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74화 (1,073/1,307)

# 1074

골키퍼를 빼고 계산해 보면 9 : 5이다.

아무리 브라질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절반 정도 되는 인원으로 한국대표팀 선수들을 이긴다는 건 장담할 수 없다.

현수를 놔두면 양 떼 속에 호랑이 한 마리를 풀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가 될 것이다. 하여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게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출전하지 않는다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재개발 공사는 누가 해도 한다. 공사비도 지불해야 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걸 천지건설에 주는 대신 월드컵 우승을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수가 출전하지 않는 대가로 공사를 주었다고 하면 프레젠테이션을 한 건설사들은 배가 아프겠지만 그 나라 대표팀들은 좋아할 것이다.

현수가 출전하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절대 강자이다. 아니라면 조별 예선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H조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같은 조에 속한 알제리, 러시아, 벨기에가 가장 먼저 환호성을 터뜨릴 것이다.

어젯밤 브라질리아에선 긴급회의가 개최되었다.

공사를 주는 대신 현수의 출전을 막는 편을 택하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지금은 그걸 최종 확인하는 자리이다.

“한국과 브라질의 우호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제가 출전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 잘 알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하하하!”

시장은 앓던 이라도 빠졌는지 환히 웃는다.

“오늘도 프레젠테이션이 있지요?”

“네, 그렇기 않아도 곧 시작되기에 가야 합니다. 앞으로 사흘만 기다려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에구, 무슨 말씀을……. 우리 국민의 기가 꺾이지 않도록 배려해 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시청을 나온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주영이 녀석이 사고를 내는 바람에 수주하는 셈이군.”

‘바람이 불면 옹기장수가 돈을 번다’는 말이 있다.

바람과 옹기가 별 관계가 없음에도 이런 말이 만들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논리 때문이다.

1. 바람이 불면 옹기를 이고 가던 처녀의 치맛자락이 휘날려 속옷이 보이게 된다.

2. 화들짝 놀라 이를 막으려 손을 내리면 이고 있던 옹기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3. 물을 길어 오려면 새 옹기가 필요하니 옹기장수가 돈을 번다는 뜻이다.

리우데자네이루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사회인축구팀과의 경기가 오늘의 결과를 빚어냈다.

그렇기에 실소를 지은 것이다.

* * *

“저어… 김현수 부사장님이시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는지요?”

“…누구시죠?”

“아! 네드 콜레티라 합니다. LA 다저스의 단장이지요.”

네드 콜레티 단장이 건넨 네임 카드를 받아 든 현수는 자신의 것을 건네곤 그를 바라보았다. 야구와 아무 관련도 없는 자신에게 왜 시간을 내달라는지 궁금해서이다.

“천지건설의 김현수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게 용무가 있으신가요?”

“며칠 전 엘리스를 만나셨지요?”

“아, 그것 때문에……?”

“실례가 안 된다면 공을 더 던져주실 수 있나 해서요.”

“네? 그게 무슨……?”

현수는 프로야구 선수가 될 마음이 없다. 그런데 대뜸 이런 요구를 하니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다저스 구장엔 다저스의 역사를 기록하는 박물관 및 전시실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데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서 본 것이다.

“저희는 거기에 김 부사장님의 투구 영상을 올려놓았으면 합니다.”

“네……? 저는 다저스 선수가 아닌데요?”

“김 부사장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다저스엔 박찬호, 최희섭, 서재응이 있었고, 현재는 류현진 투수가 있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LA에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한국인이 많이 오니 남겨놓으면 어떻겠느냐는 의미인 듯싶다. 하지만 물어서 확인하진 않았다.

“……!”

“김 부사장님의 투구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마추어가 찍어서 영상의 질이 좀 떨어집니다.”

“저를 찍었어요?”

“네, 핸더슨이라고 더블A팀 소속 투수가 찍었습니다. 그런데 부사장님을 찍으려 한 게 아니라 엘리스의 재활훈련 장면을 찍으려던 겁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전 동의 없이 촬영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줄 수 있기에 한 말이다.

“흐음! 그렇군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기에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 구장엔 많은 한국인이 오갑니다. 김 부사장님의 투구 영상을 보관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합니다.”

“에구, 영광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요. 그나저나 저는 투구 폼도 제대로 모릅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헨더슨이 친절하게 알려드릴 테니까요. 그런데 시간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으음, 저는 지금도 괜찮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시간 죽이는 중이었다.

“아! 그래요? 그, 그럼 가시죠.”

네드 콜레티 단장이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그러죠.”

LA 다저스에서 섭외한 곳은 마라카나(Maracana) 축구장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엔 쓸 만한 야구장이 없어서란다.

그런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25만 명이나 수용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잠실에 있는 올림픽주경기장의 수용 인원은 10만 명이다.

현재는 곧 있을 월드컵을 치르기 위한 마무리 공사 중이지만 특별히 양해를 얻었다고 한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축구장 골대 뒤쪽에 아직 잔디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곳이 있다. 그곳에 투수판[Pitcher’s plate]을 박아 넣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투수가 투구할 때 중심 발을 반드시 대야 하는 직사각형의 흰색 고무판이다.

내야의 중앙부에 솟은 마운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크기는 가로 61cm, 세로 15.2cm이며 홈플레이트로부터 맞은편 2루 쪽으로 18.44m 떨어진 곳에 있어야 한다.

현수는 라커룸에서 LA 다저스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상태이다. 백넘버는 00이며, HS―Kim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현수가 승낙할 것이라 예상하고 준비해 온 모양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치수도 거의 맞는다.

촬영장비가 세팅되는 동안 현수는 핸더슨으로부터 투구 동작에 대한 강습을 받았다. 그립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포심과 투심, 커터, 슬라이더, 그리고 싱커와 커브를 배웠다. 모든 투구를 촬영하되 가장 멋진 것으로 편집한다기에 여러 구질을 배운 것이다.

현수는 던진 공이 묘한 각도로 꺾이는 걸 보고 흥미를 느꼈다. 하여 조금씩 속력을 높여가며 공을 던졌다.

포수는 LA 다저스의 주전포수 AJ 엘리스가 맡았다.

휘이익―! 퍽억―!

“나이스 볼! 조금만 더 세게!”

현수가 던진 공을 되돌려 주며 엘리스가 외친 말이다. 오늘 엘리스는 단단히 무장하고 나왔다.

소형 겔 팩 여러 개와 상당히 많은 거즈이다.

현수의 강속구를 감당할 방법을 찾다가 꾀를 낸 것이다.

거즈로 싼 겔 팩을 미트 속에 넣으면 강속구를 받을 때 팩 속의 겔과 거즈가 1차 완충작용을 해준다.

힘이 너무 강하면 겔을 포장한 비닐이 터지면서 또 한 번 완충작용을 해줄 것이다. 그럴 경우 손과 미트에 겔이 묻기는 하겠지만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면 그만이다.

하여 여러 개의 미트와 겔 팩, 그리고 충분한 거즈를 준비한 상태이다.

현수는 핸더슨과 엘리스의 도움을 얻어 30개 정도의 공을 던졌다. 그랜드 마스터이자 희대의 천재답게 금방 투구 폼을 배우고 익혔다. 그러자 구속이 확실히 빨라진다.

어깨 힘이 아닌 온몸으로 던지기 시작한 때문이다.

‘살살. 힘 조절, 힘 조절! 너무 세면 안 돼.’

현수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흥에 겨워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지면 엘리스는 죽을 수도 있다.

시속 300㎞가 넘는 공은 흉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여 살짝 힘을 빼고 공을 던졌다.

쒜에엑! 퍼어억―!

“크윽! 자, 잠깐만!”

시속 160㎞를 훌쩍 넘기자 손바닥이 얼얼하다. 강한 회전이 걸린 돌직구가 너무도 위력적인 때문이다.

엘리스는 얼른 손을 비비곤 거즈로 싼 겔 팩을 넣었다.

“앞으로 열 개만 더 받아보고 촬영합시다. 우선 슬라이더부터 던져보세요.”

엘리스의 말에 시선을 돌려보니 핸더슨은 슬라이더의 그립을 보여준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미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스트라이크 존을 그려놓았다.

A B C D

E F G H

J K L M

N O P Q

스트라이크 존은 16분할한 것이다.

이번에 던질 공의 궤적은 D보다 살짝 바깥 쪽 위로 향하는 직구처럼 가다가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급격하게 N쪽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잇!”

쒜에에엑! 퍼어억―!

“스, 스트라이크! 나이스 볼!”

엘리스는 초보자임에도 꺾이는 각도가 예리함에 깜짝 놀랐다. 류현진의 슬라이더보다도 낫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투심을 던져보십시오.”

“그러지요.”

이번에도 핸더슨이 그립을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A로 향하던 공이 Q로 간다 생각하고 던졌다.

쒜에에에엑! 퍼억―!

“크으윽―!”

슬라이더보다 확실히 속도가 높아서 그런지 엘리스가 나직한 비명을 토한다.

손바닥을 몽둥이로 맞은 듯한 느낌이 든 때문이다.

주르륵―!

미트 속의 겔 팩이 터져서 흐른다. 이걸 닦아내고 다시 세팅하느라 잠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식으로 투구 연습을 마친 현수는 여섯 대의 카메라 앞에서 공을 던졌다. 이 중 두 대는 초고속카메라이다.

쒜에엑! 퍼어억―!

“크아악―!”

주르르륵―!

네드 콜레티 단장은 스피드건에 찍힌 속력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뜬다.

방금 던진 투심의 구속은 183.7㎞/h였다.

인류가 단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구속의 공을 현장에서 본 것이다.

엘리스는 손바닥을 흔들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겔 팩을 두 개나 넣었고 둘 다 터져 버렸는데도 아프다.

얼얼한 게 아니라 아픈 것이다.

고통스런 표정이지만 이제 남은 건 1구이다. 가장 빠른 포심, 이것만 받아내면 오늘의 촬영은 끝이다.

“으으! 괜히 그걸 보내서…….”

핸더슨이 실수로 엔터키를 누르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고통은 없었을 것이기에 중얼거린 말이다.

잠시 후, 엘리스는 다시 포구 자세를 취한다.

“자! 이번엔 포심입니다. 마지막이니 힘 좀 써보세요.”

현수는 핸더슨이 보여주는 그립을 확인하곤 미트를 바라보았다.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 존의 한복판입니다.”

현수는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공이 어디로 향할 건지를 이야기했다. 엘리스는 걱정 말고 던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천천히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곤 호흡을 고르고 목적지를 바라본 후 공을 던졌다.

쒜엑―! 퍼어어억―!

“크흐으으윽―!”

엘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잡았던 공을 떨어뜨린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겔 팩이 터지면서 내용물이 밑으로 흐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네드 콜레티 단장은 스피드건의 숫자에 시선을 준다.

192.6㎞/h!

‘허어! 사람인 거 맞아? 어떻게 이런 공을……?’

네드 콜레티 단장은 반대편에 서 있는 프런트에게 시선을 준다. 스피드건을 확인해 보았느냐는 뜻이다.

오늘의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준비한 스피드건도 여섯 개다. 각각의 카메라엔 공을 던진 후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가 보이도록 세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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