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4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반갑습니다.”
평택에 있는 해군 제2함대 심흥수 사령관이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보고 싶지만 만나는 것조차 힘든 현수가 제 발로 온 때문이다.
“네,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그럼요. 그럼요! 하하! 일단 앉으십시다.”
“네.”
“부관, 여기 차 좀 부탁해.”
“네, 사령관님!”
부관이 물러간 후 현수와 심 소장은 자리를 마주했다.
“전화도 안 드렸는데 진짜 웬일이십니까? 몹시 바쁘신 분이잖아요. 혹시 해가 서쪽에서 뜬 겁니까?”
“에구! 그간 연락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현수가 겸연쩍은 웃음을 짓자 심 소장은 다시 웃는다.
“우리 자주 좀 뵙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네, 당분간 자주 볼 듯합니다.”
“오오, 그래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그나저나 진짜 웬일이십니까?”
“오늘 강 총장께서 이쪽으로 오신다 하여 만나뵈려고 왔습니다.”
“아, 총장님이요? 네, 오늘 이곳으로 오신다 한 것 맞습니다. 조금 있으면 당도하실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여성가족부 해체 이후 강병훈 해군참모총장이 조만간 예편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정권으로부터 괘씸죄를 산 이유 때문이다. 하여 해군함대를 방문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오 장관님은 제가 모시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강 총장님도 모시려고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심 소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는다.
존경하는 강 총장이 예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가슴 아팠던 때문이다.
고위 장성이 물러나면 대개 정치권으로 흘러들거나 정부 투자기관이나 국가 산하연구소 같은 곳에 취업을 한다.
그런데 강 총장은 정권으로부터 이러한 배려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꼼짝없이 백수가 되어 연금이나 받으며 살아야 한다.
행동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군사비밀 때문에 국가에서 파견한 경호요원들의 감시 아닌 감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양만춘함 등은 어떻습니까?”
“좋죠. 아주 최고입니다.”
심 소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연료비가 12분의 1로 줄어든 것 때문만은 아니다.
수시로 테스트하는 스텔스 기능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게다가 더 빨라지고 더 조용해졌다.
적의 어떠한 전함이라도 소리 없이 다가가 강력한 한 방을 먹이고 유유히 돌아 나올 수 있는 펀치력을 갖게 되었는데 어찌 좋지 않겠는가!
최근 양만춘함은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 그리고 서애 류성룡함을 상대로 훈련을 했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한국 해군의 이지스함이라는 것이다.
양만춘함은 이들 셋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작전은 야간에 이루어졌는데 100m까지 접근했음에도 이지스함들을 양만춘함의 존재를 잡아내지 못했다.
조용히 다가가 어뢰를 쏜다면 이지스함도 격침시킬 수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한편, 이지스함들은 훈련 상황 개시 이후 촉각을 곤두세우고 침투조 역할을 맡은 양만춘함을 기다렸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왔다가 되돌아갈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틀 전의 일이다.
현재에도 이지스함들은 온 신경을 모아 언제 올지 모를 양만춘함을 기다리는 중이다.
같은 해군이지만 아직은 그들에게도 비밀인 때문이다.
“강 총장님께서 물러나시면 후임은 어떤 분이 될까요?”
“그게…….”
심 소장은 잠깐 이맛살을 찌푸렸다. 차기 참모총장 물망에 오른 인물은 둘이다. 둘 다 심 소장이 초급장교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다. 그런데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나는 너무 약삭빠르다. 아부신공으로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갔다는 평을 받는 사람이다.
진급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자신의 소신을 굽힐 수 있는 인물이기에 박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반복하면서도 낯 한번 붉히지 않는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심 소장은 무능하다고 평가한다. 소신이라곤 없다. 무사안일을 추구하며 책임을 남에게 떠미는 스타일이다.
이런 사람이 차기 참모총장이 되면 해군의 앞날은 뻔하다. 그나마 최고가 현 상황 유지 정도가 될 것이다.
현수는 심 소장이 이맛살을 찌푸리자 내심을 짐작했다.
“양만춘함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분입니까?”
“그게… 아마도 어려울 듯합니다.”
“흐음! 그래요?”
현수 역시 이맛살을 찌푸린다. 양만춘함의 비밀은 당분간 유지되어야 한다. 만일 차기 참모총장이 이를 떠벌리고 다니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미국, 일본, 지나, 러시아의 시선이 한 몸에 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엔 기술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유력합니까?”
“으음! 내 생각엔 박무성 중장이 더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심 소장은 아부신공의 달인을 선택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참모총장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손바닥을 비비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비밀을 유지하려면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차기 총장이 될 사람이니 살인멸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절대충성 마법 하나뿐이다.
“그나저나 오신 김에…….”
심흥수 소장은 은근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전함 개조 작업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오늘은 어렵습니다. 곧 브라질로 출장을 가야 해서요. 다녀온 뒤에 방문하면 안 되겠습니까?”
“아이고, 왜 안 되겠습니까? 당연히 되죠. 됩니다, 돼요!”
심 소장은 기분 좋은 듯 환히 웃는다. 현수가 손을 대면 무엇이든 두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된다. 돈도 별로 들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도 먹는 셈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이때 부관이 들어와 찻잔을 내려놓고 나간다. 그리곤 곧 강병훈 총장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총장님.”
함대 사령관실에 들어선 강병훈 총장은 현수를 보며 환히 웃는다. 해군 전력이 든든해진 때문일 것이다.
잠시 후, 셋은 한 자리에 앉았다.
“심 소장, 나 곧 옷 벗는 거 알지?”
“네, 아쉽습니다, 총장님.”
심흥수 소장은 강직한 강 총장이 계속 해군을 맡아주길 원했지만 이는 뜻대로 될 일이 아니다.
“그간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 왔네.”
“네.”
아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그렇기에 심 소장의 대답은 짧았다. 대신 눈빛으로 대답했다.
“오늘 술이나 한잔하세.”
“네, 총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냐, 아냐. 내가 사야지. 그동안 내게 섭섭한 게 있었을 텐데 그걸 털어내려면 내가 사야지. 안 그런가?”
“…알겠습니다.”
심 소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강 총장의 시선이 현수에게 향한다.
“그나저나 김 회장님은 이곳에 웬일이십니까? 심 사령관, 오늘 손보는 전함이 있나?”
“아닙니다. 김 회장은 총장님을 만나려 온 겁니다.”
“나를?”
이유가 뭐냐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현수는 심 소장이 곁에 있지만 입을 연다.
“오 전 장관님으로부터 3군 총장님들이 예편하시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강 총장은 대꾸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송지호 육군참모총장과 김성률 공군참모총장 역시 자신처럼 아끼던 부하들을 만나는 중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저는 강 총장님은 이실리프 자치령을 모시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이실리프 자치령이요?”
무슨 의미냐는 표정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엔 두 개의 자치령이 있습니다. 반두두와 비날리아 지역이지요. 그곳 모두 총장님께서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
“콩고민주공화국이 싫으시면 에티오피아의 아와사 지역을 맡으셔도 됩니다.”
“아와사요?”
“네, 약 10만㎢라 대한민국 영토보다 약간 넓습니다. 그곳의 방위와 치안 부분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10만㎢라고요?”
강 총장은 넓이에 놀란 듯하다.
“네, 그런데 아쉽게도 바다에 접해 있지 않아 해군은 가질 수 없습니다. 대신 육군과 공군 전력은 갖춰야 하는 곳입니다. 아울러 경찰도 있어야겠지요.”
“으으음!”
느닷없는 주문이라 그런지 낮은 침음만 낸다.
“참, 법률 부문도 맡아주셔야 합니다.”
국방장관과 경찰청장에 이어 법무장관직까지 수행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강 총장은 심 소장에게 시선을 준다.
“가시죠! 여기보다 나을 겁니다. 김 회장님하고 같이 일하는 편이 훨씬 속이 편하실 겁니다.”
“그럴까?”
강 총장은 잠시 숙고에 들어간다. 그러는 사이 그곳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오 전 장관님께서는 몽골 자치령을 맡으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강 총장은 오정섭 전 국방장관이 거취를 확정했다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든다.
“누군가의 호불호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총장님의 뜻을 마음껏 펼치시도록 지원을 약속하죠.”
“…좋습니다. 가죠. 나는 에티오피아 쪽이 끌리는군요.”
“네, 그러세요. 가시는 길에…….”
현수는 원하는 사람들을 채용할 권리는 주겠다는 말을 했다. 물론 자치령에 발가락조차 들여놓지 못할 인간들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강 총장은 다이어리를 꺼내 새로운 상관이 된 현수의 말을 메모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김 회장님을 뭐라 불러야 하는지요?”
“그냥 김 회장이라 불러주십시오. 총장님은 이제부터 통령이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감축드립니다, 통령님!”
심흥수 소장이 환히 웃으며 축하의 뜻을 표한다.
해군참모총장에서 곧바로 국방부장관과 법무장관, 그리고 경찰청장 자리까지 거머쥔 셈이기 때문이다.
“고맙네. 신임 총장이 임명되면…….”
강 총장은 자신의 후임이 될 자들의 면면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후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둘 중 유력한 것은 박무성 중장이다. 그가 신임 총장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분명 현 정권과 야합할 것이니 해군의 발전은 뒷전이 될 것이다. 또한 합참의장이나 국방부장관 자리에 오르려 온갖 술수를 부릴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일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게다가 친미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해군 함정들의 변화를 알게 되면 그날로 청와대에 보고가 들어갈 것이다.
이는 해군에게 있어 재앙이다.
미국은 즉각 함정 공개를 요구할 것이다. 이제 간신히 마음에 드는 수준에 올랐는데 그렇게 되면 곤란한 일이다.
“그러니 보고를 자제해 줬으면 하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걱정 마십시오. 입 꾹 다물고 각별히 보안을 유지토록 하겠습니다.”
“그래주게.”
강 총장은 심 소장을 믿는다. 하지만 밑의 장병들까지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월이 되면 정기인사가 있을 예정이다.
2함대 소속 장병 가운데 일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털어놓으면 문제될 수 있다.
강 총장은 급히 다이어리를 꺼내 뭔가를 메모했다.
퇴임 전에 인사 발령을 내되 2함대 소속 장병들의 이동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메모를 마친 강 총장은 현수에게 시선을 준다.
“회장님, 퇴임 전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KDX 시리즈만이라도…….”
강 총장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현수가 먼저 고개를 끄덕인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해군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우리나라가 든든해지는 거니까요.”
“감사합니다.”
“책임지고 KDX 시리즈 전체를 손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