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5
이때부터 급격하게 상승한 유가는 1979년 12월이 되자 배럴 당 115.89달러까지 올라갔다.
약 5.8배나 오른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점차 하락한 유가는 1998년이 되자 16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참을 올랐다가 무려 86%나 폭락한 것이다.
그러다 다시 상승한 유가는 2008년 6월이 되자 135.04달러까지 치솟았다. 8.44배나 급등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 그리고 불안한 국제금융시장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이다.
유가만 이런 것이 아니다.
2000년과 2008년을 비교해 보면 약 네 배가량 금값이 폭등했다. 그리곤 다시 하락하고 있었는데, 미국과 일본, 그리고 지나에서 금을 잃어버린 후 무섭게 가격이 치솟고 있다.
1980년 1월 3일엔 하루에 13.3%나 폭등했다.
그리고 18일 후, 당시 최고점을 기록했다. 두 달 전 가격의 1.89배로 급등한 것이다.
지금 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금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무려 1,500톤이나 확보했으니 어찌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함량 확인부터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이봐, 모리!”
“네!”
“함량 분석 실시해.”
“네!”
모리라는 사내는 무작위로 금괴 열 개를 추려냈다.
“저쪽 컨테이너를 쓰십시오.”
현수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천지약품이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하이! 감사하므니다.”
고개를 숙인 모리와 그 일행이 컨테이너로 들어가 여러 도구를 이용해 검사를 실시한다.
“함량 검사가 끝나면 곧바로 대금을 지불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와시마 야메히토가 한 발짝 다가오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말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거래는 극비입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고개를 끄덕이자 가와시마 야메히토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낸다.
“그나저나 조금 더 만들어주실 수는 없는지요?”
“네? 2차분 1,500톤이 있는데 더요?”
현수는 일본이 얼마만큼 많은 금을 필요로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짐짓 모르는 척 눈을 크게 뜨자 가와시마 야메히토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능하시다면 3차분, 4차분까지 구매했으면 합니다.”
“그럼 3,000톤을 추가로 하자고요?”
더욱 놀란 척을 하자 가와시마 야메히토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가능하시다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일본에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일은 무슨! 그런 거 없습니다!”
갑자기 음성이 커지는 가와시마 야메히토를 본 현수는 내심 실소를 터뜨린다. 홀연 방귀 뀐 놈이 성질낸다는 말이 생각나서이다.
“그런데 웬 금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해요? 나야 파는 입장이니 한꺼번에 많이 팔아서 좋기는 하지만…….”
“아, 그건… 달러화의 유동성이 너무 커서… 안전 자산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달러화의 유동성이 커요?”
“아시잖아요. 미국이 양적완화정책을 펼치는 거.”
가와시마 야메히토는 말을 해놓고 슬쩍 현수의 눈치를 본다. 국제금융이 불안전하여 안전 자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니 자칫 안 팔겠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수의 안색이 슬쩍 변하자 가와시마 야메히토는 얼른 다시 입을 연다.
“김 회장님은 자치령 개발 때문에 처분하셔야 하죠?”
현금이 필요할 테니 팔라는 뜻이다.
“나야 뭐… 그렇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가와시마 야메히토는 안심이 된다는 듯 나직하게 한숨을 쉰다.
이곳은 마타디항 컨테이너 야드이다.
천지약품 전용 야드인지라 별도의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고, 열쇠는 천지약품에서 보관하고 있다.
천지약품 본사는 여전히 킨샤사 외곽에 있는데 한창 짓고 있는 본사 건물과 창고, 그리고 판매장 등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이곳 전용 컨테이너 야드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콩고민주공화국 관리들의 허가 없이도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다.
물론 가에탄 카구지의 배려이다.
지금 시각은 오후 3시다. 아무도 가까이 올 수 없기에 대낮에 금괴 인도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항구엔 화물 선적을 기다리는 일본 화물선이 와 있다. 내각조사처가 운용하는 배일 것이다.
“팀장님, 물건은 확실합니다. 선적 시작할까요?”
“잠시만!”
가와시마 야메히토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왔다.
“회장님, 잔금 송금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러죠.”
현수는 노트북을 꺼냈다.
10조 4,343억 원에 해당하는 엔화가 이실리프 자치령 아와사 지점으로 송금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차 것은 그렇다 치고, 추가하기로 한 3차와 4차 대금은 언제 보냅니까?”
“그건 며칠 이내에 송금될 겁니다. 워낙 금액이 커서요.”
조금 전 가와시마 야메히토와 현수는 추가로 거래하기로 한 3,000톤에 대한 가격 협상을 마쳤다.
지나와 마찬가지로 톤당 7,000만 달러이며 엔화 결재 시 0.5%가 추가되는 것으로 합의했다.
물론 전액 선입금이다.
톤당 7,035만 달러이니 3,000톤의 가격은 2,110억 5,000만 달러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253조 2,600억 원이다.
미국과 지나,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추가하기로 한 거래의 총액은 1조 1,924억 5,000만 달러이다.
미국은 거래 대금의 25%를 선입금 하라 하였고, 일본과 지나는 100% 선입금이다.
총액 6,674억 5,000만 달러이니 한화로 800조 9,400억 원에 해당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현수는 빵빵해질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돈도 돈이지만 한국의 정세와 관계 깊은 미국, 일본, 지나가 처할 곤경에 흡족하기도 하다.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라 할지라도 7,000억 달러가 사라지면 타격이 클 것이다.
거의 모든 달러화를 잃은 일본도 2,110억 5,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엔화가 허공으로 흩어지면 난리가 날 것이다.
당분간은 독도에 대한 욕심도 부리지 못할 것이다.
지나 역시 그러하다. 2,814억 달러에 해당하는 위안화를 지불했는데 또다시 도난 사고가 벌어지면 맥이 풀릴 것이다.
동북공정이 올 스톱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뿐만이 아니다.
세 나라 모두 보유하고 있던 금을 모두 잃었다는 소문과 더불어 일본과 지나가 보유한 외환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 번지면 일파만파로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이다.
또다시 대공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아무런 죄도 없는 다른 나라들까지 곤경에 처하게 된다.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 등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은 폭삭 주저앉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실을 확인해 주는 건 웬만해선 자제해야 할 일이다.
“좋습니다. 선적 시작하십시오.”
현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항만 하역 장비의 꽃인 컨테이너 크레인이 스르르 움직인다.
“그래, 이렇게 해야지. 하나씩 옮겨서야…….”
지나의 군인들이 투덜대던 모습을 떠올린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한쪽에선 한국에서 당도한 의약품 하역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몹시 부산하다. 그런데 눈에 익은 사람이 보인다.
현수는 가와시마 야메히토와 헤어져 하역 작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향했다.
하역 작업을 감독하던 사내가 현수를 알아보고 얼른 허리를 꺾는다.
“아!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네, 수고 많으시네요. 근데, 정승준 씨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현수가 예상한 대로 계룡산에서 처음 만난 정승준이다.
차원이동 마법으로 아르센 대륙을 갔다 올 때를 기다렸다 도술을 가르쳐 달라며 매달리던 다소 엉뚱한 사내이다.
그 후에 다시 만난 건 지난해 7월 23일 이실리프 상사에서 치러진 채용 면접 때다.
당시 정승준의 면접 번호는 2158번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정승준의 바로 곁에 긴장된 표정으로 재일교포 아가씨 김나윤이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현수는 2013년 6월 초에 임진왜란의 전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감춰둔 금을 가지러 일본에 간 바 있다.
모든 금괴를 아공간에 담고는 2차 세계대전을 획책한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붕괴시켰다.
어스퀘이크와 파이어 스톰으로 신사는 잿더미가 되었다.
화재신고를 받은 인근 소방서에서 긴급출동을 했지만 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날, 치요다구 치요다(東京都 千代田区 千代田) 1―1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서거(鼠居) 또한 붕괴시켰다.
왜놈들의 정신적 지주가 편안한 삶을 사는 꼴이 보기 싫어서이다. 불행히도 쥐새끼들의 두목은 북해도 별장에 있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많은 마나가 소모된 일인지라 차분히 앉아 소모된 마나를 보충시켜야 했다. 그리곤 허기를 느끼고 밥을 먹으러 갔다가 만난 여인이 바로 김나윤이다.
그때 나윤의 부친 김상용 씨는 딸의 미모를 탐내던 야쿠자에 의해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현수에 의해 구함을 받은 바 있다.
면접 때 나윤은 프랑스어를 전공했지만 통역보다는 주방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어쨌거나 정승준은 이실리프 상사의 직원으로 파견되었다. 맡은 임무가 뭔지는 모르지만 여기에 있을 사람은 아니다.
본격적인 자치령 개발을 위한 준비팀 내지는 실사팀, 혹은 진행팀에 배속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승준 씨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긴 천지약품 전용 야드잖아요.”
“네, 맞습니다, 회장님.”
“천지약품 소속이 아니면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혹시 몰랐어요?”
“아뇨. 잘 알죠. 근데 회장님께서 제 소속을 천지약품으로 바꾸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요? 내가 그랬어요?”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이춘만 사장과 통화할 때를 떠올렸다.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10년간 입산수도를 할 정도로 심지 굳고 성실한 사람이 있으니 잘 가르쳐서 아디스아바바 지사를 맡기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했다.
“네, 회장님이 지시하셔서 천지약품으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 수입부 대리로 근무 중입니다.”
“아, 그래요?”
천지약품 또한 계열사이니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일은 할 만해요? 수입부라고 했는데 맡은 일은 뭡니까?”
“근무 여건은 좋죠. 그리고 제가 맡은 일은 한국으로부터 오는 의약품의 품질 및 수량을 확인하는 겁니다.”
“아, 그래요? 요즘은 어떤가요? 수입되는 양이 전보다 줄었지요?”
현수는 천지약품에 정신을 분산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물은 말이다.
“아뇨. 수입되는 물량은 거의 일정합니다. 소매점들의 주문량이 꾸준하니까요. 그나저나 고맙습니다.”
“네? 뭐가요?”
“김나윤 사원을 수입팀에 배속시켜 주셔서 일 처리가 아주 편합니다. 제가 프랑스어를 모르거든요.”
“김나윤 사원도 천지약품 소속인가요?”
“아뇨. 나윤 씨는 이실리프 상사 소속이죠. 지금은 파견 나와서 저희 천지약품을 돕고 있습니다.”
정승준의 말대로 김나윤은 파견 근무 중이다. 콩고민주공화국 관리들과 대화할 때 통역이 필요한 때문이다.
“그런가요?”
현수는 일선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일까지는 알 수 없기에 고개만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