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099화 (1,098/1,307)

# 1099

대체 무슨 의미의 몸짓인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내가 바보가 된 건가? 지구에선 최고의 두뇌였는데.”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돈가스 비슷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귀는 활짝 열어놓은 상태이다.

라덴주라는 조금 독한 맥주는 시원해서 그런지 먹을 만했다. 그러고 보니 음식에서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후춧가루나 녹차 가루를 뿌렸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는데 그건 아닌 듯싶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곤 더욱 집중해서 음식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접시도 투박한 질그릇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목기가 아니다.

“설마 도자기?”

이조백자나 고려청자 급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멋을 부린 도자기가 분명하다.

지구에서 만드는 것과는 다른 방식인 듯싶다.

“아르센이 아닌 것은 분명하군.”

현수는 음미하듯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휴우! 이제 좀 한가하네요.”

털썩―!

주문을 받던 아가씨가 현수 맞은편에 다시 앉는다. 손에는 라덴주 한 컵이 들려 있다. 약 800㏄ 정도 되는 잔이다.

일반 맥주가 4.5도이니 약 1,800㏄에 들어 있는 알코올이 담겨 있을 것이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캬아아! 시원하네.”

단숨에 잔을 비운 아가씨는 입술에 묻은 거품을 팔뚝으로 문질러 닦고는 현수를 빤히 바라본다.

“흐음! 말해봐요. 그쪽은 아무리 봐도 외출자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된 거죠?”

“뭐가요?”

“외출자들은 룩셔의 고수여야 하잖아요. 근데 그쪽은 전혀 그렇게 안 보이거든요.”

‘룩셔? 룩셔가 뭐지? 태권도 같은 무술 이름인가?’

처음 듣는 어휘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야 하지만 현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침입자라는 것을 들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수는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쪽 이름은 뭐죠?”

“나요? 왜요? 이름 가르쳐 주면 날 꼬시려구요?”

아가씨는 어디서 감히 수작을 부리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을 어떻게 해보려 접근하는 사내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르쳐 주기 싫음 말구요.”

현수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난 파티마 이브라힘이에요. 그쪽은요?”

“나는 하인스요.”

“그게… 본명이에요? 아님 외출자의 닉네임이에요?”

“본명입니다.”

“참 특이한 이름이군요. 하인스, 하인스! 발음하기도 나쁘고. 뭐 특색은 있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외출자 하인스 씨!”

아르센 대륙에선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인데 이곳에선 괴상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아가씨는 남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큰 소리로 말한다. 이때 곁에 있던 사내가 관심 있다는 듯 시선을 돌린다.

“외출자라고? 누가? 이 친구가?”

“에이, 아닌데? 외출자 아무나 하나? 이 친구는 비리비리해서 외출자 관문을 통과 못했을 거 같은데?”

현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급적 마찰이 적어야 이곳이 어떤 곳인지 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출자 맞아요. 저쪽 돈을 들고 있었거든요.”

“그래? 어떻게 관문을 통과했지? 그거 엄청 힘든 거잖아.”

“맞아. 아무리 봐도 비리비리한데. 거참, 신기하군.”

현수가 있는 주변의 사람들 모두 한마디씩 하는데 왠지 부러움이 섞인 분위기이다.

‘흐음, 외출자는 아르센 대륙과 이곳을 오가는 자들을 칭하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좋은 건가?’

현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파티마 이브라힘이라는 아가씨가 주방에서 두 잔의 라덴주를 가져온다.

쿵, 쿵―!

“나랑 한잔할래요?”

시선을 들어보니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다.

특히 눈이 예뻤다. 인도의 여배우 디피카 파두콘(Deepika Padukone)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나랑 한잔하고 싶어요?”

현수의 반문에 파티마 이브라힘이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그쪽이 끌리네요, 외출자 하인스 씨! 한잔해요, 나랑! 기분 좋으면 뽀뽀까지는 해줄 수 있어요.”

도발적인 눈빛으로 한번 해보겠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이렇듯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여자를 상대해 본 적이 없다. 지구에선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가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미모가 떨어진다는 게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연애 한번 하자고 다가오는 느낌이다.

주도권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어 한마디 했다.

“흐음! 뽀뽀라……. 날 너무 싸구려로 보는 거 아니오?”

“으잉? 뽀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뭐예요? 뭐 이렇게 엉큼해요? 좋아요. 나보다 술이 세면 키스까지 허락하죠. 됐죠? 자, 한 잔 받아요.”

파티마 이브라힘이 술잔을 밀어서 건넨다. 이를 받는데 한마디 더 한다.

“참, 이건 특제 라덴주예요. 아까 것보다 조금 더 강해요. 다시 말하지만 나랑 키스하려면 나보다 술이 세야 해요. 난 술주정뱅이는 싫어하니까요.”

현수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여자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큐어 포이즌 마법을 쓰지 않아도 그랜드 마스터의 체력은 앉은자리에서 소주 열 병을 마셔도 끄떡없게 하기 때문이다.

현수가 잔을 들자 파티마 이브라힘이 자신의 잔을 들어 보이곤 그대로 원샷한다. 독한 술이라 경고해 놓고 정작 본인은 물마시듯 들이켠다.

“캬아! 시원해!”

탕―!

이번에도 윗입술에 묻은 거품을 팔뚝으로 닦아낸다. 그리곤 너도 어서 마시라고 눈짓한다.

독약을 탔어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이깟 술쯤이야 하고 현수 역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아까 것이 10도라면 이번 것은 12도쯤 된다. 맥주치고는 도수가 높다. 하지만 현수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몽골에 갔을 때 먹어본 맥주도 12도였다.

“호오! 제법 하네요. 한 잔 더?”

“좋지! 그런데 술값은 누가 내지?”

“그야 외출자 하인스 씨가 내셔야죠. 연약한 내가 내요?”

파티마 이브라힘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표정이다.

“그러지. 한 잔 더.”

“오케이! 좋았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술 가져오는 김에 안주도 더 내올게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티마는 신 난다는 듯 엉덩이를 흔들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이때 현수의 귀로 누군가 하는 말이 들린다.

“쯧쯧! 오늘은 저 친구야? 파티마에게 걸리면 주머니 탈탈 털리는데 누가 나서서 얘기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놔둬. 저 친구, 파티마를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그러는가 본데, 그러려면 대가를 치러야지.”

“지금껏 파티마와 대작해서 이긴 사내가 있었나?”

“없었지. 어떻게 파티마를 이겨? 쟤는 말술6)이야.”

“쯧쯧! 돈만 잔뜩 쓰고 취해서 쓰러지겠군.”

“흐흐흐! 그렇겠지? 그럼 파티마는 저 녀석을 제일 후진 방에 쑤셔 박고는 숙박비까지 챙길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파티마는 이 술집 주인의 딸이다.

작년부터 서빙을 시작했는데 손님들과 내기를 하여 본인의 배를 채우고 술까지 즐긴다. 점심과 저녁, 그리고 술과 안주 모두 손님이 내게 만들어 매상을 팍팍 올리고 있다.

파티마의 미모를 탐한 사내들의 결말은 잔뜩 취해 주머니를 탈탈 털리는 것이다.

“쟤는 작정을 하고 와도 소용이 없어. 특이체질이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대.”

누군가의 말이다.

‘특이체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흐음! 뭔가 감추고 있군. 그렇다면 뭐…….’

현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파티마 이브라힘이 두 잔의 술과 기름진 안주 한 접시를 가져온다.

“자, 본격적으로 한번 마셔보자구요!”

“이것만 마시면 파티마와 키스하는 건가?”

“에이, 설마요! 이것 가지곤 어림도 없죠. 최소한 이걸로 여덟 개는 더 마셔야죠.”

12도짜리 술 800㏄짜리 열 잔이면 한국에서 4.5도짜리 맥주 21,333㏄를 마시는 것과 같다. 이걸 마시기 전에 10도짜리 한 잔을 비웠으니 1,777㏄를 추가해야 한다.

둘을 합치면 23,110㏄이다. 웬만큼 마신다는 남자들도 이 정도면 다음 날까지 떡이 된다.

파티마 이브라힘은 자신 있느냐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다. 상당히 도도한 표정이다.

문득 호승심이 돋은 현수는 피식 웃었다.

“뭐, 한번 마셔보지. 우선 이것부터.”

앞에 놓인 술잔을 든 현수는 단숨에 비웠다.

“꿀꺽, 꿀꺽, 꿀꺽―! 캬하아―!”

탕―!

단숨에 잔을 비운 현수는 닭튀김 비슷한 음식을 찢어 입에 넣으며 파티마를 바라본다.

“파티마도 한잔해야지?”

“제법이군요. 좋아요. 오늘 호적수를 만난 걸 인정해요. 그래도 내 입술을 차지하긴 힘들 거예요.”

말을 마친 파티마 역시 단숨에 잔을 비운다.

술은 빨리 마실수록 빨리 취하게 마련이다. 알코올을 더 빨리, 더 많이 섭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술잔을 단숨에 비운 건 사내들에게 호기를 요구하는 전략이다.

파티마는 다음 잔부터는 속력을 조절해 가며 마실 생각이다. 물론 상대하는 사내들은 계속 단숨에 마셔야 한다.

그렇게 사내가 다섯 잔을 넘길 때면 파티마는 석 잔 정도를 비운 상태가 된다. 섭취량에 차이가 있으니 사내는 해롱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약간의 도발만으로도 계속 단숨에 술을 비우게 할 수 있다.

사내가 여덟 잔을 비웠을 때 파티마는 넉 잔을 비우고 다섯 잔째에 입을 댄 상태가 된다.

이 정도면 대부분 나가떨어진다.

그럼 주머니를 뒤져 계산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액수까지 확인시켜 뒷말이 나올 수 없게 한다.

다음은 사내를 골방에 처박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숙박비를 챙긴다. 그리곤 시원한 물 한 잔을 넣어준다.

눈 뜨면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르다.

하인스라는 사내는 자신의 육감적인 몸매와 빼어난 얼굴을 보고도 찝쩍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곳 헤르마는 마인트 대륙의 북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많은 용병과 장사꾼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이 도시엔 영주가 없다.

대다수 주민인 용병과 상인들의 대표인 용병지부와 상인연합회가 자치회를 만들어 유지시키고 있다. 그래서 마인트 대륙에서 유일하게 자유스런 분위기인 곳이다.

어쨌거나 파티마 이브라힘은 ‘헤르마의 히야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히야데는 이곳 마인트 대륙의 주신(酒神) 이름이다.

몹시 아름답지만 자신과의 대작에서 지면 목숨을 빼앗는 비정한 여신이다.

파티마 역시 매우 아름답고 무자비하게 사내들의 주머니를 털기에 이런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다.

파티마와 현수가 대작을 시작하자 꼬맹이 하나가 술잔을 날아온다. 파티마의 동생이라 한다.

현수는 세 번째 잔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곤 파티마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내가 잔을 비웠으니 너도 비워라’ 하는 표정일 것이다.

이 순간 현수는 뷰 마나 포스 마법을 구현시키고 있다.

주변에 마법사가 있을 수 있기에 마나 유동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집중하는 중이다.

‘으이구, 그럼 그렇지.’

파티마의 오른쪽 허리 부분에 무언가가 붙어 있다. 보아하니 큐어 포이즌 마법이 인챈트된 아티팩트인 듯하다.

현수는 슬그머니 마나를 뿜어 마법진 간섭 현상을 일으켰다. 신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는 것이 아닌지라 파티마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 순간 파티마가 잔을 든다. 그리곤 호기롭게 잔을 비우기 시작한다.

“꿀꺽, 꿀꺽, 꿀꺽―!”

술이 목구멍을 통과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조금 전처럼 단숨에 마신 것이 아닌 중간중간 쉬면서 잔을 비운다.

“캬하아―!”

타앙―!

잔 내려놓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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