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8
그런데 그걸 몽땅 캐갈 수 있도록 계약한 것이다.
이실리프 정보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국계 사모펀드 SRE 미네랄스와 합작회사 Pacific Century의 배후엔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었다.
현수가 매우 싫어하는 유태 자본이 북한의 희토류를 먹으려고 은밀하게 수작을 부린 것이다. 하여 노에디아로 하여금 희토류 이동 작업을 지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에디아를 아공간에 담아 아르센 대륙으로 데리고 왔다. 사전 논의가 없었으니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죄, 죄송해요, 주인님!”
아리아니의 커다란 눈이 금방 글썽거린다.
“저는 얘들도 수고를 하고… 그래서 상으로 이곳에 데려오면 마나도 많고… 그러니… 흐흑! 죄송해요. 잘못했쪄요.”
현수가 어찌 아리아니의 눈물을 이기겠는가!
“에구! 알았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나하고 상의 없이 이러면 안 돼? 알았지?”
“네! 담부터는 안 그럴게요. 정말 잘못했쪄요.”
“끄응! 어디서 배운 거야, 대체?”
아리아니의 응석 부리는 어투에 현수는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물론 너무나 귀여워서이다.
“한국의 텔레비전이란 걸 봤쪄요. 거길 보니까 어떤 여자애가 ‘히잉!’ 그러면서 앙탈을 한번 부리니까 온 국민이 귀여워 미치려고 하는 걸 봤쪄요.”
“끄응!”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낸다. 뭘 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12장 의문의 포탈 마법진
“알았어. 그만해. 그리고 노에디아.”
“네, 마스터.”
“이 섬에 혹시 동굴 같은 게 있는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에디아의 신형이 땅속으로 꺼진다. 아리아니는 기회를 잡기라도 한 듯 현수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주인님, 나빴쪄요. 아리아니 예쁜데, 아리아니 이렇게 귀여운데 혼이나 내시고. 나빴쪄요. 때찌 하고 싶어요.”
“끄응!”
현수는 침음을 내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아리아니가 필사적으로 배우고 익힌 걸 써먹으려 한다는 걸 눈치챈 때문이다. 하지만 귀까지 막을 순 없다. 하여 아리아니가 하는 말이 아주 잘 들린다.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이 더하기 이는 귀요미!”
율동까지 곁들여 재롱을 피우는데 어찌 시선이 안 돌아가겠는가! 저도 모르게 눈알을 굴린 현수이다.
“헐……!”
세상에 어찌 이보다 더 귀엽고 깜짝하고 섹시한 존재가 있겠는가! 아리아니는 현수의 화를 풀어주고 싶다는 듯 최선을 다해 귀요미송을 부른다.
“알았어! 야단 안 칠게! 우리 아리아니 예뻐!”
“치! 사랑은 안 해요?”
“사랑? 당연히 하지! 우리 아리아니 사랑해!”
“헤헷! 헤헤헷!”
아리아니가 환히 웃는다. 이때 지시를 받고 떠난 노에디아가 불쑥 솟아오른다.
“마스터, 이 섬에 지하 동굴은 없습니다.”
“그래? 흐음! 그거 이상하군. 알았어.”
말을 마친 현수는 섬의 북단에서 남단까지 쭉 훑었다. 세밀하게 점검해 보았지만 아무런 생명체도 없다.
“고든 선장, 여기 있는 사람이 배를 타고 간다면 어디로 가지?”
“마탑주님, 이 섬은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따라서 다른 배가 와서 그 사람들을 태우고 갈 리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배가 있었는데 왜 다른 배를 타겠습니까? 저야 돈만 받으면 어디든지 가는데요.”
“그래? 그렇지? 흐음, 그래도 이상해. 잠시만 기다리게.”
“네, 마탑주님.”
현수는 다시 섬을 수색했다. 이번엔 마나 디텍션 마법까지 구현시킨 상태로 움직였다.
그렇게 이동하던 현수는 섬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가 조금 이상하군. 뷰 마나 포스!”
샤르르르―!
이 마법은 3서클이면 쓸 수 있는 것으로, 주변에 왜곡된 마나 역장이 있는지를 확인할 때 쓰는 것이다.
“그렇군. 매직 캔슬!”
걸린 마법을 강제로 해제시키자 모습이 바뀐다.
“이건… 포탈 마법진!”
현수가 사용하는 텔레포트 마법진보다 약간 아래의 것이다. 이 마법진 위에 오르고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가 모여들면 지정된 좌표로 대상을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흐음!”
현수는 마법진을 유심히 살폈다. 어디로 이동되는지 좌표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그려져 있지 않다.
메인이 아니고 서브라 그럴 것이다.
이동할 장소에 있을 메인 마법진에는 두 개의 좌표 모두가 표시되어 있다.
유사시 포탈을 폐쇄할 권한을 가지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저쪽에선 이 마법진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가봐야 알 수 있는 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현수는 생각을 정리하곤 검은 별의 전설호로 되돌아왔다.
“고든 선장.”
“네, 마탑주님.”
“나는 이곳에서 할 일이 있네. 그러니 돌아가게.”
“네? 여기 남으시겠다고요?”
고든 선장은 놀란 표정이다.
집도 절도 없고 배는 더더욱 없으며 심지어 식량까지 없는 섬에 혼자 남겠다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 그러니 콘트라로 귀환하게.”
말을 마친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는 크라켄의 사체를 꺼냈다. 그리곤 보존 마법을 걸어주었다.
“앞으로 반년은 끄떡없을 것이네.”
현수의 표정을 보니 돌아갈 마음이 없다. 말려봐야 소용없을 게 뻔하니 명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듯 허리를 숙인다.
“…감사합니다요.”
“그래, 잘 가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마탑주님.”
“그래, 알았네.”
고든이 물러간 후 선원들이 일일이 내려와 정중하게 예를 갖춘다. 요리사와 보조, 그리고 애슐리와 보나, 캐롤도 공손히 절을 한다.
“다들 좋은 데로 시집가.”
“네, 마탑주님.”
여인들은 현수로부터 선물 받은 비누와 세제 등을 떠올리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검은 별의 전설호는 블랙일 아일랜드를 떠났다.
홀로 남게 된 현수는 포탈 마법진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프네 등이 사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저쪽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아르센 대륙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마법을 구현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혹시 이 행성에 다른 대륙이 있는 건 아닐까?’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마법진에 발을 들여놓았다. 물론 만일을 위한 준비는 했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전능의 팔찌에 박힌 마나석 중 주황색에서 살짝 빛이 나온다. 그와 동시에 마나 유동이 시작되고 현수의 신형이 안개에 감싸인다.
약간이 시간이 지나자 현수가 딛고 있는 포탈 마법진에서 환한 빛이 뿜어진다. 그 시간은 찰나였다.
샤르르르르―!
허공으로 미약한 마나가 흩어진다. 그와 동시에 현수의 신형이 블랙일 아일랜드를 떠난다.
* * *
“모두들 경계 단단히 해!”
“네, 알겠습니다!”
“내가 손을 내리면 무조건 찌르는 것도 잊지 말고! 마법사들도 단단히 준비해!”
“네, 대장!”
누군가의 명에 따라 창을 든 병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포탈 마법진을 바라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마법진이 빛을 발하자 비상이 걸려 모두가 달려온 것이다.
‘읏! 이게 뭐야? 플라이!’
도착하자마자 살기를 느낀 현수는 얼른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뭐야? 왜 아무것도 안 나타나는 거야?”
“글쎄요? 혹시 마법진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요?”
“이상? 너 가서 마법진 도면 가지고 와. 확인해 보게.”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사내는 창을 거두곤 후다닥 달려간다.
“흑인이네.”
아르센 대륙에선 흑인을 본 바 없다.
심지어 흑인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긴 절반 이상이 흑인이다.
“여긴 대체 어디인 거야?”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포탈 마법진이 그려진 건물 뒤쪽 골목에서 평범해 보이는 사내가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나온다.
폴리모프 마법으로 모습을 바꾼 현수이다.
걸치고 있는 의복도 조금 전과 다르다. 슬쩍 담을 넘어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이곳 돈으로 얼마의 가치인지 알 수 없기에 10실버짜리 은화 두 개를 꺼내놓았다. 20만 원에 해당된다.
로브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활동성 있게 소매 폭도 좁고 덜 풍성한 옷이다.
현수는 천천히 걸어 이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했다. 가다 의복 가게를 발견하곤 들어가 다른 옷을 샀다.
20실버를 꺼내놓기는 했지만 훔친 옷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아르센 공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전능의 팔찌가 있어 언어는 문제가 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여관 겸 선술집을 발견했다.
‘뿔난 양의 엉덩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간판을 걸려 있는 술집이다.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열기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여긴 여름이다. 아르센은 아직 2월이라 추운데 여긴 8월 한복판인 듯 덥다.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가 계절이 반대이니 여긴 아르센이 아닌 다른 대륙이겠구나.’
현수가 자리에 앉자 날씬한 아가씨가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그런데 술 이름부터 음식 이름까지 모두 생소하다.
게다가 말까지 다르다. 다른 대륙에 온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된다. 전능의 팔찌가 또 한번 위력을 발휘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주문받던 아가씨가 짜증 난다는 표정이다.
“이봐요, 헤르마에 처음 왔어요?”
“네? 아뇨, 처음은 아닙니다.”
현수가 부인했지만 아가씨는 아니라는 걸 안다는 듯 대꾸한다.
“그럼 내가 가져다주는 걸로 배를 채워요.”
“네? 그게 무슨……?”
“말해봤자 뭔지 모를 테니 그냥 주는 거 먹으라고요.”
참 불친절한 식당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시비를 걸 타이밍이 아니라 고개만 끄덕였다.
“4실버 30쿠퍼요.”
음식값치곤 엄청나게 비싸다. 한국으로 치면 한 끼 식대가 43만 원이란 소리인 것이다.
“…여기요.”
현수가 은화를 내밀자 아가씨는 새삼 위아래를 훑어본다.
“아……! 외출자였어요?”
“네? 외출 뭐라고요?”
“아, 됐어요. 잔돈은 내가 가져도 되죠? 그럼 기다려요.”
종업원이 제 마음대로 팁을 챙기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수는 발작하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선 아가씨가 자신의 팁 액수를 정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잠시 후, 아가씨가 마음대로 정한 음식이 나왔다. 지구로 치면 돈가스 비슷한 것과 약간 독한 맥주이다.
한 모금 마셔봤는데 10도 정도 되는 듯하다. 특이한 건 지구에서처럼 시원하다는 것이다.
“이런 술, 저쪽엔 없죠?”
현수에게 음식을 주곤 가지 않고 맞은편에 앉은 아가씨가 물은 말이다.
“뭐라고요?”
“저쪽 대륙 말이에요. 아르, 아르센이라고 하나요? 거긴 아주 미개하다면서요?”
“……?”
“거긴 가봤을 테니 거기 얘기 좀 해봐요.”
“내가 거길 가봤다는 걸 어떻게 알죠?”
현수의 물음에 아가씨는 앞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어 조금 전 현수가 주었던 은화를 꺼내 보인다.
“이거요. 이건 저쪽에서 쓰는 거잖아요. 말해봐요. 거기 아가씨들은 어땠어요? 이쪽이 훨씬 낫죠?”
“……!”
“아, 배가 고파서 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먹고 있어요, 조금 있다 올 테니. 어디 가지 말아요? 안 가고 있으면 내가 이따가 상 줄게요. 상이 뭔지는 알죠?”
말을 마친 아가씨는 윙크를 하고 제 가슴을 두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