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78화 (1,077/1,307)

# 1078

일전에 구입한 한약으로 베아트리체는 난임이 우려되는 생리불순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중풍에 걸릴 위험성이 있던 세바스티앙 부회장은 정밀검진 결과 상당히 호전되었음을 통보받은 바 있다.

한약의 우수성을 몸소 체험하였기에 몸에 좋은 보약을 지으려 약령시장을 찾은 것이다. 물론 안내는 강전호가 맡았다.

사랑하는 피앙세를 고용한 고용주이며, 장차 태백조선소의 큰 고객이 될 사람이다. 하여 세바스티앙이 지은 한약값은 태백조선소의 공금으로 지불되었다.

약을 지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기력이 허한 장년인에게 좋은 ‘공진단’과 피로가 쉬 풀리지 않는 직장인에게 좋다는 ‘경옥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이에 세바스티앙은 공진단과 경옥고를 구입했다. 강전호랑 헤어진 후 전화를 걸어 별도로 구입한 것이다.

공진단은 기력이 쇠한 부친에게 줄 것이고, 경옥고는 태백조선소에서 지어준 보약 두 재를 모두 복용한 뒤 본인이 먹을 요량이다.

어쨌거나 세바스티앙도 천종산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 죽어가던 사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말에 구경 좀 하자고 했으나 실물이 없어 보진 못하였다.

하여 인터넷에 올라온 이미지만 보았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천종산삼의 보다 다양한 효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인간에게 유용한 약재이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산삼이 암세포를 억제하고 정상 세포 생장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는 연구결과이다.

그렇기에 현수가 천종산삼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여기 담겨 있는 이 액체는 100년쯤 묵은 천종산삼과 비슷한 식물의 즙을 특수 처리하여 겁니다.”

마나포션의 주원료는 만드라고라를 착즙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효능을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천종산삼과 거의 유사한 정도이다.

그런데 이 즙에 다른 마법 재료들을 섞으면 성분에 묘한 변화가 발생해 태어난 이후 줄곧 줄어들기만 하던 원기를 원상태로 채워주는 효과가 있다.

복용 후 두 시간 이내에 이러니 참으로 빠른 효과이다.

어쨌거나 만드라고라는 지구엔 없는 식물이다. 하여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천종산삼 운운한 것이다.

“그, 그런가?”

선물로 줄 모양인데 시가 1억짜리 천종산삼과 효능이 비슷하다니 흥미가 돋는다는 듯 둘 다 눈빛이 반짝인다.

서양인들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세바스티앙은 살짝 대머리이다. 현수는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 생각나서 슬쩍 미소 지었다.

그러다 세바스티앙과 시선이 마주쳤다.

“왜 웃나?”

“이건 정력제가 아닙니다.”

“…누가 뭐랬나? 그냥 궁금한 것뿐이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세바스티앙은 정력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아그라의 도움을 얻는 요즘 절실한 것 중에 하나가 퇴보한 정력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영약이다.

현수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이건 방금 말씀드렸듯이 정력 증진에 효능이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하나도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잃어버린 원기 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현수는 원기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동양의학을 서양인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인지라 쉽지는 않았지만 이해는 시켰다.

“여기 이건 아까 바이롯이라 했지요?”

“그래, 그랬지. 그건 어떤 효능이 있는 건가?”

세바스티앙의 물음이다. 마나포션이 강력한 정력 증진제가 아니라는 것에 약간 실망하고 있는 차다.

“바이롯이란 식물에서 추출한 건데, 이틀에 하나씩 보름간 복용하면 정력 증진에 탁월한 효능을 보일 겁니다.”

“……! 정력에 좋다고? 정말?”

둘 다 눈을 크게 뜬다.

‘Tremendously Vigorous Vigor’라는 표현 때문이다. ‘엄청나게 격렬한 정력’이라는 뜻이다.

“이걸 제가 말씀드린 대로 복용하시면 1년간 그 효과가 지속됩니다.”

“……!”

둘 다 놀랍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비아그라는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사용할 수 없거나 여러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지만 이건 그런 게 없습니다. 유일한 부작용은 기력 저하입니다.”

“그, 그렇겠지!”

철인이 아닌 이상 지치고 피곤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충분히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드시라고 한 것은 그렇게 떨어질 수 있는 기력을 절대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겁니다.”

“오오! 그럼…….”

세바스티앙은 둘을 함께 복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이해가 된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바라던 바로 그것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준 느낌이다.

“이걸 두 분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한번 복용해 보십시오. 참, 이건 사모님께 드리세요.”

현수는 마나포션 하나를 세바스티앙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뭔가?”

“부회장님만 혈기왕성해지면 사모님은 어떻겠습니까?”

“아! 그렇군. 고맙네.”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포션을 챙기자 아폰테 사장의 눈썹이 슬쩍 올라간다.

“나는 왜 안 주나? 엘리자베스가 늙어서 그러나? 아무리 늙었어도 기능을 모조리 잃은 건 아니네.”

“에구, 엘리자베스 사모님은 이미 드셨어요. 저번에 치료할 때요. 사장님도 하나 드셨잖아요.”

“아! 그럼 이게…….”

아폰테 사장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난 이걸 안 마셔도 되는 거 아닌가? 1년간 유효하다며?”

엘리자베스는 치료 과정에서 이미 마나포션을 복용했다. 그러니 추가로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 아폰테 사장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그때 그가 마신 게 마나포션이 아니라 회복포션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반병이다.

엘리자베스를 치료한 후 현수는 아폰테 사장에게 백년해로하라는 뜻에서 이를 이온 음료에 타서 주었다.

비교적 건강하기에 반병만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마시고 그간의 피로를 모두 풀라는 의도였다. 지난해 9월 15일에 있던 일이다.

“그때 사장님이 드신 건 이게 아닙니다. 다른 효능이 있는 거죠. 그러니 사장님은 이걸 드셔야 해요.”

“아! 그런가? 알았네.”

아폰테는 얼른 마나포션을 챙긴다. 나이가 71살이나 되었음에도 사내라 그런지 욕심을 부린다.

아폰테와 세바스티앙은 비서를 불러 현수가 준비한 상자를 챙기게 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직접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 듯싶다.

현수는 확실히 구별되도록 분홍색 보자기로 박스를 묶었다. 이럴 즈음 정일화 집사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아, 그래요? 그럼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가주님.”

깍듯하게 예를 갖추고 물러서자 아폰테와 세바스티앙은 정 집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유럽에서도 유서 깊고 명예심 높은 가문의 집사들이나 보여주는 절도 있으면서도 예의범절이 깍듯한 집사를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 때문이다.

정 집사가 나간 후 들어온 이는 김상렬이다.

신세계마리타임이라는 복합운송주선업체를 운영했는데 요즘 크게 사세를 확장한 친구이다.

직원 수가 100여 명으로 늘어났는데, 물류장비 부서와 함께 수출입을 담당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LCL 및 FCL 회사로 발돋움했다.

“아! 어서 와라.”

“그래, 오랜만이야.”

상렬은 현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다 표정을 굳힌다. 아폰테 사장과 세바스티앙 부회장을 어디선가 본 듯한데 금방 떠오르지 않은 때문이다.

“인사드려. MSC사의 지앙뤼쥐 아폰테 사장님이셔.”

“아! 아, 안녕하십니까? 신세계마리타임의 김상렬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MSC사의 한국대리점을 맡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MSC사의 대리점은 세계 각국에 있는데 아폰테 사장은 그중 얼굴을 알거나 직접 만난 사람이 거의 없다.

회사의 실무진이나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상렬의 명함을 받아 든다. 그리곤 느릿하게 본인의 명함을 꺼내 건넨다.

현수는 받아 든 명함을 살피는 상렬을 툭툭 쳤다.

“이분께도 인사드려야지. CMA 오머런사의 세바스티앙 오머런 부회장님이시다.”

“헉! 기, 김상렬입니다. 이 친구 덕에 CMA 오머런의 한국 대리점을 맡고 있습니다.”

또 명함을 주고받았다. 세바스티앙 역시 아폰테 사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현수에게만 사근사근 간이라도 빼줄 듯 친근하게 굴지 다른 이들에겐 아주 쌀쌀맞은 모양이다.

“이렇게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상렬이 운영하는 신세계마리타임은 MSC나 CMA 오머런에 비하면 구멍가게나 다름없다.

그리고 확실하게 MSC와 CMA 오머런이 갑(甲)이고 신세계마리타임은 을(乙)이다.

그렇기에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다시 한 번 예를 갖춘다.

현수가 집 구경이나 할 겸 오라고 해서 온 길이다.

이사 후 집들이를 하지 않아 첫 방문인지라 두루마리 휴지를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거물들을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듯 당황한 표정이다.

MSC와 CMA 오머런은 세계 1위 해운선사인 머스크 라인(Maersk Line)의 뒤를 이어 2위와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들 세 개 해운회사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거의 50%에 달한다. 그야말로 막강한 회사들이다.

참고로 머스크 라인은 약 258만, MSC는 약 233만, 그리고 CMA 오머런은 약 147만 TEU를 보유하고 있다.

TEU란 Twenty―foot equivalent units의 약자이며, 일반적으로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박스 한 개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따라서 MCS가 보유한 배들은 233만 개의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니 직원 수 100여 명인 중소기업 신세계마리타임은 구멍가게라 칭한 것이다.

상렬이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현수가 입을 열었다.

“저하고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아제르바이잔과 브라질, 그리고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오는 화물도 이 친구가 주선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우리의 한국 대리점이니 당연한 일이네.”

아폰테 사장이 잠시 말을 끊은 것은 현수가 말하지 않은 속뜻을 파악하느라 그런 것이다.

화물운송을 주선하는 업체가 무능하거나 중간에 농간을 부리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현수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자리에 김상렬을 불러들였다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런 의도가 가장 컸다.

다음은 친구인 상렬에게 거물들을 소개해 줌으로써 더 높은 곳으로 날아보라고 격려하기 위함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지.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네? 아! 그, 그럼요. 당, 당연하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상렬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현수가 브라질에서 엄청난 공사를 수주했다는 건 이미 언론에 보도되어 알고 있다.

그 공사를 수행하려면 많은 장비와 자재를 보내야 한다. 공사대금을 자원으로 받으니 그것도 실어 와야 한다.

아제르바이잔 유화단지 공사도 마찬가지이다. 갈 때는 장비와 자재를 보내고 올 때는 원유와 가스를 받아 온다.

간 배에 실어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화물인지라 각각 다른 배를 써야 한다.

이제부터 머리를 잘 써야 효율적인 화물운송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는 일이다.

신세계마리타임은 이제 직원 수를 더 많이 늘려야 할 것이다. 현재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더 많아야 원활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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