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6
“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이만 가도 되죠?”
“물론입니다. 리우에서 좋은 추억만 가져가시길 빕니다.”
최 부장 등은 현수를 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젓는다.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수시로 포르투갈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단 며칠 만에 현지인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능숙하게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한 때문이다.
“자, 갑시다.”
“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갑니까?”
구본홍 대리의 물음에 현수는 대답 대신 연희에게 시선을 주었다. 연희가 일행의 예약담당인 때문이다.
“우리 숙소는 코파카바나 해변에 위치한 윈저 아틀란티카(Windsor Atlantica)호텔이에요. 5성급이죠.”
“와아! 정말요?”
구 대리가 눈을 크게 뜬다. 첫 해외 출장을 5성급 호텔에서 머문다는데 어찌 좋지 않겠는가!
“네, 오늘과 내일은 휴식이니 마음껏 즐겨도 됩니다.”
“와아!”
구 대리가 눈빛을 반짝인다. 비록 리우 카니발 시기는 놓쳤지만 꿈에 그리던 코파카바나 해변의 백사장을 거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구 대리는 슬쩍 스테파니를 바라본다. 스튜어디스 제복 속에 감춰진 늘씬한 교구를 떠올리는 것이다.
스테파니는 이를 느꼈는지 슬쩍 구 대리를 바라보곤 윙크를 한다. 싫지 않다는 뜻이다.
호텔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공항을 출발함과 동시에 유민우 대리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주로 감탄사이다.
브라질 여인네들의 화끈한 몸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계속 신음과 감탄사가 섞인 말을 토해놓는다.
“우와아! 저기 저 아가씨 좀 보세요. 빵빵해요. 흐미! 몸매 한번 지독하게 착하네요. 그렇죠?”
“케엑! 저, 저길 좀 봐요. 저기 저 금발이요! 잘록한 허리에 끝장나는 히프! 와아, 정말 죽여주네요.”
“와우! 저기 저 여인네는… 가슴이… 크으으! 이러다 코피 쏟겠어요. 정말 화끈하네요.”
시선을 돌리던 현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슬쩍 옆구리가 따끔하다. 연희가 꼬집은 것이다.
물론 별로 아프지는 않다. 하여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강 과장 보기엔 저 아가씨 몸매가 별로인가요?”
남들이 있기에 한 말이다.
“치이! 예쁘긴 뭐가 예쁘다고. 별로네요!”
누가 들어도 질투 섞인 대꾸였기에 모두들 큰 소리로 웃는다. 당연히 현수도 포함되어 있다.
“하하! 하하하하!”
호텔에 당도해 각자 머물 방을 배정했다. 5성급 호텔을 일인 일실로 배정하니 모두들 흡족해한다.
현수 역시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객실을 쓴다. 좌측은 연희가 머물고, 우측엔 최 부장이 쓴다.
짐을 푸는 즉시 수영복 차림으로 모이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의 해수욕을 결의한 것이다.
현수는 수영복 위에 헐렁한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모자와 선글라스로 마감했다. 연희 역시 비슷한 차림이다.
“와아! 바다다!”
바닷가에 당도하자 유민우 대리는 흥분되는지 방방 뜬다.
헐벗은 여인네들이 해변 가득 널려 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헌팅 타임이라며 잔뜩 흥분해 있다.
해변에 당도하여 비치파라솔을 빌렸다.
파라솔 하나당 의자가 두 개인데 16헤알이란다. 우리 돈으로 만 원도 안 된다. 사용시간을 물어보니 시간제한도 없다고 한다.
바가지만 씌우는 한국의 여느 해변과 너무나 차별된다.
파라솔 안에 들어가 앉으니 수박과 코코넛을 파는 상인이 다가온다. 살짝 얼린 수박 맛은 최고였다.
코코넛 음료도 시원해서 좋았다.
“오늘 하루 마음 편히 쉬죠. 이제부턴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그러세요.”
“네, 부사장님.”
최 부장은 윗사람 모시기 신공을 풀고 새우를 파는 노점상에게 향한다. 배가 몹시 고팠나 보다.
“여기 정말 좋은데요?”
이번엔 구본홍 대리이다. 사방에 널려 있는 미녀들의 헐벗은 몸매를 감상하며 군침 삼키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눈빛이 형형하다. 그러다 멀리서 다가오는 스테파니에게 시선을 준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스테파니의 몸매는 다른 여인들을 충분히 압도할 만큼 글래머러스(Glamorous)했다.
구본홍은 시선을 고정시킨 채 다가오는 스테파니를 바라보며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침이라도 흘릴 기세이다.
“구 대리, 밀어줄 테니 잘해봐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구본홍은 얼른 고개를 꾸벅하고는 스테파니에게 달려간다.
해변의 날파리들이 달려들기 전에 공주를 수호하는 기사처럼 착 달라붙어 여하의 접근도 차단하려는 의도이다.
현수는 피식 웃어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연희가 다가오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미안.”
남들 귀에는 들리지 않게 입만 벙긋거려 주었다.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본다.
그러다 언제 이런 곳에 또 오겠나 싶었는지 바다로 달려간다. 워낙 몸매가 좋기에 한 마리 영양이 달리는 것 같다.
“에구!”
현수는 걸치고 있던 상의와 하의를 벗었다. 연희는 모델을 할 정도로 예쁜 여인이다.
바람둥이들의 표적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보호 차원에서 따라나선 것이다.
연희의 뒤를 따르며 슬쩍 일행을 바라보니 최 부장은 새우를 먹느라 정신이 없고, 구본홍은 스테파니와 희희낙락하고 있다.
연애 전선 이상 무인 듯싶다.
유민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사방을 둘러보니 저쪽에서 웬 늘씬한 여인들에게 수작을 걸고 있다.
윌리엄 기장은 장시간에 걸친 비행을 마친 상태인지라 객실에서 쉬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연희와 다정스럽게 놀아줘도 괜찮은 시간인 듯싶지만 그래도 남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코파카바나 해변은 의외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수의 몸은 볼륨이 크지는 않지만 섬세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어 보기에 좋다. 하여 해변에 있는 여인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연희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적은 곳에 당도했다.
조금 전에 지나친 곳은 한 떼의 청년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이 적었던 것이다.
이곳을 지나치고 나니 이번엔 두 사내가 캐치볼을 하고 있다. 둘 다 한 덩치 하는데 먼 쪽에 있는 사내가 조금 더 커 보인다.
눈대중으로는 신장 190㎝, 체중 100㎏ 정도이다.
휘익―! 퍽―! 휘익―! 퍽―!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 실력이 아니다.
상당히 빠른 공을 주고받고 있으니 근처에 사람이 없다. 빗맞아도 엄청나게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어이, 엘리스! 조금 더 멀리?”
“OK! 벌리자!”
두 사내는 대략 40m 정로로 거리를 더 벌린 뒤 다시 던지기 시작한다.
휘익―! 퍽―! 휘익―! 퍽―!
이들에게 잠시 시선을 주던 현수는 해변의 연희에게 향했다. 깊은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말하려는 의도이다.
이때였다.
휘이익―!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캐치볼을 하던 사내가 손짓한다. 보아하니 공을 놓친 모양이다.
어느새 해변까지 굴러온 공을 주워 드니 저쪽의 사내가 던지라는 몸짓을 한다. 현수는 먼 쪽의 사내를 바라보고는 공을 던졌다. 약100m 정도 떨어진 거리이다.
쒜에에엑―!
“아차!”
퍼억―!
쏘아진 총알처럼 거의 직선거리로 비행한 공이 사내의 글러브 속으로 파고든다.
“……!”
앞쪽의 사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포물선이 아닌 때문이다. 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리가 있기에 저도 모르게 강하게 던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연희를 찾았다. 모래사장 아래에 조개라도 있는지 쭈그려 앉아 땅을 파고 있다.
“쩝―!”
현수는 연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햇살이 강렬했지만 별문제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드가 자외선을 차단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는 연희에게도 적용되어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따가운 햇살 때문에 피부 손상을 입은 걸 어찌 두고 보겠는가!
하여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마법을 걸어준 것이다.
연희는 조개 캐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하고 있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지 미소 띤 얼굴이다.
현수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때였다. 한 줄기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Hey, Mister.”
“Who……?”
시선을 돌려 보니 캐치볼을 하던 사내들이다.
“My name is Andrew James Ellis. Do you know me?”
그러고 보니 눈에 익다. 류현진과 같은 팀 소속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한다.
“AJ Ellis? LA Dodgers’……?”
현수가 엘리스를 아는 이유는 류현진의 전담 포수였기 때문이다.
엘리스가 시즌 중임에도 이곳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어슬렁거릴 수 있는 이유는 부상 때문이다.
2014년 4월 6일, 안드레 이디어(Andre Ethier)가 안타를 쳤을 때 2루에서 홈으로 돌진하다 왼쪽 무릎을 다쳐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곤 따뜻한 이곳으로 와서 재활하는 중이다.
“Yes. Nice to meet you! Are you a Korean?”
류현진과 친해서 그러는지 일본인이나 지나인이냐는 물음이 아니었다.
“Yes! I’m a Korean.”
LA 다저스의 포수 엘리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이 기분 좋은지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물론 영어이다.
“반갑다! 코리안. 조금 전에 던진 공, 아주 인상적이었어.”
“그랬어? 고맙군.”
“우리 팀의 뚱땡이 류도 그만한 공은 못 던질 거라는 데 100달러 걸지. 그치?”
“하하! 그건 과찬이야!”
“그나저나 네 직업은 뭐야? 혹시 프로야구 선수야?”
말을 하며 현수의 상체와 하체를 유심히 살핀다.
운동선수라 그런지 현수의 근육이 밀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듯하다.
“아니. 난 평범한 직장인이야. 건설회사에 다니지.”
“와우! 정말? 그런데 어떻게 그런 공을 던져?”
엘리스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조금 전의 공은 일개 회사원이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수의 손을 떠난 공이 거의 빨랫줄처럼 일직선을 그리며 100m나 날아왔으니 당연한 말이다.
이 정도면 좌우측 외야 끝에서 홈플레이트까지 직선으로 공을 던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펜스 바로 앞 외야 플라이 때에도 3루에 있던 상대팀 선수가 홈을 파고들다간 보살9)당한다는 의미이다.
“응, 회사원 맞아. 야구선수는 아니고.”
“저기 미안한데… 나를 상대로 한번 제대로 된 투구를 해보지 않겠어?”
“제대로 된 투구?”
“그래. 내가 포수인 건 알지?”
“알기는 하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현수가 슬쩍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엘리스는 그런 건 신경 안 쓴다는 듯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냥.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한번 해보면 안 될까? 나 이래 봬도 메이저리그 포수라고. 비록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알아. 니가 잘나가는 포수인 거.”
“그래? 그럼 한번 던져봐. 던져서 손해 볼 건 없잖아. 안 그래, 친구?”
엘리스의 표정을 보니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 않다. 하여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공을 건넨다. 그리곤 성큼성큼 걸어 공 던지기 좋은 곳으로 향한다.
자리 잡고 쭈그려 앉는데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18.5m 정도 된다. 딱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이다. 역시 프로답다.
“일단 몇 개 던져봐.”
“OK.”
현수는 야구를 배운 적이 없다. 그렇기에 어설픈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