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7
“마, 마탑주님!”
“어때? 마음에 드나?”
“네?”
현수의 말에 고든 선장은 대체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내가 이 배를 이용한 삯으로 이걸 주겠네. 이 정도면 뱃삯으로 충분하겠는가?”
“네에? 크, 크라켄의 사, 사체를 토, 통째로 두, 두 개나 다 저, 저에게 주,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고든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한국 어부들에겐 밍크고래가 바다의 로또라 한다.
해양수산부 조사에 따르면 밍크고래는 서해에 약 1,000마리, 동해에 약 600마리가 서식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류는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이 엄격히 금지되어 잡으면 불법이다.
그런데 쳐놓은 그물에 고래가 잡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잡힌 것은 크기에 따라 마리당 8,000만∼1억 원에 거래된다.
자잘한 것 몇 백마리 잡는 것보다 훨씬 낫다.
아르센 대륙의 어부들에게 있어 크라켄의 사체는 로또 중의 로또이다.
미국엔 42개 주와 District of Columbia, 그리고 U.S. Virgin Islands까지 포함한 44개 행정 구역에서 실시하는 멀티 스테이트 로또가 있다. 이를 ‘메가 밀리언’이라 한다.
2013년 10월에 그 운영 룰을 변경한 이후 진정한 세계 최대의 로또가 되었다. 워낙 당첨 확률이 낮아 1등 당첨 없이 이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메가 밀리언’의 1등 당첨 확률은 약 1억 7,570만 분의 1이다.
2013년 12월에는 무려 21회나 이월을 거듭한 끝에 1등이 탄생했다. 그때 당첨금 6억 3,60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잭팟이 터졌다. 한화로 환산하면 7,632억 원이다.
한국 로또의 최고 당첨금은 2003년 4월에 있던 407억 원이다. 메가 밀리언과 비교하면 약 19분의 1이다.
어쨌거나 크라켄은 사냥되지 않는 몬스터이다. 드래곤의 명령조차 따르지 않는 진정한 바다의 폭군이기 때문이다.
수십 척의 배를 이끌고 나가봐야 모두가 수장되는 결과만 낳는다. 따라서 크라켄은 엄청난 고가로 팔려 나간다.
온 대륙에 소문을 내놓고 경매를 붙이는 것이 가장 비싼 값을 받는 방법이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통신과 도로가 발달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근 국가의 거대 상인이나 고위 귀족, 또는 고위 마법사들을 모아놓고 경매를 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팔리게 되는 가격은 대략 10만 골드 정도 될 것이다. 한국 돈으로 약 1,000억 원이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이니 현수는 2,000억 원을 뱃삯으로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기에 고든 선장이 말을 더듬고 있는 것이다.
“둘 다 자네에게 주는 것은 맞네. 다만 선원들도 있으니 적당히 분배해야겠지?”
“그, 그럼요!”
이 배엔 선장인 고든을 제외한 선원 25명이 있다. 하갑판엔 노꾼 120명이 있지만 그들은 노예이다.
“배가 낡았더군. 새 배를 사려면 얼마나 줘야 하나?”
“이, 이 배와 같은 크기의 새 배를 사려면 1,000골드쯤 줘야 합니다.”
“1,000골드? 그럼 10억쯤 한다는 말이군.”
“네? 그게 무슨…….”
한국어로 중얼거렸기에 반문한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닐세. 좋아, 일단 새 배를 한 척 사게. 저걸 팔면 그건 살 수 있지?”
현수의 눈에는 커다란 오징어일 뿐이기에 한 말이다.
“그, 그럼요! 당,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워낙 귀한 거라 그러고도 많이 남을 겁니다요.”
“좋아, 배를 사고 남은 돈은 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게.”
“네? 일률적으로 다 똑같이요?”
선장과 선원은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한 말이다.
“아니. 하갑판의 노꾼들에게 1을 준다면 선원 및 일반 사람들에겐 5씩 주게. 그리고 자네는 50을 갖고.”
“자, 잠시만요.”
고든 선장은 품속의 양피지를 꺼내 뭔가를 끄덕인다. 계산을 해보는 중이다.
노꾼 120명에게 각각 1이니 다해서 120이 간다.
선원은 25명이며 출항 전에 승선한 요리사와 보조 한 명이 있다. 그리고 현수의 밤 시중을 위한 여인 셋이 더 있다.
이렇게 30명에게 각각 5씩 주면 모두 150이 된다.
그리고 고든 선장 자신은 50을 갖는다.
전부 합치면 320이다.
2,000억 원의 320분의 50은 312억 5,000만 원이다.
선원들과 요리사, 그리고 요리사 보조와 애슐리, 보나, 그리고 캐롤이 받는 금액은 31억 2,500만 원이다.
120명의 노꾼들은 각각 6억 2,500만 원을 받는다.
모두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금액이다.
선장은 욕심이 났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너무 많은 돈은 마물(魔物)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콘트라의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금화가 가득 든 보물 상자를 주웠다. 소문에 의하면 2만 골드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200억 원 상당이다.
그 사람은 온갖 사치를 부리며 흥청망청했다.
돈으로 어여쁜 여자 처자들을 꼬셔서 매일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즐겼다. 여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보석을 샀고, 기름진 음식을 즐겼다.
불과 3년 후, 그 사내는 비만 알거지가 되었다.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뚱땡이 신세가 된 것이다.
본인은 모르지만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기름진 음식과 지나친 음주, 그리고 과도한 기력 소모가 빚어낸 결과이다.
그전에 조강지처는 날마다 바람피우던 그에게 이혼장을 써서 던지곤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
나중에 후회했지만 무슨 소용 있겠는가!
갑작스레 들어온 거금을 잘 운용했으면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건 본인 잘못이다.
결국 그 사내는 산으로 들어가 보물상자를 발견한 곳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고든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선원들도 그간 애를 많이 썼는데 늘 급료를 짜게 준 것이 마음에 걸리던 차다.
노꾼들은 전쟁에서 패해 잡혀온 포로들을 싼값에 산 것이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형제자매와 부모자식이 있을 것이다.
‘그래, 3만 골드가 넘게 생기는데 인심 쓰자.’
마음을 정한 고든 선장은 현수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마탑주님의 말씀대로 공정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탑주님!”
쿠쿵, 쿠쿠쿠쿵―!
일제히 무릎을 꿇은 건 선원들이다.
이들도 귀가 있어 둘의 대화를 들었다.
이 자리에 크라켄의 사체가 어마어마한 값이 팔릴 것이라는 걸 모르는 선원은 없다.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가끔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애슐리와 보나, 그리고 캐롤 역시 크라켄의 가치를 알고 있다. 항구도시 콘트라에 살면서 모르면 이상한 일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현수 하나뿐이다.
선장 등은 마리당 10만 골드, 즉 1,000억 원이라 짐작하고 있지만 현수는 잘해야 500골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목포와 완도 어판장에서 생물 오징어의 가격은 20마리 한 상자에 39,000원 정도로 마리당 약 2,000원 꼴이다.
크라켄은 덩치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두 마리를 합쳤을 때 일반 오징어의 50만 배쯤 될 것이니 1,000골드로 생각한 것이다.
이곳 돈 1골드가 약 100만 원이니 10억 원이다.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고래의 가격이 8,000만∼1억 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다.
“내 뜻대로 한다니 좋네. 그리고 이것들은 여기에 놔두면 너무 무거워 배가 나가는 데 지장 있을 테니 일단 아공간에 넣어놓겠네. 콘트라로 되돌아가면 그때 내려주지.”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고든은 수십 년간 배를 타면서 보고 들은 게 많다.
하여 마법사의 아공간에 담긴 물건은 전혀 변질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크라켄의 사체를 갑판 위에 놓을 경우 며칠 지나지 않아 썩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비싼 값을 받기야 하겠지만 갓 잡은 생생한 것의 10분지 1 가격밖에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아공간에 보관하는 것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몹시 바라던 바라는 뜻이다.
크라켄의 사체가 아공간에 담긴 후 검은 별의 전설호는 다시 전속력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위험은 없을 것이란 이야길 들은 현수는 컨테이너로 들어가 여러 가지 구상을 했다.
현수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애슐리와 보나, 그리고 캐롤이 애를 썼기에 주전부리하라고 과자와 음료 등을 꺼내 줬더니 환장한다.
그런데 비누와 세제가 발달되지 않아 세 여인의 몸에서 냄새가 풍긴다. 하여 적당량의 비누와 세제를 주고 사용법을 일러주었다. 배에서 씻을 수는 없기에 엘리디아를 불러 세탁과 목욕을 시켜줬다. 그제야 견딜 만했다.
“마탑주님, 저기 저 섬 보이시죠? 저게 블랙일 아일랜드입니다요.”
“그래?”
“네, 이제 십 분쯤 후면 도착합니다.”
“알겠네.”
블랙일 아일랜드는 온통 검은색 바위로 이루어진 섬이다. 이름처럼 길쭉한데 마치 S자처럼 휘어져 있다.
검은 별의 전설호는 휘어져 들어간 곳에 배를 정박시켰다.
현수는 고든 선장의 안내를 받아 상륙한 뒤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무인도가 확실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고 이 섬에 있는 거라곤 샘물 하나뿐이다. 그나마 수량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이 섬에 내려주고 배를 돌렸다고?”
“네,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딜 갔죠? 여긴 배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곳인데.”
고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섬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근처를 항해하는 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든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상륙한 사람에게 날개가 달려 있어도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다. 콘트라가 가장 가까운 육지이기 때문이다.
날개가 있어도 250㎞를 날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근육이 피로해져 가다가 바다로 떨어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갔죠?”
“그러게. 마나 디텍션!”
블랙일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긴 섬인데 그 길이가 약 3㎞ 정도 된다. 평균적인 폭은 약 200m이다.
굴곡이 있기에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마법으로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상하군.”
생물체의 흔적이 잡히지 않자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아리아니, 노에디아 좀 불러줘.”
“네, 주인님. 노에디아, 너 나오래.”
아리아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한 갈색을 띤 노에디아가 나타나 부복한다.
“노에디아가 마스터의 부르심을 받았사옵니다.”
말투가 익숙하다.
“뭐야? 얘, 지구에서 데려온 거야?”
“네, 여긴 마나가 풍부하잖아요. 지구에선 특별히 할 일도 없고요.”
“끄응!”
아리아니의 천연덕스런 대답에 현수는 낮은 침음을 낸다.
“노에디아가 지구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데려왔어?”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서 게리 론슨에게 금괴를 인도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 노에디아에게 지시를 내렸다.
북한 정주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희토류를 개마고원의 한 지역으로 이동시켜 놓으라고 했다.
지난 2013년, 북한의 조선천연자원무역회사는 영국계 사모펀드 ‘SRE 미네랄스’와 평안북도 정주의 희토류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로 말미암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소재한 합작회사 Pacific Century가 향후 25년간 정주의 모든 희토류 개발권을 갖게 되었다.
보고에 의하면 정주에 매장된 희토류의 가치는 약 65조 달러이다. 무려 7경 8,000조 원어치나 매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