에는 복잡한 계산을 마치고 나면 다소 지친다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엔 안 그렇다.
어떤 이는 예전보다 연산 능력과 추론 능력이 확실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어렵게 꼬여 있던 문제가 조금은 쉬워지기도 했다.
이는 브레인 리프레쉬 마법진 때문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으로 감춰둔 때문이다. 이는 연구원 등의 두뇌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함이다.
직원신분증에는 이것 이외에도 앱솔루트 피델러티 마법진도 그려져 있다. 절대적인 충성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배반을 막기 위함이다.
지난 2007년, 국내 기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WiBro)’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던 일당이 붙잡혔다.
이 기술은 이동하면서도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차세대(4세대) 핵심 통신 기술이다.
이를 넘기고 받으려던 금액은 고작 1,800억 원이다.
당시엔 이것이 해외 업체로 넘어갔을 경우 기지국 등 관련 장비 수출에 지장을 초래해 약 15조 원의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직원신분증에 절대충성 마법진을 그려 넣은 것이다.
아울러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연구원들의 신변을 보호할 체인 라이트닝 마법진도 그려져 있다.
고급 인력이니 당연히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슬립과 텔레포트 마법진도 그려져 있다.
체인 라이트닝 마법이 구현되는 순간 즉시 잠이 들고, 곧바로 이곳 KAI의 강당으로 옮겨지게 한 것이다.
깨어나면 어리둥절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연구원 보호가 우선이다.
“여러분께서 패용하고 있는 신분증은 특수한 약물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무색, 무취하여 느끼지 못하셨지요?”
“네.”
모두들 대답하며 자신의 신분증을 들어 본다. 냄새를 맡아보는 사람도 있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제가 개발한 그 약물은 두뇌를 상쾌하게 유지시켜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연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처리한 것이니 가급적 몸에서 떼어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네.”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라니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충성 마법이 구현되는 중이니 아마도 목욕할 때를 빼놓고는 늘 패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