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00화 (1,099/1,307)

# 1100

“됐죠?”

“그래, 여자치곤 엄청 잘 마시는군.”

말을 마친 현수는 다음 잔도 단숨에 비웠다.

13장 미지의 대륙 마인트

“와아! 오늘 파티마가 임자 만났네, 임자 만났어!”

“크흐흐! 파티마 오늘 입술 빼앗기게 생겼네!”

“그러게! 저 도도한 것이 오늘… 크흐흐! 어서 소문내!”

“그래! 파티마 저거, 입술 뺏기는 모습은 다 봐야 해!”

그러고 보니 손님들 모두 둘의 대작에 집중하고 있다. 잠시 후, 주점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내들로 채워졌다.

‘헤르마의 히야데’가 오늘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는 말에 너도나도 구경하러 온 것이다.

현수는 모르지만 이곳 마인트 대륙은 아르센 대륙과 풍습이 많이 다르다.

아르센 대륙에선 사랑하는 사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키스를 할 수 있다. 그러다 다툼이 잦아지면 헤어질 수도 있고, 키스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 마인트 대륙에선 부부라 할지라도 키스를 하지 않는다. 입술과 입술을 맞대는 단순한 뽀뽀는 연인 사이에도 한다.

그럼에도 혀를 사용하는 키스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인이 사내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경우 현수가 이기면 키스를 한다.

그러면 파티마 이브라힘은 현수가 무엇을 요구하든 다 들어주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주인과 노예 관계 비슷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주인은 노예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당연히 잠자리 상대로 쓸 수도 있고 남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당연히 돈을 받고 팔아치울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요구할 수 없다.

그래서 파티마는 한 번도 지면 키스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현수의 작은 도발에 울컥하여 키스를 내기로 건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그간 파티마는 거의 매일 사내들을 홀려 주머니를 털었다. 수많은 사내가 도전했으나 그때마다 당당히 승리를 쟁취하며 도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 현수에게 수작을 걸었을 때 모두들 처음 본 사내가 거지꼴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곳은 술값과 안줏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파티마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술과 안주 맛이 다른 주점보다 월등히 좋아서이다.

현수는 두 볼이 붉어진 파티마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아티팩트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잔 더 해야지?”

“그럼, 당연하쥐요! 야, 술 더 가져와!”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파티마의 혀가 꼬이기 시작한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파티마, 컨디션이 안 좋아? 웬일이야, 벌써 혀가 꼬이고? 그러다 지면 어떻게 해?”

시선을 돌려보니 젊은 사내인데 걱정하는 표정이다.

파티마를 꼬시려고 네 번이나 도전했다가 네 번 다 패배의 쓴잔을 마신 청년이다.

걸친 의복을 보니 귀족가의 자제인 듯싶다.

“자, 이번에도 내가 먼저 마시지.”

쭈우우욱! 벌컥, 벌컥, 벌컥!

“캬아아! 좋군!”

탕―!

현수의 잔이 또 비워지자 파티마는 슬쩍 눈치를 본다. 본인도 본인의 상태가 어떤지를 느낀 모양이다.

허리춤을 만지며 아티팩트가 제대로 있는지를 확인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파티마, 내가 한 잔 더 먼저 마셔도 돼?”

“그, 그럼요! 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요”

파티마는 잘되었다는 듯 자신의 잔을 밀어준다.

“내가 이걸 다 마시면 파티마는 두 잔을 더 마셔야 하는 거야. 알지?”

“그, 그럼요!”

“파티마가 두 잔을 다 못 마시면 나하고 키스하는 거 확실하지? 설마 나중에 못하겠다고 빼거나 그럼…….”

“절대 안 그래요! 그러니 어서 잔이나 비워요!”

파티마는 아티팩트가 작동되기만 하면 금방 술이 깰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좋아. 내가 먼저 마시지.”

현수는 이번에도 단숨에 잔을 비웠다. 입술에 묻은 거품을 닦아내며 파티마를 바라보자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한다.

술이 말끔히 깨야 하는데 점점 더 취하는 것 같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어이! 여기 술 두 잔 더 부탁해!”

“네, 손님!”

꼬맹이는 오늘도 누나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지라 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찰랑찰랑하게 잔을 채워 나온다.

탕, 탕―!

“파티마, 이제 마셔. 난 안주나 먹을게.”

현수는 제법 짭짤한 안주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

파티마는 가득 채워진 잔을 보며 아무런 말도 없다. 더 이상 마시기 힘들다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파티마, 잔 안 비워?”

“마셔요! 마실 거예요. 우엑! 우웨에에에엑―!”

속이 울렁거리는 걸 어떻게든 다스리려 하던 파티마는 무엇을 먹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선 현수는 앞섶에 묻은 토사물을 털어냈다.

“이런 제길!”

“와아! 피타미가 졌다! 졌어!”

“그래! 이건 분명 파티마의 패배야!”

사내들이 일제히 즐거워한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은 대형 사고를 좋아한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누군가의 선창에 모두들 따라서 소리친다.

쿵, 쿵, 쿵, 쿵―!

“키스해! 키스해!”

쿵, 쿵, 쿵, 쿵―!

“키스해! 키스해!”

일제히 발을 구르며 소리치자 주점 전체가 울린다.

천장의 먼지가 쏟아져 내리건만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소리를 질러댄다.

쿵, 쿵, 쿵, 쿵―!

“키스해! 키스해!”

발 구르는 소리와 키스하라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지나가던 행인들까지 기웃거린다. 파티마가 진 게 사내들의 체면을 세운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봐, 친구! 어서 파티마와 키스하라구!”

“그래! 어서 키스해!”

모두들 현수에게 키스를 종용한다. 그런데 이제 금방 토한 입에 키스를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여 한마디 하려는데 파티마가 엎어진다.

쿵―!

파티마는 자신이 토해놓은 토사물에 코를 박고 있다. 완전히 맛이 간 것이다.

“으이구! 더러워!”

모두들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러선다.

“이봐, 내일 아침에 꼭 해! 알았지?”

“그래, 내일 아침에 깨면 깨자마자 해!”

사내들은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소리를 지른다.

“야! 우리 오늘 밤 가지 말고 여기서 밤새우자! 내일 아침 저 친구랑 파티마랑 키스하는 거 봐야지!”

“좋아, 좋아! 그러자, 그래!”

“좋은 생각이야! 자, 이제부터 술 파티다! 자, 마시자!”

한바탕 왁자지껄한 소동이 벌어진다.

내일 아침 신세 망치는 파티마를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흥분한 것 같다.

“꼬맹아, 누나 방은 어디냐?”

승승장구하던 누나가 엎어지자 파티마의 동생인 야흐야 이브라힘은 울상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키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혀엉―! 정말 우리 누나랑 키스할 거예요?”

“그럼, 해야지. 누나 방은 어디냐?”

“뒤채 이층 가운데 방이에요.”

야흐야 이브라힘은 고개를 떨구며 선술집 뒷문 밖에 있는 아담한 이층집을 가리킨다.

현수는 파티마를 안아다 침대에 뉘였다.

술에 완전히 취해 인사불성인 듯 축 늘어져 있지만 현수는 알고 있다. 파티마는 지금 잔꾀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뉘어놓고 보니 얼굴에 묻은 토사물 때문에 가관이 아니다.

“파티마, 일어나서 씻어. 얼굴이 엉망이야.”

“으음, 으으으음.”

‘나 취해서 아무것도 못 알아들어’라는 뜻일 것이다.

“안 일어나면 수건을 물에 적셔와 대강 씻기고 확 키스해 버린다. 안 일어날 거야?”

“…이, 일어나요.”

파티마는 아까의 당당함을 완전히 잃고 눈치를 본다.

내기에 졌으니 약속대로 키스를 하면 평생 현수를 쫓아다니며 온갖 수발을 다 들어야 한다.

현수의 잠자리 시중을 드는 건 그렇다 쳐도 잘못 보이면 뭇 사내들의 노리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하여 돈을 버는 사내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진 거 인정해?”

“……!”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즉시 키스를 하자고 할 것이고, 그럼 인생 끝이기 때문이다.

“안 해? 다른 사람들 불러서 누가 이긴 건지 확인하고 다들 보는 앞에서 키스할까?”

“아, 아니에요! 졌어요! 제가… 흐흑! 제가 졌다구요.!”

파티마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데 몸을 떨고 있다. 미구에 닥칠 일이 불안해서일 것이다.

“좋아. 그럼 약속한 대로 키스할까? 아님 내게 이곳에 대해 이야기해 줄 거야?”

키스한다는 말에 자지러질 듯 놀라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이곳에선 키스가 뭔가 중대한 의미가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여 일부러 키스를 강조한 것이다.

“네? 그게 무슨……?”

파티마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나 사실 이곳 사람 아냐. 아르센 대륙에서 왔지. 내 이름 이상하다며? 그게 아르센에선 가장 흔한 이름이야.”

“그, 그럼… 외출자가 아닌 거예요?”

파티마는 적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래. 외출자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야. 여기는 오늘 처음 왔어. 그러니 이곳에 대해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해. 파티마가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어때? 말해줄 수 있어? 아님 키스를 하고.”

현수가 본인의 신분을 털어놓은 건 마법으로 기억을 지워 버리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 정말 이야기만 해주면 키스 안 할 거예요?”

파티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사내들이란 다 늑대다. 아빠와 동생을 빼고 모두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잠자리를 갖기 전까진 살살거리며 온갖 비위를 다 맞춰준다. 그러다가 일단 욕심을 채우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안면몰수한다.

여인들은 간이라도 빼줄 것 같던 사내에게 속아 모든 것을 내줬는데 차갑게 돌아서면 당황하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먹인다.

순결을 잃은 여인은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길 수 없는 것이 이곳의 풍습인 때문이다.

“저, 정말이죠? 정말 말만 해주면 키스 안 할 거죠?”

“그래. 안 해. 오늘 처음 만났는데 술 한잔 같이했다고 키스하는 건 좀 너무하잖아? 안 그래?

“그, 그렇죠! 맞아요! 처음 만난 날 키스하는 건 진짜 너무한 일이에요! 맞아요!”

파티마의 안색이 급속도로 밝아진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이 동네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걸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 그럼 여기 얘기를 좀 해줘. 돈은 어떤 걸 쓰고, 옷은 어떤 걸 입으며, 음식은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네! 여기는요, 마인트 대륙이라는 곳이에요.”

“마인트 대륙?”

“네, 다른 말로는 마법사들의 제국이라고도 하죠. 딱 한 나라뿐이니까요.”

“대륙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크기에 그래?”

“예전엔 약 150개 나라가 있었어요. 여기는요…….”

파티마의 설명이 이어졌는데 다음이 그 내용이다.

마인트 대륙의 역사는 유구하다.

지난 5천 년간 수많은 국가가 명멸했고, 한때는 찬란한 문화를 갖기도 했다.

그러다 300년쯤 전에 마법사들에 의해 전 대륙이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렇게 건국된 나라가 로렌카 제국이다.

참고로 로렌카란 이곳 마인트 어(語)로 ‘위대한 마법사’라는 뜻이다.

초대 황제에 의한 제국 선포와 동시에 기존 국가들은 강제로 해산되었다. 각국의 국왕과 황제, 그리고 왕자들은 참수형에 처해졌고, 황비, 왕비, 공주들은 성노예로 전락했다.

대공,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준남작 같은 귀족들 역시 목숨을 잃었고, 가족은 모두 노예가 되었다.

사내들은 노역형에 처해졌고, 여인들은 몸을 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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