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86화 (1,085/1,307)

# 1086

이춘만 사장은 현재 아디스아바바에 가 있다. 천지약품 소매점 계약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도움과 킨샤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곳의 업무 전반을 정승준에게 맡겼다.

직책은 대리이고 수입팀에 속해 있지만 실무 전반을 아우르는 중이다. 전에 이야기된 대로 아디스아바바 지사의 책임자로 발령 내기 위함이다.

“회장님, 뵌 김에 현황 보고드릴까요?”

“수입팀이라며 그런 것도 가능한 겁니까?”

“가능합니다. 보고드려요?”

“…그래요? 그럼 그러죠.”

“저쪽으로 가시죠.”

정승준이 손짓한 곳엔 현장 사무소가 지어져 있다. 컨테이너 박스가 아니라 제대로 단열 처리를 한 건물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만나 하는 보고임에도 정승준은 밤새 준비라도 한 듯 그야말로 청산유수로 보고를 이어간다.

보고 내용을 취합해 보면 천지약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거래는 현금과 맞교환한다.

재고는 충분하고, 늘 일정한 수준의 판매고가 형성되고 있다. 소매점들과의 분쟁도 거의 없다.

그리고 콩고민주공화국의 약품 부분을 거의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하긴 권력의 실세인 대통령과 내무장관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치외법권을 인정받은 특별한 존재이니 어찌 어려운 일이 있겠는가!

그래도 딱 하나 걱정되는 부분을 짚으라면 지나인들에 의한 시장 교란이다.

저 품질, 혹은 아예 아무런 효과도 없는 가짜 의약품으로 순박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꼬드김에 넘어가 싼값에 지나산 약품들을 사들인 사람들 가운데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천지약품과 관련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

하여 정승준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경찰에 협조하고 있다. 소매점들을 통해 소문을 모아주는 창구가 된 것이다.

이때 나윤이 나서서 통역을 한다.

어쨌거나 조합한 소문을 분석한 결과 가짜 의약품을 파는 자들은 화원공사 왕영백으로부터 물건을 공급받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아는 이름이다.

이춘만 지사장이 한국산 가전제품을 수입하여 용돈을 마련하고 있을 때 통관을 담당하던 관리가 지나친 뇌물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이에 분노를 느낀 현수는 마타디항으로 가서 여러 개의 컨테이너를 아공간에 담아왔다. 통관되지 않은 화물을 잃어버리게 하여 골탕을 먹이려던 의도이다.

그때 아공간에 휩쓸려 들어온 컨테이너 중 하나엔 화원공사 왕영백이 수입한 물건이 담겨 있었다.

나중에 그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2,000㎏의 황금과 대량의 필로폰, 엑스타시, 그리고 모르핀이었다.

이것들은 현재 현수의 아공간에 담겨 있다.

며칠 후, 사라진 컨테이너들이 다시 나타났지만 왕영백의 것은 없었다.

왕영백은 자신의 화물만 사라졌다며 마타디항에 있던 컨테이너 전부를 열어보게 했다. 무려 6,000여 개이다.

나중엔 통관을 마친 이춘만 지사장 등의 컨테이너까지 보여 달라는 무례한 요구를 했다.

혹시 자신의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물론 아니었다.

결국 마타디항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운송장에 화물로 기재된 지나산 싸구려 옷값 정도이다.

왕영백은 평생 동안 모은 것을 한 방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 후로 천지약품이 잘나가는 것을 보고 지나산 싸구려 의약품들을 반입했다. 왕영백이 수입한 것은 몇 남지 않은 지나인들의 약방을 통해 싼값에 팔려 나갔다.

대부분이 약효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순박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비싼 값을 치렀다.

“정승준 씨, 대단합니다.”

현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의 브리핑은 간결하면서도 담길 것은 다 담겨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찌 도사가 되겠다며 산속에서 10년이나 썩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장에서 승준은 D전문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현수의 기억이 맞는다면 이 학교는 구로구 고척동에 있고, 승준은 2년제 기계설계과를 졸업했다.

수능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대강 짐작이 된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출신 학교가 중요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천지건설의 직원 대부분은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학교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해외영업부는 해외 인맥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유명 대학 출신이 많다.

소위 아이비리그라 일컫는 미국 북동부에 있는 8개 명문 대학도 당연히 끼어 있다.

참고로 명문이라 일컫는 아이비리그는 브라운(Brown)ㆍ컬럼비아(Columbia)ㆍ코넬(Cornell)ㆍ다트머스(Dartmouth)ㆍ하버드(Harvard)ㆍ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ㆍ프린스턴(Princeton)ㆍ예일(Yale) 대학이다.

해외영업부에는 칼텍(California Inst. of Technology)ㆍ스탠포드(Stanford)ㆍ듀크(Duke)ㆍ시카고(Chicago)ㆍ노스웨스턴(Northwestern) 출신도 다수 근무 중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리우데자네이루 건에 대한 브리핑을 여러 번 받은 바 있다. 프린스턴대학 출신인 최규찬 해외영업부장도 이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방금 전의 브리핑보다 간결하지 못했고 핵심을 찌르지도 못했다.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도 2년제 전문대학 출신의 브리핑이 더 좋다 느껴진 것이다.

이는 출신 대학이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 주는 일이다. 물론 현수 본인이 삼류대학 수학과 출신인지라 팔이 안으로 굽는 선입견이 약간은 작용되어 있다.

어쨌거나 승준의 브리핑은 마음에 들었다.

“뭐 어려운 일은 없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하세요.”

“주거가 불안정해서 걱정됩니다. 며칠 전엔 반군들에 의한 테러가 있었거든요.”

무슨 소린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킨샤사에 내 집이 있는 건 아시죠?”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거길 Ville de l’Ange라 부르더군요.”

프랑스어 ‘Ville de l’Ange’는 영어로 ‘Town of the Angel’이다. 직역하면 ‘천사의 마을’이다.

“그래요? 거길 왜 그렇게 부른대요?”

처음 듣는 소리인지라 현수의 눈이 커져 있다.

“저택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주셔서 그런 별명이 생겼습니다. 진짜 존경합니다, 회장님!”

킨샤사 저택엔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근무한다. 그리고 근무자 전원에게 주거가 제공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외국의 호화 호텔 수준의 주택에서 살게 해준 것이다. 널찍하고 쾌적하며 온갖 가구와 가전제품이 다 갖춰진 꿈의 주택이다.

이 모든 걸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음이 소문으로 번진 것이고, 그 결과 천사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승준은 현수보다 나이가 많지만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에구! 존경이라니요. 저 아직 그런 이야기 들을 나이 안 되었습니다.”

현수의 본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수가 삼류대학 출신이고, 이제 겨우 서른 살이며, 성장 과정이 빈한했다는 것은 모두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현수는 인류 최고의 IQ를 가졌으며, 손대는 일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미다스의 손이다. 게다가 축구와 야구에서도 타의 범접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기량을 갖췄다.

돈도 엄청나게 많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렇기에 나이에 상관없이 현수는 거의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특히 해군과 공군 중 일부는 현수를 존경하다 못해 추앙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현수교라도 만들어지면 곧장 광신자가 될 사람들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니 존경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이다.

“아닙니다.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승준은 다시 정중히 허리를 꺾는다.

“에구!”

현수는 뭐라 할 말이 없기에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생각난 듯 물었다.

“정승준 씨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저는 이춘만 사장님께서 전에 기거하시던…….”

승준의 말은 중간에 잘려야 했다.

“다른 직원들도요?”

“네, 저와 김나윤 씨, 그리고 몇몇 직원이 그곳에 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근방 주택에…….”

승준의 말은 또 잘렸다.

“천지약품도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된 거 확실하죠? 그거 범위와 면적이 얼마나 됩니까?”

“기존 본사 건물을 중심으로 약 60,500평입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로…….”

잠시 브리핑이 이어졌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실리프 자치령을 조차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약품도 치외법권 지역으로 포함시켜 주기로 했다. 하지만 무상은 아니다.

현수가 사장이라면 공짜겠지만 이춘만 사장이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춘만 사장은 본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포함해 인근 지역 토지를 매입하였다.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로 400m, 세로 500m 정도 된다.

현수는 예전에 사용하던 천지약품 본사 건물을 떠올려 보았다. 낡은 양철집들이 처마를 잇대고 있는 빈민촌이다.

이춘만 사장의 인품을 고려해 보면 그곳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했을 것이다.

“메모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뭔가 지시를 내리려 한다는 걸 눈치챈 승준은 얼른 다이어리와 펜을 챙겨 들곤 현수를 바라본다.

“정승준 씨는 아디스아바바에도 천지약품이 조성되고 있는 거 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을 모델 삼아 여기에도 직원들을 위한 주거를 조성하세요. 안전을 위해 부지 외곽에 담을 두르고…….”

잠시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6장 집을 지으세요

아디스아바바엔 반군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지역이 없다. 그러나 킨샤사는 언제든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부지 외곽에 담장을 두르라 하였다. 그런데 그 담장은 칙칙한 콘크리트나 벽돌이 아닌 초록색 철망이다.

이것을 가리기 위해 안쪽에 여러 열대식물을 식재한다. 망고, 파파야, 두리안, 망고스틴, 람부탄 등이다.

기왕 심는 것이니 열매 맺히는 것 위주이다.

부지 둘레에 20m 폭으로 심으면 약 34,000㎡에 달하는 작은 농장이 생긴다.

아리아니가 가호를 내리고 현수가 신성력을 뿜어내면 각종 병충해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노에디아와 엘리디아까지 나서면 최상급 과실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람들이 애써 돌보거나 가꾸지 않아도 풍성한 수확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각종 열대과일은 천지약품 직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된다.

직원용 사택은 이것의 안쪽에 지어지는데 킨샤사 저택 앞에 지어진 것과 같은 수준이다. 그리고 한국인과 원주민 간의 차이는 없다.

이것들의 안쪽에는 창고 및 사무실이 지어진다.

지하실은 평상시엔 식품 저장소로 사용되고 유사시엔 대피소로 이용한다.

모든 건물의 옥상엔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고, 지하수를 개발하여 자체적으로 동력과 용수 등 필수 불가결한 것들을 갖추게 된다.

경비원을 고용하여 주간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순찰을 돌면 직원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받아 적은 정승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김현수 회장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배려가 많음이 느껴진 때문이다.

“이 정도면 괜찮겠어요?”

“그럼요! 다들 좋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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