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3
“뭐야? 여긴 대체 어디지? 바다에 있었는데 갑자기 웬 정글이야? 으앗! 이, 이게 뭐야?”
“헤엑! 말벌이다, 말벌! 모두 피해!”
“아악! 저, 저리 비켜! 오지 마! 아아아아아악!”
타란툴라 호크의 공격이 개시되자 발가벗은 군상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남이야 쏘여서 비명을 지르든 말든 본인부터 피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 못했다.
“으앗! 배, 뱀이다! 왕뱀이야!”
“허헉! 아, 악어잖아? 으아앗! 악어가 쫓아온다!”
“우아아아악! 쥐, 쥐 떼야! 아아아악!”
사방팔방에서 온갖 비명이 난무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
전에 잡혀온 어부, 또는 삼합회 단원들이다. 쥐와 아나콘다, 그리고 악어로부터 피하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
타란툴라 호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온몸에 흙칠을 한 상태이다. 이들 역시 바라보고만 있다.
도움의 손길을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무를 타고 오르라고 하면 하면 마치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기어오를 것이다. 그러면 나무가 부러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쳐다보고만 있다.
같은 순간, 현수는 여러 거점을 거쳐 동해로 되돌아가고 있다. 동해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이다. 마나의 양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동 거리도 비례한 덕분이다.
처음 텔레포트로 이동할 때엔 아홉 개의 거점을 거쳐야 서울과 킨샤사를 오갔다.
킨샤사→우간다→에티오피아→예멘→오만→이란→파키스탄→인도→미얀마→지나→서울.
그러다 깨달음을 얻으면서 마나의 양이 늘어 세 개의 거점으로 줄어들었다.
킨샤사→에티오피아→이란→서울.
지금은 딱 한 군데만 거친다.
킨샤사→이란→서울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여 10분 만에 오거나 갈 수 있게 되었다.
“오셨사옵니까?”
“그래, 어떻게 했어? 다 침몰시켰어?”
“네, 저기.”
실라디아가 가리키는 곳은 보니 부유물이 수북하게 떠 있다. 스티로폼 같은 것들이다.
“실라디아, 그리고 엘리디아, 저기 있는 것들은 나중에 전부 일본 해안 쪽으로 밀어다 놔.”
“침몰한 배들도 그렇게 할까요?”
“…그래. 바다 속에 폐어망 같은 것들이 있거든 그것들까지 모조리 다 일본 쪽으로 옮겨놔. 아, 이 옷들도.”
연옥도에서 가져온 어부들의 옷도 바다에 던져놓았다. 냄새가 끝장이다.
“크으, 냄새! 이것들도 포함이야.”
“네, 알겠사옵니다.”
“자,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텔레포트!”
독도에서 그리 멀지 않는 바다에 당도한 현수는 아까처럼 배들을 침몰시켰다. 컨테이너엔 새로 1,500명이 담겼다.
산소 공급 장치에 남은 산소량이 얼마 안 된다는 말에 나머지는 실라디아와 엘리디아에게 맡기고 다시 한 번 연옥도로 향했다.
먼저 데려다 놓은 놈들은 불과 50분 만에 너덜너덜해져 있다.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지르면서 발광하는 중이다.
벌써 아나콘다와 악어에게 잡혀먹은 놈들도 있고, 굶주린 쥐 떼와 사투를 벌이는 놈들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컨테이너를 꺼내 새로 1,500명을 풀어놓았다. 모두 발가벗겨 의복을 회수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텔레포트했다.
다시 동해로 간 것이다.
“다 끝난 거야?”
“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실라디아는 아주 태평스런 표정이다. 하긴 유조선처럼 대형 선박도 아니니 바람의 정령으로선 쉬운 일일 것이다.
“좋아, 다음은 서해안이야. 텔레포트!”
“네, 주인님. 근데 컨테이너에 산소가 없어요.”
“알았어. 이번엔 그냥 보이는 족족 침몰시키고 끝내자.”
현수와 아리아니, 그리고 실라디아와 엘리디아는 서해로 향하여 열두 무리의 불법 조업 어선을 모조리 수장시켰다.
실라디아는 풍랑을 일으켜 침몰시키는 방법을 썼는데, 어선끼리 충돌시켜 산산조각 나도록 했다.
다시는 어선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폐기한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제법 걸렸는데, 그사이에 구조신호를 보낸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서진 배들의 잔해는 모조리 지나 해군기지 가운데 하나인 청도항 앞바다로 몰아넣으라 했다.
서해엔 엄청난 쓰레기가 떠다닌다.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것도 있지만 지나에서 온 것도 상당히 많다.
백령도, 자월도 등의 섬들이 이것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기에 부유물은 물론이고 바다 속 쓰레기까지 모조리 지나의 항구로 이동시키도록 했다.
폐어망, 폐어구 등이다.
엘리디아에게 이 일이 끝나면 지나에서 버린 쓰레기가 서해를 건너 한반도까지 오는 것을 차단하라고 했다. 이를 위해 노에디아는 해저지형을 손봐줄 것이다.
구조적으로 쓰레기 유입을 막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오늘 하루 현수 일행으로 인해 침몰한 불법 조업 지나 어선은 모두 9,179척이다.
한 척당 13명씩 있었으니 약 11만 명이 익사했다. 3,000명은 연옥도에서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호의 연민도 가져줄 필요가 없다.
남의 나라에 몰래 들어와 싹쓸이 조업으로 어족자원의 씨를 말린 놈들이니 본인들도 씨가 말라봐야 할 것이다.
“당분간은 불법 조업을 못하겠군.”
리우데자네이루로 되돌아온 현수가 중얼거린 말이다.
같은 시각, 지나 해양부엔 비상이 걸렸다.
빗발치는 구조 요청 때문이다. 가용한 모든 선박을 띄워 급히 사고 해역으로 보냈다.
동해의 두 군데는 포기했다. 지나에서 거기까지 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신 황해의 열두 곳으로 고속정들을 급파했다.
한국과 일본의 영해를 침범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외교부까지 나서서 양해를 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동해에서 조업하던 배들에 대한 구조 요청을 한일 양국에 했다. 알았다고는 했지만 그곳 역시 가봐야 상황 끝일 것이다.
울릉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경북 울진의 후포이다. 직선거리로 159㎞이다. 강원도 동해에선 161㎞ 떨어져 있다.
해군 1함대 소속 고속정 참수리호는 38노트(66.6㎞/h)로 출동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고 해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이 시간이면 구명동의를 입지 않은 이상 모두 익사다.
아무튼 한국 해군은 협조 요청을 받고 곧바로 참수리호를 출동시켰다. 일본에서도 순시선을 보낸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세 시간 이상 걸려야 사고 해역에 당도한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어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해에 있던 지나 어선은 모두 2,159척이다.
승선 인원만 약 28,000명인데 이들 중 절반이 살아 있다 하더라도 14,000명을 배에 태워야 한다.
참수리호 같은 고속정은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이다. 하여 한국과 일본 양국은 가용한 선박을 다 보내야 할 판이다.
물론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 3,000명은 실종이고, 나머지 전원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구명동의를 입은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실라디아가 일으킨 찬바람으로 인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12장 시범구를 부탁해요
리우데자네이루 호텔 객실로 되돌아온 현수는 문에 걸린 씰 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곤 다시금 룸서비스를 부탁했다. 이번엔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이로써 알라바이는 확실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최 부장님도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하하! 네, 모처럼 마음 놓고 푹 잤습니다.”
최규찬 해외영업부장은 상사가 된 현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번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출발 직전까지 아예 회사에서 숙식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어제 순조롭게 프레젠테이션을 마쳤고, 준비한 리셉션까지 잘 마무리되었다.
현수가 개인적으로 제안한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해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의 수주는 9부 능선을 넘은 듯하다.
그렇기에 어젯밤 즐거운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였고, 모처럼 아주 푹 잤다.
“아침 식사하러 갈까요?”
“네, 그러시죠.”
현수와 최 부장이 호텔 식당으로 들어서니 연희가 샐러드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 구본홍과 스테파니, 유민우와 박진영은 과음한 탓에 아직 안 온 듯하다.
“아, 죄송합니다. 조금 늦잠을 잤습니다.”
“괜찮아요.”
박진영 과장이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부장과 부사장보다도 늦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래, 괜찮네. 음식 맛있네. 특히 베이컨이 아주 좋군.”
최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진영은 얼른 한 접시 가져다 놓고 먹는다.
“오늘 결판이 나는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프랑스의 빈치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내일은 미국의 벡텔이 해요. 이 회사들도 오랜 시간 준비했다는 걸 아는데 덜컥 발표하진 않을 겁니다.”
“아, 그렇지요. 그럼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요. 발표할 때까지 푹 쉽시다. 그동안 고생했잖아요. 오늘도 바닷가에서 놀거나 아니면 코르코바도 언덕 위의 예수상을 보러 갈까요?”
“……!”
진심이냐는 표정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든 구경합시다. 따로 움직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구요. 구 대리와 스테파니는 그렇겠죠?”
이곳에 와서 불붙은 연인이다. 회사 동료나 상사 곁에서 눈치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에 배려하려는 것이다.
“저희야 좋지요!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회사 돈 쓰는 건데요, 뭐.”
피식 웃어준 현수는 음식을 충분히 즐겼다.
구본홍과 스테파니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도로 객실로 갔다. 밤새 쏘다니다 지쳐 잠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점심나절이 되면 다시 쌩쌩해져 돌아다닐 것이다.
늦잠을 잔 유민우 대리는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식사 후, 일행은 해발 700m짜리 코르코바도 언덕 위로 올라갔다. 유명한 관광지라 가본 것이다.
안개가 끼어 리우데자네이루의 모습이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욱하던 안개는 금방 걷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가지가 보이고, 멀리 뾰족하게 솟은 돌산도 보인다. 해발 396m의 돌산 ‘팡데아수카르’이다.
영어로는 슈거로프산(Sugarloaf Mountain)이라 부른다. 제빵용 설탕 덩어리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관광열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이 면담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현수는 일행과 헤어져 곧장 시청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김 부사장님!”
“네, 또 뵙습니다, 시장님.”
“리우의 인상은 어떤가요?”
“정말 좋았습니다.”
의례적인 대답이 아니라 실제로 좋았다. 이국적인 풍광이 마음에 든 때문이다.
“좋게 봐주시니 다행입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에두아르도 파에스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의 안내를 받아 소파에 앉으니 시원한 음료를 내온다.
“대통령님의 한 번 더 확인하라는 지시가 있어 불편하겠지만 걸음하시라 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아, 그거요? 제가 월드컵에 출전하면 아무래도 이곳에서 일하기가 좀 그럴 것 같습니다.”
현수의 말엔 뼈가 있다.
브라질이 A조 1위가 되고 대한민국이 H조 1위가 되면 결승전에서나 맞붙는다. 그런데 출전하면 불편하다는 뜻은 브라질로부터 승리를 쟁취한다는 의미이다.
웬만한 사람이 이런 이야길 했으면 화를 냈을 것이다.
호날두나 메시도 브라질에선 이런 말을 하면 총 맞을 확률이 있다. 그런데 현수는 축구의 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장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수의 경기 영상을 분석한 바 있다.
드리블도 제지할 수 없고, 강력한 킥은 더더군다나 막을 수가 없다. 현수가 출전하면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이 그를 에워싼 채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10 : 6의 경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