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06화 (1,105/1,307)

# 1106

“끄응! 이 방법은 안 되겠군.”

나직한 침음을 낸 현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론상 10서클 마법사는 9서클 마법사들을 압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서로가 알고 있는 마법이 같기 때문이다. 현수는 10서클이 되었지만 10서클 공격 마법을 알지 못한다.

같은 마법이라도 상대보다 위력이 강할 뿐이다. 그런데 상대가 여럿이니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10서클 마법을 뚝딱 만들어낼 수도 없고.”

아리아니와 정령들이 아쉽다. 그런데 모두 떼어놓고 왔다. 지구에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아리아니는 현수와 떨어져선 안 된다. 마나에 종속되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현수가 있는 곳으로부터 최대 이격 거리가 5㎞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했다.

아공간 관리인으로 임명한 순간부터 둘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괜찮게 된 것이다. 아공간 자체가 마나로 유지되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수는 지구를 떠나기 전 새로운 아공간을 형성시켰다.

아리아니가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마나집적진 속에 넣어두었던 초특급 마나석이 여러 개 들어 있다.

지구에선 수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리아니를 지구에 떼어놓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아리아니와 물, 불, 바람, 땅의 최상급 정령은 없다.

아르센 대륙의 정령들은 아리아니를 통해 부르곤 했기에 현수는 본인이 직접 부를 수 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

‘여기서 불러봐? 아냐.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혹시라도 근처에 마법사가 있을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를 곳에 은신처를 만드는 게 그들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젠장! 10서클 마법은 뭐로 만들지?”

핵폭탄과 같은 위력을 내는 마법이라면 9서클 마스터들이 겹겹이 형성시킨 앱솔루트 배리어를 파괴하고 타격을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그런 걸 생각해 낸다 해도 그게 이루어지도록 룬어와 마나 배열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10서클 마법을 설계에 비유하자면 아주 정교한 석유화학 플랜트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토목과 건축, 그리고 발전설비, 전기설비, 배관설비, 기계 등 모든 산업기기가 총집결된 공장이니 설계가 쉽고 간단할 리 없다.

저장조, 펌프, 각종 배관류, 밸브, 반응기, 열교환기, 증류탑, 냉각탑, 필터 등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데 프로세스에 따라 달라지니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수는 밤새도록 심상 대결을 시도했다, 스무 번 중 겨우 한 번 승기를 잡았다. 5% 확률이다.

나머지 열아홉 번은 마나 고갈로 인한 패배였기에 현수의 이맛살은 잔뜩 찌푸려졌다.

“이러면 가도 소용이 없는데. 끄응!”

날이 밝자 현수는 백두마트에서 팔던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때웠다. 그리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도 없고 가다 보면 깊은 계곡도 있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했다. 플라이 마법을 쓰면 간단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간간이 마법사의 은신처가 눈에 뜨인 때문이다.

“에구, 하필이면 왜 여기에 와서…….”

아무런 방해 없이 혼자만의 수련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인지라 뭐가 타박할 수도 없다.

하루 종일 걸어서 당도한 곳의 기온은 10℃ 정도 된다. 어제보다 더 열심히 걸었지만 비슷한 높이에 당도한 것이다.

다행인 점은 내일부턴 곧장 오르막이라는 것이다.

‘장딴지가 딴딴해졌네.’

컨테이너 안에서 종아리를 주물럭거렸다.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강철은 아닌지라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치이익! 치이익―!

잠시 주무르다 뿌리는 파스를 분사시켰다. 밤새 주무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는 햄버거를 만들어서 먹었다. 그리곤 곧장 심상 대결에 들어갔다.

달라진 것은 없다. 스무 번의 대결에서 두 번 승기를 잡았다. 이겨서 전부 제거했다는 것이 아니다.

조금 여유롭게 대결에 임했다는 것뿐이다.

대결을 끝까지 끌고 가면 결국 현수가 패한다. 마나 고갈이 발목을 잡는 때문이다.

그래도 본인의 기량이 나아진 걸 느꼈다. 마법과 마법의 조화를 어느 정도 터득한 것이 큰 성과이다.

문제는 상대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상대까지 업그레이드시켜 가며 심상 대결을 한 것이다.

잠깐 눈을 붙였다 새벽에 일어나선 10서클 마법을 고안해 내려 애썼다.

“흐음, 이건 다이아몬드 마법이라 이름 붙일까?”

연필심으로 사용되는 흑연(Graphite)에 10만 기압의 압력과 3,000℃의 온도를 가하면 인조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진다.

현수가 생각한 10서클 공격 마법은 이것을 응용한 것으로 상대의 전후, 좌우, 상하에서 갑작스런 고압이 발생케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주먹만 한 크기로 압축된다. 당연히 사망이다.

워낙 강대한 압력으로 죄는 것인지라 일단 걸리고 나면 블링크나 텔레포트 마법으로도 도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수는 떠오른 아이디어로 부지런히 마법식을 써봤다. 일단 써놓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할 생각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마법이 떠오른다.

“이건 인사이드 애로우(Inside arrow)라 하면 되겠군.”

방금 생각해 낸 마법의 원리는 간단하다.

상대의 심장 속, 혹은 뇌 속에 아이스 애로우가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신체의 내부가 급격하게 얼어붙으니 외부에선 구해줄 방도가 없다.

이에 당하면 당연히 고통스런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의 특징은 실드나 배리어, 혹은 앱솔루트 배리어 같은 방어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블링크나 텔레포트로는 피할 수 있다.

“흐음! 또 하나 있군. 이건 아이스 니들(Ice Needle) 마법이라 하면 되겠군.”

이번에 생각해 낸 것은 상대의 혈액 속 수분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것이다. 작은 얼음 결정들이 쐐기처럼 혈관에 박히게 될 것이니 이것도 만만치 않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 뭐가 있지? 옳지 그거!”

현수가 생각해 낸 것은 허파 속 공기의 체적이 급격하게 팽창되는 마법이다.

3서클 에어로 밤(Airo Bomb) 마법을 응용한 것이다.

팽창되는 공기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면 허파가 터진다. 더 이상 호흡을 할 수 없게 되니 죽은 목숨이다.

“이건 렁스 버스터(Lungs Burster)라 해야 하나? 근데 그러고 보니 전부 대인 마법이네. 한꺼번에 여럿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현수는 턱을 괸 채 상념에 잠겼다.

이 시간은 길었다. 지금껏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출출하여 아공간에서 과자 한 봉지를 꺼냈다.

봉투를 찢자 부피가 확 줄어든다. 값만 비싸고 내용물은 지극히 빈약한 질소 과자라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먹던 현수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매스 텔레포트도 되는데 매스 입고도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범위가 어떻게 되지? 아공간 오픈! 입고, 입고, 입고, 입고…….”

아공간을 열고 눈에 뜨이는 돌들을 넣어보았다. 20m까지 성공이다. 가끔 30m 이내의 것도 들어갔다.

“흐음! 이 정도면 매우 가까워야 한다는 건데.”

근접전을 펼치는 기사와의 대결이라면 아주 유용한 마법이다. 반경 20m 이내의 모든 적을 모조리 아공간에 담을 수 있다. 1,256㎡, 약 400평 범위이다.

“흐음! 기사들에겐 써먹기 좋은데 마법사들은 거리를 두어 상대하니 당장은 그렇지만 참고는 해둬야겠군.”

아공간 마법은 마법사가 지정하는 것만 들어간다.

일종의 대상 마법이다. 이번에 생각해 낸 것은 일정 범위 내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아공간에 담는 것이다.

범위 마법으로 발전된 것이다.

“멀티 스터리지(Multi storage)라 이름 붙이면 될까?”

현수는 새롭게 구상한 마법식을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그리곤 다시 상념에 잠겼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범위 마법을 구상해 내지 못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해결책이 모색되지는 않았다.

“너무 높아서 새들도 없나?”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새벽이 되면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조용하다.

그러고 보니 새가 없을 만도 하다.

사방이 온통 눈이다. 만년설로 뒤덮여 있으니 먹이를 구할 수 없어서 새들도 오지 않는 모양이다.

“높긴 우라지게 높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이 산의 높이는 최하가 10,000m는 되는 듯하다.

“끄응! 가자.”

컨테이너를 아공간에 넣은 현수는 겨울용 등산화와 스패츠, 그리고 아이젠을 꺼냈다.

아울러 스틱과 방한 장갑도 꺼내 들었다.

고글도 꺼내서 썼다.

눈[雪]에 반사된 자외선과 적외선에 의해 각막이나 망막이 손상되어 시력장애를 겪게 되는 설맹(Snow blindness)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은 방한모자와 안면 마스크이다.

그냥 편하게 플라이 마법을 쓰면 됨에도 걸어서 오르려는 이유는 육체의 한계를 체험하고 높디높은 이 산을 두 발로 정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딘가에 있을 마법사의 은신처를 염두에 둔 때문이기도 하다.

“좋아, 가자.”

아래를 힐끔 바라보곤 곧장 위로 걸었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있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플라이나 블링크를 쓰면 크레바스 아래로 떨어져도 금방 빠져나올 수 있지만 모처럼 등산 기분을 내는 중이라 스틱으로 쿡쿡 찔러 일일이 확인하며 올랐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최소 6,000m는 올라온 듯하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묵묵히 걸었다.

중간에 눈사태가 한 번 일었지만 플라이 마법으로 몸을 띄워 화를 모면했다. 모르긴 해도 몇몇 마법사의 은신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휴우∼!”

긴 한숨을 쉰 현수는 컨테이너를 꺼내 자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항온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실내 기온은 약 25℃가 유지되고 있다.

바깥과의 온도차가 상당하기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훈훈함이 느껴진다. 입고 있던 등산복 등을 벗고 샤워를 했다.

그랜드 마스터의 막강한 체력을 가졌지만 땀나는 걸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산 아래의 기온은 약 30℃였다.

현재 이곳의 기온은 대략 ―15℃이다. 그렇다면 이곳의 고도는 약 7,500m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이 고도에서 샤워한 인물이 된 것이다.

“어휴! 시원하다.”

머리를 말리던 현수는 아공간에서 쉐리엔 주스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흐으음!”

위장은 물론이고 폐부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보아하니 이 높이엔 마법사의 은신처가 없는 듯하다. 하여 환하게 불을 밝히고 앉았다. 10서클 마법은 머리를 쥐어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닌지라 그냥 편히 쉬었다.

“내일은 이 산을 넘을 수 있겠군.”

고도 10,000m짜리 산을 마법 없이 체력으로만 정복한다는 생각에 괜스레 기분이 좋다.

“올라갈 때 크레바스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군. 뭐 있어도 그만이지만.”

크레바스에 빠져도 그랜드 마스터의 체력이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기에 한 말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현수는 안동찜닭을 만들었다. 매콤하면서도 기름지기에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산에서 먹는 음식 맛은 일품이었다.

워싱 마법으로 설거지를 마친 현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불을 끄고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대기오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곳이라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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