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4
“이봐, 파티마는 데려가지 말게. 돈을 벌려면 여기가 훨씬 좋을 거야. 파티마를 원하는 녀석들이 많거든.”
“그게 뭔 소립니까?”
돈을 번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현수가 눈썹을 치켜 올리자 다 알면서 왜 이러느냐는 표정이다.
“그간 파티마에게 당한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네. 그 녀석들, 몸이 달아 있어. 그러니 여기서 몸을 팔게 하면 금방 거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거지.”
“뭐를 팔아요?”
몸을 판다는 말이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장한이 현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자네 외출자라며? 그럼 귀족이랑 결혼할 거 아닌가? 파티마는 평민이라고. 적당히 즐긴 후엔 이곳 헤르마의 사내들에게도 기쁨을 나눠 줘야 하지 않겠나?”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곁에 있던 살집 두둑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든다.
“맞아. 파티마라면 다른 애들 주는 것에 두 배까지 낼 용의가 있네. 4실버라면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80∼100실버를 버는 거네. 한 달이면 24골드에서 30골드를 버는 거라구.”
참고로 1골드는 100만 원에 해당된다. 따라서 24∼30골드는 2,400만∼3,000만 원을 의미한다.
월수입이 이 정도라면 제법 짭짭하다.
현수는 자신더러 포주 노릇 하라는 사내들의 태도에 기가 막혔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누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나 싶다.
파티마와 무얼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처럼 대하고 있다.
‘혹시 키스를 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에이, 아니겠지. 고작 키스 한 번 했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해? 그건 아닐 거야. 근데 다들 왜 이러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반문하진 않았다. 정체가 드러날 일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봐, 꼬맹아! 여기 식사 일 인분 줘.”
“네, 형아!”
야흐야가 주방으로 들어가 주문받은 걸 이야기하고 튀어나온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나저나 누나는요? 형아가 데리고 갈 거예요?”
“누나? 파티마 말이냐?”
“네, 우리 누나요. 이제 형아 거잖아요.”
“내 거?”
“네, 근데 누나 안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네?”
야흐야는 제발 누나를 데리고 가지 말라는 듯 애처로운 표정으로 현수를 올려다본다.
“그래! 널 봐서 누나 안 데려갈 테니 걱정 마.”
“정말이죠? 야호! 하하! 하하하!”
야흐야 이브라힘은 두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저녁 식사를 마친 현수는 2층 객실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침구는 냄새가 났고 벌레도 많았다.
‘끄응, 여기서 자야 하나?’
밖에 나가 텐트를 쳐도 되지만 이목이 있어 자제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하여 밖으로 나가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누구요?”
“저예요, 파티마. 들어가도 돼요?”
“…들어와.”
삐이꺽―!
문이 열리자 낯빛 어두운 파티마가 고개를 들어 현수를 바라본다. 오늘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 사내는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을 것이다.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그냥 놔뒀을 리 없었다. 사내란 치마만 두르면 환장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계속 거기에 서 있을 거야?”
“아뇨. 들어가요.”
문을 닫은 파티마는 잠시 호흡을 고른다.
“저어, 어제 저와 키스했나요?”
“그건 왜? 몰라서 물어?”
너무 심각해하니 슬쩍 놀리고픈 마음이 든다.
“그럼 제가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
“주인님? 아니, 손님이라고 불러. 난 네 주인이 아니니까.”
“그 말씀, 진심인 거죠?”
현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파티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아니다. 산맥을 통과한 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말인가요?”
“그래, 아직 키스 안 했어.”
“…아직이라고요?”
“응. 마음에 안 들면 그때 하려구. 근데 나 지금 좀 쉬고 싶은데 거기 그러고 있으면 슬쩍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
“아, 알았어요. 나갈게요.”
“그래, 내일 아침에나 보자구.”
파티마는 서둘러 나간 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현수가 오기 전까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씰!”
현수는 봉인 마법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곤 텔레포트했다. 지구에서 이쪽으로 차원이동했을 때 당도한 곳이다.
적당한 곳을 찾아 컨테이너를 꺼내놓았다. 라이트 마법으로 불을 밝히곤 주점으로 가는 길에 산 지도를 펼쳤다.
마인트 대륙은 호박처럼 둥근 모양이고, 약간 오른쪽 위에 꼭지가 달려 있다. 이곳 헤르마가 있는 곳이다.
참고로, 헤르마의 크기는 남한보다 약간 크다.
그리고 마인트 대륙의 전체 넓이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와 남미 전체를 합쳐놓은 것보다도 크다.
“으음! 엄청 크네.”
현수는 슬쩍 이맛살을 찌푸렸다. 수도 맥마흔까지 너무 멀어서이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3,000㎞는 가야 한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산맥과 강을 거쳐야 한다.
파티마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도시로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 다리를 건널 때에도 신분증 검사를 한다.
“여긴 주민등록증을 쓸 수도 없는 곳이니. 쩝!”
아르센 대륙에선 아주 유용했는데 이곳에선 침입자라는 증명서가 될 판이다.
나라라곤 로렌카 제국 하나뿐인 때문이다.
지도엔 각각의 영지가 굵은 점선으로 구획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공, 후, 백, 자, 남작의 영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색깔별로 영지의 크기가 달랐기에 쉽게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수도 맥마흔은 서울시(605㎢)와 경기도(10,184㎢)를 합친 정도의 크기이다.
공작령은 81개, 후작령 158개, 그리고 백작령 372개와 자작령 769개, 남작령 1,620개로 분할되어 있다.
3,000개의 영지 이외에도 칠해지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많다. 험준한 산자락 밑이거나 사막 등이다.
이 면적은 대륙 전체의 3분의 1 정도 된다.
이 정도 크기라면 작위는 받았지만 영지가 없는 귀족도 상당수가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륙 곳곳에 점이 찍혀 있다. 뭔가 싶어 살펴보니 포탈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영주가 없는 자유 영지 헤르마에도 하나 찍혀 있는 것을 보고 추론한 것이다.
확인해 보니 703개나 된다.
다 헤아리고 나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뭐야? 포탈 마법진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5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관리해야 하는데 그럼 여기에 그런 마법사가 700명 이상 있다는 거야?”
아르센 대륙엔 현수 바로 다음의 7서클 마법사가 일곱 명뿐이다.
이 중 여섯 명은 마탑주이고, 한 명은 현수 덕에 깨달음을 얻은 아르가니 에이런 판 포인테스 공작이다.
현수의 아내로 내정된 케이트의 조부이기도 하다.
이실리프 마탑을 제외한 대륙 7대 마탑 중 하나는 고작 6서클 마법사가 탑주이다.
아르센 대륙의 마법사 전력은 10서클 마스터 1명, 7서클 7명, 6서클 41명, 5서클 165명, 4서클 661명, 3서클 3,211명으로 총원 4,086명이다.
이는 7대 마탑에서 파악하고 있는 숫자이다.
2서클 이하는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 보지 않아 확실한 숫자는 모른다.
어쨌거나 5서클 이상은 214명뿐이다.
“마법사가 기사들을 깡그리 몰아냈다고 하더니 전력이 무시무시하군.”
아르센 대륙의 모든 마법사와 기사가 총동원되어도 마인트 대륙에 비해 열세라는 생각이 든다.
마법사란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뭉쳐 있을 때 더 강한 힘을 내기 때문이다.
“5서클이 700명이면 4서클과 3서클 마법사는 대체 몇 명이라는 건가?”
아르센 대륙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4서클 마법사는 2,800명이고, 3서클은 이의 다섯 배인 14,000명이나 된다.
3서클 마법사 다섯 중 하나가 4서클로 오르는 것을 감안한 수치이다. 같은 방법으로 6서클과 7서클을 추산해 보면 각각 175명과 30명이다.
“마법사의 제국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네.”
강력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탑이 30개 이상 있는 것과 다름없기에 중얼거린 말이다.
“가만. 포탈을 관리하는 자가 라쉬드라 했던가? 진짜 5서클 이상인지 확인해 봐야겠군.”
현수는 컨테이너를 회수했다. 그리곤 곧장 포탈 마법진 인근으로 다가갔다.
파티마의 말대로 마법진 전면에 신전처럼 지어진 큰 건물이 있다. 3층짜리 저택 좌우엔 2층짜리 집이 세 채씩 있다.
중앙의 가장 큰 저택은 포탈 마법진의 총책임자인 라쉬드의 집이고, 나머지 여섯 채는 휘하 마법사들의 것이라 했다.
각각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걸 보면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법진의 뒤쪽엔 두 개의 커다란 건물이 있는데 200명에 달하는 병사가 머무는 곳인 듯싶다.
현수는 경계근무 중인 병사들을 지나 저택으로 다가갔다.
잠시 라쉬드의 저택을 살펴보니 침입자를 대비한 알람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현수에겐 무용지물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저택의 내부는 호화롭고 넓었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
내부를 샅샅이 훑었지만 5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없다.
일곱 명의 여인과 여섯 명의 아이, 그리고 스물한 명의 시녀와 열네 명의 노예만 있을 뿐이다.
보아하니 아내가 일곱 명인 모양이다.
바깥으로 나와 옆집들을 살펴보았다.
좌우측 저택엔 다섯 명의 여인과 네 명의 아이, 그리고 열다섯 명의 시녀와 열 명의 노예가 있었다.
다음 집들엔 세 명의 여인과 일곱 명의 아이, 그리고 아홉 명의 시녀와 여섯 명의 노예가 있다.
가장 외곽의 집엔 두 명의 여인과 다섯 명의 아이, 그리고 여섯 명의 시녀와 네 명의 노예가 있다.
뭔가 규칙이 있는 듯하다. 여인 하나당 시녀는 셋이고 남자 노예는 두 명꼴이다.
라쉬드의 저택에 아이들이 적은 이유는 다 큰 자식들은 출가하여 나간 때문인 듯싶다.
“그런데 뭐야? 이 시각에 아무도 없어?”
지구로 따지면 지금은 밤 11시쯤 되었다. 밤 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이곳은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각이다.
그런데 마법사가 하나도 없다.
“마법진엔 아무도 없었는데 다들 어딜 갔지?”
고개를 갸웃거린 현수는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저택 인근만 횃불이 밝혀져 있을 뿐 깜깜하다.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
다시 한 번 마나를 뿜어내 주변을 살폈다. 현수는 정신을 집중하여 움직이는 물체를 파악해 갔다.
“저기군.”
약 100여 인영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것이 파악되었다. 현수는 은밀히 다가갔다.
“다시 한 번 실시! 분명 뭔가 있다. 흔적을 찾아라.”
“네, 대장님.”
약 서른쯤 되어 보이는 사내의 말에 환갑은 족히 되었을 사내가 허리를 꺾는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주변을 서성거린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곳은 현수가 차원이동을 했던 곳이다.
지구로 갔을 때 라쉬드는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대규모 마나유동을 느꼈다.
하여 즉시 이곳을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자연적으로 마나 유동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하여 모래밭에 떨어진 바늘이라도 찾아내겠다는 심정으로 샅샅이 조사했다. 하지만 어떤 마법이 구현되었는지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이상을 느낀 라쉬드는 수도에 보고했다. 본인이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징후가 발생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그래놓고 잠시 쉬고 있었는데 또 이곳에서 대규모 마나유동 현상이 느껴졌다. 현수가 지구에서 이곳으로 차원이동한 것을 감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