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5
라쉬드는 그 즉시 휘하 마법사 전부와 병사 백 명을 이끌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색 중이다.
헤르마 포탈 마법진 관리책임자 라쉬드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세 번이나 이상한 일이 일어나자 마음에 걸려서이다.
첫 번째는 포탈 마법진에서 발생되었다.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블랙일 아일랜드에서만 올 수 있는 마법진이 예고 없이 반응했다.
라쉬드가 알기로 아르센 대륙으로 파견 나간 외출자는 더 이상 없다. 외출자의 출입은 아주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항상 이곳 헤르마에서 출발하기에 정확히 알고 있다.
따라서 포탈 마법진은 절대 작동하면 안 되었다. 그런데 작동했고 아무도 당도하지 않았다.
마법이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원인이 있어야 하며 작동 원리는 정해져 있다. 이런 연유로 저절로 반응한 포탈 마법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이상하다 여겼는데 대규모 마나유동 현상이 연거푸 두 번이나 일어났다.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일이다.
분명 뭔가가 있다 여겼기에 깊은 밤이건만 횃불을 밝힌 채 사방팔방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다.
‘흐음! 저자인가?’
현수는 한 곳에 멈춰 선 채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30대 초반의 사내를 보았다.
‘몇 서클일까?’
현수는 사내의 서클 수를 확인하려 시선을 집중시켰다.
‘으잉? 5서클이 아니야? 헉! 6서클?’
사내의 심장 부위엔 여섯 개의 서클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상당히 두텁고 탄탄하니 마스터급이다.
현수는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센 대륙이라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고위 마법사가 고작 포탈 마법진의 책임자로 있기 때문이다.
‘헐! 그럼 뭐야? 6서클 마법사가 최하 700명이라는 거잖아. 그럼 7서클은 175명쯤 되고 8서클도 30명은 된다는 거네. 아니다. 포탈을 책임진 자의 숫자가 이러하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겠다.’
현수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 땅을 차지한 마법사의 수효가 엄청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포탈 마법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마탑이나 황궁 등이 더 중요해. 아울러 각 영지의 영주들의 화후도 높을 거구.”
현수의 이런 짐작은 옳았다.
‘근데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현수는 대기 중의 마나 농도를 느껴보았다. 아르센 대륙이나 이곳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르센엔 8서클과 9서클 마법사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여긴 그런 사람이 30명 이상 있는 것 같다.
너무나 확연한 차이이다.
‘여긴 대체 뭐야? 좋아, 나머지도 확인해 보자.’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나머지 마법사들의 서클을 확인해 보았다.
5서클과 4서클, 그리고 3서클이 각각 두 명씩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아르센 대륙에서 이실리프 마탑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전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곳은 혈운의 마탑이다.
7서클 유저가 마탑주이고, 6서클 3명, 5서클 12명, 4서클 89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쉬드는 6서클 마스터 수준이고, 5서클 마법사들 둘 다 6서클을 목전에 둔 5서클 마스터이다.
4서클들도 5서클에 육박하니 6서클 셋에 5서클 둘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정도면 아르센에서 가장 약한 마탑의 전력과 엇비슷하다.
‘흐음, 다른 포탈들도 이러하다면 마탑이 700개 이상이라는 것과 같은 거군.’
현수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어쩌면 복마전, 또는 호구(虎口)일지도 모를 곳에 들어온 느낌이 든 때문이다.
책임자인 라쉬드는 아내가 일곱이었다.
6서클이면 아르센 대륙의 어느 나라를 가든 후작위를 받을 수 있다. 그 정도 자리라면 이 정도 호사는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흐음!’
현수는 침음을 냈다.
포탈을 관리하는 자리에 6서클 마법사들이 파견되어 있다면 수도엔 7서클 이상이 널려 있다는 뜻이다.
7서클부터는 현수가 마나를 감춰도 눈치챌 수 있다. 동조현상 때문에 완벽하게 감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조심해야겠군.’
현수는 슬그머니 물러났다.
“여기, 여기가 이상하다. 조사해.”
라쉬드의 말에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방금 전까지 현수가 있던 자리이다.
마법사들이 난리법석을 피울 때 현수는 헤르마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법사들과 조금이라도 더 멀리 있는 것이 낫다 생각한 것이다. 이는 조금만 방심해도 본인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긴 뭐지? 마나심법이 아르센과 많이 다른가?’
마나를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모을수록 서클 수를 늘리는데 유리하기에 떠올린 생각이다.
‘일단 날이 밝자마자 곧장 산맥을 넘어야겠군. 최대한 주의를 해야지. 그나저나 히말라야 산맥처럼 높진 않겠지?’
총연장 2,576㎞짜리 히말라야 산맥엔 고산준봉이 즐비하다. 그중 하나는 높이 8,848m짜리 에베레스트이다.
비행기와 인도 기러기만이 넘을 수 있다는 산이다.
현수는 조금 더 멀리 가 컨테이너를 꺼냈다. 헤르마 중심지로부터 대략 5㎞ 정도 떨어진 곳이다. 10서클 마스터인 본인도 이 정도 거리면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을 밝히고 이곳에 대해 추론을 해보았다. 예상대로 9서클 마법사가 30명 이상이라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직적으로 대항할 경우 제압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9서클 마법사 30명과의 대결을 심상으로 그려보았다.
예상대로 쉽지 않다. 일 대 다수의 대결에선 번번이 마나 고갈 현상이 빚어진다.
9서클 마법사들의 중첩된 실드는 웬만한 마법으론 깰 수가 없다. 당연히 7서클 이상의 마법이 난사되어야 하는데 워낙 마나 소모량이 많아 본신은 물론이고 켈레모라니의 비늘에 담긴 것까지 다 뽑아 써야 한다.
30명 전부를 9서클 마스터로 잡은 때문이다.
그렇게 열 번을 대결해 보았는데 확실한 승기는 딱 한 번이다. 아홉 번은 황급히 몸을 빼야 했다.
‘으으음! 심각하군.’
새벽 동이 틀 때 현수가 내린 결론이다.
현수는 날이 밝자마자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훨씬 악산이다. 끝없는 오르막길과 빽빽한 수림은 전진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체력이 있기에 꾸준히 올라갈 수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수색대를 피하기 위해 흔적을 지우는 것이 귀찮았지만 만일을 위해 그렇게 했다.
반나절을 올라간 뒤 잠깐 휴식을 취했다.
산의 경사도가 심해서 그런지 몬스터는 물론이고 짐승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쉬는 동안에도 심상 대결은 계속되었다. 아르센 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현수는 딱 두 번 곤란함을 겪었다.
하나는 아무리안 델로 폰 타지로칸이라는 9서클 리치와의 대결 때이다. 당시의 현수는 8서클이었다. 아공간의 적절한 활용이 없었다면 큰 화를 입을 뻔했다.
두 번째는 라이세뮤리안과의 대결이다.
암살하기 위해 장거리 저격소총까지 동원하고도 차원이동 마법으로 도주를 택해야 했다.
그 후론 위기다운 위기가 없었다.
10서클 마법사가 되고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으니 드래곤과도 맞장을 뜰 수 있기에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초조함이 느껴진다. 이곳에 온 목적은 다프네를 구하기 위함인데 쉽지 않을 듯하기 때문이다.
다프네는 라수스 협곡에서 안내할 때에도 아름다웠다.
그 후 노예로 팔기 위해 치장하면서 드러나지 않던 아름다움이 폭발했을 것이다.
모든 사내가 군침을 흘릴 정도가 된 것이다.
이렇듯 출중한 미모를 가졌는지라 로렌카 제국의 고위 귀족, 또는 마법사에게 보내졌을 것이다.
그런데 다프네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다. 하프 드래곤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고니안이다.
이곳 마인트 대륙의 드래곤은 오래전에 멸종되었다. 언제, 무슨 연유로 그리되었는지는 파티마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기에 다프네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녀를 매개로 삼아 마법의 조종인 드래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될 것이다.
용언 마법이 탐나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그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탐구하는 족속이다. 따라서 다프네가 아내 될 여인이니 내달라고 해도 순순히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찰이 빚어질 텐데 웬만하면 이기겠지만 떼로 덤벼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으음!”
현수는 낮은 침음을 냈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녁나절이 되었을 때엔 상당히 높은 부분까지 올라갔다.
“산 밑의 온도가 30℃쯤 되었는데 여긴 10℃밖에 안 되는 거 같군.”
지구에선 고도가 100m 높아질 때 ―0.6℃가 된다. 20℃나 낮아지려면 3,333m를 올라야 한다.
현수는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아직 반도 못 오른 것 같다.
‘끄응! 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눈대중으로 확인해 보니 거의 10,000m는 되는 듯싶다.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컨테이너를 꺼내놓았다. 텐트가 아닌 컨테이너를 선택한 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몬스터나 짐승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두렵지는 않지만 심상 대결이 깨질 것을 저어한 조치이다.
문을 닫고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리곤 9서클 마법사 30명과의 단체전을 개시했다.
대단위 공격 마법인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로 공격을 개시하자 범위 안의 마법사들은 일제히 실드를 중첩시킨다. 다섯 개의 실드까지는 파고들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이다.
이 순간 등 뒤에 있던 마법사들 또한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로 현수를 공격한다. 이번에도 중첩이다.
현수는 앱솔루트 배리어를 구사했다. 그와 동시에 전능의 팔찌에도 같은 마법을 구현시킨다.
수많은 번개가 가장 외곽의 배리어를 두들기는데 견디지 못하고 깨지자 두 번째 배리어가 이를 막는다.
현수의 공격이 멈추자 조금 전에 공격을 받은 마법사들까지 일제히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로 현수를 공격한다.
빛의 향연 정도가 아니다. 현수를 중심으로 너무 많은 번개가 명멸하기에 현수가 마치 빛 덩어리처럼 보인다.
30명에 의한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는 전능의 팔찌가 생성시킨 앱솔루드 배리어마저 깬다.
그 순간 왼쪽 가슴의 켈레모라니의 비늘로부터 새로운 앱솔루트 배리어가 만들어진다.
번쩍! 번쩍번쩍! 번쩍번쩍! 번쩍번쩍―!
“앱솔루트 배리어!”
현수는 재차 절대 방어 마법을 구현시켰다.
하여 또다시 두 겹의 앱솔루트 배리어가 쳐지자 상대 마법사들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다.
그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고오오오, 고오오오오―!
“앱솔루트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콰콰콰쾅!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쾅―!
소환된 운석들이 상대 마법사들을 강타했지만 겹겹이 생성된 앱솔루트 배리어를 모두 뚫은 것은 아니다.
“파이어 퍼니쉬먼트! 파이어 퍼니쉬먼트!”
현수가 딛고 있는 땅거죽이 들썩이더니 뜨거운 용암이 솟구쳐 오름과 동시에 하늘에서 불비가 쏟아져 내린다.
“플라이! 앱솔루트 배리어!”
허공에 몸을 띄운 현수는 배리어로 전신을 보호하는 한편 상대 마법사들을 공격하기 위한 대단위 마법을 준비했다.
3장 9서클 마법사들과의 대결
“어스 퍼니쉬먼트!”
상대 마법사들의 발아래에서도 용암이 솟구친다. 그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불타는 돌덩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플라이! 앱솔루트 배리어!”
티팅! 티티티팅! 티티팅! 티티티티팅!
돌덩이들이 배리어에 맞고 떨어지는 소리와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로 요란하다.
하지만 현수와 상대 마법사 모두 아직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마나 소모만 극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