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0
공사 기간, 공사비, 디자인, 이전 공사 수행 실적, 현지 건설업체 하청 비율 등이 그 항목 중 일부이다.
이번 재개발 사업은 부정부패나 뇌물 등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약 50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 리우데자네이루 시청에 모여 공개적으로 처리한다.
디자인을 보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인 것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도 있으며,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사람도 있다.
매번 모일 때마다 난상토론을 벌여 최종적으로 점수를 결정하는데 모든 회의 과정을 녹화한다. 나중에라도 불거질 수 있는 문제점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천지건설의 제안은 오늘 밤 점수화될 예정이다. 하여 오늘의 프레젠테이션은 녹화된 상태이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 건설사들의 제안을 모두 들은 바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제시한 것보다 천지건설 쪽이 공기가 짧고 공사비 또한 적다는 걸 알고 있다.
“주지사님, 시장님, 얼른 천지건설로 결정하세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우승해야 하잖아요.”
“맞습니다. 맞아요. 그냥 천지건설로 해요.”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리치자 밖에 있던 경비들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갑자기 시끄러워지자 무슨 사달이라도 벌어졌나 싶은 모양이다.
“무, 무슨 일입니까?”
혹시라도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제압해야 하기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천지건설이 재개발 공사를 수주하면 축구의 신이 월드컵 출전을 안 할 수도 있대요.”
“네? 정말요? 그럼 우리가 우승이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다들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경비는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리셉션장 바깥에서도 환호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한국의 김현수가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으면 네이마르 등으로 포진된 브라질 대표팀이 우승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국에서 치르는 월드컵이고, 브라질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승 후보국이다. 여기에 열렬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할 응원까지 가해지면 우승할 확률이 높다.
환호는 호텔을 중심으로 조금씩 멀리 번져갔다.
그리고 누군가의 SNS로 시작한 소문은 금방 리우데자네이루 바깥까지 전해졌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간신히 진정하고 자리에 앉은 주지사는 진동하는 전화를 보았다. 액정에 찍힌 것은 브라질의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Dilma Rousseff)의 이름이다.
아무리 바빠도 꼭 받아야 할 전화이다.
주지사는 여전히 떠들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잠시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전화기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즉시 입을 다문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주지사는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주지사님, 대통령입니다.”
“네, 대통령님! 말씀하십시오.”
“주지사님, 방금 전 놀라운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군요.”
“소문이요?”
대체 무슨 소문인가 싶어 눈썹을 찌푸린다.
“네, 축구의 신이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네에? 그, 그걸 어떻게……?”
천지건설에 공사를 주면 출전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지 불과 5분 정도 지났다.
그런데 900㎞나 떨어져 있는 수도 브라질리아에 있는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놀라지 않으면 이상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옛 속담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소문 번지는 속도는 광속이다’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방금 소문을 들었습니다. 천지건설이 재개발 공사를 수주하면 참가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방금 전에 그런 제안을 받았습니다.”
주지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통령의 말이 이어진다.
“천지건설의 제안이 다른 회사들보다 월등하게 높은 가격을 불렀거나 공사 기간이 긴가요?”
“그건 아닙니다. 공사 기간도 짧고 공사비도 적습니다. 공사비도 자원으로 받아가겠다고 합니다.”
“오! 그래요? 그럼 그쪽으로 결정하는 걸로 신중히 검토해 보세요. 국민들이 이번 월드컵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아시죠?”
“물론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언론도 편들어줄 겁니다.”
언론인 역시 브라질 국민이니 리우 주정부가 천지건설의 손을 들어줘도 까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네, 잘 알겠습니다. 신중히 검토하고 발표 전에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군요. 가까운 시일 내에 한번 뵙기를 바랍니다.”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대폭 상승할 것이다. 대통령은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어찌 이런 의미를 모르겠는가!
주지사는 기꺼이 한자리 내어주겠다고 했다.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알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은 주지사는 리셉션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맞은편의 현수는 유창한 포르투갈어로 주변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데 확실히 달라 보인다.
세계 최고의 천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영업사원이기도 하다.
프레젠테이션도 마음에 들었는데 개인적인 제안은 브라질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핫―버튼을 누른 것이다.
너무도 달콤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안이기에 기꺼이 상대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결과를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전문가 집단이 모여서 만든 점수표를 꺼내놓고 결정할 것이다.
프레젠테이션만으로도 천지건설은 낙점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아마도 가장 높은 점수가 매겨질 것이다.
그런데 추가 사항이 너무나 좋으니 기분 좋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흔쾌히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고 술잔을 비웠다.
“휴우! 끝났네요.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넥타이를 풀어내 느슨하게 하며 현수가 한 말이다.
“무슨 말씀을… 부사장님께서 수고가 많으셨지요.”
해외영업부 최 부장의 말이다.
“근데 정말 월드컵에 안 나가실 겁니까?”
박진영 과장은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현수가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월드컵 우승도 가능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이다.
하여 5월 9일에 발표될 대표팀 명단에 반드시 김현수라는 이름 석 자가 있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이에 대한축구협회(KFA)에선 현수에게 연락을 취하는 중이다. 현수는 축구협회 회원이 아니다.
그렇기에 본인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마음대로 대표팀 선수 명단에 끼워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여 다각도로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현수가 워낙 바빠 연결되지 못했다. 전화통화 역시 안 된다. 현수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협회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전에 기술이사 하나가 너무나 큰 실례를 범한 때문이다.
어쨌거나 연락이 닿지 않자 대표팀 선발에 응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공문서를 이실리프 상사로 발송하였다.
이 문서는 현재 민주영이 보관하는 중이다.
지난번에 현수를 만났을 때 줘야 하는데 깜박 잊었다. 워낙 중요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수는 박진영 과장의 우려 섞인 표정을 보았다.
출전하지 않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몹시 실망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출전할 수도 없다.
프로 격투기선수가 유치원 꼬맹이들과 힘을 겨루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골문 앞에서 드리블하여 상대방 골대 안까지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전력을 기울이면 속도의 차이가 어마어마해서 감히 달려들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로 캐논슛을 갈겨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워낙 강력한 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참가할 수 없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요.”
“그, 그렇겠죠.”
회사 일만으로도 바쁜데 자치령 개발도 해야 하고 이실리프 그룹의 계열사들도 건사해야 한다.
당연히 엄청 바쁜데 한가롭게 축구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월드컵에 출전하면 6월 13일부터 7월 14일까지 꼼짝도 할 수 없다. 한 달 동안이나 회사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천지건설도 타격을 입는다. 하물며 이실리프 계열사들은 어떠하겠는가!
출전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야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런 걸 생각지 않고 오로지 월드컵 우승만 생각하기에 선수로 나서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아무튼 프레젠테이션의 결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애써준 덕입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부사장님께서 워낙 걸출하셔서 그런 거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요. 다 같이 애썼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할까요? 구 대리! 근처에 근사한 바(Bar) 알아놨어요?”
구본홍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찾아놨습니다!”
구본홍은 스테파니와 함께 추억을 만들 장소를 물색한 바 있다. 그곳은 코파카바나 해변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이다.
삼바의 열정을 제대로 느낄 만한 곳이라 판단했다.
“좋아요! 그럼 가볼까요? 오늘 술값은 내가 냅니다!”
“와아!”
구본홍과 유민우는 신 났다는 듯 환히 웃는다. 일행은 호텔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약 10분 후, 로비 앞으로 까만색 세단이 줄지어 들어온다. 이들을 맞이한 건 엘리스와 핸더슨이다.
이곳에 당도한 사람들은 LA 다저스의 단장과 프런트, 그리고 스카우트들이다.
“엘리스, 무릎은 괜찮아?”
“네, 단장님.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 그 친구는 어디에 있지?”
오자마다 현수부터 만나고 싶음을 감추지 않는다.
“그 친구는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조금 전에 동료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으로 갔거든요.”
“동료들?”
단장은 현수가 브라질로 이민 온 동양인으로 알고 왔다. 아무런 설명도 없는 동영상만 본 때문이다.
따라서 동료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엉성한 폼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하고 있나 싶은 때문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허음, 그러세.”
잠시 후, 엘리스와 핸더슨이 머무는 스위트룸으로 들어간 네드 콜레티 단장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축구의 신이라고? 그런데 선수가 아니라 회사원?”
“네, 제가 조사를 해보니 이 친구는 자본금 100%를 출자한 거대 은행도 소유하고 있더군요.”
“거대 은행?”
“네, 이실리프 뱅크인데 자본금이 어마어마합니다. 여기 이 자료를 보세요.”
“끄응!”
네드 콜레티 단장은 침음을 토한다.
LA 다저스를 통째로 팔아도 만들 수 없는 거금을 혼자서 출자했다는데 어찌 괜찮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친구는 세계 최고의 IQ를 가졌습니다. 여기 이거 보십시오.”
현수가 6대 수학 난제를 모조리 풀어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까지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했다는 기사이다.
하여 한국에서 열릴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이 100% 확실하다는 내용이다.
“헐……!”
“뿐만이 아닙니다. 단장님, 지현에게와 첫 만남, 그리고 In the moonlight라는 곡을 혹시 아십니까?”
“그럼, 잘 알지. 지현에게와 첫 만남은 한국어로도 부를 수 있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곡이야. In the moonlight는 내 휴대폰의 컬러링이고. 가사도 가사지만 멜로디가 아주 좋잖아. 안 그런가?”
단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모두 좋아하는 희대의 명곡이기 때문이다.
하긴 빌보드 차트 부동의 1위부터 3위 곡이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다. 라디오를 켜면 한 시간 안에 한 곡은 나오고,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흘러나는 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