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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089화 (1,088/1,307)

# 1089

희망을 꿈꾸며 부풀어 있었는데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일순간에 끝난 것처럼 허무하고 안타깝다.

“흐흑! 흐흐흑! 죄, 죄송해요.”

고개 숙인 마샤의 두 어깨가 들썩이고 무릎 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빌어먹을! 이런 건 왜 만들어놔서.’

마샤는 젊고 예쁜 아가씨이다. 하지만 현수는 헥사곤의 어느 여인에게도 관심 두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거두기로 약조한 카이로시아, 로잘린, 스테이시, 케이트, 다프네가 워낙 출중한 미모를 가졌고, 그들 다섯이면 충분하다 여긴 때문이다.

스승의 부탁인 아드리안 공국을 위기로부터 구하는 임무는 거의 다 수행한 듯싶다.

이제 스승의 유해를 안장하고, 라이세뮤리안과 제니스케리안을 불러 수호룡 선포만 하게 하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아르센 대륙의 어느 나라도 감히 아드리안 왕국을 적대시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라이세뮤리안과 제니스케리안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는 안전한 것이다.

그런데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라는 요상한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이곳의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다.

국왕은 이실리프 마탑과 아드리안 왕국의 영원한 우정의 증표로 여인들을 품어 가교를 맺어달라고 했다.

하여 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 정도는 거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여섯 중 누구를 택할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마샤여야 할 것 같다. 율법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율법에 얽매어 산다. 따라서 본인이 거두지 않으면 마샤는 내쫓김을 당할 것이다.

그건 화이트 후작가의 수치가 될 것이다.

현수는 아무 죄 없는 여인을 불러들였다. 100% 본인의 실수이다. 그렇기에 난감하다.

“마샤, 그만 울어.”

“흐흑! 흐흐흑! 네. 흐흑!”

비록 마탑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현수는 여전히 국왕과 동격인 절대자이다.

그렇기에 얼른 눈물을 훔치곤 고개를 조아린다.

“고개 좀 들어볼래?”

“…네에.”

눈물 젖은 제시카 알바를 꼭 닮은 여인이 바라본다. 눈빛은 흐려져 있지만 여전히 예쁘다.

“우리 이실리프 마탑엔 수퍼포션이라는 걸 만드는 제조 비법이 있어. 그게 뭐냐 하면…….”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마샤는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귀를 열고 경청했다. 괜한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수퍼포션이란 말은 이실리프 마법서에 없다. 현수가 작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처 치료에 특화된 회복포션은 트롤의 정제된 피가 주된 재료이다. 이것은 손상된 조직이나 세포를 원상으로 회복시켜 주는 효능이 있다.

마나포션은 주재료가 만드라고라이다.

100년짜리 천종산삼과 비슷한 효능을 가졌는데 하나의 마나포션을 제조하는 데 두 뿌리가 소요된다.

하지만 현수는 한 뿌리로 하나의 마나포션을 만들 수 있다. 아르센 대륙엔 없는 정밀한 계측 기구가 있기 때문이고, 고효율 마나 집적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수퍼포션을 제조하려면 이런 만드라고라가 열 뿌리나 필요하다. 트롤의 선혈도 열 마리분이 있어야 한다.

만드라고라 하나의 가격은 100골드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1억 원이다.

트롤의 선혈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지구엔 이런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값을 매긴다면 한 마리분의 선혈이 약 1억 원 정도 된다.

이 두 재료의 값만 따져도 수퍼포션은 하나당 20억 원이다. 이것 이외에도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각종 약재가 있어야 제조 가능하다.

뿐만이 아니다. 수퍼포션을 제조하려면 최소 7서클 마스터는 되어야 한다.

성분과 성분의 배합비와 배합 타이밍이 절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세한 차이가 성패를 좌우하므로 고도로 숙련된 계산이 필요하다.

7서클 마스터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정적인 것은 고효율 마나 집적진을 그리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나가 효율적으로 포션에 스며들도록 컨트롤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런 것을 모두 종합하면 수퍼포션은 하나당 3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으니 더 비싸게 받아도 될 것이다.

현수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뿐만 아니라 아주 정밀한 계측, 계량 기구가 있어야 비로소 배합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마샤는 문득 궁금해졌다. 하여 저도 모르게 묻는다.

“그런데 그건 어디에 쓰는 건가요?”

“수퍼포션은 말이지…….”

또 설명이 이어진다.

합방을 하기 전에 열흘간 마나 마사지를 받고 수퍼포션을 복용하면 신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태어날 아기는 어떨지에 대한 설명이다.

“저, 정말이요?”

마샤의 눈이 더없이 커진다.

수퍼포션의 혜택을 입은 상태에서 마탑주와 결합하면 그야말로 책에서나 나올 만큼 뛰어난 아이가 태어난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마나 친화력이 최상급이니 마법을 쉽게 익힐 수 있으며 건강한 신체를 타고나서 평생 무병장수할 수 있다.

게다가 영특한 두뇌를 타고 태어난다니 모든 여인이 꿈에서나 그려보는 자식이다.

본인도 바디 체인지를 겪으면서 체질이 개선되어 종신토록 무병장수하게 되는 건 보너스이다.

“그래서 오늘 밤엔 마샤를 품을 수 없다고 한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마샤는 고개만 끄덕여 알았음을 표한다. 뭔가 배려를 받은 느낌인지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현수도 자신의 계략이 통하자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이런 때에는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그래도 마샤가 꼭 오늘 내 품에 안겨야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줄게. 어떻게 할까? 오늘 안아줘?”

“네에? 아, 안 돼요! 나, 나중에… 나중에 안아주세요.”

행여 몸에 손가락이라도 닿으면 부정 탈까 싶은지 화들짝 놀라며 물러앉는다.

어느새 술도 다 깬 듯 말짱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암울하던 눈빛도 생기발랄하게 바뀌어 있다.

“수퍼포션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만들기가 상당히 어려워. 재료도 흔한 게 아니고. 그리고 만들자마자 복용해야 하는데 만들어놓은 게 없어.”

이 말 중 일부는 뻥이다.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수의 아공간엔 충분히 보관되어 있다.

마음먹고 만들려고 하면 5인분 정도는 만들 수 있다.

더 만들어낼 만드라고라는 충분히 있지만 트롤의 피는 약간 부족하고 다른 재료들도 조금은 더 있어야 한다.

현수가 구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라수스 협곡으로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들자마자 복용해야 한다는 것은 뻥이다. 아공간엔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들이 들어 있다.

지구 시간으로 2013년 12월 26일에 만들었으니 5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럼에도 효능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공간에 담겨 있는 한 변질되는 일이 없으니 앞으로도 1,000년은 끄떡없을 것이다.

순진한 마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만큼 순진한 때문이다.

“네에.”

“재료를 다 모아 만들면 그때……. 알았지?”

현수는 부러 말끝을 흐린다. 만들었다고 꼭 안아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네, 그러세요. 기다릴게요.”

마샤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별빛을 담은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젊고 건강하다. 게다가 이 세상 사람들의 정점에 있는 너무도 위대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의 씨를 받아 아주 영특한 아기를 낳는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한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자, 그럼 이제 가서 자.”

“네에? 그, 그건 안 돼요.”

마샤가 당황한 듯 손을 내젓는다. 내일 새벽이 될 때가지 머물지 못하면 내쳐진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왜?”

“그, 그건… 제가 그냥 나가면…….”

마샤의 말을 들은 현수는 화들짝 놀랐다. 왕국법에 대해 처음 들은 때문이다.

‘뭐야?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한국의 법만 엉망이라 생각했는데 아드리안 왕국도 만만치 않다. 특히 마탑주가 버렸다고 멸문지화를 내리고 낙인까지 찍는 건 너무했다.

‘흐음! 반드시 고쳐야 할 법이네.’

나중에 국왕을 만나면 수정을 요구할 생각이다.

“알았어. 그럼 아침이 될 때까지 여기 있어.”

“네, 고맙습니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곤 환히 웃는다.

너무도 예쁘고 섹시하다. 하긴 발가벗은 제시카 알바가 섹시하지 않아 보이면 눈이 삔 거다.

‘끄응! 쩝!’

현수는 신체의 일부분이 말을 듣지 않자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그리곤 탁자 위의 것들을 정리하려 했다.

이런 거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진정될까 싶어서이다.

“어머나! 제가 할게요. 주인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현수의 손에 잡힌 접시를 빼앗으려던 마샤는 균형을 잃는다. 현수가 힘을 빼지 않은 때문이다.

물컹―!

“어머나!”

쓰러지는 마샤를 잡았는데 하필이면 조금 전 그곳이다.

“으읏!”

현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탄력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에 얼른 손을 떼었다. 그 순간 마샤의 동체가 현수 쪽으로 완연히 기울었다.

“어맛!”

“……!”

“죄, 죄송해요.”

졸지에 현수의 품에 안겨 버린 마샤는 얼른 물러섰다.

한편 짧은 시간이지만 현수는 풍만한 여체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글자 그대로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를 느낀 것이다.

“허험! 허허험!”

어색해진 분위기에 현수는 얼른 헛기침을 터뜨리곤 다리를 꼬고 앉았다. 감출 게 있어서이다.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좀 칠칠맞죠?”

“그, 그래. 난 괜찮아. 여기 이거 치워줄 거지?”

“그럼요!”

마샤가 주섬주섬 탁자 위의 것들을 치운다.

그런데 속살이 다 보이는 망사의만 걸치고 눈앞에서 알짱거리고 있기에 현수는 또 한번 침음을 삼킨다.

“으음!”

손만 뻗으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라만 봐야 한다.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마샤, 난 어디 좀 다녀올 테니 여기 있어.”

“네? 어디요?”

“그건 알 거 없고, 새벽까지도 내가 안 돌아오면 아침에 슬쩍 나가. 졸리면 내 침대 써도 돼.”

“네, 알았어요.”

마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는다. 마탑주 본인이 자신의 침대를 써도 괜찮다고 말해 기쁜 것이다.

마탑주의 아내가 된 기분이 들었으니 어찌 안 좋겠는가!

그러는 사이 현수는 카이로시아가 있을 테세린의 좌표를 확인한다.

“마샤, 갔다 올게. 쉬고 있어.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지자 마샤는 신기한 듯 눈을 비빈다. 그리곤 치우던 그릇들은 내버려 둔 채 얼른 침대로 달려가 다이빙을 한다.

출렁∼!

푹신한 매트리스 침대가 아닌 돌침대였다면 코가 깨질 정도로 강력한 점프였다.

“아아! 이 냄새!”

마샤는 극세사 이불을 잡고는 냄새를 맡으며 탄성을 지른다. 향내가 느껴져서이다.

“이게 마탑주님의 체취인가? 하으음! 흐으음!”

마샤는 한껏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마탑주가 쓰던 침구를 같이 쓴다는 게 너무도 기분 좋아서이다.

이 대목에서 마샤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불에서 나는 냄새는 현수가 페브리즈를 뿌려두었기 때문이다.

현수는 이 이불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체취가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마샤는 현수의 체취가 향긋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 * *

똑, 똑, 똑!

“누구? 들어오세요.”

삐이꺽―!

문이 열리자 나지막한 마찰음이 난다. 현수는 아공간에서 재봉틀 기름을 꺼내 마찰이 이는 부위에 뿌렸다.

“누구?”

잠시 시간이 지체되자 카이로시아의 음성이 다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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