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1
“그거 다 김현수 작사, 작곡입니다.”
“정말? 정말 그렇다면… 끄응!”
저작권 수입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세 곡 모두 전 세계를 강타한 곡이니 메이저리그 연봉 정도는 껌값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친구, 세계 9위의 건설사 부사장입니다. 연봉은 2,500만 달러이고, 70세까지 정년 보장입니다.”
“……!”
할 말이 없다. 메이저리그 연봉 2위와 같은 돈을 이미 벌고 있는 자를 무슨 재주로 꼬신단 말인가!
“또 하나 있네요. 그 친구가 쉐리엔 개발자랍니다.”
“쉐리엔을?”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 애용하는 제품이다.
너무 효과가 좋아 살 수만 있다면 사재기라도 해서 쌓아두고 싶은 상품이다.
“항온의류라고 들어보셨지요?”
“알지, 항온의류! 설마 그것도?”
“네.”
긴 말이 필요 없다. 단장은 긴 한숨을 내쉰다.
“휴우, 백약이 무효이겠군.”
돈으로는 꼬실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 분데스리가, 프리메라리가, 세리에에서도 김현수 부사장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네요.”
“축구의 신이라서?”
유럽의 축구 리그마저 눈독을 들인다니 할 말이 없다.
“네, 그중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인 만수르는 연봉 10억 달러를 제시하려 했다네요.”
“끄응! 연봉이 10억 달러……?”
“네, 그런데 그게 세후 연봉이랍니다.”
“헐!”
EPL에선 절반 정도가 세금으로 나가니 연봉으로 20억 달러를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돈 많은 메이저리그라 할지라도 꿈도 꿀 수 없는 거금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연봉 총액 1위는 양키스를 뛰어넘은 LA 다저스이다.
LA 다저스는 2억 3,500만 달러로 연봉 총액 1위에 올랐고, 뉴욕 양키스는 2억 400만 달러로 2위에 머물렀다.
참고로 3위는 필라델피아 필리스(1억 8,000만)이고, 보스턴 레드삭스(1억 6,300만)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억 6,200만)가 그 뒤를 이었다.
한편,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지난해에 비해 2,700만 달러가 늘었음에도 총액 4,500만 달러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만수르가 제안한 금액은 양키스의 수많은 선수에게 지급하는 연봉 총액과 거의 같은 것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비교하면 네 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아무리 돈을 펑펑 쓰는 다저스라 할지라도 꿈도 못 꾸는 금액이다.
단장은 입맛을 다신다. 이때 엘리스의 말이 이어진다.
“단장님, 이걸 한번 보십시오.”
엘리스는 유튜브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일본 사회인 축구팀과의 경기 중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대단하군! 근데 대체 이 친구는 뭐야? 외계인인가? 다리 힘도 끝내주고 어깨는 더해! 시속 171.3㎞짜리 그거 투심이었잖아.”
“네, 제대로 된 투구 폼을 장착하고 포심으로 던지면 아무리 안 돼도 시속 190㎞짜리는 던질 겁니다.”
“세상에 맙소사! 그걸 누가 건드려?”
“그렇죠.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직구 하나만 있어도 무조건 이기죠.”
“그래, 그렇겠지. 사람의 시력으로 그걸 보고 친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단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시속 160㎞짜리도 치기 힘든데 그보다 30㎞나 더 빠르다면 스탠딩 삼진이 당연하다.
“제가 그 친구 공을 몇 개 받아봤는데 야구공을 던지는 게 처음인 듯싶었습니다.”
“으잉?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립에 따라 구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맨 마지막 공은 투심이었지만 중간에 슬라이더도 있고 싱커도 있었습니다. 커터도 한 번 있었구요.”
“……!”
단장은 입을 딱 벌린다. 동영상에 나온 공은 모두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처음 야구공을 던지는데 다양한 구질 전부가 스트라이크였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실수로 동영상을 보낸 겁니다. 그 친구가 그런 친구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거든요.”
엘리스는 바쁜 단장과 프런트, 그리고 스카우트들이 이곳까지 온 것에 대해 사과했다. 경솔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아닐세. 덕분에 야구의 신을 보았네.”
수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를 보아왔지만 단장은 현수 같은 투수를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저도 그가 야구의 신이라 불렸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단장이 개구진 미소를 짓는다.
“…그럼 우리 장난 한 번 하세.”
“네? 장난이요?”
“그 영상, 유튜브에 올리게. 여기 주소 넣고.”
“…흐흐, 흐흐흐흐!”
엘리스는 저도 모르게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전부가 발칵 뒤집힐 것이 예상된 때문이다.
“아예 MLB 사무국에도 영상을 보낼까요?”
“그렇지! 그러게, 대체 누굴까 하는 물음표를 붙여서 보내게. 크흐흐, 흐흐흐!”
단장은 자신이 헛걸음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현수와 다른 구단들을 괴롭히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동영상의 제목은 ‘God of Baseball’로 할까요, 아님 ‘God of Pitcher’로 할까요?”
“‘It would be 190㎞/h!’가 더 직설적이지 않겠어?”
“그렇군요. 더 강렬해요. 숫자니까 눈에 확 띄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 제목으로 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동영상을 보내죠. 유튜브에도 올리구요.”
잠시 후, 엘리스의 얼굴만 이중으로 모자이크된 동영상이 유튜브와 MLB로 보내졌다.
동영상을 올린 뒤 단장을 비롯한 일행은 각자의 객실로 향했다. 기왕에 왔으니 하룻밤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마친 엘리스는 유투브에 접속했다. 조회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헐! 이런 미친…….”
LA와 리우데자네이루는 시차가 있다.
어젯밤 동영상을 올린 시각은 오후 9시경이다. LA는 오후 3시였다.
그로부터 약 12시간이 지난 현재 현수가 공 던지는 영상의 조회수는 20만을 넘고 있다.
스크롤바를 내려 댓글을 확인하니 처음엔 깜짝 놀라 감탄사를 터뜨리는 것 위주였는데 차츰 조작이라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누군가 이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일체의 조작도 들어 있지 않음을 보증한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믿지 않자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 ABC방송국 편집실 직원이라고 한다.
그러자 폭풍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신분을 확인해서 즉각 메이저리그로 소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현수를 알아봤다.
현수의 신분이 드러나자 또 댓글이 달린다. 주로 현수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신상털기에 돌입한 것이다.
천지건설에 관한 이야기, 천지약품에 관한 에피소드, 이실리프 자치령에 관한 것들로 시작되었다.
결국 아디스아바바의 누군가가 현수를 알아보고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게 뭐냐는 질문에 코리안 빌리지에서 일어난 일들이 댓글로 달린다.
별다른 약품도 없이 침 몇 개로 온갖 질병을 다 치료해 낸 성자라면서 다른 유튜브 주소를 올려놓았다. 현수가 불치병인 진폐증을 치료해 낸 것을 취재한 방송국 동영상이다.
뿐만이 아니다. 현수가 천지건설 직원으로서 이룩해 낸 업적들이 올라왔다.
잉가댐과 수력발전소 건설공사 수주에서 시작했다.
현지 측량을 위해 나선 천지건설 직원들이 반군들에 의해 공격받자 세스나기를 전세 내서 현장까지 간 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이야기도 나와 있다.
아울러 백발백중 사격술에 관한 것도 있다.
그리고 킨샤사 비날리아 간 고속도로 공사, 차얀다 가스전 개발공사 및 파이프라인 연결공사, 아제르바이잔 유화단지 공사 등이 언급되자 감탄사 연발이다.
공사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은 마치 댓글 전쟁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조회수는 20만 남짓인데 달린 댓글의 수효는 40만 개가 넘는다.
극성스런 한국인 키보드 워리어들이 가담한 결과이다.
같은 시각, MLB에 올려놓은 동영상에도 수많은 댓글이 달린다. 전 세계 야구팬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동영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삽시간에 소문이 번졌고, 30개 메이저리그 구단 모두 사무국으로 전화를 걸어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구한 동영상인지를 문의한다.
영상의 출처가 리우데자네이루임을 알려주자 여기저기에서 전용기들이 뜬다.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시속 190㎞짜리 포심도 던질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진 결과이다.
이런 선수라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전무후무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현수의 신상이 밝혀졌다. 이에 각 구단은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현수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러다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 수주를 위해 출장 갔다는 정보를 얻자마자 비행기부터 띄운다.
거대 건설사의 부사장이라 하여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1장 바다의 쓰레기
어젯밤, LA 다저스의 네드 콜레티 단장이 도착해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때 현수는 일행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을 방문할 때마다 문제가 생겼기에 현수는 자리에 앉아 잔만 비우며 일행을 살폈다.
구본홍 대리는 스테파니와 꽤 진도가 나간 듯 밀착 댄스를 추었다. 유민우 대리는 늘씬한 브라질 여성들에게 연신 추파를 던지며 하룻밤 인연을 찾고 있다.
박진영 과장과 최규찬 부장은 칵테일 한 잔씩을 앞에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이 자리에 연희는 없다. 피곤하다며 먼저 객실로 돌아간 때문이다. 현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릴 바엔 차라리 잠을 더 자기로 한 것이다.
현수는 연희의 신상에 문제가 없도록 반지와 목걸이를 점검했다. 모든 마법진은 정상 작동 중이다.
따라서 연희에겐 아무런 문제도 발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마음 편히 구경했다.
“부사장님, 스테이지에 나가셔서 춤도 추고 그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 부장은 더 권하지 않는다. 현수가 유부남이라 그러는가 싶은 것이다.
흥겨운 음악에 몸을 싣고 신 나게 흔들던 구본홍과 스테파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갈증을 느끼는지 시원하게 잔을 비운다. 그리곤 잠시 쉬었다가 또 스테이지로 나간다.
유민우는 아예 돌아오질 않는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 때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부장님, 바닷가 산책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직원들 챙겨주십시오.”
“혼자 가셔도 되겠습니까?”
밤이 되면 치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괜찮을 테니 저는 걱정 마시구요. 산책 마치면 곧장 호텔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그러시죠.”
윗사람이 가겠다는데 어떻게 붙잡겠는가!
현수는 나이트클럽 밖으로 나와 바닷가 쪽으로 걸었다. 늦은 밤이지만 시끌벅적했다. 과연 관광지답다.
이국적인 풍광에 잠시 시선을 준 현수는 천천히 바닷가를 걸었다. 처음엔 파도 소리에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섞여서 들렸지만 바다 가까이 다가가니 파도 소리가 훨씬 더 커진다.
“흐으음! 좋군.”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긴 현수는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뻥―!
소리가 나기에 시선을 돌려보니 모래 위에서 한 떼의 청년이 축구를 하고 있다.
“미구엘! 패스해, 패스!”
뻥―!
손을 번쩍 든 청년에게 공이 가자 능숙한 솜씨로 드리블을 한다. 그라운드가 아님에도 상당한 실력이다.
우르르 몰려왔다 우르르 몰려가는 축구를 하고 있지만 확실히 드리블이 뛰어나다. 이 동네 사람들의 특성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