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2
“2014년의 대한민국의 국가 예산은 357조 7천억 원입니다.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형석은 계속해 보라는 눈빛이다.
“제가 얻은 조차지는 몽골과 러시아, 그리고 콩고민주공화국뿐만이 아닙니다. 에티오피아에도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조차지를 얻었습니다.”
“……!”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케냐와 우간다에서도 조차지를 얻을 생각입니다. 그 나라에서 제게 조차지를 줄 때 그냥 줬겠습니까?”
“……!”
그러고 보니 조차지를 준 이유를 알 수 없다.
“저는 그곳에서 농축산업만 하려는 게 아닙니다. 각각을 하나의 국가처럼 운영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할까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나라를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 100조라도 투자하실 수 있는 겁니까?”
박형석은 팔짱을 풀고 있다. 흥미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네, 각각의 자치령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핵융합 발전은 안전하면서도 저렴하게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당연한 말씀입니다.”
“제 자치령은 가장 짧은 게 150년이고 긴 건 200년입니다. 그곳의 공통점은 아직 청정한 자연 지대라는 겁니다. 그곳을 화석 연료로 오염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
박형석은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셔서 하던 연구를 마저 끝내십시오. 저도 돕겠습니다. 미진하던 부분이 채워질 겁니다. 아시죠? 제 IQ!”
“…정말 연구를 도울 겁니까?”
현수가 인류 최고의 두뇌이지만 핵융합 발전에 대해 아는 바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천재적 발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에 물은 말일 것이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1억℃를 컨트롤하는 건 제게 맡기라고요.”
현수의 표정엔 자신감이 어려 있다.
박형석을 만나기 전 이그드리아를 통해 확인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그드리아는 현수와 대화하기 전에 핵융합로를 다녀왔다. 아무리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정령이 들어가지 못할 곳은 없기에 태양보다도 훨씬 뜨거운 1억℃를 직접 체험하고 온 것이다.
“마스터, 정말 저에게 맡겨주실 수 있습니까?”
흥분에 찬 이그드리아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극 투가 아니다. 너무나 흥분해서 깜박 잊은 듯하다.
“진짜 네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입니다. 아무리 뜨거워도 저는 불의 정령입니다. 제게 맡겨주시면 그 뜨거운 열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보내만 주세요.”
이그드리아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어서 승낙해 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확인할 것이 남아 있다.
“분체만으로도 정말 그 온도를 감당할 수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분체나 저나 궁극적으로는 같은 존재니까요. 따라서 당연히 컨트롤 가능하죠.”
“왜 분체를 보내라고 하는지는 알아?”
“따로 시키실 일이 있으신 거죠?”
정령들은 거짓말을 못할 뿐 생각마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 여러 군데에 만들 거야. 근데 니가 거기에 처박혀 있으면 내가 곤란해서 그래.”
“정말 여러 군데에 만드실 거예요? 몇 군데나요?”
이그드리아는 심히 기대된다는 표정이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핵융합 발전은 화석 연료보다 1,000만 배나 효율성이 좋다.
기존 원전에 비하면 발전량이 100배 이상인데다 방사능 오염 위험은 훨씬 줄어든다. 게다가 주요 연료로 바닷물을 사용하기에 자원 소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하나의 자치령에 두 개 정도만 건설되어도 충분히 필요로 하는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무공해인 태양광발전, 그리고 풍력발전이 병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치될 장소는 콩고민주공화국, 러시아, 몽골,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북한, 남한 이렇게 8개국이다.
따라서 16개의 핵융합로가 건설되어야 한다.
“최소한 16개 정도는 필요해. 그런데 그만큼 분체를 나눌 수 있는 거야?”
정령은 질량과 부피가 일정한 존재가 아니다.
덩치를 제멋대로 키우거나 줄일 수 있으며, 여럿으로 나눌 수도 있다고 한다. 이그드리아의 설명이었다.
“16개나요? 정말입니까?”
이그드리아는 몹시 기쁜 표정을 짓는다.
16개의 분체가 모두 1억℃를 컨트롤하면 그 경험치가 모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구의 정령 가운데 가장 먼저 최상급에서 정령왕으로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흥분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이그드리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리고 박형석 박사를 만난 것이다.
“혹시 하이베타 퓨전 원자로에 대해 아십니까?”
“허어! 그걸 어떻게……?”
박형석은 미국 록히드 마틴사가 비밀리에 개발 중인 소형 핵융합 원자로를 현수가 알고 있음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극비 사항인 때문이다.
“제가 받은 보고에 의하면 하이베타 퓨전 원자로는 기존 원자로의 10분의 1크기인 약 2×3m의 크기로 100㎿(8만 가구 전력 공급량)을 생산한다고 하더군요.”
“……?”
박형석은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로부터 들은 것보다 더 상세한 내용에 눈을 크게 뜬다.
“2014년 10월쯤 발표한다고 합니다. 10년 내에 상용화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
박형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눈만 크게 떴을 뿐이다. 어서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이실리프 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미국에 근거지를 둔 이실리프 트레이딩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박형석은 매우 중요한 설명을 듣는다는 표정이다.
“그 회사의 자본금은 1,386억 달러입니다. 100% 제가 출자했지요.”
“네, 네에?”
박형석의 눈에 흰자위가 왕창 늘어난다.
현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166조 3,200억 원을 혼자서 출자했다는 뜻이다.
미국 증시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록히드 마틴을 비롯해 노스롭 그루먼, 레이시온, 제너럴 다이나믹스 등 다수의 기업이 상장돼 있다.
이들의 시가총액 합계는 약 2,000억 달러이다.
이실리프 트레이딩이 진짜 1,386억 달러를 운용한다면 이들 네 개 군수회사 중 세 개 정도를 지배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현수가 록히드 마틴의 대주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물으려 시선을 맞췄다.
현수는 씨익 웃어주었다.
“생각하신 대로 록히드 마틴의 주식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일이지요.”
“아, 그렇군요.”
대주주라면 이 정도 정보는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박형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박사님께서 원하시면 하이베타 퓨전 원자로에 관한 모든 자료를 열람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박형석은 반색하며 시선을 맞춘다.
“물론입니다. 상세 도면까지 다 보실 수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 비밀연구소에서 가져온 자료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한 말이다.
“하, 하겠습니다.”
박형석의 음성은 떨리고 있다. 너무도 기대된 때문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현재의 몽골 자치령은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박사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연구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같이 일하시던 분들을 데려가셔도 되고,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건 이실리프 브레인 팀장의 명함입니다. 이쪽에 자료를 주시면 알아서 스카우트할 겁니다.”
현수가 내민 이준섭의 명함을 받아 든 박형석은 상기된 표정이다. 아무런 방해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아 심히 흥분된 때문이다.
현수는 박형석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었다.
가장 먼저 조성될 몽골 자치령의 핵융합 발전소를 어찌 만들 것인지를 의논한 것이다.
두 개를 건설할 것이므로 적당한 위치를 선정했다. 그래야 사방팔방으로 송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에 필요한 중수소는 바닷물 속에 무한정 존재하고, 삼중수소는 지각이나 바닷물 속에 많이 들어 있는 리튬에서 얻을 수 있다.
바다에 접해 있지 않지만 바닷물을 공급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 근무자 전원에게 절대충성 마법이 구현될 것이기에 어떻게 공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은 민주영을 통해 공급받기로 했다. 연구원 및 기술자들의 주거에 필요한 시설이 건설되는 동안 자료 수집 및 연구 검토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로써 자치령에서 필요로 하는 동력 부분은 해결된 셈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부사장님!”
대기하고 있던 박진영 과장과 해외영업부 최규찬 부장의 허리가 직각으로 굽혀진다. 이들의 곁에는 신형섭 천지건설 사장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 부사장, 잘 부탁하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 그러셨네. 이번 건은 수주해도 그만, 수주를 못해도 그만이라고. 그러니 마음 편히 다녀오시게.”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수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자 신형섭 사장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때 뒤에 있던 조인경 대리가 끼어든다.
“부사장님, 파이팅입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조 대리님.”
사석에선 형수라 부르지만 이 자리는 공적인 자리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사업 수주를 위해 천지건설 부사장으로서 해외영업부장과 함께 출국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럼 잘 다녀오시게.”
“네, 사장님.”
언제나 자신을 신뢰해 주는 신형섭 사장이기에 현수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현수의 자가용 제트기에 일행이 모두 탔다.
현수와 최규찬 해외영업부장, 박진영 과장, 그리고 구본홍 대리, 유민우 대리와 강연희 과장이 일행이다.
천지건설과 천지기획에선 인사 발령 예정이다.
박진영은 과장에서 차장으로 진급한다. 강연희는 천지기획 소속으로 직급은 차장 대우 과장이다.
“어서 오십시오.”
기내에 대기하고 있던 스테파니가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구본홍 대리가 환하게 웃는다.
“Guten Tag! Schön, Sie zu sehen.”
“Na so was! Lange nicht gesehen!”
“Wie geht es Ihnen?”
“Es geht mir gut. Und wie geht es Ihnen?”
“Mir geht es auch gut.”
스테파니와 구본홍은 환히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독일어를 모르는 나머지는 이건 뭔가 하는 표정이다.
특히 스테파니를 처음 본 유민우 대리는 눈빛을 빛낸다. 둘이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일까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이다. 독일어 회화책 첫 페이지에 나올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어머!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내세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구본홍은 뒤에서 눈치 주는 유민우 대리를 째려보며 안쪽으로 들어선다. 유민우는 기다렸다는 듯 스테파니에게 환하게 눈웃음을 치며 말을 건다.
“Oh! Beautiful lady! So it would be an honor to see you meet. My name is Min―woo Yu.”
“Yes, I meet you too. I’m Stephanie.”
“Let’s cup of tea when you hav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