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2
“으앗! 괴, 괴물이다! 놓치지 마라! 모두 공격!”
“라이트닝 볼트!”
“파이어 애로우!”
“윈트 커터!”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난사했지만 현수와 오토바이가 지나간 뒤다. 병사들이 쏜 화살과 던진 창 역시 아무도 없는 허공만 가를 뿐이다.
‘뭐야? 대체 왜 공격하지?’
“모두 공격하라! 공격하라!”
“플레임 버스터!”
쐐에엑! 퍼어엉―!
6서클 마법이 구현되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현수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헬멧을 쓴 때문이다.
부아아아아아앙―!
오토바이는 마법사와 병사들 사이를 빠른 속도로 돌파했다. 약 300m에 이르는 통로 아닌 통로를 지나는 동안 무수한 마법 공격이 있었지만 유효한 것은 없었다.
오토바이의 빠른 속도를 체험한 바 없기에 모두 지나간 곳을 휘저은 결과가 된 때문이다.
이곳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현수는 곧장 수도 쪽으로 쏘아져 갔다.
뒤쪽의 마법사와 병사들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살아 있는 로또복권을 놓친 때문이다.
“빌어먹을!”
화려하게 수놓아진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투덜거린다. 이 영지의 영주이다.
“영주님, 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통신용 수정구를 가져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은 영주는 상대편의 영상이 나타나자 얼른 입을 연다.
“후작님, 펜말 백작입니다. 방금 전 후작님의 영지 쪽으로 거수자가 이동했습니다. 엄청나게 빠릅니다. 화살과 창은 별 해를 못 입히니 단단히 준비하십시오.”
“그런가? 정말 거수자인가?”
“네,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물을 타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말보다 훨씬 빠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말보다 훨씬 빠릅니다.”
“빨라? 대체 얼마나 빠르기에?”
“말보다 최소 서너 배는 빠릅니다. 그리고 머리에 뭔가를 뒤집어썼습니다. 화살로는 해를 입힐 수 없을 겁니다.”
뭔 소린지 이해되지 않지만 제대로 된 정보인 듯싶은지 후작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네, 펜말 백작. 자네의 정보, 아주 유용할 것이네. 신세 진 것 잊지 않지. 다음에 보세.”
“네, 후작님. 그럼 이만 통신을 마칩니다.”
수정구에서 후작의 영상이 사라지자 영주는 나직이 투덜거린다.
“젠장!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끄응! 3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젠장! 젠장할!”
현수를 잡았다면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작할 기회이다. 그런데 손쓸 틈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워낙 빠르기에 추격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말인데 그보다 훨씬 빠른 오토바이를 어찌 쫓겠는가!
펜말 백작 일행이 영주성으로 되돌아가는 동안 정보를 얻은 루펜자 후작 영지는 소란이 빚어진다.
현수를 생포하기 위해 바위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매복을 준비하는 중이다.
“신호에 따라 행동한다. 알겠나?”
“네, 영주님.”
루펜자 후작은 병사와 마법사들을 전력 배치했다.
병사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있는데 궁병과 창병이다.
현수가 포위망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창병은 투창을 하고, 궁병은 활을 쏠 예정이다.
이들의 목표는 현수가 아니라 뭔지 알 수 없는 탈것이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인 몬스터를 타고 있다 생각했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과학기술을 이용한 문명의 이기가 별로 없는 세상인 때문이다.
같은 순간 마법사들은 일제히 파이어 애로우를 구현시키기로 했다. 사방에서 이것들을 쏜 직후 아이스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가 차례로 시전될 예정이다.
이럼에도 거수자가 포위망을 벗어나려 하면 루펜자 후작이 나서서 7서클 마법인 어스퀘이크를 구현시키기로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모든 공격을 견뎌내면 곧바로 대단위 공격 마법인 헬 파이어가 시전된다.
이 정도면 와이번이라 할지라도 통구이가 되니 충분히 현수를 체포할 수 있을 것이다.
루펜자 후작은 거수자가 화상으로 사망하면 추가 정보 획득이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7서클 마법사를 대기시켰다.
컴플리트 힐 마법과 회복포션이라면 웬만한 화상 정도는 거뜬히 치료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다짜고짜 공격을 퍼부으니 적응되지 않는 때문이다.
‘왜 날 공격하지? 여기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부아아아아앙―!
생각하는 동안에도 오토바이는 울퉁불퉁한 숲 속을 내달리고 있다. 워낙 조용한 곳이고 인적이 없는 곳인지라 20데시벨 이하의 소음뿐이지만 현수의 귀에는 크게 들린다.
“끄응, 그래도 시끄럽군.”
적당한 곳을 찾아 오토바이를 세우곤 간식을 꺼내 먹었다.
따가운 햇살이 느껴져 그늘로 들어간 뒤엔 논 노이즈 마법진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이 정도면 20데시벨이 아니라 3∼4데시벨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숨소리나 낙엽 구르는 소리가 10데시벨이니 이 정도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자!”
부우우우웅―! 촤아아아아아―!
엔진 음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다. 반면 타이어가 지면을 박차는 소리는 제법 시끄럽다. 이건 줄일 방법이 없다. 흙에다 마법을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참 달리는데 저 멀리 인적이 느껴진다.
약 2㎞ 전방이다.
“뭐야? 날 기다리는 거야? 왜 이러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지형을 살펴보았다. 양쪽은 절벽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지나쳐야 한다.
“끄응! 지형 한번…….”
한시바삐 수도로 가야 하는데 이렇듯 계속해서 앞을 막으면 상당한 시간이 지체될 듯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부우우웅―! 촤라라라라라락―!
뒷바퀴에 의해 튀어 오른 흙이 식물의 잎사귀에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현수는 스트롤을 더 당겼다.
이 순간이다.
“투창!”
휙, 휘익! 휙휙휙휙!
500여 개의 창이 날아온다.
“계속해서 발사!”
쇄에엑! 휘이익! 슈우욱! 쒸아앙! 쐐에엑!
약 500여 발의 화살이 날아오는데 곧이어 추가로 500발의 화살이 또 쏘아져 온다.
“공격 개시!”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 파파파파파이어 애로우!”
약 600개의 불화살 또한 쇄도한다.
“이것들이 진짜! 에이, 쉴드!”
티팅! 티티티티티티티팅―!
창과 화살, 그리고 불화살이 쉴드에 부딪친다.
부아아앙! 촤라라라라라락!
오토바이는 사람들 사이로 쏘아져 간다. 마법사들은 놀라서 물러서면서도 마법을 난사한다.
“아이스 볼트! 라이트닝 볼트!”
쐐에에엑! 슈아아악! 쎄에엥! 샤아아악!
다시 300여 개의 마법 공격이 시도되었지만 쉴드에 막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다. 그렇게 오토바이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려 할 때다.
“어스퀘이크!”
우릉! 우르르르릉―!
“으읏!”
갑작스레 땅거죽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쩍쩍 입을 벌린다. 현수는 속도를 약간 낮춘 뒤 비교적 멀쩡한 곳을 찾아 전진했다.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멈추면 사방에서 쏟아질 공격 때문이 아니다. 그건 배리어 마법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모진 마음이 들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게 될까 싶어 그냥 가려는 것이다.
부아아아앙! 촤라라라라락!
“헬 파이어!”
고오오오오오―! 콰아아앙!
거대한 불덩어리가 형성되더니 가려는 길 앞에 떨어진다. 현수 본인은 상관없지만 오토바이는 아니다.
“앱솔루트 배리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수는 물론 오토바이까지 투명한 배리어로 감싸인다.
현수는 이 무지막지한 공격 마법을 자신에게 퍼부은 늙은이를 째려보았다.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이 구현시킨 마법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다.
족히 70살은 넘어 보이는데 몹시 탐욕스런 얼굴이다. 이런 공격을 받았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아공간 오픈!”
현수는 활을 꺼내 들곤 힘껏 시위를 당겼다.
패에엥! 쐐에에에에엑―!
“커흑! 블링크!”
오러 실린 화살이 쏘아져 오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에 오토바이는 포위망을 완벽히 벗어난다.
부아아앙! 촤르르르르륵―!
튀어 오르는 흙먼지를 바라보는 후작의 얼굴엔 낭패감이 어려 있다. 나름 천라지망이라 생각한 포위망을 너무도 쉽게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당한 게 어이없는 것이다.
“여, 영주님! 어, 어떻게 합니까? 추격해요?”
“아니, 아니다! 수정구 가져와!”
“네, 영주님!”
잠시 후 통신용 수정구를 앞에 둔 루펜자 후작은 영상이 나타나자 얼른 입을 연다.
“케즈만 공작님, 루펜자 후작올시다.”
“오! 후작, 오랜만일세. 그래, 잘 지내는가?”
“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죠.”
“그런가? 다행이네. 근데 얼굴이 왜……. 자네도 얼른 9서클에 올라야겠네.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늘었군.”
“…네, 그래야지요.”
수정구에 나타난 사내의 얼굴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9서클이 되면서 바디체인지를 겪은 결과일 것이다.
“그래, 웬 바람이 불어 통신을 요청했는가? 영지에 큰일이라도 벌어졌나? 아님, 잔치가 있어?”
“네, 손녀 아이가 다음 달에 결혼하기는 합니다.”
“오! 그래? 감축하네. 라일라인가, 아님 나디아인가?”
“라일라는 벌써 애가 셋입니다. 나디아죠.”
“아! 그래? 그럼 손서 될 녀석은 누군가?”
공작은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공작이 후작의 외당숙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는 공작님.”
“그래, 말하게.”
“방금 전 거수자 하나가 제 영지를 거쳐 공작님의 영지 쪽으로 향했습니다.”
“거수자가?”
“네, 뭔지 모를 탈것을 타고 갔는데 엄청나게 속도가 빠릅니다. 화살보다도 빠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말은 뻥이다.
현수가 탄 오토바이는 고르지 못한 지면 때문에 간신히 시속 60㎞로 달린다.
반면 리커브 보우의 화살 속도는 약 235㎞/h이다.
참고로 35∼40파운드짜리 활은 약 170㎞/h이고, 55∼60파운드짜리는 230㎞/h 정도의 속력이 나온다.
비교적 후진 이곳의 활도 시속 100㎞/h는 나온다.
따라서 루펜자 후작의 말은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살보다도 빠르다고? 뭔데 그러는가?”
“그게 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엄청 빠르다는 것과 머리에 뭔지 알 수 없는 것을 뒤집어썼다는 것, 그리고 헬 파이어로도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루펜자 후작의 보고에 케즈만 공작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헬 파이어로도 잡을 수 없었다고?”
“네, 500명의 궁수와 500명의 창병, 그리고 4서클 마법사 120명과 5서클 48명, 6서클 14명과 7서클 3명, 그리고 제가 온 힘을 다해 공격했음에도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
공작은 잠시 말을 잃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람이 분명한가?”
“네,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을 쓰더군요.”
“뭐어? 그렇다면 거수자가 8서클 이상이란 말인가?”
케즈만 공작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을 때 루펜자 후작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잇는다.
“뿐만이 아닙니다. 놈은 그 와중에도 오러 실린 화살로 저를 공격했습니다.”
“오러 실린 화살? 그럼 보우 마스터란 말인가?”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분명 오러가 실린 화살이었습니다. 속도도 엄청 빨랐구요.”