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63화 (1,062/1,307)

# 1063

“OK!”

먼저 탑승한 구본홍은 유민우의 능글맞은 표정과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 날 때 차 한잔하자는 이야기는 자신이 먼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스테파니의 환한 웃음을 보는 순간 외우고 있던 독일어 문장을 까먹었다. 하여 별 시답지 않은 말만 하고 자리에 앉은 것이 못내 아쉽다.

하여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행 모두가 탑승하자 윌리엄 스테판 기장의 안내 방송이 있다.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다, 안전하게 모시겠다, 안전벨트를 매달라, 목적지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스테파니에게 청하면 된다는 등등의 말이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자가용 제트기는 부드럽게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서울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이다.

비행하는 동안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했다.

계획 도면을 보며 어디에 어떤 건축물이 배치되는지를 일일이 확인했고, 공사 예정 단가와 공기를 확인했다.

이번 재개발 공사는 일반적인 국제 입찰과 약간 성격이 다르다. 각각이 계획 도면을 가져와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밀봉된 봉투에 공기와 예정 단가가 기록된 입찰서를 제출한다.

리우데자네이루 당국은 이를 검토한 뒤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한다. 이후 협상을 통해 디자인과 공기, 그리고 건설비용 등을 확정 짓는다.

값이 싸다고 해서 공사를 수주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건설하면 최소한 50년 이상은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류를 찬찬히 검토하던 현수는 공사 대금 결재 방식을 보고 최 부장에게 시선을 준다.

“공사 대금을 정말 이것으로 받는다고 합니까?”

“네, 부사장님이 외유하시는 동안 총괄회장님 등 이사진 전원이 모여 결정하신 겁니다.”

“흐으음, 하긴…….”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화의 가치는 하락했고, 이후의 동향은 어떨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엔화와 위안화, 그리고 유로화까지도 모두 불안하다.

세계 경제가 지극히 유동적인 것이다. 언제 대공황이 닥쳐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기에 천지건설은 공사를 수행하는 대가로 브라질의 지하자원을 요구하기로 했다.

자원 확보 차원이다.

브라질의 국토 면적은 8,514,880㎢이다. 99,720㎢인 대한민국보다 약 85.4배나 넓다.

그리고 세계 3대 농산물 수출국이자 세계 최대 식물군과 약초를 가진 신약 개발의 보고이다.

세계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식물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뿐만이 아니다. 브라질은 막대한 광물자원까지 매장되어 있는 축복받은 국가이다.

철광석, 주석, 인산염, 원유, 석회석, 보크사이트, 석탄, 구리, 망간, 고령토, 크롬, 중정석8), 우라늄, 아연, 금, 다이아몬드, 석영, 수정, 천연가스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천지건설은 공사 대금의 90%를 주석, 구리, 망간, 크롬, 중정석, 석영으로 받겠다고 계획했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제외되어 있다.

원유는 북한의 숙천유전으로부터 도입될 예정이고, 천연가스는 러시아의 차얀다 가스전으로부터 들여올 것이다.

이 밖에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원유와 가스가 도입될 예정이며, 에티오피아에서도 원유를 가져온다.

브라질에서 한국까지 이것들을 들여오려면 이동 거리도 길고 유조선이나 가스 운반선처럼 돈이 많이 드는 선박을 써야 하기에 배제된 것이다.

금이 제외된 것은 브라질의 경제 상황 때문이다.

최근 3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2.1%로 급격히 둔화됐고, 2014년 1분기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며, 물가는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럴 때 금이 빠져나가면 외환위기에 봉착될 수 있음을 알기에 제외시킨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천지건설이 다각도로 연구한 것이지만 뭔가 부족하다.

워낙 큰 공사이기에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모조리 달려들었을 것이 뻔하다. 이 정도만으론 당국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 건설사들도 이 정도는 준비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회사에선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고 있다.

언론에선 리우데자네이루 공사를 수주할 경우 얼마만한 이득이 발생될 것인지에 대한 설레발을 잔뜩 늘어놨다.

그래서 국민들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 신행정 도시 건설 사업은 7,200만㎡ 규모이며, 최하 591억 5천만 달러짜리 공사이다.

한화로 약 71조 원이다.

아제르바이잔은 72㎢짜리 공사이지만 리우데자네이루는 이보다 훨씬 넓은 168㎢ 정도 된다.

아제르바이잔의 신행정 도시는 분당의 3.6배 규모지만 리우데자네이루는 8.4배에 이른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지만 리우데자네이루는 기존의 낡은 주택들을 모두 헐어내야만 한다.

당연히 리우데자네이루의 공사비가 훨씬 더 크다.

천지건설이 제안할 가격은 1,550억 8,000만 달러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86조 1천억 원이다.

이 공사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9개 블록으로 나뉘어져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천지건설은 전체 공사 기간을 12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례없이 짧은 공사 기간이 될 것이다.

참고로, 한화건설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10만 가구를 수용하는 분당급 신도시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공사비 총액은 80억 달러이며, 공사 기간은 7년으로 잡고 있다.

2014년 국토부 해외 공사 수주 목표는 700억 달러이다.

만일 천지건설에서 리우데자네이루 공사를 수주하게 된다면 단숨에 이 목표의 두 배 이상을 달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천지건설은 전 세계 건설사 TOP3 안에 등극하게 된다. 만일 아제르바이잔 신행정 도시까지 연내에 수주하게 되면 단숨에 세계 최고의 건설사로 올라선다.

그렇기에 현수가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오길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이 공사를 수주하게 되면 중소기업 700개 이상이 동반하게 된다. 유리, 시멘트, 목재, 창호, 내장재, 외장재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이다.

현수는 회사에서 준비한 서류들을 모두 검토한 뒤 잠깐 눈을 붙였다. 동행한 인원이 많아 결계를 치고 들어가 다른 일을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요?”

한참을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사랑하는 아내 연희의 음성이다.

“왜?”

“그냥요. 다들 자는데 나만 깨어 있으니까요.”

눈을 뜨고 보이 최 부장을 비롯한 모두가 곯아떨어져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느라 모두가 녹초가 된 때문이다.

“딥 슬립! 딥 슬립! 딥 슬립!”

스테파니를 비롯한 모두에게 수면 마법을 걸자 아주 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씰(Seal)!”

조종석의 문이 열리지 않게 하였으니 윌리엄은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현수는 연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기는 안 졸려?”

“저는 괜찮아요. 자기는요? 아까 엄청 집중하던데.”

다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느라 날밤을 새웠지만 연희는 열외되었다. 외근 상태였던 때문이다.

현수가 따로 지시한 사항이 있었기에 그것에 대한 자료 수집을 하던 중이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았으며, 일하고 싶을 때 일했다.

사실상 일의 양도 많지 않았다.

수집된 자료는 중간보고 없이 현수에게 직접 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피곤할 리가 없다.

게다가 현수로부터 결혼예물로 받은 반지엔 늘 건상한 상태를 유지케 하는 바디 리프레쉬와 면역력을 증강시켜 주는 임플로빙 이뮤너티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이 정도면 피곤하고 싶어서 노력을 기울여도 피곤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연희는 눈빛을 반짝인다. 모두가 깊은 잠에 취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쿨쿨 잠만 잘 것이다.

딥 슬립 마법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잠을 자게 하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이 마법의 원래 명칭은 퍼펙트 퍼렐러시스(Perfect paralysis)였다.

전투 중 부상을 입은 귀족, 또는 기사에게 외과적 수술을 하기에 앞서 걸던 마비 마법이다.

나중에 이보다 더 적은 마나가 소모되는 부분 마비 마법이 만들어진 후 명칭이 바뀌었다. 죽은 것처럼 깊은 잠을 자기에 딥 슬립이 된 것이다.

“당연히 난 괜찮지.”

현수가 잡아당기자 연희는 힘없이 딸려와 품에 안긴다.

“어머!”

“지금부터 우리 둘이 놀까?”

“호호! 저야 좋죠.”

연희는 그윽한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어젯밤 지현은 현수의 집중 공격을 받고 기절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오랜만에 보았으며, 또 며칠간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기에 현수와 일대일 만남을 가진 결과이다.

연희는 이번 프레젠테이션에 동행할 것이기에 스스로 양보하였다. 그렇기에 현수와 아직 회포를 풀지 못한 상태이다.

“으읍!”

두 개의 입술이 조금의 틈도 남기지 않고 맞붙었다. 그 사이로 서로를 사랑하는 영혼과 영혼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살짝 눈을 뜬 현수는 바르르 떨리는 연희의 속눈썹을 보는 순간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여름휴가가 끝난 어느 주말에 같이 덕항산에 올랐다.

현수는 울창한 숲을 헤치며 앞서갔고, 연희는 노래하는 종달새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뒤따랐다.

올라갈 땐 손을 잡아 이끌었고, 하산할 땐 행여 발목이라도 겹질릴까 싶어 두 손을 내밀어 보호했다.

이 과정에서 손과 손이 닿았고, 가끔은 연희의 체중을 느낄 수도 있었다.

스킨십에 계속될 때마다 현수는 너무도 아름다운 연희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가면 박진영 과장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둘이 접촉하는 것을 애써 막으려 하던 때이다.

업무가 끝나면 각자 자신의 집으로 갈 뿐 특별히 저녁 식사를 같이하거나 하지 않음에도 박 과장은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렸다.

박 과장은 무릎이 시원치 않다. 학창 시절 과한 운동을 하다 다친 결과이다. 그리고 빠른 진급을 위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회사에 나와 일을 했다. 그렇기에 연희와 현수가 등산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현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연희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부드러우며, 너무도 친절하고, 너무도 상냥한 천사였기에 잠시라도 함께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던 시절이다.

물론 더 깊은 관계로 진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공존해 입술은 바싹 마르고 속은 타들어가던 시절이다.

그런데 지금 품에 안겨 속눈썹을 바르르 떨고 있다. 일생을 함께할 너무도 사랑스런 배우자이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안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연희는 연체동물처럼 딸려와 가쁜 숨을 내쉰다.

둘은 입술은 오래오래 붙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비행기는 리우데자네이루를 향해 쉼 없이 날고 있다.

7장 저와 함께하시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현수는 여러 사람을 만난 바 있다. 강병훈 해군참모총장, 송지호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김성률 공군참모총장이 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곧 예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며, 그 즉시 백수가 된다는 것이다.

현수는 자신에게 기댄 연희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지난 며칠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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