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75화 (1,074/1,307)

# 1075

프런트는 들고 있던 스케치북에 자신이 본 스피드건의 결과 수치를 써서 보여준다.

192.6㎞/h

동일한 결과이다. 둘 다 망가진 게 아니라면 이 수치는 진짜이다.

단장은 엘리스에게 다가가 고생 많았다고 말하는 현수를 바라본다. 마음 같아선 납치라도 하고 싶다.

다저스 홈구장 투수판 위에 꽁꽁 붙들어 매놓고 싶은 존재이다. 적어도 홈구장에선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엘리스를 보았다.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

주전 포수가 저러니 다른 포수들은 어떠하겠는가!

단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가질 수 없는 투수라는 것을 이제야 인식한 것이다.

녹화를 마친 후 나와 보니 박찬호와 류현진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다. 가급적이면 구단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벌써 다 찍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저녁 식사는 구단에서 냈다. 현수는 연희를 동반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현수가 돌아가자 단장이 묻는다.

“핸더슨, 자네가 보기에 투수로서 어땠어?”

“김 부사장이요? 에구, 말도 마세요. 야구를 처음 한다는데 거짓말 같았어요. 투구 동작이 몸에 쉽게 익는 게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거의 교과서였어요. 제가 가르쳐 준 바로 그 자세로 던지더군요. 릴리스 포인트도 그랬구요. 그 사람은 운동도 천재예요, 천재!”

네드 콜레티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보기에도 현수의 투구 폼은 이상적이었다.

받은 사람은 어떨까 싶어 엘리스에게도 물었다.

“직접 공을 받아보니 어때?”

“으으! 진짜 죽을 뻔했어요. 손바닥뼈가 모조리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특히 마지막 공은… 으으! 그건 생각하기도 싫어요. 너무 아팠어요.”

엘리스는 현수의 마지막 공을 보지 못했다.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던지나 보다 하는 순간 통증이 느껴졌다.

정말 뼈가 으스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아팠다.

겔 팩과 거즈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무릎 부상이 아니라 손바닥 부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했을 것이다.

“아주 객관적인 대답을 해줘. 그 친구, 투수로서 어때?”

“공은 엄청 빠르고 위력적이지요. 컨트롤도 수준급이에요. 아까 보셨잖아요. 말하는 대로 공이 들어오는 거.”

“맞아요. 구속은 메이저리그 최고지요. 컨트롤도 그만하면 95점은 넘어요. 그런데도 제게 점수를 매기라면 전 빵점을 주겠어요.”

“빵점? 구속도 좋고 컨트롤도 수준급인데?”

네드 콜레티 단장은 말에 어폐가 있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이에 엘리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한 경기를 치르려면 포수만 아홉 명이 있어야 해요. 그 친구는 포수 킬러라구요.”

“아……!”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은 뾰족한데 이를 받아줄 방패가 시원치 않다는 의미를 알아들은 것이다.

“그 영상 편집은 어떻게 할까?”

“제 생각엔 두 가지 버전으로 전시하면 좋겠어요.”

“두 가지?”

“네, 처음 연습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부터 모두 녹화했다고 했죠?”

“그래. 그거 찍은 친구가 다큐멘터리 전문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녹화한 것도 있어.”

하여 터진 겔 팩을 처리하는 것도 찍혀 있다. 공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것과 편집본을 모두 전시하면 조작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싹 사라질 거예요.”

“…그렇군.”

네드 콜레티 단장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현수를 영입하는 걸 깨끗이 포기했다. 대신 동영상 두 개를 얻었다.

스타디움에 전시하면 많은 사람이 와서 볼 것이다.

현수를 만나기 위해 전용기를 띄운 것부터 이곳에서 지불한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는 수입이 발생할 것이다.

복사본은 없고 유투브에도 올리지 않을 것이니 영원히 독점하는 영상이기 때문이다.

“흐흐! 방송국에서도 몸살을 앓겠군.”

네드 콜레티 단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왕에 왔으니 내일은 코파카바나의 해변을 걸어보고 가야지.”

현수 덕에 한바탕 몸살을 앓은 기분이지만 왠지 상큼한 느낌이다.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온 현수는 연희와 불타는 밤을 보냈다.

당연히 씰 마법과 사일런트 마법이 구현된 상태이다.

구본홍과 스테파니는 밤바다를 거닐며 밀어를 주고받는 사이로 진전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이벤트로 프러포즈를 한 결과이다.

구본홍은 이를 위해 한국의 웹사이트를 섭렵했다. 각종 이벤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찾느라 그랬다.

이렇게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났다.

* * *

“이제 우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를 누가 주관할지에 관한 최종 결과를 발표할 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세르지우 카브랄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는 단상 옆으로 나와 객석에 앉아 있는 세계 유수의 건설사 임직원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그리곤 다시 단상으로 돌아가 마이크를 잡아당긴다.

“먼저 이 공사 수주를 위해 애써주신 여러 건설사 관계자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모두들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지금은 인사치레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희는 이 공사를 누구에게 일임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50명의 전문가 집단으로 하여금 개별항목에 대한 점수를 매기라고 하였습니다. 전문가 집단에는…….”

주지사는 누가 심사했는지 몇몇의 이름을 언급한다.

브라질 사람도 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전문가와 저명한 교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권위도 있음을 알리려는 의도이다.

객석에 앉아 있는 건설사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리우데자네이루 당국이 공정하게 심사했을 것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다.

13장 기레기의 최후

“전문가 집단 이외에 저와 실무 책임자인 에두아르도 파에스 리우데자네이루 시장 역시 심사에 참여하였습니다.”

둘은 건축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객석이 잠시 술렁인다. 둘이 주관적으로 매긴 점수의 포션이 크면 결코 공정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주지사는 말을 이었다.

“전체 점수는 1,000점을 만점으로 기준하였고, 저희 둘이 매긴 점수는 각각 5점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는 점수가 1%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100점 만점으로 기준하면 1점을 추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잠시 술렁이던 객석은 다시 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저희는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한 열 개 업체에 대한 최종 심사 결과…….”

주지사는 잠시 말을 끊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약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모든 업체가 상당히 많은 돈을 썼을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계획 설계를 하는 등의 일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돈이 소요되는 일이다.

그런데 발표를 하면 선정된 업체는 공사를 수주하는 것이니 상관없지만 나머지 아홉 개 업체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지만 쉽게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모두들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문밖엔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자국 업체가 공사를 수주할 경우 큰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주지사는 다시 한 번 객석을 둘러본 후 준비된 원고에 시선을 주었다.

“저희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는… 한국의 천지건설이 맡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와아아아!”

현수와 최규찬 부장, 박진영 과장, 강연희 과장, 구본홍 대리, 유민우 대리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반면 나머지 아홉 개 업체의 임직원들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심 수주 가능성을 높게 잡고 있었던 듯하다.

주지사가 물러나자 에두아르도 파에스 시장이 마이크 앞에 선다.

“원하시는 업체에 한하여 어떻게 심사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과정과 결과를 공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시장 역시 자리를 떴다. 이제부터 곤혹스런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축하합니다, 천지건설!”

시선을 돌려보니 벡텔의 부사장이 바라보고 있다.

“감사합니다. 애쓰셨습니다.”

“우리도 축하해요.”

이번에 손을 내민 사내는 독일의 호흐티에프(HOCHTIEF AG)사의 전무이사이다.

“감사합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무어라 위로를 하겠는가! 하여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만 정중히 숙였다.

그런데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 출전을 포기했다는 소문 들었습니다.”

“아, 네. 제가 너무 바빠서요.”

현수의 대답을 들은 독일인은 싱긋 미소 짓는다.

“덕분에 독일이 우승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다. 현수가 출전하면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이 독일 축구계의 분석이었던 것이다.

“그런가요?”

“나도 고맙습니다. 이번엔 독일이 우승할 겁니다.”

이 대목에서 뭐라 하겠는가! 현수는 환히 웃어주었다.

“아, 네.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벌컥―!

팍, 팍, 파파파팍!

현수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린다.

“S일보 김철호 기자입니다. 이번 공사를 수주하였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K신문 강인환입니다. 공사 수주 금액은 얼마인지요?”

“SBC방송 이다혜 기자입니다. 이번에도 김현수 부사장님의 공이 가장 컸던 겁니까?”

“H일보 황창현입니다. 공사는 언제부터 시작됩니까?”

…….

문을 열자마다 빛의 세례를 안기더니 그다음엔 막무가내로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그다음에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궁금한 것을 먼저 대답해 달라는 듯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시선을 돌려보니 다른 나라 기자들은 덜하다. 물론 공사 수주에 실패했으니 뉴스라 할 것도 없어 그런지는 모른다.

아무튼 현수는 기자들의 난리법석에 슬쩍 화가 났다. 상대에 대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수는 한국에 있는 동안 신갑제라는 기자를 고소했다.

직접 고소장을 제출한 건 아니다. 이실리프 그룹 고문변호사인 주효진 변호사가 그 일을 맡았다.

아무튼 명예훼손을 당했으니 고소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현수만 고소를 한 게 아니라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 역시 고소장을 제출했다.

해당 신문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손해배상 청구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현수는 기자와 언론사 모두에게 각각 1,000억 원씩 배상하라고 했다. 러시아 대통령이 임명한 수교국 전체에 대한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니 과한 액수라 아니라는 생각했다.

테리나는 이들에게 각각 100억 원씩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증조부가 누군지를 밝혔다.

브레즈네프 전 공산당 서기장의 이름이 나오자 언론사와 신갑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재판 결과에 따라 기레기 신갑제는 알거지가 되고, 해당 언론사는 폭삭 망하게 될 것이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그럴듯하게 각색하거나 침소봉대 내지는 ‘경악!’, ‘충격!’ 이따위 제목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언론사는 퇴출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실리프 그룹의 계열사 전부는 물론이고 거래 업체까지 총동원하여 해당 언론사의 광고를 끊었다.

현수가 몸담고 있는 천지건설을 비롯하여 천지그룹 계열사 전체와 백두그룹 전체, 그리고 태백그룹 전체와 거래 업체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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