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77화 (1,076/1,307)

# 1077

1장 인사드려!

“아! 오랜만입니다, 사모님!”

현수와 먼저 시선이 마주친 엘리자베스 아폰테는 아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병마의 고통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켜 준 장본인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래요, 미스터 킴. 오랜만이에요. 출장 갔던 일은 잘되었다면서요?”

“하하, 네. 여러분이 염려해 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가 짐짓 너스레를 떨자 엘리자베스가 환히 웃는다. 이때 곁에 있던 아폰테 사장이 한마디 거든다.

“허허, 어서 오게.”

“네, 사장님.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시죠?”

“……!”

아폰테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번 안아보자는 몸짓을 한다. 현수는 두 팔을 벌려 깊이 포옹했다.

보면 반가운 얼굴이니 기꺼운 마음이다.

포옹을 풀자 매부리코 세바스티앙이 웃으며 다가선다.

“나도 있네.”

“하하, 네, 세바스티앙 부회장님. 잘 계셨죠?”

“그려! 참, 자네 덕에 소원 풀었어.”

“네? 그게 무슨……?”

“다이안의 서연이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지릴 뻔했네. 하하하!”

세바스티앙은 아주 환히 웃는다. 서연의 가장 열렬한 삼촌팬 중 하나이니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이번 결혼식 축가는 5인조 아이돌 걸그룹으로 시작해서 단숨에 전설의 반열에 오른 다이안이 총출동했다.

리더 서연을 비롯하여 예린, 정민, 연진, 세란이다.

각각의 본명은 이서연, 김예린, 이정민, 신연진, 홍세란이다. 여느 걸그룹처럼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꾼 게 아니라 모두 본명을 예명으로 쓴 케이스이다.

이들이 부른 첫 곡은 첫 만남이다. 결혼식을 올리는 두 쌍의 신랑 신부에게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을 노래로 표현해주었다.

두 번째 곡은 공전의 히트곡 ‘지현에게’이다.

이 곡은 특별히 두 번 불렀는데 가사 중 ‘지현’을 ‘인경’이라 바꿔 불러줬고, 베아트리체를 바라볼 땐 ‘베시’라는 애칭으로 개사해서 노래해 주었다.

강전호와 한창호는 멍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카메라의 마사지를 받아 다들 선녀처럼 예뻐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신랑 모두 신부의 날카로운 손톱에 옆구리를 꼬집히는 불상사를 당했다.

당연히 화들짝 놀라 신부를 바라보았고, 삐친 신부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덕분에 하객들 전부 깔깔대고 웃는 유쾌한 결혼식이 되었다.

축가가 불리기 전에 신랑들은 신 나는 프러포즈를 했다. 배경음악은 현수가 작사·작곡한 다이안의 다음 곡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유쾌한 프러포즈할 때 브루노 마스(Bruno Mars)의 Marry you가 많이 사용된다.

현수는 아르센 대륙의 곡 중 비교적 템포가 빠른 곡을 골라 더 빠르고 경쾌하게 편곡했다.

나는 너를 보고 한눈에 반했어

그니까 제발 너랑 결혼할 수 있게 해줘

너, 나랑 결혼 안 하면 손해인 거 알아?

나, 알고 보면 상당히 괜찮은 남자야

그러니까 내가 손 내밀 때 얼른 잡아

같이 살면서 행복하게 해줄게

너랑 결혼하고 싶어. 어서 승낙해

가사는 지극히 담백하지만 멋진 후렴구와 반복된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쾌한 곡이다.

신랑들은 쑥스러움을 참고 멋진 율동으로 신부들을 감동시켰다.

결혼식이 끝난 후 성대한 피로연이 베풀어졌다. 음식 맛이 좋아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들 모두 칭찬 일색이었다.

흥겨운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양평 저택의 산책로를 돌며 구경했다. 잘 가꿔진 조경, 싱싱한 수목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경기도엔 이름난 수목원이 많다. 가평엔 아침고요 수목원이 있고, 시흥엔 용도 수목원이 있다.

포천엔 수목원 프로방스가 있고, 양평엔 세미원, 남양주엔 산들소리 수목원, 춘천엔 제이드가든 수목원 등이 있다.

이 중 아침고요 수목원은 약 10만 평이다.

양평 저택은 약 22만 평이나 된다.

대부분이 자연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는 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다.

사람들은 솜씨 좋은 정원사들 덕분에 눈이 호강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택 인근은 숲의 요정 아리아니의 가호와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신성력이 아낌없이 베풀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저택에 설치된 마나 집적진으로 인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마나의 농도가 짙다.

그렇기에 모든 식물이 아주 싱싱하다. 하여 멋진 한국식 정원과 서양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어머! 세상에! 여보, 저기 좀 봐요.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우리 여기서 사진 찍어요. 네? 어서요.”

엘리자베스가 아폰테 사장과 함께 거닐며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이날 찍은 사진만 수백 장을 넘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폭신한 잔디가 깔린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던 사람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풀을 뜯고 있는 사슴들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늠름한 뿔이 달린 커다란 수사슴 하나와 그보다 약간 작은 암사슴 둘, 그리고 어린 새끼 사슴 네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야생은 아니고 보기 좋으라고 사슴농장에서 사다 풀어놓은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은 제한된 곳 이외에선 풀을 뜯어 먹을 수 없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리노와 셀다 때문이다.

현재 풀을 뜯고 있는 곳은 아리아니의 가호를 받아 다른 어느 곳보다도 생장률이 좋은 곳이다. 그러니 굳이 리노와 셀다 때문이 아니라도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먹이가 부족해지는 겨울엔 사료를 공급할 예정이다.

어쨌든 리노와 셀다는 햇볕을 즐기는 중이다.

이 녀석들의 곁에는 갓 태어난 새끼 네 마리가 재롱을 부리고 있다. 토실토실하면서도 아주 귀여운 녀석들이다.

사람들 눈에는 길들여진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야생 늑대이다. 그것도 아주 강하다.

하지만 사슴 가족을 공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하도록 현수로부터 명을 받은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숲에서 온 야생동물로부터 사슴 가족을 보호할 것이다.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없다.

물론 현수나 저택을 경호하는 전직 스페츠나츠 단원들로부터 명령이 떨어지면 맹렬히 달려든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은밀히 침투하려는 자들은 제외된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서면 그야말로 아작이 난다. 잡아먹히지는 않겠지만 피투성이가 되는 걸 결코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두 명의 사내가 야음을 틈타 은밀히 저택으로 침투하다 리노와 셀다에게 걸렸다.

경고를 받았을 때 물러났으면 괜찮았을 것이나 이를 무시하고 리노와 셀다를 공격했다. 그 결과는 둘 다 200여 바늘을 꿰맨 채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둘 다 지나인이며 쉐리엔과 항온의류의 비밀을 훔치려 침투했다고 한다.

이들은 국정원으로 끌려갔다. 국안부에서 파견한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물론 극구 부인했다.

어쨌든 불법 밀입국을 했으므로 이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됐다. 또한 야간에 사람이 주거하고 관리하는 건물에 두 명 이상이 흉기를 소지한 채 침입했다. 그리고 재물, 또는 사업상 비밀을 강탈하려 했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형에 처해지는 강도죄로 처벌을 받게 됐다.

리노와 셀다가 없었어도 스페츠나츠 출신 경호원들에게 걸려 작살이 났을 것이다.

이들의 침투를 눈치채고 덮치려는 찰나 리노와 셀다가 먼저 달려들어 아작을 내놓은 것이다.

어찌 되었든 리노와 셀다는 이 저택의 파수꾼이다. 예민한 감각으로 22만 평이 넘는 구역을 책임지고 있다.

사슴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주기 위한 존재이다.

어쨌거나 결혼식 이후 아폰테 사장 등은 현수를 만나기 위해 빈관에 머물렀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닌지요?”

“늦기는, 그쪽 일정이 그런 건데. 괜찮네. 일이 먼저이니 말일세. 그나저나 잘돼서 정말 다행이야.”

현수는 아폰테 사장, 그리고 세바스티앙 부회장과 마주하고 있다. 늘 그렇듯 아주 맛있고 몸에 좋은 쉐리엔 주스를 앞에 두고 있다.

입에 딱 맞는지 벌써 두 번이나 청해서 마셨다.

“여러분이 걱정해 주신 결과지요. 그나저나 제가 뵙자고 한 건 일 때문입니다.”

“일? 무슨 일?”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가스와 원유를, 에티오피아에선 원유를 실어올 겁니다. 상당 기간 동안이요. 그리고 브라질에선 주석, 구리, 망간, 크롬, 중정석, 석영, 수정 등을 가져올 거구요.”

“흐음! 그래서?”

아폰테 사장은 뒷말이 뭔지 짐작된다는 표정이다.

“제가 알기로 MSC사와 CMA 오머런에는 화물선과 유조선이 있습니다. 맞지요?”

“그렇다네.”

“그것들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려구요.”

현수의 표정을 읽은 아폰테는 피식 실소를 터뜨린다.

“겨우 그거 이야기하자고 보자 한 건가?”

“겨우라니요? 천지건설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긴… 자네 말도 일리는 있어.”

아폰테 사장과 세바스티앙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화물이란 게 시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요즘처럼 국제 시세가 요동칠 땐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세바스티앙 부회장이다.

“우리 CMA 오머런은 적극 협조하지.”

아폰테도 고개를 끄덕인다.

“MSC도 마찬가질세. 자네가 천지건설에 있는 한 최우선적으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하겠네.”

“고맙습니다, 두 분.”

현수는 깊숙이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곤 가방 속에 담긴 것들을 꺼냈다. 주섬주섬 계속해서 꺼내놓자 아폰테와 세바스티앙은 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모두 다 꺼내놓은 현수는 상자 두 개에 그것들을 집어넣었다. 가로 네 칸, 세로 네 칸으로 된 상자는 벨벳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건 바이롯이라는 겁니다.”

“바이롯? 처음 듣는군.”

“그러실 겁니다. 오로지 이곳에만 있는 거니까요.”

“그게 뭔가?”

아폰테 사장은 이슬이 떨어지는 형상을 본뜬 듀 드롭 타입 스윙 병을 보고 몹시 궁금했나 보다.

현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시골 장터에서 ‘애들은 가라!’를 외치는 약장수가 회심의 일갈을 터뜨리기 전에 짓는 미소와 닮았다.

‘이거 한번 잡숴 봐! 요강이 퍽 깨져! 아니, 담장이 넘어가!’라고 말할 때 회중을 둘러보는 모습도 보인다.

“맨 첫날 이것과 이것을 복용하십시오. 그리곤 이틀에 하나씩 한 달간 복용하세요.”

현수는 듀 드롭 타입과 콘 타입 스윙 병을 하나씩 들어 보였다. 먹으라니 뭔가 몸에 좋은 것 같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 궁금한 아폰테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는 말이네!”

듀 드롭 타입에 든 건 바이롯이고, 콘 타입 스윙 병에 든 건 마나포션이다.

“일단 다 들어보십시오. 이건 획기적으로 기력을 향상시켜 주는 신약입니다. 혹시 한국의 천종산삼이란 걸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천종산삼? 들어봤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누군가 그러더군. 한 100년쯤 묵은 천종산삼을 구할 수만 있다면 우리 리즈가 벌떡 일어난다고.”

리즈는 엘리자베스의 애칭인 듯싶다.

비소세포폐암 3기를 천종산삼으로 고치다니 누군가 그냥 해본 말인 듯싶다.

이 말을 들은 아폰테 사장은 사람을 풀어 100년 묵은 천종산삼을 수배했다. 그러면서 값을 물어보니 1억 원은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한 뿌리당 가격을 그 정도로 알고 있다.

“아시는군요. 세바스티앙 부회장님은 어떠세요? 천종산삼을 아세요?”

“알지! 한국에 오자마자 약령시장에 갔었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